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Wave in Homeshopping
[이다(iida)], [피델리아(fidelia)], [르메이유(LeMeilleur)] 이들의 공통 분모는 ‘by 홍미화, 이정우, 우영미…’,‘by 이신우’,‘by 랑유 김정아’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듯이 홈쇼핑에 진출한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라는 것이다. 이들은 작년 CJ39쇼핑의 [이다]를 선두로 “마감임박!”, “한정판매!”를 외치는 홈쇼핑에서 '디자이너
PB(Private Brand)’로 도전장을 냈다. 소비자들의 호응 또한 대단하여 [피델리아]의 경우 첫 방송 두시간 동안 6억 4천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서울경제 2002. 11. 8). 이러한 디자이너 PB는 지난해 4월과 6월 CJ39쇼핑에서 선보인 후, LG홈쇼핑의 [이소페이스](by 신강식), [르메이유](by 랑유 김정아)에 이어 현대홈쇼핑의 [시스정](by정호진)과 [이원재 스포츠](by 이원재), 가장 최근에 선보인 우리홈쇼핑의 [그레이스 리](by 이상길)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추세이다. 그렇다면 이들 디자이너 브랜드가 홈쇼핑에서 ‘뜨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글은 디자이너 브랜드의 흐름을 짚어보고,
고급 부띠크를 통해 소수의 상류층만을 대상으로 하던 그들이 홈쇼핑을 택한 이유와 그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디자이너 브랜드, 역사는 흐른다
1960년대를 전후로 하여 명동에 들어선 양장점들에서부터 ‘디자이너’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경자, 서수연, 노라노, 김경희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복장 학원에서 혹은 도제식으로
후배를 키워냈는데, 이를 통해 진태옥, 설윤형, 한혜자, 이신우, 문영자, 앙드레김, 김연주, 이철우 등 한국의 1세대 디자이너들이 배출되었다. 이들의 브랜드로는 [프랑소와즈](진태옥), [이따리아나](한혜자), [브루다문](문영자), [김연주 부띠끄](김연주), [마담 포라] (이철우)가 있었다. 당시의 디자이너 브랜드는 디자이너 한 사람이 도맡아하는 협소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60년대 후반부터 국내 섬유산업이 번창하고 백화점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패션은 좀 더 일반인들의 생활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그러나 디자이너 브랜드는 여전히
소수의 고객만을 위한 맞춤 방식을 고수했다.
70년대부터는 ‘중앙디자인 콘테스트’ 출신인 박윤수, 지춘희, 이상봉, 루비나, 김동순, 정미경 등이 2세대 디자이너로 활동을 시작한다. 80년대에 들어서자 ‘제일모직’과 ‘코오롱’ 등 대기업의 패션계 진출로 기성복 산업이 급성장하여 전국적인 유통망을 가지고
있는 기성복 브랜드들이 패션시장을 주도해 갔다. 그러자 2세대 디자이너들도 자신들의 브랜드 인지도를 활용하여 기존의 고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명동에서 다점포화를 꾀하고, 백화점 입점을 통해 유통망을 넓혀 내셔널 브랜드화 하려는 시도를 한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획과 마케팅에만 의존하여 기성복 브랜드를 이끌어가던 대기업들은 디자인의 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반면 1, 2세대 디자이너들은 90년에 ‘S.F.A.A(Seoul Fashion
Artist Association)’를 조직하여 매년 두 차례 시즌별 컬렉션을 여는 등 한국의 패션 트렌드를 만들어 간다. ’88 올림픽 이후부터는
국제적인 패션 교류가 늘어나 디자이너의 해외 컬렉션 접촉이 확대되었다. 또한 수입 브랜드의 국내 시장 진출로 입지가 좁아진 디자이너들은 국내 패션 활성화와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 해외컬렉션으로
발돋움 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한편 92년 젊은 디자이너들이 모여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NWS(New Wave in Seoul)’를 설립한다. ‘NWS’에 속하는 강진영, 박은경, 박춘무, 송지오, 홍미화, 이경원, 우영미 등이 바로 3세대 디자이너이다. 이들은 정기컬렉션을
개최하며 유통망을 백화점으로 확대하는 등 창작성과 상업성의 균형을 맞추는 데 적극적인 노력을 쏟았다.
진취적이고 실험적인 요소가 가미된 ‘NWS’의 디자인과, 그들의
비즈니스 감각은 대량생산 중심의 패션 흐름을 다시 디자이너 브랜드 중심으로 돌려 놓는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그리하여 90년대 중반에는 디자이너 중심 비즈니스의 일환으로, 대기업이 계약 디자이너를 채용하거나 디자이너가 투자자와 손을 잡는 형식이 도입되기도
했다. 94년 한일합섬이 디자이너 홍미화와 계약을 맺고 [레주메]를,
95년 동부산업이 송지오를 채용하여 [메니페디]를 런칭하고, 디자이너 정구호가 F&F와 손을 잡고 [구호]를, 박은경이 천지산업과 [매드믹스 by박은경]을 선보인 것 등이 그 예이다(섬유저널 94, 4). 이영희의 파리 입성을 계기로 진태옥, 홍미화 등이 파리컬렉션에, 트로아
조가 뉴욕컬렉션에 참가하는 등 디자이너들의 해외 컬렉션 진출도
활발해졌다.
그러나 디자이너 브랜드의 한계는 여전히 존재했다. 1998년 IMF가
닥치자 패션업계는 대대적인 브랜드 정리를 단행해야 했고, 재무구조가 취약한 기업들은 부도를 맞게 되었다. 더욱이 디자인, 생산, 판매 및 재고와 자금 관리를 디자이너 혼자서 전담해왔던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재고부담과 자금압박을 견디지 못하는 일이 많아졌다. 대표적인 예가 이신우이다. [오리지날 리](68’), [영우](82’), [쏘시에](89’), [이신우 컬렉션](93’), [이신우 옴므](93’)등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펼치던 그가 수요예측의 실패로 인한 재고부담으로 98년 부도를 낸 것이다.
백화점 측의 매출 위주의 구조에서 대량생산이 불가능한 디자이너
브랜드가 기성복 브랜드와 경쟁하여 살아남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최근 백화점들은 신유통 채널의 증가로 성장이 둔화되자, 고급화와 고가전략을 내세워 해외 명품 브랜드의 입점을 늘리는 추세이다. 따라서 내셔널브랜드와 외국 명품 브랜드 사이에 낀 디자이너
브랜드가 설 자리는 더욱 불안정해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화점에 입점한 디자이너 브랜드의 매장은 점점 축소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했다.
-왜 홈쇼핑인가?
디자이너 브랜드의 대안이 왜 홈쇼핑이었을까. 우선 홈쇼핑이란 제조업체 중개상이 고객에게 직접 서비스나 상품을 제공하는 유통 형태로서 다이렉트 마케팅(Direct Marketing) 의 일종인 온라인 쇼핑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통상 ‘TV홈쇼핑’과 ‘인터넷 쇼핑’, ‘카타로그 쇼핑’을 통칭하여 온라인 쇼핑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러한 홈쇼핑은 96년 매출 1천억원을 넘어선 이후 2001년에는 2조원의 시장을 형성할 정도로 고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홈쇼핑 시장의 확대에는
케이블TV 시청 가구수의 증가가 큰 몫을 담당했다. 앞으로 위성TV가 보급되면 그 성장세는 더욱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홈쇼핑의 붐은 단순히 케이블TV의 보급 뿐 아니라 소비의 트렌드 변화에서도 그
요인을 찾아볼 수 있다. 쇼핑 시간을 줄이고 여가를 즐기기 위해 ‘소비의 편리성’을 추구하려는 소비자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가 홈쇼핑 시장의 성장을 더욱 촉진시킨 것이다. 그리고 홈쇼핑의 채널 또한
기존의 TV와 카타로그에서 인터넷 등으로 다양해져, 오프라인(off-line)쇼핑에 제한을 받는 실버층과, 인터넷과 케이블TV 등 새로운 매체에 익숙한 세대들을 흡수할 수 있게 되었다. 홈쇼핑은 신유통을 주도하는 매력적인 시장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물론 홈쇼핑과 디자이너 브랜드의 만남은 이전에도 있었다. 지난 96년 ‘하이쇼핑’은 디자이너 이신우와의 제휴를 통해 ‘디자이너
PB’를 시도한 바 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매일경제,
1996. 8. 19). 케이블TV 개국(1995년) 일년 후인 당시만 해도 케이블
TV의 보급이 지금처럼 일반화되지 않았고, 홈쇼핑 또한 소비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디자이너 PB’가 도입된 것이 실패 요인으로 보인다.
디자이너 브랜드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량생산으로 제품의
단가를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디자이너는 디자인 만을 맡고,
생산은 대규모 유통라인을 갖춘 업체에서 대행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가능한 얘기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홈쇼핑이 디자이너 브랜드의 든든한 파트너로 선택된 것이다.
그러나 대량생산으로 가격 경쟁력만 확보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디자이너 브랜드의 본질적 이미지와는 모순되는 대안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역설적인
선택의 숨은 이유는 [이다]의 경우 해외컬렉션 진출이었다. 이들 디자이너들은 파리컬렉션을 통해 세계적인 지명도를 얻기 원했다. 그러나 파리컬렉션 1회 참가비는 1억원이 넘을 정도의 경비가 들기 때문에 지속적인 참가를 위해서는 후원이 필요한 실정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5년 동안 10회 컬렉션 참가 비용을 CJ39쇼핑이 전액 부담한다는 조건하에 [이다(iida)](International interactive designer
association)를 선보인 것이다.
한편 홈쇼핑에서는 기존의 부띠크에서와 같이 디자이너들의 이름이
직접 브랜드로 운용되지 않고 단지 새로운 브랜드를 붙이고 그에 대해 ‘by 디자이너’라는 형태로 보증 역할을 할 뿐이다. 이신우의
[피델리아], 랑유 김정아의 [르메이유], 신강식의 [이소페이스]등
대부분 이 같은 전략을 펼치고 있다.
그렇다면 왜 CJ39쇼핑은 5년간 50억이라는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가. 소비자의 주권이 강화됨에 따라 시장의 주체가 소비자가 되면서
홈쇼핑에서도 제품의 품질보다 브랜드와 신뢰가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제 홈쇼핑이 필요로 하는 것은 신뢰도를 높여줄 수 있는
브랜드이다. 50억원의 대가로 CJ39쇼핑은 디자이너 브랜드의 후광효과(Hallo effect)를 활용하려 한다. 뿐만 아니라 [이다]의 디자이너들이 파리컬렉션에서 지명도를 얻어 해외 시장에 진출할 경우 해외브랜드 라이센스권을 갖기로 했다. LG홈쇼핑에서도 ‘서울컬렉션’의 홍은주, 박은경, 이경원를 참여시키고 있으며, ‘스파 컬렉션(S.F.F.A)’을 후원하여 이 컬렉션에 속한 디자이너들과의 계약을 체결하고자 협의하는 등 노력을 펼치고 있다. 결국 디자이너 브랜드와
홈쇼핑이 만나 서로의 필요조건을 충족시켜주는 윈윈(Win-Win)전략을 택한 것이다.
-디자이너 브랜드의 대중화, 그 이후
특수한 계층만을 위한 제품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높았던 디자이너
브랜드가 홈쇼핑을 타고 안방으로 들어왔다. 이제 소비자들은 문턱이 높은 디자이너 브랜드 매장을 찾는 대신 전화 한 통으로 유명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옷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홈쇼핑의 ‘디자이너 PB’는 디자이너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접근 가능성을 높이는 동시에 디자이너 브랜드의 대중화에 물꼬를 텄다. 홈쇼핑 소비자들은 디자이너 감성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하고, 이로 인해 홈쇼핑의 매출은 급상승하고 있다. (홍미화가 디자인한 코트가 십 오만 구천원, 이정우의 순모 와이드 팬츠가 십만 구천원으로 선으로 기존 부티끄 매장의 가격보다는 저가이고 홈쇼핑에서 판매되는 다른 의류
가격보다는 다소 고가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고급’, ‘희소성’, ‘장인정신’, ‘감각있는
혹은 실험적인 디자인’등 디자이너 브랜드의 특수성이자 본질(identity)이 흐려진다면 그들이 홈쇼핑에서 발휘할 수 있는 힘 또한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디자이너 브랜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홈쇼핑
브랜드와 기존 고가 부띠크의 브랜드를 독립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물론, 차별적인 전략을 펼쳐야 한다. 홈쇼핑용 브랜드로는 앞서의 예처럼 기존의 디자이너 브랜드와는 다른 브랜드를 개발하고 ‘by 디자이너’ 형태로써 디자이너는 보증의 역할을 맡는 것이 적당하다.
그리하여 소비자의 머리 속에서 기존 디자이너 브랜드와는 차별화된
홈쇼핑의 디자이너 브랜드를 명확히 구분지을 수 있게 하여야 한다.
‘블랙라벨’과 ‘이코노 라인’처럼 유통채널에 따른 명확한 가격
정책도 세워져야 할 것이다.
디자이너 PB는 홈쇼핑의 매출만이 아니라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 따라서 기존 홈쇼핑의 단조로운 프로그램 편성과 물량공세에서 벗어나 브랜드와 가치를 파는 홈쇼핑으로 향상시켜주는 촉매 역할 또한 디자이너 브랜드의 몫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광고 위주인 컨텐츠에서 벗어나 디자이너들이 참가한 컬렉션의 생생한 패션쇼나 이벤트를 활용하고, 컬렉션에 대한
정보전달을 통해 홍보효과를 얻는 인포머셜(Infomercial)의 컨텐츠를
늘려나갈 수도 있겠다. 이렇게 디자이너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온전히 유지해나간다면 디자이너 브랜드와 홈쇼핑의 만남이 택한 윈윈(win-win)전략은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박신희, 「1990년대 해외컬렉션과 국내컬렉션의 패션 트렌드 비교연구」,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2000, 2
김휴종 外「위성방송시대 홈쇼핑채널 정책방향」,삼성경제연구소
2000, 10
필자 : 우지경(메타브랜딩 네이밍3팀/부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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