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은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어느 정도 가능성을 가지고 해야 즐거움과 기대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래도 좀 황당한 이야기라서 그런지 크게 감동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이야기의 깊이를 깨닫고 매우 호감을 표현한 관람 후기를 써준 분들도 있습니다. 그야 개인적인 차이라 생각합니다. 너무 깊은 이야기에 동감은 하면서도 관람하는 동안은 빠르게 돌아가는 장면들에 혼란스러워 따라가기 바빴습니다. 아무튼 상상은 그것입니다. 이 드넓은 우주 어딘가에 ‘나’라는 존재가 또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은하계만도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잘 모릅니다. 그 어디엔가 ‘내’가 다른 모습으로, 아니 다른 인생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런데 어느 날 그 통로가 열려 서로 교통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아니면 그 쪽의 상황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또 다른 능력을 알게 되어 그것을 습득하여 여기서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전혀 다른 인생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부족하고 불만족스러웠던 자신을 깨버리고 새로운 자기를 살아보는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그렇게 새로 사는 삶에는 만족할 것인가 하는 것이지요. 또 다른 ‘나’ 아니면 새로운 자신을 살아본다는 것은 매우 흥미 있지만 사실 지금의 나도 다 살아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 어찌 잘 되었다 못 되었다 속단을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대로 살면서 바꾸어갈 수도 있는 일 아닙니까? 아직 얼마의 시간이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많은 사람은 자신의 현실을 바꾸고 싶어 합니다. 어렵고 힘드니 그런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가끔은 잠자리에서도 상상을 해봅니다. 혹 꿈도 꿀 수 있습니다. 아니면 잠깐 휴식하는 시간에라도 상상의 날개를 펴봅니다. 발리 섬 여행을 떠나본다든지, 가까이 남해 일주를 해본다든지, 보다 크게 우주여행사가 되어 달에 안착을 해본다든지 말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도가 너무 지나칩니다. 아니면 대단한 상상력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새로운 미래를, 아니면 전혀 다른 자신의 현실을 상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는 눈을 통하여 보입니다. 영화에서는 ‘베이글’로 나옵니다. 마치 도넛 모양으로 등장합니다.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주 저 편의 다른 세계에 있는 자기를 봅니다.
왜 이런 기막힌 사태가 벌어지는가 하는 것은 주인공 ‘에블린’의 놓인 현실을 보면 금방 이해합니다. 밀린 세금 딱지들 속에서 코인 세탁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일 독촉이 들어오고 고객도 여러 가지이니 그에 따라 적응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리고 몇 안 되는 식구지만 에블린에게는 콩가루 집안입니다. 매 끼니를 챙겨드려야 하는 아버지, 돕는다고 하지만 말썽이나 부리는 남편, 하나 있는 딸은 레즈비언인지 여자 친구와 붙어 다닙니다. 엄마의 뜻과는 전혀 다른 삶을 꿈꾸는 듯하여 말끝마다 가슴을 도려냅니다. 그러니 그 반응 또한 달갑지 않습니다. 서로 으르렁거립니다. 작업장 챙기랴, 아버지 섬기랴, 가족들 뒷바라지하랴, 정말 정신 사나워집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이상한 눈을 통하여 다른 세계, 다른 자기를 보게 됩니다. 자신이 다르게 살 수도 있겠다, 하는 희망(?)을 봅니다. 그래서 젊어서 꿈꾸었던 성공한 연예인이 되어보기도 합니다. 아니면 기막힌 무예의 도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자기로 현실에 대입해보면 살맛날까요? 그렇게 되면 상상은 이렇게 곁길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당신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나아졌을까요? 사실 그런 상상은 한쪽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자도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상은 억누르며 현실을 인정하고 극복해나가는 것입니다. 사실 결혼의 단꿈은 짧습니다. 우리는 모두 곧 현실로 돌아옵니다. 왕자도 공주도 모두 남자와 여자일 뿐입니다.
당신 아닌 다른 남자 또는 여자와 결혼했더라면, 하는 상상은 해봤자 무익합니다. 그 남자 그 여자라고 했더라도 큰 차이가 생기지 아니할 것입니다. 어른들 흔히 말하듯이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문제는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며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위 마음먹기 달려있다는 것이지요. 결국 돌맹이 같은 마음으로 나란히 낭떠러지에 놓인 꼴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두 눈은 살아있어서 자기 보고자 하는 것만 봅니다. 그리고 어느 날 깨닫습니다. 그래 인생 다 거기서 거기지. 그리고 다시 곁으로 다가갑니다. 살아도 함께, 떨어져도 같이 떨어지자, 뭐 그런 겁니다. 눈을 돌리면 다르게 보입니다. 더구나 여태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에블린의 정신 사나운 삶을 그리고 있지만 장면들이 정말 정신 사납게 지나갑니다. 그리고 갑자기 끝났나? 싶은데 끝이 아니라는 겁니다. 결국 온 우주를 돌아, 돌아 돌아온 곳은 내 집이지요. 인생 사는 것이 뭐 별 겁니까? 그냥 지지고 볶아도 내 집이고 내 가족인 걸요. 여태 보던 눈을 잠깐만 돌리면 다른 것을 볼 수 있고 없었던 살맛이 새롭게 생깁니다. 우주를 빙빙 돌아서 찾아온 곳도 결국은 자신의 자리입니다. 뭐 봐이킹 타고 내렸다 생각하면 될 듯합니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를 보았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귀에
쏙 들어오는 설명
잘봤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셨어요 제이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