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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 청주 사직아파트 시작, 아파트 문화 34년 | ||||||||||||||||||
도심 금싸라기 땅 피해 외곽 택지개발지구 아파트 단지 본격화 80년대 겨울살이 대비 연탄, 계단으로 옮기던 아파트 진풍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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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의 도심은 건물의 높이가 낮아 다른 도시에 비해 도심의 스카이라인이 들쭉날쭉하지 않다. 고만고만한 4, 5층 규모의 저층 건물들이 조용하고 가라 앉은듯 한 도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도심이라면 의당 땅값이 비싸다. 요즘말로 비싸도 '너~무 비싸' 성안길에는 땅 한 평에 1억 가까이하는 금싸라기 땅도 있다.
그 법률이 청주의 한가운데(청주의 중심은 성안길 청주우체국 앞 도로이다/도로기점) 서있는 국보 41호 용두사지철당간의 주변구역 대부분을 문화재보호구역 중 ‘원형보존지역’으로 묶어 놓았다. 중뿔나게 저 혼자 불쑥 올라가지 말라는 철당간의 지엄한 명령이다. 국보·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로 등록된 시설은 반경 500m이내에는 개발 훼손의 행위를 일체 할 수 없다는 것이 문호재보호법 규정이다. 당초 사업자는 아파트 층수를 37층으로 계획했으나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 과정에서 32층으로 낮아지면서 시공사를 찾지 못해 애를 태웠다. 결국 주거용 건물들은 땅값이 싼 외곽으로 밀려나 높게 높게 지어지게 된 이유다.
몇 년간의 서울생활을 접고 82년 청주로 돌아온 나는 청주시에서 지은 내덕동 시영아파트를 생애 첫 주택으로 구입했다. 18평, 당시 매입가가 800만원 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아파트는 1982년 준공한 건물로 연탄보일러 난방에다 5층까지 걸어 올라가야 했다. 이사를 마치고 누워 천정을 보니 기운 듯 보여 어지러웠다. 미장을 한 뒤 벽지로 마감을 했는데 요즘 이렇게 시공했다면 시청 앞 피켓시윗 감 이었을 것이다. 그냥 참기로하고 목수를 불러 석고보드로 천정 마감을 하고 살았다. 현관 옆으로 자그마한 연탄창고와 보일러실이 있는 구조로 당시 거의 모든 아파트들이 연탄을 연료로 사용했던 시절이었다. 어느 핸가 금강산 가는 버스 차창너머 북한의 아파트 베란다에 연료로 보이는 장작을 쌓아놓은 걸 본 기억이 있다. 30년전 우리집 연탄광에 쌓았던 연탄생각이 났었다. 늦가을이면 겨우내 땔 연탄을 4층까지 옮겨 쌓는 것도 김장 담그기처럼 큰 연례행사였다.
아파트 상가집, 밤샘 문상객 진풍경 청주의 아파트는 대략 10년을 주기로 수직 상승하는데 그 때마다 높이만 변한 것이 아니다. 시공법의 발달로 조금씩 더 견고해졌으며 삶의 그 주거민의 생각과 생활방식 그리고 눈높이까지 많은 것들을 바꿔 놓은 것 같았다. 높아지면서 엘리베이터는 절대 필수품이 되었다. 승강기가 없던 저층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연탄이나 무거운 생필품들을 옮겨야했는데 그 때는 그러려니 하며 당연한 듯 살았는데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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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90년도에 15층 고층아파트가 생기고서는...고인의 "관"을 세워서 엘리베이터로 운반하거나..아파트 이사짐 오르내리는 기계로 내리다보니.. 거실에 앉아있다가 창문으로 내려가는 "관"을 보고 움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