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기차여행(역답사) - 둘째 날(좌천역/삼랑진역/부전역)
1. 좌천역
- 한반도의 동쪽으로 이동하는 ‘동해선’을 이용하기 위해 지하철로 부전역으로 이동했다. 동해선 ‘불국사역’에 가려했지만 왕복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어 중간에서 내렸다. 특별한 계획없이 도착한 곳이 바로 부산시 기장군에 속한 ‘좌천’이었다. 생소한 이름이지만 다만 삼랑진에 가는 기차 시간에 맞춘 하차였다. 지역의 규모와 달리 역은 크고 현대적인 규모로 지어졌다. 역 주변에 ‘임랑해변’으로 가는 안내판이 보인다. 그때서야 이 곳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었다. 과거에 떠났던 해파랑길의 경험으로 대략적인 위치가 이해된 것이다.
- 천천히 역 주변 마을을 산책했다. 평범한 지방마을의 모습이다. 특이한 것은 부동산 업소가 많고 매물로 토지거래가 다수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 곳 또한 개발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장소인 듯싶었다. 2020년을 우울하게 하는 문제는 ‘코로나 19’만은 아니다. 전국적으로 상승한 부동산 가격은 점점 집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절망감을 주고 있다. 정부의 세련되지 못한 정책실행도 문제지만 기득권자들의 탐욕이 진정한 원인이다. 마을 끝 쪽에 ‘동남지역 암센터’가 보인다. 가까이에 있는 ‘고리 원자력 발전소’와 관련이 있는 듯했다.
- 동네를 한 바퀴 돌고 ‘해물 순두부’로 이른 점심 식사를 하였다. 반찬이 다양하다. 정갈한 나물이 고루 차려진 식탁은 풍성한 한식 정찬의 느낌이다. 우연하게 방문한 식당에서 만나게 되는 충실한 음식은 작은 기쁨이다. 하지만 이런 행운은 많지 않다. 대부분 식당들이 점점 상업적인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유명 관광지에서의 식사는 단순히 밥 먹는 것 이외에는 어떤 즐거움도 주지 않는다. 특히 나와 같이 혼밥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작은 마을에서 만난 건강한 밥상은 반갑고 기쁘다. 이번 여행 중 다른 곳에서는 만나지 못했던 경험이었다.
2. 삼랑진역
-‘삼랑진’은 왠지 정감이 가는 이름이다. 아마도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에서 얻은 감동적인 기억이 유사한 이름에까지 연결되고 있는 것같다. 부전역에서 삼랑진으로 이동했다. 삼랑진은 김해와 밀양의 경계선에 위치한 장소로 밀양시에 속한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역에서 내려 밀양의 안내도를 보았다. 삼랑진역 주변으로 ‘낙동강’이 흐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강을 만나기 위해서는 약 10분 정도만 걸아 나가면 된다.
- 낙동강이 보이고 그 옆으로 잘 만들어진 자전거길이 나타났다. ‘자전거길’은 최악의 공사라고 비난받는 ‘4대강 개발’의 부산물로 아이러니하지만 라이더에게는 가장 사랑받는 길이다. 시원한 강물과 높은 하늘 그리고 상큼한 바람이 조화를 이루는 강가의 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조건을 고루 갖춘 길이었다. 사람들이 거의 없는 길을 걸었다. 이따금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코로나’는 자전거의 붐을 더욱 부추긴다. 타인과 직접적인 접촉을 하지 않는 레저로서 ‘자전거 타기’는 코로나 시대의 최상의 스포츠라고 할 수 있다.(동호회원들끼리 불필요한 식사나 만남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지킨다면 말이다.) 아니 더욱 좋은 스포츠는 아무도 없는 길을 이렇게 홀로 걷는 것이다. 고독이 환영받는 시대가 된 건 슬픈 일이지만, 강제로라도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시대가 주는 경고일지 모른다. 세상에 대해 불평하지 말고 그 속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지혜를 찾기를 희망한다. 어쩌면 그것이 사치인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이 또한 공허한 말일지 모른다.
- 길은 끊임없이 안동댐까지, 반대쪽으로는 하구둑까지 연결된다. 태양의 낙조가 가져온 눈부심 속에서 강물은 수많은 빛의 파편을 터뜨리며 흘러간다. 햇빛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걷는다. 온 몸으로 태양의 에너지가 흡수되는 기분이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3-4시간 정도인 여행자는 시간에 따라 걷던 방향을 바꾸었다. 딱 좋은 시간과 거리에서의 반환점이다.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로 차량들이 흐른다. 가슴 속에 답답했던 응어리가 터져나가는 기분이다. 언젠가 더 오랜 시간, 더 여유롭게 즐겨볼 코스로 머리 속에 입력하였다. 좋은 길을 만나는 것은 기쁜 일이다.
- 어둠이 내리고 돌아온 삼랑진 읍의 장터는 벌써 끝나가고 있었다. 장날이 열리는 식당의 영업시간도 오후 5시였다. 밤이 점점 원래의 적막으로 돌아가고 있다. 다만 낮 동안 어떤 성과도 성취도 없이 끝난 채, 모든 것이 중단된 시간 속으로 복귀한 밤이 휴식과 위로의 시간이 아니라 번민과 불안의 시간이 된다면 ‘밤’의 어둠은 다만 고통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너무도 오랜 밤의 시간일 뿐이다.
3. 부전역
- 오늘은 숙소를 잡지 않았다. 오랜만의 밤열차의 추억과 다시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열차 시각표를 보니 부전역에서 22:45분에 출발하여 다음날 05:51에 청량리에 도착하는 무궁화열차가 있었다. 2-3시간이면 서울과 부산 그리고 목포를 달리는 KTX 시대에 한밤중을 달리고 새벽을 맞이하는 열차가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과거의 10시간 이상 동안 덜컹거리며 달렸던 열차의 추억과 다시한번 만나는 것이자 오늘 밤의 숙박을 해결하는 이중의 효과일수도 있는 것이다.
- 열차를 타기 위해서는 한참 동안 부전역 대합실에서 기다려야 했다. 원래는 시간에 맞춰 부전역 주변의 밤풍경을 보려고 했지만 휴대폰 밧데리가 방전되어 충전시켜야 했기 때문에 텅 빈 대합실에 앉아 충전을 하면서 대합실을 이리저리 걸으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마침내 22:45시간이 되자 밤열차에 승차했다. 열차에 탑승한 사람들은 대부분 초로의 남자들과 청년들이었다. 짙은 피로에 잠긴 사람들은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낮동안 제법 많은 시간을 걸었던 관계로 나 또한 쉽게 잠이 들 것같았다. 그런데 쉽게 잠을 잘 수 없었다. 정신은 몽롱한 상태로 시간의 지루함을 그대로 흡수해야만 했다. 마스크를 쓴 호흡은 조금 답답했고 간혹 숨이 막히기도 하였다. 결코 낭만적인 여행이 아닌 피곤하고 힘든 밤열차의 경험인 것이다. 그럼에도 새벽에 내린 청량리역의 공기는 상큼했다. 힘든 것은 끝나고 나면 또 다른 추억이 된다. 청량리역에서는 계획했던 ‘진주’로가는 열차가 없었기 때문에 서울역으로 이동했다. 이렇게 하루가 흘러갔다.
첫댓글 더 오랜 시간, 더 여유롭게!
힘든 것이 끝나고 또 다른 추억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