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알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마알도 없이
떠나가아는 새벽 열차
대전발 영시 오오십분...(이하략)
대전에서, 그것도 사위가 잠든 한밤중인 0시 50분에 출발하는 기차가 뭣이 중헌디 왜 하필 노래 가사에 '대전발 0시 50분'이 나오는 겨? 이 가사가 나오는 대중가요 제목은 '대전 부르스'인데 60~70대 할배들은 아예 '대전발 0시 50분'이 노래 제목인 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나 어쨌다나. 무식한 나 역시 그 축에 끼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리고 몇 년 뒤 이 노래를 근간(당연히 OST로 나오지만)으로 최무룡, 신성일, 엄앵란씨를 주연으로 만든 영화의 제목은 아예 「대전발 9시 50분」이었으니, '대전발 0시 50분'이 뭔가 사연이 있음은 확실하다 할 터. 해서리 그 노랫가사의 사연을 찾아가 보자.
지금이야 충청권의 가장 큰 도시로 인구 150만의 광역시인 대전은,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억새풀 무성한 벌판에 드문드문 마을이 있는 한적한 시골이었다는구만 그랴. 근디 1904년 일본인 노무원 100여 명이 들어와 경부선 철도를 건설하고 이어서 1913년 호남선이 개통되면서 대전은 그야말로 풍선맹키로 부풀어 커지면서 오늘의 메가시티에 이르렀다고 하더만.
당초 총독부는 지금의 대전 윗쪽 대전조차장에서 경부선과 호남선이 갈라지게 계획했는데, 대전에 많이 들어와 살게 된 일본인들이 압력을 행사해 대전역을 분기역(分岐驛)으로 정하게 했다나 뭐래나. 해서리 서울(경성)에서 목포로 갈 경우, 당시의 증기 기관차는 150여 km 달리면 앞머리, 즉 기관차를 바꿔 달아야 하기 때문에 대전역에서 그걸 교체하고, 새 기관차를 열차의 꼬랑지(맨뒷편)에 연결하여 선로를 서대전역 쪽으로 역방향으로 진행하여 목포로 향해 달렸다는 것이다.
대전역에서 행해진 목포행 완행열차 앞머리의 기관차 분리 및 교체 기관차 뒷 부분 연결의 과정을 시간대별로 보면, 0시 40분에 열차가 대전역에 도착하고 10분간에 걸친 일련의 작업을 거쳐 다시 출발하는 시각이 0시 50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승객들은 기다리는 10분 내에 잽싸게 열차에서 내려 플랫폼에 있는 국숫집으로 달려가 가락국수 한 그릇 주문해서 후루룩한 다음 열차에 오른다. 자정이 지난 시각이니 기온이 많이 내려가 국숫가게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김이 장시간 열차를 타고 온 승객에게 왕성한 식욕을 북돋우게 했으니 너도 나도 달려들어 선 채로 한 그릇 뚝딱하고 막 출발하려는 열차에 몸을 던지는 그 짜릿한 스릴이란...
물론 기차역 플랫폼에 가락국수 가게가 대전역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이, 환승역 역할을 하는 웬만큼 규모가 큰 역들에는 으레 김이 무럭무럭 나는 가락국수 가게가 있었다. 이런 아련한 추억의 장면들도 증기 기관차가 디젤 기관차로 바뀌니 앞머리를 교체할 필요가 사라지고 1978년 호남선이 대전역에 들어가지 않고 곧장 서대전역 쪽으로 빠져버리니 가락국수 사 먹을 시간이 없어졌다. 하지만 노래는 여전히 남아 꾸준히 리메이크되면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으니...그때를 추억하며 가수 안정애(오리지널 취입 가수라네), 조용필, 주현미님의 노래를 들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