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남양홍씨(당성홍)인주도령중랑장공파종중
 
 
 
 
 
카페 게시글
종친 명상방 스크랩 허균선생의글.「도문대작인(屠門大嚼引)」,
홍왕식 추천 0 조회 21 14.06.17 14:3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허균의「도문대작인(屠門大嚼引)」, 에대한글..

도문대작’의 원뜻은

 ‘푸줏간 앞에서 입맛을 크게 다신다’는 것으로,

 실제로는 없어서 못 먹지만 먹는 시늉을 함으로써 먹고 싶은 욕망을 달래는 것을 말한다.

余家雖寒素, 而先大夫存時, 四方異味禮饋者多, 故幼日備食珍羞. 及長, 贅豪家, 又窮陸海之味. 亂日避兵于北方, 歸江陵外業, 殊方奇錯, 因得歷嘗, 而釋褐後, 南北官轍, 益以?其口, 故我國所?, 無不?其炙而嚼其英焉. 食色, 性也, 而食尤軀命之關. 先賢以飮食爲賤者, 指其?而徇利也. 何嘗廢食而不談乎? 不然則八珍之品, 何以記諸禮經, 而孟軻有魚熊之分耶? 余罪徙海濱, 糠?不給, ?案者唯腐鰻腥鱗馬齒?野芹, 而日兼食, 終夕?腹. 每念昔日所食山珍海錯, ?而斥不御者, 口津津流?涎, 雖欲更嘗, 邈若天上王母桃, 身非方朔, 安得偸摘也? 遂列類而錄之, 時看之, 以當一?焉. 旣訖, 命之曰屠門大嚼, 以戒夫世之達者窮侈於口, 暴殄不節, 而榮貴之不可常也, 如是已.
우리 집이 비록 가난하지만, 선친께서 살아 계실 적에는 사방에서 나는 특산물을 예물로 보내오는 자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 온갖 진귀한 음식을 두루 먹어보았다.

장성해서는 부잣집에 장가든 덕분에 또 각종 산해진미를 다 맛볼 수 있었다.

 임진왜란 때는 병화(兵火)를 피해 북쪽으로 갔다가 강릉의 외가로 돌아갔는데,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진기한 해산물을 두루 맛볼 수 있었다.

벼슬길에 들어선 뒤로는 먹고살기 위해 남북으로 전전하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나는 색다른 음식은 먹어보지 못한 것이 없었다.
  음식과 성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본능인데,

 특히 음식은 생명과 직결된다.

 선현들이 음식을 밝히는 사람을 천하게 여긴 것은 먹는 것만 탐하고 이익만 추구하는 행동을 가리킨 것이었지,

먹지도 말고 그에 대해서 말하지도 말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팔진미(八珍味)를

『예기(禮記)』에 기록했겠으며,

 맹자(孟子)가 생선과 곰 발바닥 요리를 구별해서 말했겠는가.


   내가 죄를 짓고 바닷가 고을로 유배된 뒤로는 쌀겨나 싸라기조차 넉넉지 않아,

 

 밥상에 오르는 것은 오직 부패한 뱀장어와 누린내 나는 생선, 쇠비름, 돌미나리

 

 같은 것뿐이었다.

 

그래서 날마다 양을 곱으로 먹더라도 저녁 내내 허기가 들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지난날 질리도록 먹어서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산해진미를 생각하며 침을 삼키곤 하였다.

그런 음식들을 다시 먹어보고 싶지만 아득하기가 하늘나라 서왕모(西王母)의 천도복숭아와 같아,

동방삭(東方朔)이 아닌 나로서는 훔쳐 먹을 재주도 없다.


   마침내 그 음식들을 종류별로 적어 놓고 때때로 보며 한 점의 고기로 여기기로

 

 하고는 이를 「도문대작(屠門大嚼)」이라고 이름붙였다.

 

세상의 영달한 자들이 음식으로 온갖 사치를 부리며 무절제하게 낭비를 일삼지

 

만, 부귀영화란 이처럼 무상할 뿐이라는 사실을 이를 통해 경계하고자 한다.

 

**해설**

허균이 1611년 귀양지인 전라도 함열(咸悅)에서 지은 「도문대작(屠門大嚼)」의 서문에 해당하는 글이다.

 

 

식욕은 인간의 생존과 관계되는 가장 본능적인 욕구이다.

 

그러나 유교 문화권에서 식욕은 성적 욕구와 함께 절제해야 할 대상이었다.

 

 이는 공자가 “꽁보리밥 먹고 물 마시고 팔을 굽혀 베더라도 즐거움은 그 속에 있

 

다.

 

”라고 하고, 맹자가 “음식을 밝히는 사람을 남들이 천하게 여긴다.

 

”라고 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러니 체면을 중시하는 사대부가 맛있는 음식을 떠올리며 침을 삼킨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허균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욕망을 당당히 밝히며 자신이

 

 먹어본 각종 음식들을 종류별로 하나하나 기록하였다.

 

 이는 요즈음 흔히 볼 수 있는 음식 관련 다큐멘터리나 탐방 프로그램, 만화, 서

 

적 등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을 떠올리게 한다.

 

게다가 허균이 온갖 산해

 

진미를 나열해 적어 놓고

 

“때때로 보며 한 점의 고기로 여기려 한다.

 

”라고 했으니, 그 표현은 파격이라 할 만하다.

 

 겉으로는 더할 수 없이 청빈한 삶을 추구하는 척하지만 부귀와 권력, 명예와 지

 

위를 얻기 위해서라면 온갖 권모술수를 마다치 않는 지식층의 위선을 의도적으로

 

 비꼬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허균의 글에서는 왠지 “나도 누구 못지않게 누릴 만큼 누려본 사람이다”

 

라는 자부심과 과시욕이 느껴진다.

 

명문가의 자제이자 경제력 있는 외가와 처가를 둔 소위 특권층이었고, 뛰어난 머

 

리와 충만한 재능을 지닌 채 큰 어려움 없이 관료생활을 해왔던 그였다.

 

평생 누렸던 풍요로운 환경과는 너무도 다른 유배생활에서 그의 심기가 편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기죽어 지내는 대신 뻥뻥 큰소리를 치듯 이 글을 지었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그의 의식세계와 반항적인 기질이 엿보인다.

  허균을 얘기할 때 흔히 그의 개혁사상을 거론한다.

 

그가 「호민론(豪民論)」에서 민(民)의 정치적 역할에 주목하고,

 

『홍길동전』에서 신분제 타파와 부패한 사회를 개혁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점 등이 그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음식을 소재로 한 이 글에서는 하층민의 고달픈 삶에 대한 한마

 

디 언급이 없다.

 

자신과 같은 지배층이 호의호식하는 동안 ‘뼈 빠지게’ 일하고도 배불리 먹어보지

 

 못했을 백성들에게 미안해하는 마음은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허균 역시 ‘가진 자’로서 기득권층의 논리로 한세상을 살았

 

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가 원했던 개혁과 이상세계 건설이 ‘그들만의 리그’에서 자신이 승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기를 새삼 바라는 마음이다.


  

  
조순희 글쓴이 : 조순희
  •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 주요역서
    - 『홍재전서』, 『국조보감』,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번역에 참여
    - 『국역 기언 5』, 민족문화추진회, 2007
    - 『국역 명재유고12』, 한국고전번역원, 2008
    - 『국역 허백당집3ㆍ4』, 한국고전번역원, 2011~2012
    - 『국역 회재집』, 한국고전번역원, 2013 외 다수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