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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재사랑산악회-제186차 산행] ♣ 양평 <소리산> 시산제 *
▶ 2018년 3월 18일 (일요일) ◀
<사진 위에 커서를 올려놓고 두 번 클릭하면 원본의 큰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 [산행 코스]▶ 494번 도로 <양평군 단월면 석산1리> 돌고개마을→ 소향산장→ 피난봉→ 벌목지→ 능선(오름길)→ 사거리→ 이정표→ 소리산(480m) 정상→ 암릉→ 이정표(445m)→ 출세봉(417m)→ 논골→ 석산계곡 무릉도원 → 345번 지방도로→ (한강기맥) 비솔재 <시산제> 거행
* [프롤로그] — 봄이 오는 길목에서, 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봄이 오고 있다. 봄비가 내리고 대지는 촉촉한 생기를 머금는다. 자연은, 어김없이 생명의 계절을 맞는다. 그런데 이 새로운 생기가 감도는 이 좋은 계절에 나라는 안팎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난국이다. 정치가 그렇고, 경제가 그렇고, 외교·안보는 더욱 그렇다. 북(北)에 대해 극진한 대접으로 일관한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다. 올림픽이 끝나고 나서, 문재인 정부는 대한민국의 정체성(正體性)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방적인 친북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특히 대북특사를 평양에 파견한 것을 계기로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의 가능성이 타진되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정세 또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목숨을 겨냥하고 있는 북의 핵·미사일과 유엔의 대북제재 강화라는 첨예한 대립각 속에서, 북은 일단 협상 테이블에 응하는 형국이다. 북은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는 핵과 미사일을 담보로 세계사적 협상 테이블에 주인공처럼 등장하는 모양새다. 은혜라도 베풀듯이 나타날 분위기다.
그런데 걱정스러운 것은, 지난 20여 년간 북은 위기의 상황이 되면, 늘 ‘평화’ 내세우고 협상테이블에 나타났다. 그때마다 그들은 평화협상을 빌미로 필요한 이득만을 챙겨왔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대북 지원이 그것이다. 그들은 돌아서서 그 협정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 왔다. 그 결과 지금은 전 세계를 위협하는 가공할 핵과 미사일 개발에 성공했다고 공언하면서, 우리나라를 향하여 ‘불바다’를 운운하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미국의 본토까지 공격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남측의 대북지원이 핵 개발을 자금이 되었다고 분석한다. 그런데 오늘날 지금 대북제재의 위기감 속에 협상에 나온 북이 과연 핵 포기를 논의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 [교과서 왜곡] —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친북정신을 고취하고 있다
그런데 그보다 심각한 것은 우리 내부에 있다. 좌파정권은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국가존립 자체를 부정하는 역사(歷史)를 왜곡(歪曲)하고 있다. 극좌의 편향된 이념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교과서를 통해 대한민국의 정체성(正體性)을 짓밟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자부심과 자존심을 말살하는 행위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신학기부터 초등학생들이 사용하는 국정 사회교과서가 '1948년 8월 15일'의 의미를 '대한민국 수립'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모두 바꾸었다. 건국 시점은 임시정부 수립인 1919년이라는 것이다. 친북정권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새 교과서는 또 '북한은 여전히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는 문장을 삭제했고, ‘새마을운동’ 사진도 없앴다. '유신체제'는 '유신독재'란 표현으로 바뀌었다. 또 기존 교과서에선 초등학생 교육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일본군 위안부' 표현을 쓰지 않았지만 새 교과서는 사진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라는 표현을 새로 넣었다. 모두 종북 좌파 정권의 입맛에 따라 바꾼 것이다.
정권이 바뀐 지난해 이미 213건을 수정했다. 그런데 교과서를 수정하는 과정에 집필 책임자는 배제됐고 일부 학자가 작업을 주도했다고 한다. 집필 책임자가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꾸라는 교육부 지시에 반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임자 모르게 교과서를 고치다니 도둑질과 뭐가 다른가. 시안(試案)에는 '북한의 6·25 남침' '북한 세습 체제' '북한 주민 인권'이란 표현이 사라졌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라는 단어도 삭제했다. 정권 교체가 교과서 교체가 되는 나라가 돼가고 있다. 마치 도둑질하듯 교과서를 그렇게 바꾸었다.
고려대 서지문 명예교수가 격정적으로 비판한다. “좌파들의 소행 중에서 내가 제일 용서하지 못할 것이 교과서 왜곡(歪曲)이다. 우리의 티 없는 새싹들에게 우리나라, 우리 국민이 이룬 눈부신, 세계가 경탄하는 발전과 성취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는 대신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나라, 기회주의가 판치고 불의가 지배하는 나라로 인식하게 하다니. 천벌을 받을 인간이 있다면 바로 이런 인간들이 아닌가.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제 국민 잡아먹는 강제수용소 왕국 북조선을 은연 중 한국민의 진정한 조국으로 동경하게 만들고 있다.”
서 교수의 비판이 계속된다. “가장 많은 학교에서 채택되었던 금성사 교과서는 남한에 대해서는 '독재'라는 말을 13번 쓴 대신에 북한에 대해서는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남한이 '독재국가'라면 4·19 혁명이 나자 '독재자' 이승만이 하야했겠으며, 6월 혁명이 가능했겠으며 작금에 SNS를 뒤덮은 무제한의 의사 표현이 가능했겠으며 노조의 특권세력화, 양심적 병역거부 같은 것이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북한에서 100만이 참가하는 촛불시위는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만약 일어난다면 인구의 반(半)은 사살되지 않았겠는가?
우리 어린이들이 임진왜란보다 동학이, 대한민국보다 북의 김씨 왕조가,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보다 전태일이 더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이 해괴한 국사교과서에 마음이 병들고 비꼬이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 우리 귀한 자식들을 이 독극물에서 구하자.” [서지문의 뉴스로 책읽기] [91] 어린 심장에 毒을 붓지 마라 (2018.03.13)
* [오늘의 산행지 -소리산] — 양평과 홍천을 가름하는 한강기맥(漢江氣脈)의 ‘소금강’
오늘은 우리 <새재사랑산악회>의 ‘시산제(始山祭)’를 올리는 날이다. 올해의 ‘시산제 산행’은 서울에서 가까운 양평의 ‘소리산’으로 정했다. 소리산은 한반도 남단의 허리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한강기맥(漢江岐脈)’ 중에서 양평군 단월면 가장 북쪽에 위치하여 강원도 홍천군과 접경을 이루는 경기도의 오지(奧地)라고 할 수 있다.
소리산은 한강기맥에 속해 있는 산이다. ‘한강기맥(漢江岐脈)’은 백두대간 오대산(五臺山) 두로봉에서 갈라져 나와 북한강과 남한강의 분수계(分水界)를 이루며 서쪽으로 뻗어가는 산줄기이다. 그러므로 한강기맥의 북쪽은 홍천, 가평 등은 북한강의 수계(水系)이고 남쪽은 평창, 횡성, 양평 등은 남한강의 수계에 속한다. 한강기맥은 오대산 비로봉(1,564m)을 위시하여 남한의 여섯 번째 고봉인 계방산(1,577m)을 비롯하여, 수많은 오지(奧地)의 산군을 거느리며 서진(西進)하여 용문산(1,157m)의 거대한 산채로 솟은 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두물머리)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162.6km의 산맥이다. 한강기맥에는 오대산 비로봉, 계방산, 청량봉, 덕고산, 운무산, 수리봉, 대학산, 덕구산, 응곡산, 만대산, 오음산, 금물산, 시루봉, 갈기산, 폭산(문례봉), 양평의 용문산, 유명산, 소구니산, 옥산을 지나, 청계산으로 이어진다. 양평군 양서면의 청계산(658.4m)은 남으로 509봉(형제봉)으로 이어져, 거기에서 서진하면서 산봉과 안부를 번갈아가는 가운데 부용산, 하계산을 지나 양수리로 내려가 그 맥을 다한다.
소리산은, 위의 <한강기맥 지도>에서 보면, 강원도 홍천군 남면 갈기산에서 경기도 양평군 폭산-용문산으로 넘어오는 중간,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의 한강기맥 큰소리산(650m)에서 북쪽으로 뻗어간 산줄기가, 석산리 산음천과 명성천 앞에서 일대 절벽을 이루고 솟아있는 ‘작은 거봉(巨峰)’이다.[아래]
소리산은 주변의 산에 비해 큰 산은 아니지만 깎아지른 바위절벽과 기암괴석, 장대한 노송이 어우러진 산이다. 특히 석산천의 맑은 계곡이 아름다워 예로부터 산음리 소금강(小金剛)이라 일컬어질 만큼 빼어난 경관을 지니고 있다. 특히 산음리와 석산리 사이에 있는 용소계곡은 기암절벽, 풍부하고 맑은 물과 함께 곳곳에 조약돌이 깔린 공간이 있어 휴식공간으로 인기가 높다.
* [소리산 산행과 시산제] — 산행에 동행하는 대원들
오늘 양평 <소리산> 시산제(始山祭) 산행에는 김준섭 회장, 민창우 부회장 겸 기획위원, 조인규·한영옥·장태임 부회장, 박은배 총무, 그리고 김재철·유형상 대장이 포진하고, 호산아·장병국·남정균 고문, 김의락 자문위원이 함께 했다. 전진국, 안상규, 강재훈 님, 정다운 오수정·허향순 님, 한결같은 김재철 님 내외분, 신지호 님, 김숙이·정석희·류경 님도 참석했다, 쾌활한 이명자·나천옥 님, 조용한 장영서 님, 김후경 님, 고종길 님 등 농암의 벗들이 함께 했다. 박현주 님, 김희태 님, 남점식, 오산종주 님, 박성길 님, 꽃구름 지기 이달호 님 등도 참석하여 동행하게 되었다. 특히 오늘은, 산을 통해 사유(思惟)의 서정을 펼치는 유영래 님이 처음으로 참석하여 무척 반가웠다. 산(山)을 지향하는 마음이 따뜻한 동행을 이루었다.
* [산으로 가는 길] — 44번 국도[양평~양양], 양평군 단월면에서 70번→494 도로
오전 07시 50분, 서울 능동[군자역]을 출발했다. 광진구 광나루사거리에서 강변북로를 따라 덕소를 경유하여 양평으로 이어지는 6번[44번] 국도에 올랐다. 우리의 버스는 양평의 용문을 지나 단월면 소재지가 있는 보륭교차로에서 70번 도로로 내린 뒤, 단월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접어들었다. 여기에서 왼쪽의 길로 가면 비솔재를 넘어가는 345번 도로이다. 한강기맥 서쪽의 도일봉 ‘싸리재’와 동쪽의 ‘큰소리산’의 사이의 안부(鞍部)에 위치한 ‘비솔재’는 오늘 우리가 산행을 마치고 <시산제>를 모시기로 예정한 곳이다. 우리는 삼거리에서 그대로 직진하는 70번 도로를 이용하여 명성터널[한강기맥]를 지나 494번 지방도로에 진입, 명성천 계곡을 따라 내려가 산행들머리인 <석산리 돌고개마을>에 이르렀다. 70번 도로는 대명비발디파크 스키장으로 들어가는 길이요, 494번 지방도로는 한강기맥 북쪽의 동서를 잇는 길이다. 그리고 명성천은 한강기맥 북쪽의 산곡의 물이 모여 흐르는 물줄기로 홍천강에 유입되어 청평호로 들어간다.
* [산행들머리 돌고개마을] — 양평군 단월면 석산리와 홍천군 서면의 경계의 명성천
오전 9시 30분 석산리 명성천 <돌고개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날씨가 흐리다. 엷은 구름이 하늘은 가려 그 회색의 가림막이 봄햇살을 차단하고 있었다. 길가에 이정표가 있는 소향산장 앞을 지나 콘크리트로 포장된 오르막길을 따라 올랐다. 처음부터 팍팍한 길이었다. 길의 오른쪽에는 바위절벽을 이루고 있는 피난봉(265m)이 솟아있고, 길의 왼쪽에는 작은 계곡이 있다. 계곡은 아직 허연 얼음장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군데군데 얼음이 녹으면서 그 얼음장 밑으로 봄물이 콸콸콸 흐르고 있었다. 봄은 물소리, 얼음이 녹아 흐르는 물소리로부터 오고 있었다. 산야는 아직 앙상한 겨울나무들이 그대로 있는 삭막한 겨울풍경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생동하는 봄은 그렇게 계곡으로 물소리로 흐르고 있었다.
* [산 속의 황량한 풍경] — 택지 개발을 위해 마구 파헤쳐진 산록
피난봉을 허리를 돌아서 올라가니 아주 황량한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소리산 남쪽의 산록의 나무는 다 베어지고 땅을 파헤쳐서 있었다. 택지를 조성하기 위해 그렇게 개발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만약에 큰비라도 내리면 그냥 산사태가 일어날 것 같은 상황이었다. 서울 근교의 양평 일대가 전원주택지를 개발하여 매매하는 등 부동산 사업이 활발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렇게 깊은 산속까지 나무를 베고 땅을 파헤쳐서 택지를 조성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 어디까지 가고 있는가. 자연에 깊은 상처를 주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 [소리산 능선 길] — 가파르게 고도를 높여가는 산길, 아직 삭막한 겨울나무
능선으로 올라가는 산길에 접어들었다. 대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산행을 시작하는 기념사진을 찍고, 유쾌하게 산행을 시작했다. 나무가 베어진 산록은 너무나 볼썽사나웠다. 소리산 능선길이다. 작은 고갯마루에 이정표가 있다. 능선길을 따라 대원들이 열을 지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길에는 지난 가을에 떨어진 낙엽이 발목까지 빠질 정도로 쌓여 있었다. 가파르게 고도를 높여간다. 주로 활엽수 잡목들이 들어서 있는 산록의 풍경은 아직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봄 가뭄에 바싹 마른 나뭇가지들이 을씨년스럽게 생명의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숨이 차고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오른 뒤 약간의 평지가 있는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휴식을 취했다.
* [급경사의 바위를 타고 올라 정상에 서다] — 북쪽으로 내려다보이는 아득한 풍경
어느 정도 완만하게 올라가던 산길은 서서히 급경사를 이루며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하늘은 구름이 끼어 흐린 날씨지만 비교적 포근한 날이다. 땀이 솟고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오르막길에는 친절하게 하얀 밧줄이 설치되어 있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니, 바위절벽이 앞을 가린다. 가파른 바위에 밧줄이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산길은 그렇게 험하지는 않았다. 대원들이 조심스럽게 절벽을 타고 올랐다. 그 바윗길의 위가 소리산 정상이었다.
* [소리산 정상] — 기암의 바위와 어우러진 장대한 소나무
오전 10시 30분 소리산(479m) 정상(頂上)에 올라섰다. 산행을 시작한지 한 시간 만에 정상에 오른 것이다. 석산1리 <돌고개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산을 오르는 과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고, 비록 오르막길이었지만 쾌적한 산행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은 그 높이감이 엄청나게 느껴져 아주 아찔했다. 정상의 북쪽은 아주 천인단애의 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그 아래의 산곡(山谷)의 풍경은 아득하게 내려다보이는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오름길은 토산의 길이었는데, 산의 정상과 그 북쪽은 완전히 천인단애의 바위절벽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기암의 바위와 어우러진 장대한 소나무가 또한 고절한 풍경을 보여 주었다. 이 글의 서두에서 이 소리봉을 두고 ‘작은 거봉(巨峰)’이라고 쓴 연유가 여기에 있다. 산의 높이는 그리 높지 않지만 절벽의 높이가 더욱 크게 보이기 때문이다. 외모는 그렇게 커 보이지 않지만 그 인간적인 덕(德)이 높은 사람을 일러 ‘작은 거인(巨人)’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대원들이 하나 하나 등정의 인증샷을 찍고 또 여럿이 모여 유쾌한 기분을 사진폭에 담았다.
정상의 부근은 바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어 절경을 이루고 있었고 그 절벽의 소나무 사이로 북쪽 산 아래 풍경이 아름다웠다.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길은 잠시 가파르게 이어지다가 완만한 안부(鞍部)와 토산의 능선(稜線)이 이어졌다. 이정표가 있는 작은 높이의 산(445m)을 넘고 나니 급경사의 지그재그 길이 이어진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왔다.
* [소리산 노송지대] — 북쪽의 절벽 바위, 모진 풍상 속에서 굳건한 소나무들
날씨는 흐리지만 푸근했다. 그래서 엷은 구름장이 하늘에 드리워져 시공은 산뜻하지 않았지만 산길을 걷는 분위기는 쾌적했다. 산 능선의 남쪽은 완만한 경사의 토산(土山)인데 나뭇잎이 다 떨어진 활엽수의 나목들이었고 북쪽은 바위 절벽(絶壁)인데 장대하고 오래된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어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었다. 445고지에서 417m 출세봉의 능선 길을 지도에는 ‘노송지대’로 표기하고 있었다. 그 절벽 위에 하늘을 찌르는 장대한 소나무들이 있는가 하면 절벽을 박차고 나가듯이 허공에 가지를 드리운 것, 그리고 모진 풍상 속에서 휘어져 뒤틀린 낙락장송(落落長松)이 경건하고 강인한 생명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었다. 소리산의 소나무는 ‘소리 없는 성자’처럼 그렇게 북풍한설(北風寒雪)이 몰아치는 저 북쪽의 바위 절벽에서, 생명(生命)의 위대함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었다.
아득하게 내려다보이는 석산계곡 - 비솔재로 가는 345번 지방도로
* [우주 대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 — 인간은 한갓 나그네일 뿐인가
그 노송(老松)을 배경으로 대원들이 사진을 찍었다. 그 낙락장송의 세월 속에 사람의 세월이 만나는 풍경이었다. 우리 사람보다 먼저 태어나서 우리 사람보다 더 오래 살아가는 소나무들이다. 한 장의 사진은 무한 대자연의 시간 속에서 두 생명의 정령이 만나는 순간이었다. 하늘과 자연과 인간은 결국 하나다. 무한 우주의 하늘 아래 가늠할 수 없는 대자연의 시간이 흐르고 그 속에서 인간은 어느 기간 동안의 생명을 부여 받아 살다가는 유한(有限)한 존재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태어나기 전의 인간 생명도 자연 속에 있었고 생을 마치고 난 후에서 인간 의 생명은 자연 속에 있다. 모든 생명체들이 그렇듯이, 자연의 정령(精靈)이 하나로 모여 한 몸을 이루어 살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사람보다 오래 사는 노송의 입장에서만 보면 인간은 잠시 지나가는 하나의 나그네일 뿐이다.
그래서 도리화(桃李花)가 흐드러지게 피는 봄밤의 과원(果園)에서, 이백(李白)은 “무릇 대자연은 만물의 여관이요, 시간(時間)은 백대의 나그네라[夫天地者 萬物之逆旅 光陰者 百代之過客]”고 전제하고, “뜬 구름 같은 인생은 꿈과 같다[而浮生若夢 爲歡幾何]”고 하면서 한 바탕 시(詩)를 짓고 술을 마시며 놀아보자고 제의한다. —<春夜宴桃李園序>
*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 인간의 오관, 인식의 허상을 벗고 나면
그렇다. 몸의 형체(形體)만을 두고 말하면, 인간은 삶[存在]와 죽음[無]의 경계가 뚜렷하니 분명 유한한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은 죽음이라는 엄청난 고통을 숙명적으로 안고 사는 ‘비극적 존재’라고 말한다. 그러나 대자연의 질서로 보면, 있고[有] 없음[無]은 인간의 오관(五官)과 인식(認識)의 소산일 뿐이다. 사실 인간이 일개 단위 생명이 아닌, 대자연의 생명, 우주적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인간은 언제나 살아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그 유한존재라는 인식(認識)의 허상을 깨달으신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있는 것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있는 것[色卽是空 空卽是生]”이라고 갈파했다. 부처님은 우주 대자연의 실체와 인간생명의 본질이 하나라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생사의 고통을 초월하는 해탈(解脫)을 이루셨다. 그리고 그 대각(大覺)의 진리를 통해, 사람이 살아있으면서 만나는 모든 육체적인 고통을 풀어주셨다. 그런데 중생(衆生)은 단지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부처님이 우주 대자연의 생명이 윤회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인간 성자(聖者)라면, 오늘 소리산의 노송(老松)은 그것을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주는 자연의 성자이다.
* [출세봉(417m)에서의 휴식] — 산행묵상가 유영래 님과 동행하는 산길
오전 11시 20분, 이정표가 있는 출세봉(417m)에 이르렀다. 낙엽이 깔린 평지에서 대원들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휴식을 취했다. 오늘 우리 대원들과 처음 동행하는 유영래 님을 향하여 카메라 포커스를 맞추었다. 일찍이 백두대간을 종주한 바 있는 분으로 대간의 아름다운 풍경 사진과 함께 그 특유의 사유를 글로 묶어『바람도 길이 있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한 분이다. 우리 지평 기획위원과의 인연으로 오늘 우리 산행에 동행하게 된 것이다. 오늘도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산길을 걷는 ‘님’에게 인사를 겸하여 사진을 찍어드렸다. “산을 걸으면 마음이 열린다. / 가파르게 오르는 숨소리, 산과 나의 공명현상이다. 산의 파동과 나의 숨소리가 일치한다. 배낭을 메고 땀을 흘릴 때, 지친 걸음에 진실이 있다.” 책의 서문에서 밝힌 내용이다. 뜨거운 숨결로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산길, 그 지친 고행에서도 삶의 진실을 터득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 산길에서 붓다의 깨달음의 경지를 묵상하기도 한다.
숲 속에 세상이 있다.
붓다가 나무아래서 눈을 뜨는 순간, 세상을 보았다.
있는 그대로를 보고 듣는 순간 , 깨달음이다.
듣도 보고 못한 것들이 아닌, 지금 보고 듣고 느끼는
눈앞의 것들을 자각하는 일이다. —『바람도 길이 있다』중에서
잠시 숨결을 고르고 난 후, 다시 하산(下山)의 산행은 계속되었다. 이 출세봉에서 그대로 산의 능선을 타면 행경매기산을 거쳐 한강기맥의 큰소리산으로 갈 수 있다. 우리는 안부의 계곡 논골로 가기 위해 산록의 길을 타고 내렸다. 내리막길이다. 가파르지는 않지만 앙상한 겨울 나목의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거침없이 쏟아지는 산길이었다.
* [논골에서 내려오는 얼음장 계곡] — 얼음이 녹아흐르는 폭포의 물소리
오전 11시 45분, 이정표가 있는 깊은 안부(鞍部) ‘논골’에 이르렀다. 논골에서 좌측으로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한강기맥 큰소리산-행경매기산에서 우리가 지나온 출세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안부 논골재로 올라간다. 우리는 산음천 석산계곡으로 하산을 했다. 응달인 계곡에는 아직 겨울의 얼음장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오는 봄을 어찌할 것인가. 얼음장 밑에는 이미 봄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대원들이 줄을 이어 철다리를 건너고 또 가파른 바윗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하산을 했다. 지평 부회장을 비록한 선두의 대원들이 저 만큼 앞서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시야에 들어오지는 않지만 아직 많은 대원들이 뒤에서 내려오고 있다. 바위를 타고 내려오니 얼음절벽이 녹아 물이 아래로 쏟아지는 작은 폭포도 있었다.
* [석산계곡의 명경지수] — 모든 대원들이 무사히 하산을 마쳤다
12시 정각, 일명 ‘소리산 소금강(小金剛)’이라고 불리는 삭산계곡에 이르렀다. 산음천이다. 커다란 돌로 이어진 징검다리 위쪽으로 넓은 계곡을 가득한 물이 명경지수(明鏡止水)를 이루고 있었다. 계곡의 가장 자리에는 아직도 하얀 잔설(殘雪)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징검다리 계곡을 건너 포장도로 큰 길에 올라섰다. 아까 산위에서 내려다본 바로 345번 지방도로이다. 계곡의 아래쪽에서 494번 도로와 이어지는 도로이다. 무사히 하산을 완료한 대원들이 주차장에서 버스에 탑승하고 345번 도로를 타고 비솔재로 올라갔다. 비솔재는 오늘 우리가 시산제를 모시기로 한 장소이다.
♣… [새재사랑산악회] <무술년(2018)년 시산제 거행> …♣
☆… 오후 1시 30분, 한강기맥 비솔재 너른 평지에 자리를 잡아 시산제가 시작되었다. 제단을 설치하고 제수(祭需)를 진설(陳設)하고 모든 대원들이 제단을 향해 경건한 자세로 도열(堵列)해 섰다. 오늘 시산제는 민창우 부회장이 진행을 하고 좌집사에 김재철 대장, 우집사에 유형상 대장이 담당하였다.
*[<국민의례>와 <산악인의 선서>] — 민창우 부회장(기획위원)의 진행된 시산제
☆…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경건한 마음으로 ‘국민의례’를 올렸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은 생략하고 ‘순국선열과 먼저 가신 산악인에 대한 묵념’을 올렸다. 그리고 유형상 대장의 선창으로 ‘산악인의 선서’를 힘차게 복창했다. 자연과 우리가 하나 되는 산악인의 다짐이다.
◇… 산악인의 선서 …◇
산악인은 무궁한 세계를 탐색한다.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정열과 협동으로
온갖 고난을 극복할 뿐
언제나 절망도 포기도 없다.
산악인은 대자연에 동화 되어야 한다.
아무런 속임도 꾸밈도 없이
다만 자유와 평화의 참 세계를 향한
행진이 있을 따름이다.
‘100자’로 된 이 선서는 1967년 노산(露山) 이은상(李恩相) 선생이 <한국산악회> 초대 회장에 취임하면서 제정한 것이다. 지금은 대한민국 산악인들이 지향하는 정신이 되었다.
*[강신례와 초혼문(招魂文) 낭독] — 새재사랑산악회 김준섭 회장
☆… 제주인 김준섭 회장이 강신례(降神禮)를 올리고 <초혼문(招魂文)>을 낭독하여 산신령을 제단에 모시고, 대원들이 다함께 참신(參神)의 3배를 올렸다.
*[헌작(獻酌)과 독축(讀祝)] — 이어지는 순서 헌작(獻酌)의 순서
☆… 초헌(初獻)은 제주인 김준섭 회장이 처음 잔을 올리고 호산아 고문이 축문(祝文)을 낭독했다.
◇… 축 문(祝文) …◇
유세차(維歲次) 무술년(戊戌年) 이월 초이틀 (2018년 3월 18일) 저희 ‘새재사랑산악회’ 김준섭 회장을 비롯한 모든 대원은,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한강기맥의 비솔재에서 주과포(酒果鮑)를 배설하고 산신령님께 감히 고(告)하나이다.
예로부터 산자수명한 우리 산하는 천하의 금수강산(錦繡江山)으로 불리어 왔으며, 장엄하고 수려한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한 모든 산수(山水)는, 우리민족의 생명의 근원이며, 반만년 역사의 터전이 되어 왔습니다.
우리 새재사랑산악회 회원 모두는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의 산하(山河)를 아끼고 사랑하며, 그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산을 오릅니다. 우리는 대자연의 정기(精氣)를 이어 받고, 인내와 협동으로, 넉넉하고 준엄한 교훈 속에서 심신을 연마하고 있나이다. 이는 오직 우리의 참된 마음을 어여삐 여겨주신 산신령
님의 가호이심을 알기에 늘 감사, 감사하고 있나이다.
바라옵건대, 산신령(山神靈)님께서는, 올해에도 우리 새재사랑산악회 모든 회원들을 굽어 살피시어, 회원 모두가 안전한 산행이 되게 하시고, 강건한 육체와 올바른 정신을 길러 주시되, 이 대자연 속에서 겸손(謙遜)의 이치(理致)를 깨닫게 하여 주시고, 아름다운 강산의 기백(氣魄)이 충만한 우리 산악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우리 새재사랑산악회 회원 일동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보배로운 강산을 정성으로 가꾸어, 자손만대에 물려 줄 것을 다짐하며, 삼가 이 축문(祝文)을 올리오니, 산신령님이시여! 저희들의 이 작은 정성을, 대례(大禮)로 여기시어 흔쾌히 받아주시옵소서.
그리고 우리 회원 모두의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충만하도록, 끊임없이 돌보아 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하나이다. — 상향(尙饗)!
단기 4341년 무술년 음력 2월 초이틀
새재사랑산악회 회장 김준섭과 모든 대원들이 삼가 올립니다.
*[헌작 - 재헌과 종헌 그리고 대원들의 헌작]
그리고 아헌(亞獻)은 장병국 고문과 남정균 고문이, 종헌(終獻)은 부회장단을 대표하여 조인규 부회장이 헌작을 했다. 다른 대원들의 헌작의 예가 이어졌다. 먼저 부회장단, 산행 대장, 그리고 기타 임원진이 나와서 예를 올리고 나머지 대원들이 그룹을 지어 헌작의 예를 올렸다. 그리고 축문을 소지는 산불예방 차원에서 생략했다. 그리고 의례의 절차를 마쳤다.
♣ [유서 깊은 새재사랑산악회 ] — 자연과 하나 되는 참신하고 인간적인 산악회
새재사랑산악회는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한마음이 되는 숭고한 뜻’을 같이 하는 산우들을 중심으로 하여, 2002년 12월에 창립되었다. 지금까지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탄탄하고 아름다운 산악회가 되었다. 장장 16년의 연륜을 쌓아오면서, 전국의 산(山)을 두루 찾아 오르고 회원들은 함께 땀을 흘리면서 심신을 단련하고 무엇보다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아름다운 추억의 역사를 써내려왔다. 우리 산악회는 지금 명실공히 유서 깊은 산악회기 되었다. 올해 2018년 햇수로 16년째를 맞이하는 <새재사랑산악회>는 제9대 김준섭 회장을 비롯하여 민창우·한영옥·장태임·조인규 부회장, 박은배 총무, 유형상·김재철 산행대장이 합심하여 더욱 멋지고 건강한 산악회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정인·오상수·장병국·남정균 고문, 오수정 감사 등이 늘 한마음이 되어 측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 [시산제 후, 음복(飮福) 나누기] — 무한한 생명력을 내려주는 자연에 감사하며 …
시산제가 끝나고 난 후, 회원들은 둘러 앉아 유쾌하게 음식을 나누며 음복(飮福)을 했다. 김준섭 회장이 건배(乾杯)를 제의하면서 화기가 넘치는 친교(親交)의 시간이 이어졌다. 음식은 하나같이 푸짐하고 정갈하고 맛깔스러웠다. 따끈한 온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팥시루떡, 새우젓에 살짝 찍어 먹는 쫄깃하고 고소한 편육, 구수하고 부드러운 왕꼬막찜, 박은배 총무가 손수 만들었다는 도토리묵무침을 비롯하여 갖가지 먹거리 그리고 잘 익은 김치도 빠질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따끈하고 담백한 국에 따뜻한 백반까지 준비해 왔다. 음식마다 정성(精誠)이 들어있고 아주 맛깔스러웠다. 따뜻하고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사랑의 음식을 나누었다. 언제나 무한한 생명력을 내려주는 산(山), 그 자연에 대해 깊은 은혜를 느낀다. 그리고 모든 대원들에게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
♣ [에필로그] — 경건한 시산제를 위해 정성과 노고를 아끼지 않은…
☆… 오늘의 시산제는 소박하지만 정성을 다한, 경건한 의식이었다. 시산제를 전 과정을 기획한 민창우 부회장(기획위원)과 박은배 총무를 비롯한 임원들이 노고와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시산제와 음복(飮福)의 자리, 친교의 상차림을 하는데에 하나같이 팔을 걷어부치고 봉사하신 모든 대원들의 순정한 마음에 깊이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오늘 참여하신 모든 대원들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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