2014.9.22.월요일(이탈리아)
로마시내 투어는 벤츠 밴 투어라고 부르는데, 벤츠사에서 만든 밴을 타고 시내 관광지를 한 바퀴 도는 일정이다. 벤츠 투어 여행 중 역방향 자리 때문에 기분이 조금 상하기도 했다. 역방향이 있는 줄 알았으면 멀미약을 미리 먹고 탔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후회를 해본들 소용도 없고, 자존심만 상했다. 멀미 트라우마가 있는 나 자신이 원망스럽다.
동남아 여행은 관광버스에 역방향이 없어 못 느꼈는데, 유럽은 나를 너무 푸대접했다.
동전을 한 번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온다는 이야기로 유명한 트레비 분수로 갔지만 분수는 온데간데없고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동전은 아꼈지만 분수를 보지 못해 조금은 억울한 심정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꿩 대신 닭이라고 분수대 앞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위안을 삼는다.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로마의 휴일’로 유명한 스페인광장에서 오드리 헵번이 앉은 자리에서 아이스크림은 먹지 않았지만, 사진만은 찍었다. 오드리 헵번이 ‘로마의 휴일’을 촬영한 때가 1953년이니까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다. 미인박명인가, 60대 초반에 대장암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
영화 ‘벤허’에서 찰턴 헤스턴이 마차를 타고 달리던 대전차경기장, 귀족 저택의 하수관 뚜껑이라는‘진실의 입’, 판테온, 베네치아 광장, 콜로세움, 포로 로마노 광장 등도 구경할 수 있었다. 오후에는 바티칸시국에 들어가는 날이다.
일정에는 오전에 바티칸시국 관광을 한다고 되어 있지만, 오전은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니 오후 일정과 맞바꿨다. 길가에서 엽서가 한 줄 2유로 하면서 외치는 외국인, 방글라데시인으로 우리나라 가구공장에 6년을 다녔다고 한다. 우리말을 하는 외국인이 기특하여 2유로로 적선을 할까 생각도 했지만, 집에 오면 쓰레기로 외면당할까 싶어 참았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시국. 1,200여명의 인구 중 800여명이 남자이며 모두 성직자와 가톨릭에 관계되는 사람들이다. 1시간을 넘게 줄을 섰다가 입국을 하였다.
바티칸박물관, 성베드로 대성당, 시스티나 예배당 등 볼 것도 많다. 가톨릭 신자는 더더욱 참배를 해야 하는 성지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집무실도 보이지만, 교황은 볼 수 없었다.
교황청 근위병, 전원 스위스 남자이다. 스위스 사람들은 고용주를 위해서는 목숨도 아낌없이 바친다고 한다. 1527년 교황 클레멘트 7세 때 신성 로마제국 군대가 교황청으로 쳐들어 왔으나 다른 나라 용병은 모두 도망가고, 스위스 용병만 교황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한다. 지금도 스위스 용병만 채용하는 것은 그들의 책임감과 충성심 때문이다. 근위병 유니폼은 미켈란젤로가 디자인을 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인 ‘천지창조’, 예술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몸도 돌보지 않은 그의 예술혼에 가슴이 뭉클하다. ‘최후의 심판’도 그의 작품이다.
2014.9.23.화요일(이탈리아)
샘과 산에서 나는 ‘피우지 물’로 유명한 피우지에서 피렌체로,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가죽제품 선물을 사야 하는 장소이다. 페루치는 가게 이름이다. 르네상스의 발생지가 피렌체이다. 아들에게 허리띠를, 딸아이에게는 예쁜 지갑을 샀다. 관광객을 봉으로 생각하는지 비싸기는 왜 그리 비싼지. 꼭 바가지를 쓴 기분이다. 관광객이 물밀듯이 들어와 물건을 제대로 고를 수도 없을 만큼 혼잡했다. 가족선물만 아니면 관광지 물건을 안사는 성격이지만 이번 여행을 어쩔 수 없이 사야 했다. 산타크로체 성당에는 피렌체를 빛낸 미켈란젤로, 갈릴레오 갈릴레이, 마키아벨리, 로시니의 유해가 있다. ‘신곡’의 단테는 정치적으로 인해 라벤나로 추방당해 그곳에서 삶을 마감하여 잠들어 있지만, 기념비는 이곳에 있다. 피렌체 두오모 성당, 세례당, 단테 생가를 방문하고, 시뇨리아 광장, 베키오 다리를 둘러보며 하루 일과를 마친다.
2014.9.24.수요일(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물의 도시, 운하의 도시 베네치아(영어명은 베니스)로 가는 날이다. 총 118개의 섬으로 연결된 베네치아는 자연 섬이 6개이고 나머지 112개가 인공 섬이다.
아침 8시 20분 배를 타고 베네치아 섬으로 들어갔다. 1년에 2,300~2,4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도시로 6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할 만한 값어치가 있는 섬이라는 걸 피부로 느낀다. 나룻배인 곤돌라(Gondola)를 타고 운하를 돌면서 베네치아 속살을 본다. ‘탄식의 다리’는 두칼레 궁전과 감옥을 연결하고 있다. 탄식의 다리를 지나 감옥에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400여 개의 다리가 섬과 섬을 연결하고 있어 교통수단은 배를 이용한다. 가이드에게 감옥 이름을 물어보니 그냥 감옥이라고 한다. 이름 없는 감옥이 어데 있단 말인가.
베네치아 출신으로 세계적인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여기 감옥에서 수용생활을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자들이 출소를 도와줬다고 한다. ‘동방견문록’를 지은 탐험가 마르코 폴로, ‘사계’를 지은 작곡가 비발디도 베네치아 출신이다. 산마르코 광장, 산마르코 대성당 등을 둘러본다. 1,500여 년 전에 무슨 기술로 바다를 메워가면서 섬을 만들어 이처럼 튼튼한 집을 건축하였는지 불가사의하다. 무려 700여 년 만에 여의도의 3.5배에 해당하는 섬을 다 만들었다고 하니 그들의 끈질긴 집념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산마르코 광장 보도블록사이로 바닷물이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지금도 최대 무릎까지 바닷물이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몇 천 년 후면 바다 밑으로 잠길까?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유적이 언젠가는 바닷물에 잠기게 되는 게 기우로 끝났으면 한다. 화장실도 무료 화장실이 없어 가게에서 커피를 한 잔 사고 이용해야 했다. 유럽 사람들은 공중화장실을 짓는 데 왜 인색할까? 문화의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관광객을 위한 배려는 많이 부족하다. 수상택시(Motoscafi)를 타고 베네치아 건물들을 볼 때마다 감탄이 안 나올 수가 없다. 베네치아 국립대학에 한국어과도 있다고 하니 유능한 학생들이 우리말을 많이 배웠으면 한다.
회갑여행 중 가장 볼 것도 많은 이탈리아 여행을 끝내고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 도착하여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와 황금지붕을 관광한 후 자유 시간에 아내에게 줄 머플러를 한 개 샀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무능한 남편을 만나 고생한 아내, 건강하게 살아야 행복하다. 특별히 잘 해준 것은 없지만 그래도 속을 안 썩인 것은 서너 가지가 있다.
첫째, 월급은 32년 동안 10원짜리 동전 하나 숨긴 것 없이 다 주었다. 봉급이 적어서 고생은 조금 시키기는 했지만….
둘째, 여자에 관해서도 깨끗하다고 자부한다, 우스갯소리로 장애인이지만.
셋째, 도박 등 잡기를 해본 일이 없으니, 남편을 기다린다고 밤을 새운 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