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회 한국수필문학상 수상작 / 괴이하고 불경스러운 언어-소품문의 대가,이옥을 중심으로 / 이 은 희
작가의 입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소리가 있다. 글을 써야 하는데 ‘소재가 부족하다’는 고민거리다. 시간과 돈이 부족한 것이 아닌 글감이 없어 글을 쓰지 못한다는 이야기이다. 이 말에 한 문인은 주변에 널린 것이 글감이란다. 하지만, 지면에 발표한 글은 남편과 자식이야기, 신변잡기로 일관한다. 그러던 차에 18세기 소품문을 접하며, 수필 소재에 관한 생각이 깊어진다.
18, 19세기를 대표하는 소품가인 이옥(李鈺, 1760~1815)의 문장을만나 가슴에 파문이 인다. 이옥과 관련 서적을 주문하여 탐독하며 적잖이 흥분한다. 소재가 부족하다는 문인은 이옥의 삶과 작품세계를 마주하면 부끄러우리라. 글감 탓은 핑계이며, 문학의 열정이 부족하다는 걸 깨닫게 되리라. 생활 주변에서 이옥의 눈에 띈 만물은 글감 대상이다. ‘한평생 소품문 창작에 전념한 흥미로운 작품을 많이 남긴 문인’이란다.
이옥의 생애는 한마디로 고독하고 불우하다. 세상 밖으로 밀쳐진 그가 글을 쓰지 않았다면, 생을 견디기 어려웠으리라. 1792년 정조가 출제한 문장 시험에 소품체를 구사하여 ‘불경스럽고 괴이한 문체’를 고치라는 하명을 받는다. 이에 불응하여 견책을 받고 충청도 정상현과 경상도 삼가현으로 두 번의 충군(充軍)에 갖은 고초를 겪는다. 그는 유배지에서 돌아와 과장(科場)에 출입하지 않고, 경기도 남양에 칩거하며 글쓰기에 열중하다 여생을 마친다.
이옥의 글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소재로 세상의 이치를 알린 작품들로 가득하다. 일상에 널린 물상인 새와 물고기, 짐승과 과일, 채소와 나무, 풀 등속을 자신만의 감수성으로 표현한다. 또한 자신이 체험한 세계를 독특한 해석과 철학적 사유로 빚어낸다.《백운필(白雲筆)》서문에서 ‘책명을 붓 가는 대로 기록한다는 필(筆)이라 하고, 매장마다 담(談)이라는 표제를 붙인 데서 알 수 있듯’ 작고 보잘것없는 것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묘사로 심금을 울린다. 그러니 18세기 어떤 지식인과 문사가 그를 따라올 수 있으랴.
이옥은 문학적으로 ‘일상성의 대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일상생활의 소재와 주제를 즐겨 다루는 ‘현대문학의 한 장르인 수필문학, 특히 생활수필 혹은 잡감 수필의 선구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 보면, 수필은 전통적이고 규범적인 ‘순정고문(醇正古文)’의 격식을 파괴한 문체로 시대의 아픔을 겪고 살아남은 문학 장르이다. 이옥은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개성적 문체와 내용을 고집한, 문학의 한 장르로 태동하도록 앞장 선 문장가이다. 일상성을 대표하는《봉성문여(鳳城文餘)》에 실린 작품, 시기(市記)이다.
12월27일에 시장이 열렸다. 나는 너무나 심심하고 지루한 나머지 종이창의 구멍을 통해 시장 풍경을 엿보았다. 그때 마치 눈이 올 것처럼 하늘이 컴컴했는데, 눈구름인지 먹구름인지 분변하기가 어려웠다. 대략 정오는 이미 넘긴 시간이었다. 송아지만 하게 보이는 소를 몰고 오는 사람도 있고, 소 두 마리를 몰고 오는 사람도 있고, 품에 닭을 안고 오는 사람도 있다. 팔초어八梢魚(문어)를 들고 오는 사람도 있고, 돼지의 네 다리를 결박한 채 들쳐 매고 오는 사람도 있고, … 서로 만나 허리를 숙여 절하는 사람도 있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있고, 서로 화를 내며 밀치고 다투는 사람도 있고 손을 잡아당기며 서로 희롱하는 남자와 여자도 있고, …
시장 풍경을 다 구경하지 않았는데 땔나무를 한 짐 짊어진 사람이 나타나 종이창 바깥으로 바로 보이는 담장 쪽에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나 역시 안석에 기대어 누웠다. 한 해가 다 저물어갈 무렵이기 때문인지 시장은 더욱 사람들로 북적댔다. -이옥,《봉성문여(鳳城文餘)》, 시기(市記) 중에서
겨울 저잣거리의 인정과 풍물을 진솔하게 그려낸 장날 풍경이다. 경상도 삼가현에 충군으로 머물며 지은 글이다. ‘있고’ 라는 반복 문장이 단조롭지만, 사람마다 각각의 특색과 변화가 있는 생동감 넘치는 글이다. 선비들이 주저하던 저잣거리 풍경을 화가 김홍도나 신윤복이 그림으로 문장가 이옥이 글로 남기지 않았다면, 그 시대의 생활상과 사람 냄새나는 풍경을 어찌 느낄 수 있으랴. 그의 글로 18세기 선인의 문화와 풍습이 눈앞에 생생하다.
후인은 글 속에서 선인의 삶을 공유하고, 그 시대의 문화를 고증한다.《글쓰기 동서대전》의 저자인 한정주는 이옥의 작품집《백운필》에 실린〈담충(談蟲)〉을자신이 본 수천수만 편의 소품문 가운데 가장 탁월하고 독보적인 걸작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일상에서 발견한 ‘사소하고 하찮고 보잘것없는 미물(존재)의 위대함과 비범함, 거대함의 역설’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일찍이 우연히 수숫대를 꺾어서 그 한마디〔節〕를 쪼개본 적이 있다. 가운데가 텅 비어 구멍이 나 있고 위아래로 마디에 미치지는 못하였는데 그 크기를 비교하자면 연근 구멍과 같았다. 그곳에 살고 있는 벌레가 있었다. 그 벌레의 길이는 기장 두 알가량 되는데,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것이 생명력이 느껴졌다. 나는 한숨을 쉬고 탄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즐겁구나, 벌레여! 이 사이에서 태어나고 이 사이에서 성장하고, 이 사이에서 기거하고, 이 사이에서 입고 먹고 자는구나. 더욱이 이 사이에서 늙어가겠지. … 귀로는 듣지 않고 눈으로는 보지 않으며 그 수숫대의 하얀 속살을 이미 실컷 먹으며 배부르게 살다가, 이따금 우울하거나 답답하고 심심하거나 지루할 때면 그 배때기를 세 번 굴려서 위의 마디에 이르러 멈추니, 이 또한 하나의 소요유(逍遙遊)라고 하겠다. 어찌 거대하고 광활해서 여유로운 땅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즐겁구나, 벌레여!”-이옥,《백운필(白雲筆)》,〈담충(談蟲)〉중에서
어느 날 거대한 갑충인 벌레로 변한 그레고리 잠자, 카프카의《변신》을 떠올리게 하는 실험성 짙은 글이다. 이옥이 스스로 벌레가 되었다는 말은 없다. 하지만, 글 속에서 사물과 자아의 주관적 일체감이랄까. 수숫대 속의 벌레를 묘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벌레는 이옥 자신을 의인화한 것이다. 자신이 펼치고 싶은 세계를 마음대로 펼치지 못하는 세상과 불화를 수숫대 속 벌레에 비유한 것이다. 서얼 출신에 문체반정으로 속세로 밀려난 그가 미물인 벌레가 되어야만 비로소 기탄없이 말할 수 있는 현실이 아닌가. 그의 생애와 맞물려 글에서 소외감과 고독감이 느껴진다.
정조로부터 소품체 작가로 지목된 강이천(1768년~1801년)은 이옥의 작품을 읽고 ‘붓 끝에 혀가 달렸다.’고 전한다. 하지만, 문장가인 이옥의 고민도 다르지 않다.《백운필(白雲筆)》서문에서 ‘내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또 무엇을 가져다 말하고 붓으로 써야 할 것인가?’ 자문하였다. 이러한 작가 정신이 시대를 앞서가는 대가(大家)로 이끈 것이다. 또, 남다른 점은 25세의 이옥은 제야를 특별하게 기념한다. 그는 문학의 신에게 제를 올리며〈문학의 신에게 올리는 제문〉과〈섣달 그믐의 바람〉을 지었다. 문학의 신은 아마도 자기 내면의 다른 이름이리라. 글을 짓고자 갉아먹은 자기 정신에게 사죄하는 의미로 제를 올렸다니 참으로 흥미롭지 않은가.
21세기 수필가는 ‘괴이하고 불경스러운 언어’를 탐독한다. 시대의 아픔을 나눈 벗과 그의 작품을 알아보고 책을 엮은 후인이 있어 다행이다. ‘이옥의 작품은 양적으로 많을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우수하다. 그는 수많은 작품을 창작했으나 체계적으로 정리된 적이 없다.’고 전한다. 그나마 절친한 벗인 김려(金鑢, 1766~1822)가 그의저서《담정총서(藫庭叢書)》에 일부를 실었다. 이 밖에《백운필(白雲筆)》과《연경, 담배의 모든 것》,《이옥전집》등은 최근에 와서야 발굴된 것이다. 그의 수필(소품문)이 제자리에 안착하지 못하고 어딘가에 떠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두 눈을 크게 뜨고 고서를 관심 있게 볼 일이다.
수필 인구 삼천 명 시대를 맞고 있다. ‘21세기는 수필시대가 될 것이다.’ 라는 이어령 선생의 예언이 적중한 것이다. 수필을 일러 문학성이 없다고 말한다. 18세기에도 소품문을 폄훼하다 못하여 징벌까지 내리는 문체반정이 벌어진다. 당대에도 이어지는 모욕을 당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수필가들이 변화해야만 한다. 현대수필 발행인 윤재천 교수는 ‘문학성은 변화에서 나온다. 수필은 변화해야 하고 디자인하라’고 주문한다. ‘문학성은 다양한 변화를 두려워해선 안 되고,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남을 닮으려 하지 말고, 자기만의 글을 써야 한다.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실패해보고, 성공도 해봐야 한다.’ 18세기 소품문의 대가 이옥처럼 자신만의 철학이 담긴 수필의 길을 열어가야만 한다.
지금 우리는 가을의 영토 안에 머문다. 산야에 단풍을 보니 이옥의 문장이 떠오른다. 이옥의 중흥유기(重興遊記)처럼, ‘어디를 가든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고, 누구와 함께 하든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온 천지에 오색 단풍 들고 낙엽이 구르니 어찌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랴. 인간의 마음은 아름다움에 흔들리라고 지구에 자리하는가 보다. 선인처럼 글감 잡으러 가을 속으로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