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소한 덩치에 실망은 이르다… 8봉의 카리스마에 반할 테니까
신비감 넘치는 수석(水石)이었다. 규모는 미니어처 급에 불과하지만 울창한 숲을 짊어진 바위산의 산세는 암팡지고 수려했다. 산을 휘감으며 흘러내리는 강물은 산을 한층 아름답고 기운차게 꾸며주고 있었다.
강원도 홍천군 서면 팔봉산(八峰山·327m)은 빼어난 자연미 덕에 가까이 수도권은 물론 전국의 등산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산이다. 등줄기를 따라 불쑥불쑥 튀어나온 암봉들은 아기자기한 산행의 즐거움과 더불어 조망의 기쁨을 안겨주고 산 아래 홍천강은 더위가 몰려올 즈음이면 물놀이를 겸한 휴양지 역할까지 해준다.
"에게~, 저게 그 유명한 팔봉산이란 말이에요? 말도 안 돼."
조미영(52·서울 서초구 방배동)씨 말마따나 팔봉산의 첫인상은 너무 작았다. 뒷동산 정도였다. 다가서자 달라졌다. 짙푸른 숲을 뚫고 솟구쳐 오른 여덟 개 바위 봉은 햇살에 반짝였다. 산을 에워싼 홍천강이 먼저 마음을 붙잡았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강태공들의 낙원이었다. 견지낚싯대를 놀리며 강물을 바라보는 그들은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의 한 장면처럼 무념무상(無念無想)에 빠져 있었다.
- ▲ 홍천 팔봉산 제8봉을 넘어 출발점으로 돌아오려면 유격 코스를 연상케 하는 강가 길을 따라야 한다. / 정정현 영상미디어 기자 rockart@chosun.com
쇠발판을 밟고, 동아줄을 잡으며 잘록이로 내려섰다가 정상인 제2봉에 올라서자 집 두 채가 올라앉아 있다. 산신당(山神堂)과 이(李)·김(金)·홍(洪)씨 부인을 모시는 삼부인당(三婦人堂)이다. 팔봉산은 500여 년 전부터 신성하게 받들어져 온 산이다. 산기슭 주민들은 200여 년 전부터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고 액운을 막으려고 당굿을 지내왔고, 그 팔봉산당산제는 지금도 전승되어 음력 3월 보름과 9월 9일이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제3봉에 올라서자 20~30대 젊은이나 허리 구부정한 70 노인이나 입이 쩍 벌어진다. 산 양쪽으로 푸르디푸른 강물이 흐르고, 제8봉을 향해 뻗은 기암 능선은 마치 너른 바다를 가르며 달리는 거함 같은 느낌이다. 이래서 옛날 선비들이 홍천강을 굽이굽이 아홉 굽이를 휘돌아 흐른다 해서 구곡강(九曲江)이라 하고, 팔봉산은 구곡강이 감도는 산이라 '아홉 폭 치마를 두른 산'이라 불렀나 보다.
홍천군이 군민관광휴양지로 관리하는 팔봉산은 해발 327m 높이의 작은 산이지만 줄곧 암봉을 넘어서야 하기 때문에 제법 힘들고 시간도 제법 걸린다. 그래도 2봉, 5봉과 6봉 사이, 6봉과 7봉 사이, 그리고 7봉과 8봉 사이에서 하산로가 나 있어 체력이나 시간에 따라 산행거리를 선택할 수 있다. 또한 해산굴(解産窟)처럼 험로다 싶은 구간에는 우회로가 나 있고, 바위 구간에는 철다리나 꺾쇠 발판이 설치돼 있어 비교적 안전하게 산행할 수 있다.
팔봉산은 등산로가 외가닥인 데다 찾는 이들이 많아 산행은 1봉에서 8봉 방향으로만 가능케 돼 있다. 1봉~8봉 코스(2.6㎞)는 3시간 정도 걸리며, 8봉을 생략할 경우 30분쯤 덜 걸린다. 팔봉산은 바위길과 안전시설물이 미끄럽다는 점 때문에 폭우 직후 산행을 금지한다. 입장료 어른 15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500원. 주차료 승용차 3000원. 관리소 033-434-0813.
교통은 서울춘천고속도로 남춘천 IC에서 접근하는 게 가장 빠르다. 남춘천IC에서 빠져나와 우회전한 다음 86번 지방도로를 따른다. 도중에 삼거리가 세 차례 나오는데 모두 무시하고 직진한다. IC에서 약 10분 거리. 대중교통은 춘천에서 대동·대한운수(033-254-6925), 홍천에서 현대교통(033-433-0015)에 문의.
맛집
팔봉산군민휴양지 단지 내 20여 개소의 식당에서는 산채, 막국수, 토종닭, 민물매운탕 등을 주메뉴로 취급한다. 관광단지에서 승용차로 약 10분 거리인 원소리막국수(033-435-1373)는 현지주민들이 '강추'하는 식당이다. 막국수 5000원, 촌두부·감자전·도토리묵(각 6000원), 오리양념숯불구이 4만원(3~4인분), 흑돼지 1만2000원(1인분). 매월 셋째 주 수요일은 쉰다.
토박이 산꾼
이돈(74)씨는 산꾼이라 불리기에는 나이가 많은 분이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팔봉산 산꾼' 하면 그를 꼽는다. 이돈씨만큼 팔봉산을 사랑하는 이가 드물기 때문이다. 그에게 팔봉산은 신앙과도 같은 존재다. 이권씨는 "열댓 살 때 제2봉 부근의 암봉에서 강물까지 떨어진 주민이 다치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 역시 팔봉산 산신령 덕분"이라며 홍천9경 중 1경으로 꼽힐 만큼 경관이 빼어난 팔봉산을 많은 이들이 찾아주기를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