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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 마리애는 처음부터 환영받는 단체는 아니었다. 고귀한 목적과 사업에도 불구하고 초창기부터 반대에 부딪쳐 곤욕을 겪었으며 여러 장벽을 극복해 오면서 오늘에 이른 사도직 단체이다. 레지오는 교회의 사목자들을 도와주기 위한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그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여 아일랜드에서는 이 단체가 마치 사제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으로 여겨졌고 유럽 대륙에서는 가톨릭 액션(Catholic Action) 단체로도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런 까닭으로 레지오는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하였다.
그런데 레지오가 창설된 지 36년이 지난 1957년 10월 교황 비와 12세가 로마에서 개최된 평신도 사도직 대회에서 레지오 마리애는 진정한 평신도 사도직 조직이며 가톨릭 액션 단체임을 주교들이 옹호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게 되자 교회의 여러 계층에서 교황의 말씀을 즉각 받아들였고 바티칸의 바칠레(Bafile) 묜시뇰이 이탈리아 레지오의 영적 지도자로 임명되기에 이르렀다(cf. F. Duff, Mary shall reign, pp.11-12).
새교본은 레지오 마리애에 대해 예상되는 반대 의견을 11항에 걸쳐 제시하면서 반박하고 설득시키고 있는데 이는 이미 레지오가 실제로 겪은 반대 의견이기도 하다. 교본에서 제시하는 레지오에 대한 반대 의견은 다음과 같다
(1) "여기에는 레지오가 필요없다"
(2) "단원이 될 만한 사람이 없다"
(3) "레지오 단원의 방문을 꺼려할 것이다"
(4) "우리 아이는 낮에 고된 일을 하므로 편히 쉴 틈이 필요하다"
(5) "레지오는 같은 이상과 계획을 지닌 여러 단체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6) "레지오가 하는 사람들은 이미 다른 단체에서 하고 있다. 레지오는 그런 단체들과 충돌할지 모른다"
(7) "이미 너무나 많은 단체가 있다. 그러니 이런 기존 단체들을 활성화시키거나 그 기능을 확대시켜서 레 지오가 하려는 일들을 맡기는 것이 올바르다"
(8) "여기는 작은 지역이므로 레지오가 들어올 자리가 없다"
(9) "레지오 활동 가운데 어떤 것들은 영신적인 것이므로 그 성질상 사제의 직분에 속한다. 다만 성직자가 손댈 수 없을 때에만 평신도에게 배당해야 한다. 사실 나는 1년에 몇 번 나의 신자들을 방문할 수가 있는데 그것으로 만족스런 결과를 얻고 있다"
(10) "단원들이 무분별한 행동을 할까 봐 두렵다"
(11) "무엇이든 시작하는 데는 언제나 어려움이 있다"
1) "여기에는 레지오가 필요없다"
레지오 사도직의 필요성에 대한 반대 의견이다. 레지오가 없는 지역에 창단을 시도하려는 신자들이 있는가 하면 레지오 조직이 필요 없다고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레지오가 필요 없다고 반대하겠지만 이러한 반대 의견은 결과적으로 강력한 평신도 사도직 활동이 필요 없다는 것과 같다.
레지오는 특별한 사업을 하는 조직이 아니고 가톨릭적 열성과 정신을 개발하는 단체이므로 레지오가 필요없다고 하는 것은 가톨릭적 열성이 필요없다고 선언하는 것이 된다.
오늘날 세속에 얽매인 사람들, 냉담 신자들, 비신자들을 성교회로 인도하는 선교 사도직 단체인 레지오는 교회 안에서 환영받아야 할 것이고 어디에서나 창단되고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 조직은 그 지역의 영적 척도이으므로 어느 지역에서나 필수적으로 있어야겠다.
교본 본문은 강력한 평신도 사도직 단체인 레지오가 어느 곳에서나 절실히 필요한 이유를 다음 3가지로 요약, 제시하고 있다 : "첫째, 사도직을 수행할 능력을 지닌 사람들에게 사도직 생활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둘째, 오늘날 종교가 타성에 젖거나 물질주의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일반 대중에게 그러한 사도직을 고무시키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불안과 고민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 또는 방황하는 사람들을 사목하기 위해서는 단원들의 참을성 있고 끈질긴 노력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2) "단원이 될 만한 사람이 없다"
"단원이 될 만한 사람이 없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교본의 여러 군데에서 반론을 펴고 있다. 교본 본문에서는 이 점에 대해 "레지오의 확장과 단원 모집"이라는 항목과 "선교사의 보조자인 레지오"라는 항목을 유의하여 읽기를 바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영신적 수준이 높은 사람이나 상당한 교육을 받은 사람만이 레지오가 설정한 높은 이상과 매우 상세하게 규정된 조직에 어울릴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인재를 구할 수가 없으므로 레지오를 만들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 사람들은 최대의 자산이 될 만한 기구를 스스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레지오는 어떤 계층이나, 어떤 형태의 사고방식, 교육 및 인종을 가리지 않고 두루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수준이 낮고 원시적이라 부를 만한 사람들이 레지오에 숱하게 참가하여 놀랄 만큼 쉽사리 적응하며 그 봉사나 성과 면에서 누구에게도 결코 뒤지지 않고 있다는 점은 레지오의 특별한 기쁨이다.
교본 본문은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다 : "레지오 단원의 후보자는 지식인일 수도 있고 문맹인일 수도 있으며, 노동자나 한가한 사람 또는 무직자일 수도 있다. 특벙한 피부 색깔, 특정한 인종이나 계급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사람이 다 단원 후보가 될 수 있다. 레지오는 이런 숨은 힘과 미개발된 인재들의 사랑을 교회의 일에 봉사하도록 이끌어 들이는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 몬시뇰 알프레드 오래힐리(Msgr. Alfred O'Rahilly)는 레지오 활동을 연구한 끝에 '나는 위대한 발견을 하였다. 아니 오히려 이미 발견되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함이 옳을 것이다. 곧 겉보기에 평범한 남자와 여자들 안에 영웅적 정신이 잠겨져 있었으며, 일찍이 알려지지 않았던 힘의 원천이 솟아나고 있었다'고 감동적인 서술을 하였다."
단원이 될 만한 사람이 없다는 의견은 대개 단원 자격에 대한 잘못된 생각에서 나온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모든 사무실이나 가게, 그리고 모든 직장에는 레지오 단원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갖추고 있다. 모든 신심 단체의 우수한 회원 가운데도 훌륭한 레지오 단원이 될 만한 인재들이 있다. 이런 단체들은 그런 인재들을 각급 레지오 단원으로 가입시키면 그 단체의 임무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단체들의 임무는 그 단원들을 최대한도로 발전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쁘레시디움에서는 마땅한 인재가 없기 때문에 단원 모집의 숫자가 적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이런 변명은 거의 타당성이 없다. 대부분의 경우 쁘레시디움이 단원 모집을 위한 진지한 노력이 없거나 단원 모집을 할 때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레지오 단원이 됙 위해 선량한 보통 사람들이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기준이 엄격해서는 안된다.
교본 본문은 단원이 될 만한 사람이 없을수록 레지오 설립이 필수적이라는 논리를 다음과 같이 전개한다 : "단원을 찾기가 정말로 어렵다고 하면 그 지방은 영적 수준이 매우 낮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런 곳이야말로 활동이 필요없는 곳이 아니고, 도리어 레지오 지단을 하나 세워서 좋은 누룩의 구실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누룩은 우리 주님께서 수준을 높이는 처방으로 쓰셨다는 사실을 새겨둘 필요가 있다"(마태 8, 33).
또한 기억해 둘 일은 쁘레시디움은 4, 5명 또는 6명의 적은 단원으로도 설립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먼저 활동을 착수하고 그 필요성을 느낀다면 다른 적절한 단원들을 재빨리 찾아서 이끌어 들이게 될 것이다.
3) "레지오 단원의 방문을 꺼려할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의 최우선 활동은 선교이다. 레지오 단원들은 바오로 사도의 말대로 기회가 좋건 나쁘건 꾸준히 선교해야 한다. 레지오는 선교를 위한 중요 활동으로서 집집마다 가정 방문을 한다. 레지오가 전통적으로 꾸준히 실시해 온 이 가정 방문 활동을 통해 많은 이를 교회로 인도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가정 방문 활동을 하려는 단원들의 용기를 잃게 하고 지레 겁을 먹도록 하는 반대 의견이 있다. 곧 "레지오 단원의 방문을 꺼려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낯선 사람들이 가정 방문을 하게 되면 먼저 경계심을 가지거나 부담을 느낄 것이며 편히 지내는 가정의 분위기를 깨뜨리고 가족들의 오붓한 시간을 뺏기 때문에 방문을 꺼려하리라는 것이다. 언뜻 듣기에는 옳은 의견으로 보인다. 이런 의견으로 인해 경험이 없는 단원은 첫 번째 가정 방문을 두려워하고 불안해한다. 그러나 막상 가정을 방문해 보면 공연한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레지오에서 실시하는 방문의 본질은 친밀한 관계를 이루는 데 있으므로 처음에는 분위기가 어색하겠지만 대화를 하는 가운데 차츰 상대방의 마음이 개방되고 나중에는 방문자를 환대하게 된다. 그러므로 레지오는 단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루가 5, 10)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어떤 종류의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가능한 한 집집마다 방문하도록 강조해야 한다
레지오 단원의 방문을 꺼려할 것이라는 의견을 반박할 수 있는 좋은 예를 들어 보자 : 아일랜드의 레지오 단원들이 북대서양의 섬나라 아이슬랜드(Iceland)에 가서 P.P.C.(그리스도를 위한 외지 순방) 활동을 하면서 가정 방문을 실시하였다. 예비 지식에 의하면 그 나라 국민의 대다수는 명목상 루터교인들이지만 실제로는 교회에도 나가지 않고 기도조차 하지 않으며 물질주의가 만연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국민성이 내향적이어서 누가 찾아오는 것을 꺼려하고 낯선 사람은 아예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국민들 속에서 평생 살다시피한 사람들은 레지오 단원들이 가정을 침투하기는커녕 문간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기조차 힘들 것이라고 장담하는 것이었다. 현지 교구장조차 그러한 실정이 사실이라면서 노상 선교를 하면서 가정 방문을 시도해 보기를 권유하였다.
그들은 교구장의 권유를 따랐는데 그 결과는 참으로 놀라웠다. 단원들이 집집마다 찾아가 아일랜드에서 온 가톨릭 신자인데 신앙 문제에 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없겠느냐고 청하자 집주인은 흔쾌히 그들을 집안으로 맞아들였던 것이다. 그들은 단원들을 친절히 대해 주었고, 단원들은 아이슬랜드 국민들이 옛날에 믿는 신앙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단원들이 발견한 것은 그 국민들이 하느님을 믿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톨릭 교회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애당초 염려했던 걱정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프랭크 더프 지음, 서광선 옮김, 성모님을 통한 승리 3, 262-265쪽 참조).
교본 본문은 레지오 단원의 방문을 꺼려할 것이라는 의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 있다 : "여기서 분명히 해 둘 일은 이제까지 어는 지방에서도 레지오는 방문 활동에서 그러한 어려움을 일반적으로 겪어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레지오 사도직의 참된 정신으로 방문 활동을 해 보면 레지오에 대한 차가운 태도는 종교적 무관심 또는 그 이상의 나쁜 점이 존재함을 확일할 수 있다. 그러니 그런 곳이야말로 레지오 단원들이 최소한도라도 있어야 하며, 그들의 노고가 무엇보다도 절실히 필요하다. 방문을 시작할 때의 어려움도 방문을 중단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러한 장벽에 부딪쳐 보았던 단원들은 거의 한결같이 그 얼음 장벽을 마침내 녹일 수가 있었으며, 아울러 그 밑바닥에 깔린 더 심각한 원인까지도 제거할 수가 있었다."
교본 본문의 말대로 "가정은 정신적인 면에서 전략 지점이라는 사실을 무엇보다도 중요시 해야 한다. 가정을 장악한다는 것은 사회를 장악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정을 손에 넣으려면 우리는 거기에 찾아가야만 한다."
4) "우리 아이는 낮에 고된 일을 하므로 편히 쉴 틈이 필요하다"
오늘날 청소년 문제는 심각하며 10대의 범죄는 날로 증가일로에 있다. 청소년들의 폭행, 강도, 살인, 마약, 가정파괴 등등 각종 범죄와 도덕적 타락은 실로 개탄을 금치 못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부모의 책임이 크다고 하겠다. 부모 중 많은 이가 향락적이고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자녀를 출세시키기 위해서 오로지 학교 공부만을 강요한다. 그들은 자녀가 다 큰 뒤에도 여전히 아이 취급을 하는가 하면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방향으로 자녀들을 이끌어 나간다.
신자들까지도 자녀들이 세상에서 입신양명하기만을 바라고 그것이 사랑인 줄로 생각하면서 전인적 인간, 고상한 정신과 훌륭한 이상을 추구하는 인간으로 키우는 데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부모가 자신의 이기심을 자녀에게 투사한다면 훗날 자녀로부터 피해를 입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자녀들을 참 삶의 길로 이끌어 주어야 하며 자녀들에게 몸소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한다.
레지오 마리애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참 삶의 길에 입각한 성장과 교육실현에 이바지하는 사도직 단체이다. 레지오 창설자는 "올리브 나무와 같은 여러분의 자녀들"이란 제목으로 '자녀 교육과 레지오'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cf. Frank Duff, Victory through Mary, pp. 154-174).
소년 레지오에 입단한 단원들은 배운 것을 행동으로 옮기도록 훈련받아 학교에서는 자발적으로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된다. 자유시간이나 노는 날엔 여느 아이들처럼 어른들의 눈을 피해 빗나가는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정을 쌓고 사도직 활동을 통해 사회 생활에 접하면서 인격을 형성하는 기회로 만든다. 또한 가정에서는 이웃 사랑을 가족들에게 적용하여 부모 형제, 자매를 도움으로써 화목한 분위기가 되고 자연 질서에서 초자연 질시로 변하게 된다.
이처럼 레지오는 아이들에게 학업시간, 집에 있는 시간, 노는 시간까지도 거룩하고 고상한 정신으로 채워주며 강인하고 훌륭한 인격자로 성장하도록 도와준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레지오 단원이 됨으로써 공부할 시간을 빼앗기고 편히 쉴 틈이 없다고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손실이 아니라 크나큰 이득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아이는 편히 쉴 틈이 필요하다"면서 레지오 단원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숲은 제쳐두고 나무만 보는 격이 된다. 교본 본문의 말대로 "그러한 말은 줄곧 레지오로 하여금 훌륭한 단원들을 잃게 만들었다. 그런 말을 그대로 따른다면 세계는 종교적인 황무지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 사업은 한가한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상한 정신을 지닌 청소년들에게 자유시간이 주어질 경우에 휴식만 취하지 않고 무절제한 오락으로 시간을 소모하지 않겠는가?
낮 동안의 고된 일과 저녁 시간의 쾌락이 되풀이되는 생활에서는 향락적인 물질주의에 빠지기 쉽다. 그러한 물질주의는 몇 년이 지난 후 가슴속에 이상도 남아 있지 않으며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잃게 만들고 설익은 채 흘러가 버린 그들의 젊음을 한탄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이 꽉 차 있어서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릇된 가치 척도 때문이다. 신앙적인 것과 사도직이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함에도 그들에겐 마지막 순위에 들어 있다. 따라서 그들의 그릇된 가치 척도를 깨닫게 해 줌은 사실상 그들에게 영원한 선물을 주는 것이 된다
끝으로 교본 본문은 부모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하고 있다 : "자기의 자녀들로 하여금 레지오 단원이 되게 함으로써 그 자유로운 시간의 첫 열매를 주님께 바치도록 하는 것은 참으로 현명하다. 그러한 첫 열매는 그들의 마음과 얼굴까지도 맑고 싱싱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런 다음에도 휴식을 취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고 오히려 두 배로 얻고 있기 때문에 두 배로 즐길 수가 있을 것이다."
5) "레지오는 같은 이상과 계획을 지닌 여러 단체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교회 안에는 많은 신심, 활동 단체들이 있는데 대개 성별, 연령별, 직종별로 구성되며 그 목적과 취지에 알맞은 사업 계획을 세워 사도직을 수행한다. 이러한 단체들의 회칙을 보면 거의 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 월례회를 가지며 신앙 강화, 회원 상호간의 친목, 교회와 사회에 대한 봉사활동 등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레지오 마리애 역시 이러한 신심, 활동 단체 중의 하나에 속한다. 레지오의 취지와 목적도 개인성화(신앙강화), 선교 사도직 수행과 사목 협조 등으로 교회와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다. 다만 두드러지게 다른 점이 있다면 성모 마리아의 영성에 바탕을 두고 매주 모이는 주회를 통해 기도와 공부를 하면서 투철한 사명 의식을 지닌 사도를 양성한다는 점과 지시받은 임무를 한 주일에 두 시간 이상 활동하여 구두로 보고해야 한다는 점이다.
레지오의 사업과 활동 계획은 크게 여섯 종목으로 나누게 된다
1) 입교 권면, 2) 예비신자 돌봄, 3) 교우 돌봄, 4) 어려움을 겪는 분 돌봄, 5) 레지오 확장, 6) 본당 협조이다. 이러한 일은 주회에서 활동 보고를 통해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고 있는지 확인 되어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월례회를 갖는 다른 단체들은 주회를 갖는 레지오에 비해 사업 계획의 추진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교본 본문은 '레지오가 같은 이상과 계획을 지닌 여러 단체 중의 하나'라는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동시에 교회 내의 일반 단체와 다른 점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 "레지오는 마리아와의 일치에 기초를 두고 그 싸움을 확고한 영성, 확고한 기도의 계획, 확고한 주간 임무와 주간 보고로 구체화시킴으로써 확고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렇게 볼 때 레지오는 특수한 단체이기도 하다.
6) "레지오가 하는 사업들은 이미 다른 단체들이 하고 있다 레지오는 그런 단체들과 충돌할지 모른다"
여기서 말하는 다른 단체들이란 주로 가톨릭 운동(Catholic Action)을 두고 하는 말이다. 레지오는 기존 단체인 가톨릭 운동의 반대에 부딪쳐 유럽의 많은 교구에서 발을 붙이지 못했다.
레지오는 빈첸시오회에서 나왔지만 서로 마찰이나 충돌 없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규칙을 통해 안전장치를 마련하였던 것이다. 즉 그 당시 빈첸시오회는 남성들로 구성되어 극빈자들에게 물리적인 도움을 주는 사업을 했으므로 레지오는 여성들로 구성하여 영적인 활동만 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레지오는 다른 단체가 하는 일을 방해한다든지 마찰이나 충동을 빚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단체들을 존중하고 다른 단체들의 행사를 도와주고 회원들을 모집해 주는 활동까지 한다. 특히 레지오에서는 인원 동원에 앞장선다. 모든 신자들을 사도직 수행에 총동원하는 것이 레지오의 목표이기 때문이다(cf. F. Duff, Victory through Mary, p. 327).
교본 본문은 다른 단체들과의 충돌을 우려하여 레지오를 받아들이지 않는 의견에 대해 한탄하면서 레지오 설립을 통해 사도직 활동 수행에 많은 신자들이 동원되기를 바라고 있다.
7) "이미 너무나 많은 단체가 있다. 그러니 이런 기존 단체들을 활성화시키거나 그 기능을 확대시켜 레지오가 하려는 일들을 맡기는 것이 올바르다"
프랑스에서 기존 가톨릭 액션을 지원하던 어느 주교가 레지오 도입을 전적으로 반대하면서 어떤 수사신부로 하여금 레지오를 비방하는 소책자를 만들게 하였다. 그 결과 레지오에 대한 거부반응이 생겨 이미 레지오 도입을 허락했던 주교들까지도 허락을 취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그런 혹독한 기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것이 지나가자 사람들은 왜 그랬던가 반성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레지오는 관심을 더 끌게 되었고 신속히 전파되는 효과를 거두게 되었다(cf, Hilde Firtel, A Man for Our Time, pp.79-80).
레지오의 초창기에 비해 오늘날엔 신심 단체나 운동이 많이 늘어났고 나름대로의 사업과 활동을 하면서 시대에 맞게 활성화되고 있다. 신심, 활동 단체가 많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고 바람직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만큼 사도직 활동 분야가 넓고 다양해지고 신자들의 사도직 참여도가 높아지며 활성화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성격의 단체를 묶어서 통합한다든지 새로운 단체가 하려는 일을 도맡아 함으로써 아예 새 단체의 설립을 막아 버리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닐 것이다.
레지오 역시 독특한 소명과 임무를 지니고 있기에 활성화되어야 할 매우 요긴한 단체이다. 이 점에 대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레지오 단원들에게 하신 말씀을 들어 보자 : "오늘날 평신도 사도직의 분야는 널리 확대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특별한 소명에서 오는 임무는 더욱 더 절실하게 요구되며 마땅히 활성화되어야 하겠습니다. 평신도가 활성화되었다는 것은 곧 교회 자체가 활성화되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레지오 단원들의 임무는 더욱 더 중요성을 띠게 되었습니다. 레지오는 이탈리아 사회와 오래된 그리스도교 전통을 가진 나라들에서 절실히 요구될 뿐 아니라 여러분 단체의 선임자들이 보여 준 빛나는 모범적 헌신 행위를 생각할 때 레지오는 매우 요긴한 단체입니다".
이미 너무나 많은 단체가 있어서 새로운 단체인 레지오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견에 대해 교본 본문은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 있다 : "새로운 것이 새롭다는 이유로 거부될 수는 없다. 때로는 그것으로 위대한 발전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지오도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요구한다. 레지오가 '단순히 또는 하나의 단체'가 아니고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면 문 앞에서 돌려보낸다는 것은 얼마나 큰 손실인가!"
8) "여기는 작은 지역이므로 레지오가 들어올 자리가 없다"
작은 지역이라고 해서 레지오가 필요 없는 것이 안다. 아무리 작은 지역이라도 레지오를 도입함으로써 성공적인 선교 활동을 펼 수 있게 된다. 가톨릭 신자 비율이 낮은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 제3세계의 주교들은 레지오를 도입함으로써 교세가 급속도로 확장되자 '레지오 마리애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포기될 수 없는 가장 좋은 선교 방법'이라고 천명하였다(cf. Hilde Firtel, 전게서, p. 110).
그러므로 아무리 작은 지역이라도 "레지오가 들어갈 수 있는 자리는 얼마든지 있음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말할 것도 없이 레지오에 작은 활동거리라도 주어서 시험해 보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그 결과는 확신을 줄 수가 있을 것이다 단 하나의 쁘레시디움 단원들일지라도 모든 요구 사항을 다 충족시키고도 힘이 남을 것이다".
9) "레지오 활동 가운데 어떤 것들은 영신적인 것이므로 그 성질상 사제의 직분에 속한다. 다만 성직가가 손댈 수 없을 때에만 평신도에게 배당해야 한다. 사실 나는 1년에 몇 번 나의 신자들을 방문할 수가 있는데 그것으로 만족스런 결과를 얻고 있다"
이런 반대 의견에 대해서는 '사제와 레지오'(10장 4항 )에서 해명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좀더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자 한다.
레지오는 영적인 활동을 하는 단체이므로 사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사제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레지오는 초창기부터 성직자들로부터 불신을 당했고 지단 설립에 있어서 번번히 거절을 당했다. 그 당시 사제들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평신도는 편지 배달부 역할만 해도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평신도는 성당 청소나 제의방 정리 등의 자질구레한 일은 할 수 있지만 인류구원 사업에는 손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레지오 창설자 프랭크 더프의 사고방식은 달랐다. 그는 시대적으로 진취적인 인물이었다. 그에 의하면 모든 평신도는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로써 선교 사명에 불림을 받았으므로 반드시 영적인 사도직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그의 확신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비로소 인정받게 되어 공의회에 참관인으로 초청받는 영에를 입었다.
레지오는 초창기부터 수도회 신부들이 영적 지도자로서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선교 지역에서 새로운 단체인 레지오에 대해 질투와 시기심을 가지고 도입을 반대한 수도회도 있었다. 반대가 수년 간 계속되어 교황 사절이 그 수도회 관구장을 호출하여 선교 지역에서의 신앙 선포를 방해하지 말라고 청할 정도였다(cf. Hilde Firtel, 전게서, p.57).
성직 사도직과 평신도 사도직은 서로 알력 관계가 아니라 상부상조하는 관계여야 한다. 성직자는 영적인 일이라 할지라도 혼자서 본당 전체 신자들의 가정 방문을 한다든지 혼자서 교회 일을 도맡아 할 것이 아니라 수족과 같은 평신도들의 도움을 받아 사제의 활동 영역을 넓혀야 할 것이다. 특히 레지오는 사제의 대리자들을 마련해 주는 단체로서 사제로 하여금 그의 광대한 본당 구역의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효과적으로 다 가질 수 있게 하는 사제의 도구이다. 또한 레지오는 평신도들의 영신적 능력을 가꾸고 활용하며 평신도들의 사도직 수행 방법을 마련한 단체이다. 그러므로 성직자, 수도자들은 이러한 레지오를 거부하고 경원시 할 것이 아니라 밭에 묻혀 있는 보물과 같은 레지오의 탈렌트를 십분 활용해야 할 것이다.
10) "단원들이 무분별한 행동을 할까 봐 두렵다"
레지오는 단원들의 인격 도야에 도움을 주는 단체이다. 왜냐하면 단원들이 사도직 활동을 수행할 때 분별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그 예로서 영적 지도자의 훈화가 있고 도제제도가 있으며 매월 1회 상훈 낭독이 있다. 그리고 주회에서 활동보고를 통해 격려와 평가를 받는다.
그뿐만 아니라 레지오는 무엇보다도 치밀하고 세심한 규율을 지니고 있다. 새교본 39장(교본 38장)은 레지오 사도직의 주요점을 다루면서 단원들의 활동 수칙을 알려주고 있다 : 물리적인 원조나 모금은 금물이며 오로지 영적인 일에만 전념한다 ; 감화의 비결은 사랑이다 ; 짝을 지어 방문하도록 한다 ; 활동은 쁘레시디움이 주관한다 ; 단원은 활동 대상자 하나 하나 안에서 그리스도를 뵙고 봉사한다 ; 겸손하고 정중한 단원이 되어야 한다 ; 단원은 남을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 친밀한 대인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 사욕을 추구해서는 안된다는 것 등등이다. 이러한 수칙을 통해서 단원들의 인격이 도야되고 무분별한 행동을 막게 된다.
교본 본문은 반대의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득시키고 있다 : "무분별한 행동을 막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치밀한 규율이다. 주님께서 숱한 병든 무리들에 대하여 품으시는 간절한 연민의 정을 자신의 마음 속에 함께 느끼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배기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은 그 괴로움에 빠진 영혼들을 거두어 들이기 위해 스스로 몸을 던져 안간힘을 다하게 될 것이다. 현재까지의 레지오 역사를 보면, 중대한 무분별한 행동이 많이 있으리라고 예상되지 않는다. 적어도 레지오에는 세심한 규율이 서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11) "무엇이든 시작하는 데는 언제나 어려움이 있다"
레지오 뿐만 아니라 다른 좋은 사업들도 시작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아예 시작이나 시도를 하지 않으면 아무런 결실도 없다. 레지오는 목적 달성과 이상 성취를 위해 행동을 중요시한다. "행동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야고보 2, 17)이기 때문이다.
일단 결심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게 되면 불가능해 보이던 일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쉽게 풀릴 수 있다. 1936년에 동부 아프리카에 레지오 특파원으로 파견된 아일랜드의 동정녀 에델 퀸을 예로 들어 보자. 그녀의 임무는 75만 평방 마일이나 되는 광활한 지역에 레지오를 설립하는 일이었다. 그녀가 활동하기 시작한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는 당시 인구 10만명 중 6만명이 여러 종족으로 이루어진 아프리카인이었고 3만명이 동인도족이었으며 나머지는 유럽인이었다. 이러한 종족들 사이에는 엄격한 사회적 구별이 있어서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일지라도 서로 일치 단결하는 데에는 커다란 어려움이 있었다. 그녀가 성모님의 정신으로 여러 종족과 부족의 가톨릭 신자들을 하나로 단결시키겠다고 말하자 모두가 비현실적이라고 일축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레지오의 엄격하고 규칙적인 사도직 활동을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아일랜드의 고향 친구에게 기도를 청하면서 "성공으로 가는 길에는 여러 가지 장애가 첩첩으로 쌓여 있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어떠한 가톨릭 사업이든 시작하려고 할 때 쉬운 것이 별로 없었어. 그때마다 기도가 필요한 거야"라고 편지를 보냈다. 과연 그녀는 자신의 노력과 하느님의 은총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성공을 거두었다(cf. Anselm Moynihan, Edel Quinn, pp.16-18 ; 김영대 편저, 에델 퀸의 삶과 사상, 74-79쪽 참조).
교본 본문은 "무엇이든 시작하는 데는 언제나 어려움이 있다"는 의견에 대해 "펴적을 겨누고만 있는 사람은 결코 맞추지를 못한다. 전혀 모험을 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영국의 뉴먼 추기경의 말을 인용하면서 은총의 존재를 무시하는 세속적 의미의 신중성을 버리고 어렵더라도 레지오를 도입할 것을 강력히 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