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07년 9월 <글 나루>서평2
신화의 봉우리에서 보는 민중의 고갱이
<이이화의 역사> 이이화 지음 열림원출판사
역사의 대중화를 말하는 사람, 이이화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평생 무슨 역사책을 썼기에 2세에게 권할만한 그런 역사책 하나 못썼느냐?’는 핀잔이 날아 든 것이다. 미국에 살고있는 한 친구의 질책이라고 했다. 그래서 ‘아주 쉽고 재미있는 우리민족의 이야기’를 한 권에 담아서 선물하고자 이 책을 썼다지만, 실은 우리 모두에게 좋은 선물이 될 테니 횡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 책 <역사>가 저자의 말대로 ‘한 권에 담아 놓은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이 역사이야기를 그렇게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만 다가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는 역사를 ‘전쟁’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전쟁’은 그냥 전쟁이 아니라 ‘민중’의 전쟁이고, 그 민중이 ‘자주’를 향한 전쟁이고, 그 민중이 민중의 자주를 향해 나가는 ‘개혁’의 전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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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 책 <역사>에서 우리의 고대사와 특히 ‘발해’의 생활상을 여러 부문을 나누어 상세하게 펼쳐놓고 있는 것이나 식민지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것은 저자의 역사연구가 이 부분에 집중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저자가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제의 식민침탈이라는 ‘역사전쟁’에 응전하고 있는 포화다. 동시에 그 응전의 주체가 이 땅을 살고 있는 우리 ‘민중’의 자주와 개혁을 위한 전쟁이라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오늘을 바라보는 거울로서의 역사이고 미래를 살아낼 민중의 희망이라는 것이다.
이이화의 <역사>가 이렇게 민중을 우리 역사의 첫 발자국까지 끌고 올라가 거기서부터 한발 한 발 내 딛으며 우리 역사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이 역사이야기는 그래서 아주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긴 하지만 그 이야기는 이야기를 넘어서서 우리의 가슴을 헤집고 들어와 심장을 고통 치게 하는 뜨거운 이념이고 세계관이고 철학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가 우리를 고대사라는 신화의 높은 봉우리까지 안내하고 있는 목적은 그 높이에서 민중이 겪어냈던 처절한 역사의 봉우리들을 바라봄으로써 어떤 커다란 깨달음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다. 그 역사의 봉우리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 기록은 결국 역사의 함성일 수 밖에 없지만 그 함성의 밑 절미를 떠 바치고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아닌 민중의 ‘죽음’일 수 밖에 없다. 민중의 시체가 쌓이고 쌓여 이룬 산들이며 그 산과 산이 파놓은 계곡을 흘러내리는 것 또한 민중의 핏물이다. 그 산하가 인류의 역사임은 말 할 것도 없고 우리 민족의 역사 또한 거기서 벗어 날 수 없을 것이다.
그 약육강식이 펼쳐놓은 역사의 산하를 바라보면서, 그것을 넘어 우리 모두가 하나되는 새로운 역사의 들판으로 내달려 나아가는 새로운 꿈을 역사학자 이이화는 이 책 <역사>에 그 자신의 피와 눈물로 담고 있다. 그것은 물론 민중의 꿈이어야 하지만 그러나 이 꿈은 우리 모두의 꿈이어야 한다. 그 신화의 봉우리는 역사의 고향이다. 거기서 역사의 고갱이가 나와 꽃이 피고 알갱이를 만든다. 그 고갱이를 인식했을 때 우리는 아직까지도 이땅을 떠나지 않고 있는 억압과 그 억압의 권력과 제도를 쓸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이화는 이 책 <역사>에서 민중의 이념이 역사의 첫걸음부터 시작되고 있는 듯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이는 잘못이다. 민중이념이 내용일 수 밖에 없는 현대사회의 ‘민주주의’가 역사의 투쟁에 의해서 영글리고 피워낸 결과 물임을 잠시 잊은 듯한 티를 남기고 있다. 한 예로 87년의 민주항쟁은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세워내기 위한 투쟁이긴 했어도 명백하고 엄연한 학생 운동이었으며 그것은 20세기 양대이념이 설치한 우리 민족의 분단구조에서 비롯된 역사환경의 산물이다. 역사는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몫이지 어떤 설계가 있어서 흘러 가는 것은 아니다. *
서울 인문사회과학서점모임 대표 심범섭(건대 앞 인서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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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랑방 인서점 <글나루> 도사공아저씨 올림
* 이 서평은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9월 호 <글나루>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