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30일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안식일일지라도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0-17
10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어떤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11 마침 그곳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는 여자가 있었다.
그는 허리가 굽어 몸을 조금도 펼 수가 없었다.
12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부르시어,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 하시고,
13 그 여자에게 손을 얹으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14 그런데 회당장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분개하여 군중에게 말하였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
15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끌고 가지 않느냐?
16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17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그분의 적대자들은 모두 망신을 당하였다.
그러나 군중은 모두 그분께서 하신 그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하였다.
베푸는 것이 이기는 길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위할 때 무슨 이유로 그 사람을 위하고 돌봐주고, 아껴주고, 사랑하는지 생각하면 조금은 답답합니다. 사랑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시 조건 없이 사랑하고 조건 없이 사람들을 대하라는 것이 주님의 말씀이지만 조건 없이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디 구하기가 하늘의 별을 따기보다 더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도 집에서 아이들이나 아내가 전과 같이 사랑을 나누지 않습니다. 그건 내가 그들의 욕구에 충족을 시키지 못하고 잘못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불여자시 인지위기불여기지자위야’(恃人不如自恃 人之爲己不如己之自爲也)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에게 의존하는 것은 스스로의 힘에 의존함만 못하고, 남이 나를 위하여 해주는 것은 내가 스스로 하는 것만 못하다.>라는 한비자(韓非子)에 있는 말입니다.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남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또 남에게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시(恃)는 믿음을 나타냅니다. 소시(所恃)는 젖가슴에 어린 아기를 품는 모습을 형상하고 있기 때문에 어머니의 사랑을 나타냅니다. 호시(怙恃)는 아버지의 또 다른 호칭이기 때문에 호(怙)는 아버지에 대한 믿음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호시(怙恃)라면 부모에 대한 믿음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나타낼 때도 호시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 남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또 남에게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탄생하면 다른 사람들일지라도 기뻐하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 절명의 상황에서 사람은 자기 힘으로 자기문제를 해결하여야 하고, 또 남이 제아무리 나를 위하여 잘 해준다 하여도 내가 내 일을 하는 것만큼 합당하고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 개인의 경우가 그러하거니와 우리가 우리의 일을 해나갈 때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의 일을 우리가 생각 하는 만큼 우리를 생각해주는 남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18년이나 병고에 시달리며 허리가 굽어 붙어 있는 사람을 안식일에 치료해주신 일을 이론적이라면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기뻐하며, 하느님을 찬미할 일인데 회당 장은 엄청 화를 내며, 예수님을 나무랍니다. 그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율법의 근거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질시와 미움을 받습니다. 그러나 서민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여 예수님의 일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명쾌한 해석과 하느님의 뜻을 바르게 인도하여주시기 때문에 우매한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를 만한 사건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완전히 하느님에 의존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병을 고쳐주시고, 영혼을 낫게 해 주시고, 죄에서 해방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우리를 질시하고 미워하며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도 솔직히 많이 있답니다. 그런데 너무 그들에 연연해서 살 필요는 없답니다.
세상 살면서 어찌 나를 싫어하고 질시하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내가 잘나가도 못나가도 질시하거나 질타하는 이웃은 있습니다.
그 문제를 잘 헤아리는 지혜가 그 사람의 인생의 길을 결정해주는 지표인 것입니다.
사람들의 심보는 대개가 남을 칭찬하는 쪽보다 남을 흉보는 쪽으로 치우쳐져 있습니다.
그 치우쳐져 있는 것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 교육이요 수련이며 자기 성찰인 것입니다.
그 모든 수단들이 자기에게 도전하는 적을 없애는 좋은 방법입니다.
그래서 옛 말에는 이렇게들 말하지요.
“백 명의 친구가 있는 것보다 한명의 적이 무섭다.”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백 명의 친구가 나를 위해준다 해도 마지막 한명의 적이 나를 무너뜨리기엔 충분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사는 뒤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강하고 세다고 보잘것없는 사람들 무시했다간 어느 세월에 내 앞에 강한 사람이 서있게 된다는 것 그것은 정말 거짓 없는 현실입니다.
바쁜 당신도 오늘 하루 행여 매듭이 만들어진 부분이 있다면 반드시 풀고 가십시오. 그것은 오래도록 풀리지 않는 매듭이 되어 훗날 아주 풀기 힘든 매듭으로 될 수 있습니다.
꼭! 잊지 마십시오. 자신을 위해서 말입니다.
베푸는 것이 이기는 길입니다..
【 좋은글 중에서 】
<여러분은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8,12-17
12 형제 여러분, 우리는 육에 따라 살도록 육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닙니다.
13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14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15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16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17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축일10월 30일 성녀 도로테아 (Dorothea)
신분 : 과부, 증거자
활동 지역 : 몽토(Montau)
활동 연도 : 1347-1394년
같은 이름 : 도로떼아, 도로시
프로이센(Preussen)의 몽토에서 출생한 성녀 도로테아는 17세 때에 단치히(Danzig)의 알베르트(Albert, 또는 Adalbrecht)란 부유한 사람과 결혼하여 아홉 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녀의 겸손하고 우아한 생활 자세는 다소 거칠던 남편을 완전히 변모시켰고, 그래서 남편은 성녀 도로테아와 함께 수차례나 순례를 떠남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굳게 하였다. 남편이 그녀의 로마(Roma) 순례에 동행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병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돌아왔을 때에는 남편이 병사하고 말았다. 그래서 성녀 도로테아는 1391년에 마리엔워더(Marienwerder)로 이사하여 그곳에다 은둔소를 짓고 살다가 1394년 6월 25일 선종하였다.
그녀는 특히 성체에 대한 신심이 뛰어났고 환시를 보기도 했다고 한다. 그녀는 공식적으로 시성되지는 않았지만 중부 유럽, 특히 프로이센의 수호성인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공경을 받아 왔다.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는 1976년 최종적으로 그녀에 대한 공경을 승인하였다. 그녀는 도로시(Dorothy)로도 불리며 6월 25일에 축일을 기념하기도 한다. 교회미술에서 성녀의 상징은 호롱등이나 묵주이며 때로는 화살에 둘러싸인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축일10월 30일 성 안젤로 (Angelus)
신분 : 신부, 설교가
활동 지역 : 아크리(Acri)
활동 연도 : 1669-1739년
같은 이름 : 안겔로, 안겔루스, 안젤루스, 앤젤러스, 엔젤러스
이탈리아 칼라브리아(Calabria)의 아크리에서 가난하지만 겸손하고 신심 깊은 부모에게 태어난 성 루카 안토니오 팔코네(Luca Antonio Falcone)는 청소년기에 한 수도승을 만나 수도생활에 대한 강한 성소를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1687년 카푸친회에 입회하여 이듬해에 안젤루스(Angelus, 또는 안젤로)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하지만 유혹을 이기지 못해 두 번이나 수도원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1890년 세 번째로 특별 입회를 허락받아 수련기를 시작했다. 그로 인해 동료 형제들로부터 ‘출퇴근하는 수련자’라는 우스갯소리를 듣기도 했다.
1700년 4월 10일 사제품을 받은 그는 주로 설교 사도직을 수행했는데, 첫 번째 설교가 너무나 실패작이라서 수없이 기도하며 반복해서 연습을 했다. 그 결과 1711년 사순시기 동안 실시한 나폴리에서의 설교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그는 위대한 설교가로 활동하게 되었다. 성 안젤루스는 평생 칼라브리아와 나폴리(Napoli) 등지를 순회하며 수많은 이들을 회개의 삶으로 이끌었고, 치유의 기적도 행하였다. 그는 또한 환시와 탈혼의 경험도 많아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는 말도 들었고, 사람의 영혼을 꿰뚫어 볼 줄 아는 능력 있는 고해신부였다. 그는 1739년 10월 30일 아크리타니아(Acritania)의 수도원에서 선종했다. 1825년 12월 18일 교황 레오 12세(Leo XII)는 그를 복자품에 올렸고, 2017년 10월 15일 프란치스코(Franciscus) 교황은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그의 시성식을 거행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도로테아 자매들과 안젤로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