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동기회內 산행 모임의 정립과 졸업 30주년 기념산행
2003.10.11로 예정된 졸업 30주년 기념 산행을 한달 여 앞두고 동기회 차원에서 각기 산재해있는 산우 모임들을 나름대로 파악하고 대표들의 회동을 주선하여 기념산행 준비의 임무를 맡기려 하였다.이 것은 동기 전체를 아우르는 대표적 산우회의 존재가 없거나 알려지지 않았슴을 뜻하기도 하였다.
토요 산행 모임을 대표하여 신윤식과 南모, 동기회 임원및 신우회 산행 모임을 대표하여 이건호,당시 막 토요 산행 모임에 속하게 되었지만 범계파 프리랜서 산꾼들을 대표하여 양명륭,기타 모임에서 박순서가 나와 각기 활동하는 산행 모임의 현주소를 서로 확인하고 기념 산행 준비 관련 협의를 하였다.
결과적으로 양명륭이 준비를 거의 도맡아 산행 코스의 설정(연신내-족두리봉-비봉-문수봉-대남문),기념품 제작,식당 예약을 추진하였고 이건호가 산중의 점심 준비를 책임졌는데 예비모임이 가져다 준 의미는 토요산행 모임이 명실상부하게 동기회 산행 모임중의 대표 산행모임으로 인정 받는 계기가 된 것이었다.
산행의 定期性,빈도,참가 인원,산행의 성실한 내용 면에서 필적할 만한 다른 모임이 없었던 것인데 당시 펄펄 날던신윤식과 류창하가 기념 산행의 선두와 후미를 맡아 40여명의 산행 속도와 흐름을 적당히 조절하였다.
또 30주년 기념 산행을 계기로 동기회 차원의 총 산우 모임인 25 산우회를 결성하도록 종용하는 분위기가 있어 가칭 E.O 산우회의 회장 김종무, 총무 양명륭 체제가 2004년부터 정식으로 출범하였고 동기회 홈페이지의 취미 모임난에 등록이 되어 공식화 되었다.이런 입장에서 양명륭은 토요산행모임도 총산우회 활동의 일부로 간주하여 홈페이지 게시판에 기록을 남겨가고 있는 중이다.
이 두사람은 수년 전부터 총동문산악회에 동기 산우들을 대표하는 회장,총무로 등록이 되어있었고 백두대간 산행에의 참여등으로 그 역할을 해 왔으나 시쳇말로 동기 쪽수가 부족하여 조금은 면이 서지 않는 상황이기도 하였다 한다.
앞으로 소규모 산행 모임의 산우들을 유인하여 동기회 전체의 체계적인 산행 모임으로 발전시키느냐의 문제가 두사람에게 남아 있겠지만 토요 산행 모임의 출현으로 두 사람이 여러모로 援軍을 얻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두 사람은 매너도 괜찮아 하급 단체인 토요 산행 모임에 출장하더라도(단독 산행이나 선후배들에게 끼어드는 산행 말고는 별로 갈데는 없을 것임) 신윤식의 지휘 방침을 깍듯이 따르고 있다.
또 동기 산우들은 늦은 감이 있지만 졸업 31년차에 처음으로 총동문산악회에 분담금을 납부하였다.Late better than never 이던가.
이런 상황의 연장선 상에서 김종무는 요즈음 현실로 나타나는 비자발적 백수 증가 추세를 감안하여 주중 산행 모임을 하나 추진할 생각이라 하였는데...
31주년 기념 산행의 경우 자동적으로 토요 산행 모임이 산행 기획 전체를 주관하었고 김종무,양명륭이 총산악회를 대표하여 동기 이사회에서 산행 계획도 설명하고 모든 준비 임무를 맡아 잘 처리하였다.南모가 은근슬쩍 아는 식당 하나 끼워넣는 것도 모르는 척 하고.
(15)산행과 술
땀 뻘뻘 흘리고 내려와 기분좋게 적당히 한모금 마시는 것이 쉬운 문제 같은데 그 것이 거의 매번 그렇게 안되니 결국은 어려운 문제인가....찌그러진 양은 대접에 철철 넘치게 따라부은 막걸리를 쭉 들이키고 김치쪽 한쪽 쭉 찢어먹으며 장딴지가 풀려오고 숨이 턱에 붙어 헉헉거렸던 고비를 무사히 뚫고 지금 이 자리에서 뜹뜰한 막걸리 한 모금 단숨에 들이키며 뿌듯한 감회를 새겨보는 것도 분명히 산행이 주는 재미중의 하나일 것이다.이럴 땐 조금 흘려도 괜찮으리라....
어릴적 읽은 임꺽정傳 한 대목에 임꺽정이 커다란 양푼에 가득 따른 막걸리를 단숨에 들이키고 생마늘과 마늘쫑을 우적우적 씹는 장면이 나오는데....
년전에 산행이 주는 매력이랄까 하는 것에 조금씩 눈을 떠감을 느낄 때 이성부 시인의 산행 시집 '지리산:내가 걷는 백두대간'과 산문집 '산길'을 읽어보게 되었는데 산행 일반(특히 바위와 하나된디는 암릉 산행)에 대한 풍부한 교양과 상식,산행의 의미,정서를 되돌아보게 해주는 좋은 詩와 散文이 수록되어 있었다(산우들의 일독을 권한다).
이 사람도 어릴 적에 무등산을 올라다녔지만 본격적인 산행은 40대 이후에 시작하여 약 20여년 동안 릿지 산행을 즐기고 지리산을 수십번 오르고 백두대간의 약 80%를 소화한 시점에서 글을 썼다 하였다.감수성이 풍부하고 약간은 외로운 듯한 시인의 정서와 내면을 느낄 수 있었다.
막걸리 한잔에 시큼한 김치 한쪽,또는 고소한 부침개 한쪽 먹는 이야기가 가끔 나오고 벽소령에서 막걸리 한잔 들고 '막걸리에 달아올라 내려가는 길/ 왜 이리 더디고 비틀거리는냐'하기도 한다.이 시인의 표현으로는 '가득 부어 나를 적신다'이다.이런 표현들이 왜 그리 마음에 드는지...'허위적거리는 삶이 돌아가는 길/저녁 어스름 마다 막걸리 한사발을 들이켰다'.
각설하고 산행후 한잔 술은 여러가지로 좋은 점이 많다.단숨에 들이키는 시원한 맥주가 목젖을 타고 흐르는 맛도 여름 산행 후의 妙味이지만 질박한 산행에는 역시 막걸리 한사발 들이키고 두부 김치 씹으면 배도 든든하고 어울리는 느낌이다.
맥주나 막걸리나 몸이 원하는 바로 그 때에 몸이 원하는 바로 그 만큼 들이붓는 것도 행복의 일종인데 문제는 많은 산우들이 현실적으로 節制의 경계선을 넘어간다는 것이다.소주등 독주와 혼합도 되고 술자리가 자리를 옮겨 길어져만 가니....그렇고 요즈음은 뻑하면 폭탄주를 마시자고 달려드는 사람도 늘어났으니....이러면 산행의 보람이 반감될 수도 있고 가끔 南모가 비난하는 술 안 마시려 노력하는 강남 3인방들의 엉덩이가 들썩거려지고 빨리 끝나 집에 가고 싶어하는 것이 눈에 띄기도 한다.
우리가 일만원의 회비를 고집하는 것도 이러한 절제의 연장선 상에서 결정된 것이니 설사 作心三日,아니 하룻밤의 꿈이 될 지언정 산우들 모두가 노력해 나가는 것이 如何할지....
술 좋아 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하는 믿거나 말거나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웬만큼 마시면 쿨쿨 자는 김종무와 그냥 픽 쓰러져서 자거나 안자면 엉뚱한 고집을 부리는 신윤식,폭탄주 제조 면허가 있다 하고 애호하는 소주가 웬만큼 들어가면 눈만 깜짝깜짝하다가도 활동성이 강해지는 김극범,몇잔 술에 너무 기뻐 소란스러운 양명륭과 南모가 절제의 선봉에 서야한다는 중론이다.그러나 삶이 고단한 것을 어찌하랴하며 핑계와 위안을 삼기도 하는데....류창하야 얼마나 경제적으로 마실 줄 아는 사람인가.
가끔 폭탄주 음주를 선도하는 한수복도 한때 제법 마셨을 터인데 요즈음이야 폭탄주 몇잔이면 족할 것이고 김종철도 몸 때문인지 이리 빼고 저리 빼고 한다.술을 마실려면 최소한 광주의 이윤선이나 이용호처럼 자연과 완전 합일하는 정도로 마셔야 風流가 있는 것 같기도 한데.....폭탄주의 경우 남에게 마시게하는 만큼 자신도 마셔야 함이 예의일 것이다.또 품질도 균일해야 한다.순진한 상대를 쓰러뜨리려는 음험한 목적으로 쓰여져서는 더욱 안될 것이다.
요즈음 잘 못 만나지만 음주 가무계의 至尊 이종수도 약간 노쇠기가 있는 것도 같고...정인수, 유병식,하대현이 평균적으로 얌전하게 마시기는 하는데 술취하면 조금은 활동적으로 달라지는 것도 같고.
또 산우들 모두 酒邪가 없는 것이 다행이라 할 것인데 마실 줄 알면서도 인내를 발휘해 안마시는 것도 존경스럽지만 재미가 없긴 없을 것이다.김처사도 衆人注視리에 소주폭탄주 두잔을 연거푸 들이키지 않았는가.
술을 마시라는 것 인지 마시지 말라는 것 인지 마음 속으로 좋은 말이 하나 떠오른다.좋은 걸 어떡하나.마음 가는 대로 하여라.
4.맺음말
땀 흘리고 숨 헉헉거리는 고만고만한 산행이 계속되고 있다.몸도 생각 만큼 좋아지는 것 같지는 않고 살도 빠지지 않고 있다.아마 치열한 산행이나 평소의 몸관리에서 부족함이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허나 어쨌든 그럭저럭 4년 반 동안 산우들과 여러가지 추억을 만들며 산행을 해오고 있는 것이 南某의 말대로 長江의 앞물결과 뒷물결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바다로 나아가는 중이다.
일년 52주 한 주의 쉼도 없이 매주 만나 같이 산을 오르고 내려와 시시껍질한 일상사의 이야기일망정 서로 나누며 막걸리 한잔 나누는 것이다.지극히 일상적인 소시민적 생활의 반복에 불과하지만 南모는 이것을 만원의 행복이라 불러오는 중이다.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한달에 서너번 만나 한번에 10시간 정도씩 맨정신에서 취한 정신까지 다 보여주며 같이 놀기 어렵지 않겠는가....
사실 우리 모임에 체계적인 거창한 산행 계획도 없다.다음주 산행지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그 주 산행 후 막걸리 마시다 결정하면 그 뿐이다.백두대간도 세월이 흘러 가면 가는 것이고 완답하면 더욱 좋겠지만 못가도 괜찮고 방방곡고 명산 200산도 오르면 오르는 것이다.백두대간 못가서 안달할 필요는 더욱 없다.사실 서울 근교산행이 백두대간 산행보다 더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산행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산행발전기금도 걷히면 모으는 것이지 반대를 무릅쓰고 모금할 생각이나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산우회원들도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저 좋아서 나오면 그 뿐이고 다만 시간만 제대로 지켜주면 된다.
이렇게 짧게는 4-5년 길게는 10년 정도 더 하다보면 어떤 방향이 자연적으로 더욱 선명해 질 것이로되 이제 막 시작한 걸음마 수준의 산행이 제대로 성장할지는 물론 산우들 마음과 행동에 달렸지마는 산행 모임의 발전이 반드시 보장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토요일 그 시간,그 장소에 기대를 갖고 나가는 것 일 뿐이다.모임과 사람,산행 자체에 대한 愛好感의 발로를 숨길 수 없어 그냥 가뿐숨 몰아쉬며 비탈길을 올라가는 것이다.
어떤면에서 맹목적인 純粹가 따라야하고 다른 활동에 대한 희생이 불가피하겠지만 어짜피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요.opportunity cost를 부담해야 하는 것이니까.
章鉉
2004.12.22 오후
※일단 글을 끝냅니다.무슨 말을 썼는지 쓴 사람도 잘 모르겠습니다.자주 같이 산행에서 만나기를 바라겠습니다.南모가 모든 것을 다운사이징한 마당에 산행도 다운사이징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가도 합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