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경건
김경호(대전동안교회 담임 목사, 전 건양대학교 교수)
제주대학과 장로회신학대학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셨고 현재 대전동안교회 담임목사로 활동하고 계신다. 최일도 목사님과는 오랜 친구사이로서 다일공동체에 아낌없이 협력하고 계신다.
내가 최일도 목사를 만난 것은 1982년 10월 첫 주였다. 불광동의 은광교회에 최일도 목사는 중고등부 교육전도사로 나는 어린이부 교육전도사도 부임하면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 때 나는 신학대학원 1학년에 입학하여 첫 해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그는 신혼이었고 나는 미혼이었다.
나도 그 때는 무척 말랐을 때였지만 그는 더 했었다. 튀어나와서 고집스럽게 생긴 이마와 이글거리는 눈 그러나 불쌍한 이들을 만나면 금방 젖어버리곤 하던 그의 모습은 나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면서도 움푹 들어간 보조개와 웃을 때의 그 천진한 모습은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최 목사는 나보다 2살이나 많았지만 학교는 내가 선배이니 친구로 지내자며 지금까지 친구로 지내고 있다.
그는 유난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불광동에 있을 때는 지금은 월드컵 경기장이 들어선 난지도를 자주 찾았다. 쓰레기 더미 위에 집을 짓고 쓰레기 더미를 뒤지면서 생활하는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곤 하였다. 최 전도사(그 당시)로 인해서 처음 경험한 난지도에 얼마나 자주 들렸는지~. 우리도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그와 함께 다니면서 우리보다 더 가난한 이들이 있음을 보았고, 그의 영혼을 향한 순수한 사랑의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얼마나 가난했던지는 그의 책들을 통해 그의 신혼 생활을 표현한 글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신도 가정을 꾸리랴, 학비 조달하랴 여러 가지로 어려웠던 때였지만 그는 항상 사랑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을 찾아 나서곤 했다. 그 앞에 어려운 사람이 보이면 가진 것을 다 털어주곤 했다.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자는 없다는 것을 그를 보며 느끼곤 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가끔씩은 대책없이 행동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있는 사람인가”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사실은 그게 그의 꾸밈없는 순수함이었다. 나중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꼭 필요한 만큼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곤 하셨다. 마치 샘물과도 같았다. 콸콸 흐르는 샘물이 아니라 쫄쫄 흐르는 샘물이었지만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을 만큼은 채워주시곤 하셨다. 일체, 은혜, 감사의 삶이 바로 그의 삶이다. 그렇게 훈련시키셔서 지금의 다일공동체를 만드신 하나님의 치밀함에 나는 감탄하곤 한다.
그러나 늘 좋고 원만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섬세한 성격은 가끔 그를 날카롭게 만들기도 했고, 급한 성격은 남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영성에 대한 갈급함과 열심이 그를 변화시켰다. 그 갈급함과 열심으로 그는 좋은 영성지도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분들이 엄두섭, 오성춘, 임영수, 음동성, 유해룡 등이다. 그에게는 영적 스승이요, 선배요, 친구인 분들이다.
그는 감성적이면서도 동적인 사람이었다. 가난했지만 그것 때문에 비굴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는 글재간, 말재간, 노래 솜씨 등 많은 재능을 가졌지만 그것 때문에 교만하지도 않았다. 그는 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감사의 삶을 살았다. 옳다 생각하면 즉시 행동으로 옮기곤 했다. 어떤 이들은 ‘저지르고 보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렇게 저지른 사건 중의 하나가 바로 1988년에 청량리에 라면을 끓이기 시작한 일이다. 88올림픽을 마치고 국민들이 한껏 희망에 들 떠 있을 때였다. 모두가 가난은 이제 우리와 멀어졌다고 생각하며 경제 발전에 관심을 가지면서 가난한 자들에게 대해서는 소홀해지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는 그런 시기에 정말 주님의 사랑이 필요한 이들을 찾아갔다. 그러다 아예 교회를 시작하고 몇 개월 후에는 메뉴가 라면에서 밥으로 바뀌게 되고 무료진료까지 하게 되었다. 조금씩 조금씩 함께 사역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리고 “쌍굴 다리의 기적”이 KBS TV에 방영되면서 최일도라는 이름과 다일공동체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거기다가 “밥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밥퍼)이라는 책이 세상에 소개되면서 그는 유명인이 되었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하심을 느끼곤 했다. 사실 최일도 목사가 전도사의 신분으로 청량리에 밥퍼 사역을 할 때 그보다 훨씬 더 먼저 더 큰 규모로 그런 일을 하시던 분들이 계셨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최일도 목사를 세상에 알려주신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를 들어 사용하시는 것이다. 왜 그러셨을까? 여기서 로버트 슐러 목사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로버트 슐러 목사가 늘 쓰는 말 가운데 아주 재미있는 있는 한 마디가 있다. 지도자로서 성공한 사람, 그리고 대단한 것은 아닐지라도 일반적으로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의 특징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비이기심이요, 하나는 남을 도우려는 정열이다. 사실이다. 다소라도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 이기심에서 벗어난 사람만이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이기심에 매여 있는 사람은 절대로 지도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최일도 목사는 지금도 그 마음이 변함이 없다. 비이기심과 남을 도우려는 마음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 분명 그에게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과 순수한 열정이 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최일도 목사에게 많은 것을 허락하셨다. 최일도 목사는 지금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럼에도 그의 순수함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영성수련을 할 때의 그의 모습은 무슨 말을 해도 따르지 않으면 안될 정도의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그런 카리스마라면 교주 노릇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지만 그는 역시 바른 신학을 배웠고, 바른 신앙의 삶을 사는 사람이기에 곁길로 빠지지 않는다. 또한 밥퍼 사역, 의료 봉사, 영성훈련 등의 여러 가지 사역을 목회 경험을 통해서 꾸준히 감당하기에 사역이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고 교회 중심의 신앙으로 건전하게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즐겁고 훌륭한 것은 한 평생을 바칠 수 있는 사업을 가졌다는 것입니다.”라고 괴테가 말했다. 추상적인 목적이 아니라 구체적인 목적을 가진 사람이 좋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은 후회될 일이 아니다. 이것을 위해서라면 일생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은 그런 일이다. 그런 직업, 그런 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이래선 안되지” 하면서도 임시로 한다든가, 별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일을 하고 있다면 불행한 사람이다. “오늘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참으로 온 생을 걸 만큼 중요한 일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남을 위하여 봉사하고 결코 보답을 바라지 않는 마음을 가졌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보답을 바라지 말 것이다. 다소라도 보답을 바라기 때문에 문제다. 일하기 전에 돌아올 보답부터 계산한다. “이만큼 수고할 것이니 얼마 주겠느냐” 이런 생각이다. 마음을 그렇게 쓰고 있다. 헤아리는 마음이 앞선다. 이런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참으로 행복한 사람은 전혀 보답을 바라는 마음이 없다. 괴테는 이런 사람이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최일도 목사가 바로 그런 제일 행복한 시인 목사다.
경건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다. 생활까지다. 성경공부 하는 것만이 아니다. 실제 가정생활까지다. 경제생활까지다. 물질생활까지다. 다 포함해서 경건이다. 경건이란 단순히 신비롭다는 말과는 다르다. 행함을 떠난 경건은 없다. 경건이라는 말에는 행함까지 포괄된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서 경건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경건이란 실생활과 영적인 생활이 합친 개념이다. 그래서 총칭적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있는 생활을 하는 것, 이것이 경건이다. 바로 다일의 모습이 그렇다. 영성훈련이 있고 사랑과 나눔이 있다. 다일은 이론과 실천이 있는 공동체다. 다일의 힘은 청량리 밥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힘을 뒷받침하는 설곡산 영성훈련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는 그런 최일도 목사의 사역에 공감하기에 개척 초기부터 다일의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 특히 훈춘의 다일어린이집을 개원 때부터 여러 번 동행하면서 방문했다. 지금도 연변에 가게 되면 혼자서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훈춘 다일어린이집을 방문하곤 한다.
이제 내가 영성수련에 동참하게 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2004년 가을에 최일도 목사가 느닷없이 “아름다운 세상 찾기” 영성수련을 소개하면서 그 일을 함께 하잔다. 그러면서 영성수련에 참여하기를 권했다. 마침 교회를 개척한지 7년이 넘으면서 타성에 젖으려던 차였기에 쾌히 수락하고 참여했다. 내게도 쉼과 영적충전이 필요한 시기였던 것이다. 또 하나는 친구가 고생하는 동안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미안했었는데 그 일이라면 나도 함께 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에서 동참한 것이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돕기는 커녕 영성수련을 통해서 내가 받은 은혜가 많다. 울고, 웃고, 고민하고, 생각하고, 깨닫고, 느끼면서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또 새로운 은혜 가운데 아름다운 세상을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쳐 2단계, 3단계 수련을 받았다. 기대를 가지고 참여한 영성수련의 단계마다 기대에 어긋하지 않는 은혜를 주셨다.
1단계 영성수련을 거친 후 변화되는 참석자들을 보면서 만나는 사람들마다에게 다일영성수련을 소개하곤 한다. 사실은 나 자신도 많은 변화가 있었으니 간증하듯이 소개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 교회가 첫 당회를 구성하면서 장로 피택자들은 모두 영성수련에 참여하시도록 권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 당회는 모두 영성수련을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만난 장로님들로 구성되었다. 화목할 수밖에 없는 당회가 운영되고 있다. 앞으로도 대전동안교회 장로로 임직받기 위해서는 다일영성수련을 필수로 거쳐야 할 것이다. 교인들도 지속적으로 영성수련에 참여하고 있다. 당회를 구성하기 전에 영성수련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교회적으로 볼 때도 그렇지만 쉼과 영적충전이 필요할 때 또 위임을 앞두면서 영성수련의 단계를 통해서 다시 한 번 내 영성과 신앙을 새롭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할 뿐이다.
100기 축제 때 무대에서 했던 말이 있다. 사실 영성수련을 통해서 제일 많은 혜택을 입은 사람은 최일도 목사다. 왜냐하면 100번 씩이나 영성수련을 인도하면서 자신의 영성을 다졌기에 그는 지금까지 다일을 통한 여러 가지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자신이 많이 성숙해졌고 영육간에 건강해졌다. 영성수련을 검증할 수 있는 것은 오랜 친구인 나의 이야기보다 최 목사의 어머니께서 1기로 참석하셨고 101기에 또 참석하셨다는 것과 그의 자녀들과 누님들과 그 자녀들이 모두 영성수련에 참여했다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매회 60명 이상 100명이 넘기도 하는 수련생들이 참여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는가? 그것도 매기마다 바다 건너 외국에서 오신 수련생들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금도 나는 벗님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러 자주 설곡산에 올라간다. 꽃보다 아름다운, 아름다운 세상을 찾은 벗님들을 보면 힘이 솟는다. 자유를 외치며 껑충껑충 뛰는 모습에 생기가 넘친다. 목회가 나태해질라치면 활기를 얻기 위해서 설곡산을 찾곤 한다. 분명 다일영성수련은 이 시대에 최일도 목사를 통해서 우리 한국 교회에 주신 복이요, 선물이다. 이제 그의 제자들을 통해서 영성의 역사가 우리 땅 곳곳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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