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유학생들과 팀을 구성하다.
한국관광공사와 현대자동차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구석구석 맛 탐험대”에 관한 기사를 본 순간 나도 우리 가족들과 신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곧 생각을 바꾸어 내가 근무하는 한국정보통신대학교(ICU)에 유학 중인 외국인 유학생들과 함께 탐험대를 구성하기로 하였다.
대덕 연구단지 안에 위치하고 있는 한국정보통신대학교는 정보통신분야에 특화된 대학교로서 수능성적 상위 1% 이내의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하며, 전 전공과목을 영어로 강의하는 등 특성화된 대학교이다. ICU는 대학원생의 20% 정도가 외국인 유학생들이며, 특히 2006년부터는 남미, 동남아시아 및 아프리카 등의 30여개 국가에서 선발된 IT관련 공무원과 IT기업 및 연구소의 연구원 등 40여명이 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 외국인 학생들에게 우리의 음식과 문화를 소개 시켜 주고 싶었던 것이다.
팀 구성 및 출발 전 준비
우선 팀 구성을 위해 누구를 포함시킬까 생각해 보았다. 가장 먼저 떠 오른 학생은 가나 출신의 싸니였다. 그는 평소 인사성 밝아 항상 웃는 얼굴로 먼저 인사를 하곤 했던 것이다. 다음으로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미남 청년 아크말을 선택했다. 그리고 지역적으로 편중되지 않도록 불가리아 출신의 시메온, 케냐 출신의 아그네스 등 4명으로 팀을 구성하기로 하였다.
개인의 차량을 이용해야 한다는 점과 여행 중 불의의 사고 등에 대비하여 여행자 보험을 가입했다. 또한 학생들에게 여행 중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고에 대해 한국관광공사나 현대자동차 및 나에게 책임이 없다는 것을 문서로 작성하고 서명을 받았다.
출발하기 전의 작은 소동
아침 8시 반에 모여 대략의 일정을 설명하였다. 그런데 싸니와 아크말이 채식주의자라는 것이다. 너무 당황하여 우리가 먹을 음식은 물고기로 만든 것이라는 점을 이야기 해 주었다. 그러자 그들도 이미 알고 있었으며, 채식주의자이지만 한국문화를 꼭 체험해 보고 싶으며, 물고기는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첫 번째 관문에서 좌절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던 적상산 사고터였다. 적상산 사고터로 가기 위해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갔는데, 앗! 이럴 수가? 전날 내린 눈이 얼어 자동차의 통행을 금지한다는 안내와 함께 철제 바리케이드가 떡하니 길을 막고 있었다. 관광버스로 온 단체 관광객들도 방향을 틀어 돌아가는 것이었다. 우리도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사진1:길을 막고 있는 바리케이드>
<사진2:바리케이드 앞에서>
무주향교에서의 향교체험
적상산을 내려와 무주향교로 방향을 잡았다. 무주 읍내에서 무주군청 주차장을 지나 금방 향교를 찾을 수 있었다.
무주향교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 그리고 우리나라의 18 성현을 모시는 곳이며, 과거에는 유교 경전과 도덕규범 등을 가르치던 국가 중등교육기관으로서 문화재 자료 제103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문을 들어서서 오른쪽에 5칸짜리 명륜당 건물이 있다. 그 안을 들여다 본 순간 가슴이 찡해졌다. 거기에는 30-40년 전 초등학교 교실에서 볼 수 있던 책상과 걸상이 있었던 것이다. 두 명이 짝이 되어 앉도록 된 조그맣고 낡은 책상들. 사진첩에 잊혀 진 채 방치되어 있던 낡은 흑백사진 같은 40여 년 전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가슴을 뛰게 만든 것이다.
잠시 둘러보고 있는데 그 곳에 계신 여성분 3명이 나오셔서 친절한 설명과 함께 향교체험을 직접 도와 주셨다. 특히 그 중 한 분은 아주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시는 것이었다. 이분들은 무주군청의 문화관광과에 근무하시는 관광해설사들로서 김정희, 오미연님과 외국인을 위한 영어해설사 딕나바이식(Dignabaysic)씨였다. 향교를 단순한 문화재로 방치하지 말고 전통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는 살아 있는 전통교육의 장으로 만들고자 하는 무주군수님의 의지로 관광해설사들이 활동하고 계시다는 것이었다. 또한 외국인을 위해 영어와 일어 해설까지 해 준다고 하며, 앞으로 중국어 해설사도 채용할 예정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우선 “가훈쓰기”를 해 보았다. 학생들은 처음 대하는 붓과 벼루가 신기한 듯 진지하게 가훈쓰기 체험에 참여하였다. 학생들은 칠판에 있는 견본을 보고 따라 써 보거나 자기 이름을 한글로 써 보았다.
<사진3:추억의 책걸상>
<사진4:내 이름은 아크말>
다음으로는 석전대제 체험을 해 보았다. 실제 제사를 지낸 것은 아니고 다만 석전대제 때 입는 대례복과 유생들이 입는 옷을 입어 보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신기한 학생들은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좋아 하며 사진도 찍고, 가마에도 올라 앉아보며 즐겁게 지냈다.
<사진5:내 작품 어때요?>
<사진6:내 모습 멋있나요?>
채식주의자들도 푹 빠진 섬마을 빠가사리 어죽
이제 슬슬 배가 고프니 점심을 먹으러 가야지. 주변 사람들에게 섬마을 식당을 물어보니 모두 “아, 거기요.”하며 친절하게 길을 알려 준다. 사실 나는 길치라서 가던 중에 중간 중간에서 차를 세우고 몇 번을 물어 보았는데, 사람들마다 섬마을에 대해서 잘 알고 대답을 해 주는 것이었다. 역시 유명하긴 유명한 식당인가보다. 섬마을이라고 하여 바다나 큰 강 옆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오히려 약간의 산길을 달려야 나오는 곳이 섬마을이다. 꼬불꼬불한 길을 달리다 보니 커다란 간판이 보인다. 식당에는 점심시간으로는 약간 늦은 편이었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손님들은 낯선 외국인들이 들어 온 것이 신기했는지 모두 우리를 쳐다 보았다. 식당은 넓은 홀과 두 개의 방으로 되어 있었다. 우리는 따뜻한 구석방에 자리를 잡고 빠가사리 어죽 다섯 그릇을 주문했다.
<사진7:섬마을 외부>
<사진8:섬마을>
인상 좋게 생긴 아주머니가 빙어튀김, 김치, 갓김치, 물김치, 콩나물무침 등의 반찬을 정갈하게 차려 주신다. 학생들은 각종 반찬의 이름과 재료 등이 무엇인지 계속 질문을 하는데, 영어로 설명하기가 어려워 쩔쩔 맸다. 학생들은 김치의 종류가 많은데 놀랐으며, 물김치와 무김치를 발음으로 구별하지 못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조금 후에 채식주의자인 싸니가 조심스럽게 빙어튀김을 가리키며 ”이거 하나 더...“라고 나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채식주의자도 반하게 만든 빙어튀김, 기꺼이 한 접시 추가했다.
<사진9:정갈한 반찬>
<사진10:빙어튀김>
이어서 나온 어죽은 김이 모락모락 나며 걸쭉하게 생겼다. 약간 붉은 기운이 도는 것이 약간 매울 것 같았다. 먼저 숟가락으로 푹 퍼먹으면서 슬쩍 싸니와 아크말을 쳐다보았다. 잡식성인 나는 아무 음식이나 다 잘 먹지만 민물고기는 특유의 흙냄새가 나서 썩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나도 썩 좋아하지 않던 음식을 채식주의자들이 어떻게 먹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곳의 빠가사리 어죽은 비린내나 특유의 흙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그들도 숟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맛을 보더니 “Yami"를 연발하며 쓱쓱 잘 먹는다. 내심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잘 먹어주니 다행이었다. 모두들 죽 그릇을 싹싹 비우고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맛도 좋지만 느끼하거나 기름기가 없어 위에 전혀 부담을 주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점이 좋았다. 더구나 빠가사리 뿐만 아니라 야채가 적절히 섞여 있어 건강에도 더없이 좋을 것 같았다. 학생들도 모두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평가하였다.
<사진11:먹음직스러운 어죽>
<사진12:식사 후 행복한 순간>
식당 벽에 “커피는 셀프”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순간 시중에 떠도는 농담이 생각나 이야기 해 주었다. 영어를 갓 배운 손자가 할머니에게 여쭈어 보았다. “할머니, 물을 영어로 눠라고 하는지 아세요?”, 할머니가 대답하시기를 “이눔아, 내가 그것도 모를까봐? 물은 영어로 ‘셀프’라고 하는겨.” 이야기를 듣고는 모두 박장대소를 했다. 그러더니 보고서 작성을 위해 공책을 들고 다니며 메모를 하던 싸니가 공책에 베껴 썼다. “커피는 셀프”
<사진13:싸니의 노트>
잠시 쉬었다가 홀에 나오니 이미 다른 손님들은 모두 가고 우리만 남았다. 홀에서 학생들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 이것저것 물어 보기 시작하였다. 첫 질문은 주인아주머니가 담근 ‘인삼주’였다. 유리병에 나무뿌리 같은 것이 들어 있으니 궁금했던 모양이다. 인삼에서부터 시작하여 인삼의 효능, 인삼주에 이르기까지 설명하였다. 그런데 옆의 메뉴판에 ‘인삼 어죽’이라고 쓰여 있자 또 질문공세를 퍼붓는 것이었다. 주인아주머니 말씀은 우리가 먹은 어죽에도 약간의 인삼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다만 인삼의 양은 적은데 인삼어죽이라고 하면 오해를 할 것 같아 ‘인삼’자는 빼고 ‘빠가사리어죽’이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케냐에서 온 아그네스 생애 첫 눈을 즐기다
등 따습고 배부른 것 만한 행복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우리는 또 다른 즐거움을 위해 무주로 발길을 돌렸다. 식당에 도착할 때 내리기 시작한 비가 무주리조트에 도착하자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날씨 때문에 곤돌라를 타고 덕유산 정상부터 가 보기로 하였다. 곤돌라를 타고 정상에 오르자 날씨가 예상보다 훨씬 안 좋아 20-30미터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눈보라가 쳤다. 적도 바로 밑에 있는 케냐에서 온 아그네스는 눈 내리는 것을 처음 보았다고 하며 신기해했다. 처음 보는 눈의 신기함 만큼 처음 겪는 추위를 견디느라 힘들어했다. 너무 춥고 앞이 안 보여 기념사진 만 몇 장 찍고 내려와야 했다. 그 사이에 학생들은 다른 관광객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14:덕유산>
<사진15:덕유산 눈꽃>
<사진16:눈 덮인 나무>
<사진17:덕유산국립공원>
다시 곤돌라를 타고 아래로 내려와 스키 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스키장을 처음 경험하는 아그네스는 연방 넘어지면서도 계속 스키를 타는 사람들을 보며 매우 부러운 눈치였다. 스키 대신 눈썰매라도 타려고 ‘키즈랜드’로 가는 순환버스를 탔다.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인데 시메온은 특유의 넉살로 한국 학생들과 어울려 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썰매를 타고 싶었으나 영업시간이 거의 끝나 타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사진18:무주 스키장>
<사진19:셔틀버스에서 한국인들과>
프로포즈 방에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다.
상점가로 올라가자 조그만 찻집이 나왔다. 가게 앞에 ‘프로포즈방’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다. 이 가게의 3층에 드라마 ‘여름향기’가 촬영된 조그만 방이 있다. 이름하여 ‘프로포즈방’이다. 이 방은 천장에 흰 장미가 가득 달려 있어 정말 연인들이 프로포즈 하기에 딱 어울리는 방이다. 따뜻한 차를 한 잔 씩 하고 밖으로 나오자 밖에는 환상적인 풍경이 전개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위해 나무에다 전구를 장식한 것이 너무 화려하여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사진20:프로포즈방>
<사진21: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
우리는 다시 전주로 가서 비빔밥을 먹는 것으로 맛탐험을 마무리 지었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즐긴 하루였다. 우리는 무주에서 전통문화체험과 스키 리조트의 화려한 젊음을 모두 즐길 수 있었다. 게다가 건강에도 좋고 맛도 구수한 빠가사리 어죽까지 먹었으니 오늘은 정말 행복한 하루였다.
대전진주간 고속국도가 개통됨으로써 무주리조트를 찾는 스키어들이 많아졌는데, 스키만 탈 것이 아니라 무주향교를 찾아 우리 전통문화를 체험해 볼 것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특히 어린이나 외국인 친구에게 우리문화를 소개해 주고 싶은 분들에게는 짧은 시간에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처럼 좋은 기회를 주신 한국관광공사와 현대자동차에 깊이 감사 드립니다.
외국인 학생들도 보고서를 썼으나 너무 길어 일부만 간단히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