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서류전형...
걱정은 안했지만 의외의 많은 탈락자를 보며 이번 공채인원이 경제난의 한파에 움츠리는 것 같아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2차 필기...
긴장을 너무 했을까. 문제를 읽어가는 눈과 풀어가는 손이 따로 노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나! 급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저기 답안지 하나만 더 주시면 안될까요?"
3차 실무면접...
이제부턴 모두가 실력자들. 면접관들의 질문에 제대로 입을 열고 있는 건지, 아니면 삼천포로 빠지는 건지...
4차 최종면접...
이제부터 나의 진정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 드려야 한다!
"항상 앞서가는 국민의 방송, 다매체 다채널의 다양한 개별성의 속에서도 공익성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 귀사에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계속 발전되어지는 방송기술을 열정적인 마음으로 맞이하고, 보고 듣는 사람들에게 화려하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사소한 실수 하나가 엄청난 잘못으로 이어진다는 긴장감 속에서 항상 주의하고 확인하는 자세. 화면 뒤에서 성실하게 직무에 충실하는 '등대지기'의 마음으로 임하겠습니다!"
2000년, 정확한 20세기의 마지막 징글벨소리, 보신각의 종소리, 그리고 해가 바뀌어 온 가족이 모이는 설날의 단란한 웃음소리... 이 모든 것들을, 흘려보내며 그렇게 두 달을 버텼다.
드디어 최종발표... 분명히 명단에 내 이름 석자가 있었다.
멍했다. 그리고 방바닥에 누웠다. 졸음이 밀려왔다. 전날 과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시 잠에 들었다. 몇 시간 후 깨었을 때 아까 모니터로 본 것이 꿈이었을 거라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생시였다. 하,하-압격이다!
입사식날... 70명 27기 예비사원과 사장님 이하 간부님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한 만찬. 나는 보았다! 맛있는 음식을 골라 접시에 담아주시는 어머니의 손길. 그리고 저쪽 한 구석에서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사실 내가 방송인이 되어야 겠다고 굳게 마음먹은 건 바로 한 해전인 지난 26기 공채 필기시험날이었다. 1년전에는 아무런 준비없이 일단 분위기나 알아보자고 응시했던 시험이었다.
그 시험장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문제들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마감시간 20분 전 까진 시험장을 나갈 수가 없어서? 아니다. 나는 그 문제들을 외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여태까지 배워왔던 전공과목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교양상식과목도 고시적인(?) 스타일의 문제 성격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전혀 풀 수 없는 문제들을 보면서 희망을 심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역설로 들리겠지만, 아무튼 그 동안 넘을 수 없는 산으로만 여겨졌던 방송국의 능선에 내가 오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전까지의 문어발식 취업 전략에 종지부를 찍고 드디어 등정 목표를 세운 것이다.
첫 시험장을 나오는 발걸음은 그래서 경쾌했으며, 집에 돌아와서는 기억력을 되살려 시험출제부분의 범위를 체크하기 위해 책꽂이에 먼지를 이불삼아 곤히 자고 있던 전공책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바로 그 날이 힘든 등산코스를 위해 처음 등산화의 끈을 꿰었던 날이었다.
방송사 입사시험에는 정해진 수험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과거 합격했던 선배들을 찾아 공부했던 책들이나 기출문제들을 얻으려고 동분서주하는데, 그만큼 범위가 좁혀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기출문제보다는 자세를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벽부터 도서관에 나가 하루종일 책과 씨름하는 식의 부지런함도 좋지만 그만큼 정보를 찾아 바쁘게 뛰어 다니는 적극성과 민첩성이 우선이다.
특히 기술직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힘든 분야인 국어나 언론학 등 취약과목을 접할 때 짧은 시간에 외우려 하지 말고 긴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반복하는 방법이 좋을 것이고 문화예술쪽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린 인터넷 또한 좋은 수단이 된다. http://www.kbs.co.kr 이 수험서라고 생각하며 각종 방송관련소식, 변경된 통합방송법 내용, 특히 기술직을 지원하는 수험생들에게는 방송기술site에 부지런히 클릭 해대는 습관이 필요하다.
본인은 공부와는 별로 인연이 없다고 생각해 왔고 그 이유는 머리가 별로 좋지 못하다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짓고 있다. 노력은 남못지 않게 했지만 웬일인지 성적을 올리지 못했고 늘 중간을 맴돌기만 했다. 그렇다고 나는 내자신을 비관하지는 않는다.
삶에는 유전적인 요소, 환경적인 요소가 섞여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의 결단이고, 계속되는 물음표와 마침표 속에서 후회하고 깨달아가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순간 순간을 의미있게 결단할 때 새로운 생이 탄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계속 지켜보던 산의 정상에 올라보니 또 다른 고지들이 보인다. 한 두 개가 아닌 것이 조금은 부담스럽지만 앞으로 현실적인 삶의 방향과 나를 가꾸어 나가는 작업을 어떻게 일치시켜 나갈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써나가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