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휴장, 다시 생각한 제헌절
이른 아침,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전화를 받으니 평소 가깝게 지내는 친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니 오늘 장 쉬는 줄 알았나?"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었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이고?" 하며 막 증권사 HTS에 접속하려던 참이었다. 친구는 자신도
평소처럼 주식 시세를 보려고 컴퓨터를 켰는데, 종합시세 창에는 뜻밖에도 '금일 휴장'이라는 문구가 떠 황당했다며 웃었다.
전화를 끊고 나도 서둘러 HTS를 열어 보니 정말 장이 열리지 않았다. 그제야 인터넷 뉴스를 다시 살펴보았고, 제헌절이
올해부터 다시 공휴일이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분명 며칠 전 기사에서 읽기는 했지만, 그것이 올해부터 시행되는 줄
은 미처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다.
주식시장이라도 열리면 오르내리는 시세를 바라보며 하루를 보내는 재미가 있다. 백수에게는 그것도 무료함을 달래 주는
소소한 일과다. 그런데 시장이 쉬니 갑자기 하루가 길어졌다.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잠시 막막해졌다.
문득 오래전 읽었던 일본 신문 기사가 떠올랐다. 다음 해 달력을 모두 인쇄한 뒤 정부가 새로운 국경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바람에 달력을 폐기해야 했던 인쇄업자가 막대한 손실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공휴
일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반가운 휴식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을 뒤흔드는 사건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생각
하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공휴일의 변천은 적지 않았다. 예전에는 10월 24일 유엔데이도 공휴일이었다. 그러나 주 5일 근무제가 정착
되는 과정에서 여러 공휴일이 조정되었고, 제헌절 역시 2008년부터는 국경일이면서도 쉬지 않는 날이 되었다. 그러다 올해
부터 다시 공휴일로 돌아왔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쉬는 날도 달라졌지만, 그날이 담고 있는 의미까지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제헌절은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이 공포된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5·10 총선거로 구성된 제헌국회가 국민의
뜻을 모아 헌법을 제정하고 이를 공포함으로써 대한민국은 헌법을 기초로 한 민주공화국으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국가 권력
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주권의 원리, 자유와 평등, 법치주의와 기본권의 보장이 모두 이 한 권의 헌법에서 시작되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날짜에도 상징성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7월 17일은 조선왕조가 건국된 날과 같은 날짜여서, 새로운 대한
민국이 역사적 전통 위에 민주국가로 새롭게 출범한다는 의미를 함께 담았다고 한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상징적 선택이었던
셈이다.
사실 우리는 공휴일이 되면 쉬는 것부터 생각한다. 여행을 갈까, 집에서 쉴까, 밀린 일을 할까를 먼저 고민한다. 그러나 제헌절
만큼은 하루를 쉬는 이유를 한 번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하며 살아갈 수 있는 권리, 법 앞에서
평등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 국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원칙은 결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은 하루 쉬면 다음 날 다시 열린다. 하루 오르지 못한 주가는 내일 다시 움직인다. 그러나 헌법이 세운 국가의 기본
원칙은 하루도 멈추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시장의 등락처럼 흔들려서는 안 될 대한민국의 중심축이다.
뜻밖의 휴장은 결국 뜻밖의 깨달음을 안겨 주었다. 아침에는 주식시장이 쉬어 심심하다고 투덜거렸지만, 하루가 지나면서
제헌절은 단순한 휴일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출발을 기념하는 소중한 날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 태극기가 바람에 힘차게 펄럭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루를 쉬는 이유를 아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기억하는 국민이 많을수록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헌법은 더욱 굳건해질 것이다. 뜻밖의 휴장이 선물한 하루가, 그래서 더욱 뜻깊게 마음속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