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산
춘천-인제 계명산 (763m)
대왕송이 지키는 소양호 조망산
계명산은 춘천시 북산면에 자리한 해발 763m의 산이다. 오대산의 두로봉에서 출발한 한강기맥이 평창군과 홍천군의 경계를 이룬 청량봉에서 북서쪽으로 다시 곁가지 산줄기를 뻗어가는데, 춘천지맥으로 불리는 이 산줄기는 가평의 봉화산 검봉에서 끝을 맺거니와, 이번에 소개하는 대동봉과 계명산은 춘천지맥의 매봉에서 북녘으로 가지를 내려 소양강과 소양호를 굽어보는 산줄기의 마지막 산이다.
'닭의 울음', '닭소리'를 뜻하는 춘천시 남면의 계명산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 어엿이 이름이 있는 적당한 높이의 산이건만, 수십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등산전문지는 물론, 각종 등산안내책자나 텔레비전, 인터넷 등에 아직까지 한번도 소개된 일이 없는, 참으로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산행들머리는 인제군 남면 수산리에서 서쪽 대동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인 대동치다. 이 고개는 수산리 삼거리에서 인제자연학교(옛 부평초교 수산분교) 방향을 버리고 오른쪽 길을 따라 덕거리마을과 샘말을 지나 오른다.
곧 비포장으로 바뀌지만 승용차가 다닐만한 길이, 고랭지채전이 있는 편파골을 지나 해발 440m 지점에 자리하는 콩밭골(일명 황골)의 마지막 농가까지 이어진다. 미닫이문에 '천불사' 라는 낡은 글씨가 적힌 이 농가 맞은편에는 산신각이 세워져 있는데, 절이면서 농가인 집의 주인은 박순하 보살과 황창기 처사다.
순한 진돗개가 집을 지키는 이곳에 차를 세우고 대동치로 오른다. 초롱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가에 새빨갛게 익은 산딸기가 지천이다. 달콤한 산딸기 따먹는 맛에 취해 오르다보면 어느덧 대동치 고갯마루다.
해발 500여m의 고갯마루에는 오랜 세월 동안 대동치를 지켜온 아름드리 소나무가 너덧 그루 있다.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입구에 새까만 오디를 잔뜩 단 뽕나무 한 그루가 보여 '임도 보고 뽕도 따고' 라는 옛말을 떠올리며 앞 다투어 오디를 따먹는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낙엽 수북한 능선을 이어가면 곧 편파골로 내려가는 능선삼거리를 만난다. 꿀풀과 으아리꽃이 무더기로 자라는 이곳에 서면 나뭇가지 사이로 서쪽 소양호가 어슴푸레 보인다.
730m의 대동봉은 인제군과 춘천시의 경계를 지으며 솟았다. '내평 418, 2005년 재설'로 표시된 삼각점이 자리하는 정수리에는 싸리꽃이 만발했다. 나무를 베어낸 삼각점 둘레에는 풀과 가시덤불이 다시 우거지고 그 주변으로 참나무들이 숲을 이루었다. 다행히도 서쪽으로는 조망이 열려 봉화산(734m), 부용산(881m), 오봉산(778m), 종류산(811m) 등이 뜨거운 여름하늘에 초록빛 산평선을 그려놓았다.
길은 계속 북녘으로 이어지는데, 지형도상의 해발 700m 부근에서 우람한 장군송을 만난다. 다음 봉우리인 소나무봉(706m)엔 하늘말나리 한 송이가 선녀인 듯 미소를 띠며 산꾼들을 맞는다. 이곳이 유일한 약간의 위험지대인데,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우회로가 있다.
조금 고도를 높인 다음 봉우리는 726m다. 아름드리 솔과 굴참나무 거목이 사이좋게 서있는 이곳에서 잠시 땀을 식힌다. 726봉을 내려가면 능선길은 동북쪽으로 굽어지고, 다시 650봉에서 북쪽으로 능선길이 거푸 꺾어진다. 필자는 갈림길마다 표지기를 달며 산길을 이어간다.
안부에 가까운 약 560m의 내림길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대왕소나무를 만난다. 그동안 이천여 산을 오르내리면서도 처음 보는 특이한 형태의 저 소나무. 밑둥치가 셋으로 갈라졌고 비스듬히 누워 자라다가 곧게 치솟은 붉은 색깔의 소나무는 '대왕솔' 이라 불러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명품 중의 명품 소나무다.
한동안 머물며 필름이 동이 나도록 카메라에 담아본다. 그러나 울창한 숲속이라 스트로브가 없는 낡은 카메라에 솜씨마저 변변치 않아 현상하고 보니 기대에 미치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그 위쪽에는 두 아름의 참나무도 있었으나 역시 나뭇가지와 어두운 광원으로 제대로 사진에 담을 수 없었으니...
안부에서 백팔십도 굽어 돌아가는 강물과 평행선을 그으며 올라가는 능선길에서 별안간 요란한 짐승소리가 들린다. 산돼지 가족이 접근 경고를 발하며 능선길을 가로지른다. 농가가 거의 없어진 이 계명산. 지금 이름을 짓는다면 저명산(猪鳴山)이 합당하겠다고 혼자 생각해본다.
이윽고 정수리로 착각되는 헬기장에 올라선다. '양구. 319. 2007. 재설' 이라고 표시된 삼각점이 자리하는 너른 헬기장은 사방이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손바닥만한 하늘만 트였다.
계명산 정수리는 이곳에서 서쪽으로 약 100m 떨어진 숲속에 자리한다. 헬기장보다 7m가 높은 곳이지만 정상석이나 삼각점이 없고 '춘천 하나로산악회' 회원이 달아놓은 팻말만 나뭇가지에 걸려있다.
되돌아나와 헬기장에서 간식을 나눈다. 산행에 동행한 덕산산악회 회원들과 함께였는데, 산행길에서 만난 꽃과 나무들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며 산꾼들의 우정을 나눈다.
계명산 하산길은 올랐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 가는 것이 현재로는 유일하다. 올라올 때와는 달리 사방의 경관도 살펴가며 느긋이 산길을 잇는다. 대왕솔에 올라서 기념사진도 찍고, 능선을 따라 줄지어 피어난 하늘말나리며 털중나리의 아름다움도 감상하며 산정무한의 기쁨에 흠씬 젖어든다.
올라갈 때 미처 보지 못했던, 위험구간을 피해가는 우회로를 이어 대동봉에 이른다. 편파골삼거리에서 일부는 편파골로, 산딸기에 미련이 있는 일부는 대동치로 나누어 내린다.
오를 때는 만나지 못했던 박순하 보살과 황창기 처사를 천불사에서 만난다. 커피를 내놓더니 뒤풀이하는 취재진에게 산채안주까지 넉넉히 차려주는 훈훈한 인심에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들이 오랜 세월 소망하던 아담한 천불사 법당이 마련되고, 대동치 넘어 소양호변의 동막골, 윗말까지 포장길이 열려 뜻 있는 산꾼들이 어려움 없이 계명산에 오르게 되기를 기원해본다.
*산행길잡이
천불사(마지막 농가)-(10분)-대동치-(40분)-대동봉-(30분)-762봉-(40분)-대왕송-(40분)-계명산-(40분)-대왕송-(1시간)-대동봉-(40분)-천불사
계명산은 들머리 접근이 상당히 부담스러운 산이다. 시외버스가 정차하는 인제군 남면의 신남리에서 들머리 천불사까지는 노선버스가 없다. 신남리의 콜택시도 대부분 샘말 부근의 포장도까지만 간다. 봉고형 승합차나 사륜구동 차량만 천불사까지 통행이 가능하다.
계명산 원점회귀산행의 들머리는 대동치 아래에 자리한 천불사(마지막 농가)ㄷ아. 해발 440m로 짐작되는 이곳에서 비포장길을 따라 오르면 대동치 고갯마루에 닿는다. 대동치에서 북녘으로 넘어가는 능선길을 따르면 편파골과 이어지는 능선삼거리를 지나 삼각점이 자리한 대동봉이 나온다.
대동봉 다음 봉우리는 706봉으로, 급경사를 조심하며 오른쪽으로 돌아야 한다. 706봉을 비켜가는 허리길도 있어 취재진이 표지기를 달아두었다. 이후 726봉과 614봉을 지나면서 길은 지그재그로 꺾어며 이어진다. 방향이 자주 바뀌어도 계명산 정상을 향한 주능선 외에 달리 길이 없으니 능선삼거리마다 뚜렷한 길을 따르면 된다.
614봉에서 다시 오르막 능선길을 이어가면 2007년에 재설한 삼각점이 자리한 헬기장을 만난다. 정수리처럼 보이는 계명산 정상은 서쪽으로 100m 더 가야한다. 사방 조망이 숲으로 막힌 정수리에는 '춘천 하나로산악회'에서 나뭇가지에 달아놓은 팻말만 있다.
하산은 올랐던 길을 되짚어 내려서야 한다. 오를 때와는 달리 나뭇가지 사이로 동쪽 소양강과 서쪽 소양호를 살펴가며 좀 더 여유로운 걸음이 된다.
*교통
동서울터미널에서 하루 21회(06:15~19:30) 다니는 양구행 버스를 타고 인제군 남면 신남리정류장에 내린다. 2시간40분 걸리며, 요금은 12,300원. 남면에서 수산리로 가는 대중교통은 없다. 남면(신남리) 콜택시(033-463-9955)로 수산리 천불사까지 간다. 포장도 끝나는 곳까지는 12,000원. 천불사의 박순화 보살에 의하면 맘씨 좋은 기사는 비포장도도 마다않고 천불사까지 데려다 준단다. 이 경우 15,000원. 비포장도는 대형버스로는 통행이 불가능하고, 사륜구동 차량일 경우 대동치 고갯마루까지 올라갈 수 있다.
*잘 데와 먹을 데
들머리와 날머리인 수산리에는 여관과 식당이 거의 없어서 남면 소재 신남리의 시설을 이용해야 한다. 고려관(033-461-0704), 영동식당(461-6118), 정원식당(461-5080), 대복아구찜(462-3966) 등의 식당과 강나루민박(463-1619), 강동열민박(461-6334), 강용순민박(461-6292) 등의 민박집이 있다. 수산리에는 박명심민박(461-1196)이 있다.
글쓴이:김은남 1943년 포항에서 태어났다. 은행지점장을 지냈으며 92년 계간 <시세계>로 등단했다. 한국문인협회와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시조집 <산음가1,2,3>, <시조시인산행기>, <일천탑의 시탑1,2>를 펴냈다. simsanmunhak@hanmail.net">simsanmunhak@hanmail.net
첫댓글 만남산악회에서 8월7일 첯째주 일요일 계명산으로 산행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