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은퇴하셨쥬
지난 5월 초순 공주에 사시는 집안 아주머니 한 분이 나오셨다. 며칠 전 생일이 지나고 대전에 사는 자녀들 집을 다니러 나온 것이다. 생일에 찾아뵙지도 못하고 인사를 드리지 못해 죄송하게 여겨온 터였다. 마침 아주머니가 얼마 전에 한 말이 떠올랐다. 공주 가는 마티고개 넘어 창벽에 있는 장어 구이 집에서 먹은 장어가 퍽 맛있었다고 한 말이다.
아주머니가 말한 집은 평소에 잘 다니는 바로 그 집이었다. 마티고개를 넘어 공주로 가는 옛길에서 왼쪽에 있는 그 집으로 접어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포장도 되지 않고 다듬어져 있지도 않던 입구가 잘 포장돼있었다. 식당 안 마당도 아주 잘 포장이 돼 있었다.
식당에 들어서면 입구 계산대에서 볼 수 있었던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주문한 음식을 가지고 들어 온 아주머니에게 할머니는 어디 계시느냐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눈을 흘깃 하더니 "할머니 은퇴하셨쥬. 뭐 맨 날 자식들 위해 돈만 벌어야 한데유? 일흔도 넘으셨으니 이제는 좀 쉬셔야쥬! 안 그래유?"라며 막혔던 물이 물 고를 찾은 듯 시원하게 말했다.
말을 하며 아주머니가 차린 밥상에는 전에 없던 식탁보가 깔렸다. 종이 식탁보에는 식당 상호가 한자로 박혀있었다. 그리고 불 판에도 볼 수 없었던 숯이 둘러쳐져 있었다. 이건 또 뭐냐고 했더니 "장어야 숯불에 구워먹어야 제 맛이 아녀유?"라며 자랑하듯 일러주었다.
말대로 장어는 가스가 피우는 숯불에 구워 먹었다. 된장국에 밥을 시켰다. 된장국을 담은 그릇이 달라졌다. 큼직한 투가리에 크게 썰어 넣은 두부가 여러 조각 들어있었다. 국물 맛을 보니 맛이 예전 맛이 좀 살아났다. 국물 맛을 보는 모습 지켜보던 아주머니가 "된장 국 맛 어떼유?"라고 공격하듯 물었다. 맛이 예전 그 맛이 난다고 했다.
"거 봐유! 우리는 마늘 고추 같은 양념을 아끼지 않고 많이 넣는다니까유!" 라며 웃던 아주머니는"그 된장은 할머니가 담은 것이어유!"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중멸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풋고추와 볶아 내 놓은 멸치 볶음을 비롯해 열무김치 무우생채도 할머니가 하던 방식으로 한 것이라며 할머니 맛이 밴 쌈장도 손에 꼽았다. 할머니 손길이 닿은 반찬들은 손님들한테 더 사랑 받는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커피와 녹차를 끓여 내왔다. 차를 다 마시고 일어서는데 아주머니가 또 들어왔다. 아주머니는 지금 방금 긁은 것이라며 둥근 쟁반 크기의 누룽지 한 판을 가져왔다. "그 전에 보니까 할머니는 손님이 누룽지를 좋아한다고 주었잖아유!"
할머니는 은퇴했다지만 할머니의 손끝 맛이 밴 반찬과 정은 은퇴하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식당을 나서 차 앞에 서는데 "안녕히 가셔유!"라며 문 열고 나와 인사하며 웃던 며느리의 모습이 할머니 자리에 서 있었다. 창벽 앞 금강 흐르는 강물 위에는 내리는 비가 방울방울 춤추고 있었다. (2004. 5. 26.)
첫댓글 천규의 글은 언제나 푸근함을 느끼게 해 주네. 돌아가신 어머니의 된장 맛도 그리게 하고. 좋은 글 고맙다.
식당의 정겨움이 그대로 배어 나옴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