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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드랜찌크"의 밤 원문보기 글쓴이: 레르몬또브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
고통을 사랑스러워해야 한다.
모든 고통은 우리의 고귀함에 대한 기억이다.
인간이란 이미 창조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신의 요구이며, 그 실현을 갈구하면서도 또 겁내는
하나의 먼 가능성이다.
진지함이란 시간을 과대평가하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라네.
1
월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말 미국의 대학 도시 샌프란시스코의 서점가엔
참으로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한동안 도시 전체를 통틀어 헤세의 책을 구할 수
있는 서점이 없었다. 책이 서가에 꽂히기가 무섭게 동이 나버린 것이다. 실로 느
닷없이 휘몰아친 헤세 선풍은 삽시간에 미대륙 전체를 휩쓸었다. 일반 독자들의
관심은 말할 것도 없고, 고등학교와 대학에서도 앞다투어 헤세의 작품을 교재로
다루면서 토론의 주제로 삼았다. 질풍같이 번져간 헤세 붐을 선도한 작품은 단
연 ‘황야의 이리’와 ‘싯다르타’였다. 특히 문고판 출간한 달 만에 36만부가
팔리는 진기록을 남긴 ‘황야의 이리’는 미국과 유럽을 뒤흔든 68학생운동 세
대와 히피들에게 성경처럼 읽혔다. 하버드 대학 강사로서 히피운동의 이론적 지
도자였던 티모시 리어리는 ‘내면 여행의 시인’이라는 글에서 “환각 모임을
갖기 전에 ‘싯다르타’와 ‘황야의 이리’를 읽어야 한다. ‘황야의 이리’의
마지막 부분은 더없이소중한 교과서이다”라고 쓸 정도였다.‘황야의 이리’라
는 록 그룹이 생겨난 것도 그 무렵이었다.
‘황야의 이리’가 ‘히피의 성경’이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휴머
니즘의 입장에서 나온 반전 사상, 교양 속물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 서양 문명의
몰락에 대한 묵시록적 경고, 기존의 위선적인 생활 방식에 대한 저항, 환각이라
는 신비로운 세계의 형상화 등과 같은 요소가 기만적인 전쟁과 쇠잔해진 문명과
권위주의적인 기성 질서에 반기를 든 젊은이들의 의식과 호응하였던 것이다. 그
러나 이 소설의 근본적인 문제 의식은 이들 젊은이에게는 아직 온전히 인식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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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작품이 발표된 지 수십 년이 지난 후, 그것도 대서양 너머에서 다시
부활한 것은 단순한 우연은 아니다. 그의 자품에서는 시대와 공간의 제약을 뛰
어넘는 보편성이 내제해 있기 때문이다. 물질 문명의 발전이 초래한 인간성 상
실과 소외, 인간 실존의 고독과 방황, 자아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의지가 그의
문학세계를 이루는 주요 인자들이다. 그의 작품은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가는 도
정이고, 참된 인간성을 그리워하는 동경이다. 그러나 헤세가 인간 실존의 상황을
탐구하는 세계는 사회나 역사나 정치의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내면의 세계이다.
그는 정신의 심연 깊숙한 곳에서 전인미답의 내적 공간을 집요하게넓혀갔다. 그
는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들며 인간의 신비를 캐내려는 위태로운 탐험을
감행했다.‘인간’>이라는 심연이 그의 영원한 주제였고, 고뇌의 원천이었고, 경
외의 신전이었다.
정결하면서도 대담하고, 몽환적이면서도 이지적인 헤세의 작품은 전통과 애
정과 기억과
비밀로 가득하다. 에피고넨적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작품은 상쾌함을
새로운
정신적인 단계, 실로 혁명적인 단계로 고양시킨다. 여기서 혁명적이라 함은 정치
적, 사회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정신적, 문학적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그의 작품
은 실로 참되게 미래를 내다보고 미래를 느낀다.
토마스 만은 헤세의 70세 생일을 축하하는 연설에서 헤세의 문학을 이렇게 평
했다. 토마스 만의 평가는 헤세 문학의 특색을 탁월하게 집약하고 있다. 헤세의
초기 작품은 대체로 ‘정결하고 몽환적’이고, 후기 작품은 보다 ‘대담하고 이
지적’이다. ‘페터 카멘친트’(1904),「수레바퀴 아래서」(1906),「게르트루트」
(1910),「크눌프」(1915) 등 초기 작품에서는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정조가 두드
러지고,‘데미안’(1919)을 기점으로 ‘싯다르타’(1922),‘황야의 이리’(1927),
‘나르치스와 골드문트’(1930),‘유리알 유희’(1943)등 후기작품에서는 숨막힐
정도로 집요한 자아 성찰과 냉철한 문명 비판이 주조를 이룬다. 이때 분수령이
된 것은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이었다. 헤세 문학이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시대사를 거치며 질적 변신을 겪었다는 점은 주목을 요한다. 낭만적 서
정성이 풍부하고 내면 탐구에 몰입하고 초자연적인 유토피아를 구상하고 실존의
종교적 구원을 갈구하는 것처럼 보이는--또한 그렇게 해석되어 온--헤세의 문
학도 시대사의 변화에 완전히 초연할 수는 없었고, 나아가 급변하는 시대 상황
에 대한 나름의 대응 양식이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헤세가 살았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까지의 기간은 세계사적 격변기였
다. 이 격변기의 시대상이 그의 작품 곳곳에 투사되어 나타난다. 빌헬름 제국,
제1차 세계 대전,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치적인 동요와 위기, 나치즘,
제2차 세계 대전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도 제1차 세계 대전이 헤세 문학의 분수
령을 이룬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인류 역사상 초유의 이 세계적 차원의 전
쟁은 계몽주의 이후 유럽의 정신사를 지배해 온 낙관적세계관 전체의 거대한 붕
괴를 의미했다. 위기의 징후는 이미 반세기 전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경제학에서
아담 스미스에 의해 주창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자본주의 시장의 자율 조
정이라는 신화는 역사를 계급 투쟁 과정으로 보는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에 의
해 크게 동요되었고, 헤겔로 대표되는 독일 관념론의 목적론적, 직선적 역사 발
전론은 니체의 염세론적 순환적 역사관에 의해 의문시되었으며, 계몽주의 이래
지속된 이성에 대한 절대적 신뢰는 베르그송의 생철학과 무엇보다도 프로이트에
의한 무의식의 ‘발견’-- 나아가 융의 집단 무의식의 강조-- 에 의해 뿌리째
흔들리게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을 겪으며 실존주의의 싹이 움트는 가운데 니
체의 르네상스가 도래하고, 정신병리학과 심리학이 인문학의 중심으로 육박해
온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1918년 슈펭글러가 역사 염세주의적 시각에서
‘서양의 몰락’을 예언한 것은 이 시대의 징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황야
의 이리’에는 염세적 역사관, 비극적 인생관, 허무주의적 문명 비판, 이성보다
는 직관을 우위에 두는 태도 등 당시를 풍미하던 정신적 경향들이 고스란히 드
러난다.
3
헤세가 쉰 살이 되던 해인 1927년에 발표된 ‘황야의 이리’는--앞서 토마스
만의 말했듯이--헤세의 ‘대담한’ 작품 중에서도 가장 대담한 작품이다. 이 소
설의 대담성은 정신 분열, 마약, 동성애, 그룹 섹스, 고급 창부등 당시로서는 충
격적인 소재를 다루었다는 점뿐만 아니라 작가의식의 치열성, 그리고 무엇보다
도 다채로운 형식 실험에서 살필 수 있다.
이 소설이 지닌 형식상의 새로움은 토마스 만에 의해 제임스 조이스와 앙드
레 지드의 그것에 비견되었다. “ ‘황야의 이리’는 그 대담한 실험 정신에 있
어서 ‘율리시즈’나 ‘사전꾼들’ 못지않은 소설이다.” 현실과 비현실, 의식과
무의식의 대위법적 결합, 화자의 퍼스펙티브의 노련한 전환, 심미적 거리를 조성
하는 메타 픽션적 서술 등 다채로운 현대소설적 기법이 실험되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이 독자에게 주는 첫인상은 몹시 혼돈스런카오스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무쌍한 형식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개관할 수 있는 외
적인 단락에 의해 이 소설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황야의 이리’
하리 할러가 세들어 살던 집 조카가 쓴 허구적인 ‘편집자의 서문’, 신비스런
광채에 싸인 행상인이 건네준 작가 미상의 ‘황야의 이리론’, 그리고 하리 할
러가 쓴 ‘수기’가 그것이다. ‘편집자의 서문’은 도입부를 이루고, ‘수기’
는 전개부를 이루며,‘황야의 이리론’은 소설의 전반부를 요약하면서 후반부를
암시하는 일종의 ‘간주곡’역할을 한다. 헤세 자신은 이러한 구성을 서구의 전
통적인 시 형식인 소네트에서 착안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언뜻 혼란스러워 보이는 이 소설의 구성은 기실 작가의 치밀한 의도에 의해
정교하게 짜여져 있다. ‘편집자 서문’은 평범한 시민의 시각을 통해 ‘황야의
이리’를 묘사하고 분석함으로써 다음에 올 ‘기인의 수기’가 독자에게 줄 수
있는 거리감, 이질감을 상대화시켜 독자의 동일화 가능성을 높여주고, ‘수기’
에 대한 호기심을 일깨우면서 ‘수기’의 전체 틀을 예시해 주는 기능을 한다.
할러의 수기는 병적이면서도 아름답고 깊은 성찰이 담긴 환상적인 글이다. 만
약 내가 이 원고 뭉치
를 누가 썼는지 모르는 채 우연히 손에 넣게 되었다면 틀림없이 버럭 화를 내
며 집어던졌을 것이다. 내가 이 수기에서 발견한 것이 감정이 병든 불쌍한 한
인간의 병적인 환상뿐이었다면 이 글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를 주저했을 것이
다.
‘편집자 서문’이 하리 할러의 외적인 모습에 대한 인상을 주관적으로 묘사하
는 반면 ‘황야의 이리론’은 ‘황야의 이리의 내면의 초상’으로서 그의 내면
생활에 대한 객관적, 심리학적 분석을 가한다. 나아가 여기서 ‘수기’에서 그
후반부는 앞서의 분석을 뒤집는 분석과 주석을 가함으로써 일종의 ‘메타 메타
픽션적’ 특성을 보인다. 이러한 정치적 구성은 ‘황야의 이리’의 전체상을 개
연성 있게 그려내기 위한 심미적 장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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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이리’ 하리 할러는 오십줄의 지식인이다. 그는 시민 사회를 경멸하
면서도 시민 사회에 대해 감상적인 동
경에 사로잡혀 있다. 고립된 채 자신의 다락방에서 은둔자처럼 외톨이로 살아
가는 그는 마음속으로 정신적인 사부인 괴테와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밤에는
싸구려 술집에서 홀로 술을 마시기도 하는 고독한 이상주의자이다. 그는 또한
‘니체가 말한 의미에서 무서운 고통의 능력을 길러온 고통의 천재’이다. 그는
주변의 세계뿐 아니라 자기자신과도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그의 자아는 분열되
어 있다.
황야의 이리는 감정에 있어 복합적인 존재가 다 그렇듯이 때론 이리로 때론
인간으로 살았지만 그가 이리일 때는 그의 내면에 있는 인간이 항상 바라보고
판단하고 조종하면서 잠복해 있었고, 그가 인간일 때에는 이리가 똑같이 그런
짓을 했다.
하리 할러의 내면에는 인가노가 이리, 즉 ‘사사오가 감정과 문화와 잘 길들
여진 승화된 본성의 세계’와 ‘충동과 야성과 잔인함의 어두운 세계, 승화되지
않은 거친 본능의 세계’가 동거하고 있다. ‘황야의 이리론’은 할러의 이러한
자기 해석이 소박한 이원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모든 인간의 심리는 무한
한 다원성을, ‘천개의 영혼’을 지니고 있다고 반박한다.
하리는 두 개의 존재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수백 수천의 존재로 이루
어져 있다. 그의 삶은 이를테면 본능과 정신 같은 두 개의 극단 사이에서 흔들
리는 것이 아니라, 수천의, 무수한 쌍의 극단 사이에서 진동하는 것이다.
‘황야의 이리론’은 하리의 이러한 내면적 갈등을 해결해 줄 두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그것은 ‘더욱 많은 세계를, 결국은 이 세계 전체를 고통스럽게 확장
된 자신의 영혼에 받아들인’‘불멸의 존재’의 본보기를 쫓아 내면의 본원적인
다원성으로 돌파해 들어가거나, 아니면 유머를 통해 시민 세계와 ‘계약결혼’
을 하는 것이다.
‘황야의 이리론’에 이어지는 ‘수기’부분에서는 위에서 말한 두가지 해결
책이 주도 모티프가 된다. 할러는 여러 인물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 인물들은 칼
구스타프 융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 헤세는 당시에 ‘데미안’을 집필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유으이 제자인 심리학자 랑 박사에게거 정시노가 치료를 받고 있었
다-억압되어 있는 할러의 집단 무의식의 소인의 원형들을 대표한다. 이들은 할
러가 내면적 다원성을 발견하도록 도와준다. 할러는 절망의 정점에서 자살을 목
전에 두고 고급 창녀 헤르미네를 만난다. 그녀를 통해 대도시의 또다른 반쪽 세
계, 즉, 향락적인 삶과 접하게 된다. 헤르미네는 할러를 어머니처럼 돌보며 당시
유행하던 춤을 가르치고 그녀의 친구인 파블로와 마리아를 소개해 준다. 할러는
관능적인 마리아와 에로틱한 사랑의 행복을 맛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멍청한
한량처럼 보이던 파블로의 정신적, 심리적 섬세함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는 여전
히 자신의 지식인 의식, 생활상의 무능, 이원론적, 정신분열적 자기해석을 극복
하지 못한다. 그래서 ‘황야의 이리론’에서 제시된 해결책은 소설의 결말부에
서 의식의 형태를 빌려 실현된다. 가면무도회가 그것이다. 할러는 여기서 중요한
주변 인물들을 모두 다시 만나고 처음으로 ‘다중속에서 개성이 함몰하는’황홀
한 체험을 한다.
환각제를 먹고 지금까지의 이원론적 자기 해석을 상징적으로 비웃은 후 마침
내 그는 파블로의 ‘마술극장’에서 자아가 다양한 원형적 심리 소인으로 분열
되는 것을 체험한다. 그의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심리적 소인들을 보여주는
일련의 연상이 떠오른다. 그는 지나가는 연상들-자동차 대사냥, 개성 형성 지도,
황야의 이리 조련의 기적, 모든 소녀는 너의 것-속에서 차례로 잠재적 살인자,
유희적으로 실현된 내면적 다양성의 이상, 신경증적 기본 성향, 충족되지 못한
성적 욕구를 인식한다. 그런 후에 할러는 헤르미네를 정복하고자 하는데 이 자
기 중심적인 욕망 때문에 심리적 형상들은 더 이상 자유롭게 전개되지 못한다.
‘불멸의 존재’의 상징인 모짜르트가 나타나 할러의 잘못을 꼬집어 주지만 아
무 소용이 없다. ‘마술 극장’을 ‘유머의 학교’로 이해하고 내면의 연상의
자유로운 흐름에 몸을 맡기라는 파블로의 말을 따르지 않고 할러는 헤르미네와
파블로가 벗은 몸으로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자 헤르미네를 칼로 찔러 죽인다.
모짜르트가 다시 한번 나타나 이상과 현실의 영원한 차이를 설명하면서 할러를
깨우치려고 한다.
마침내 할러는 모짜르트와 괴테가 체현하고 있고, 파블로가 아무도 모르게 전
범을 보인 저 ‘불멸의 존재 ’의 비밀을 깨닫는다. 그것은 유머를 통해 경험
적 세계와 자기 자신의 하릴없는 부족함을 태연하게 인정하는 것이고 개성적인
인간이 지닌 심리적인 다양성응ㄹ 유희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유머를 택할 것
인가, 아니면 ‘불멸의 존재’의 본보기를 따를 것인가 하는 것은 ‘황야의 이
리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엄격하게 양자택일해야 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할
러는 깨닫는다. 불멸의 존재들은 유머의 천성을 지닌 자들이고, 그들이 아무리
예민하다 해도 자아와 세계의 유한성에 대해 화해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할러가 자신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암시와 함께 소설
은 끝난다. ‘언젠가는 장기말 놀이를 더 잘할 수 있겠지. 언젠가는 웃음을 배우
게 되겠지. 파블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짜르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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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이리’는 자전적 색채가 강한 헤세의 작품들 중에서도 단연 자전적
이고, 고백적인 작품이다. 이 소설의 기본 줄거리와 주요 모티프들은 대부분 헤
세 자신이 실존적 위기의 시절에 겪었던 체험들에서 건져올린 것들이다. 이 작
품이 지닌 자전적 성격은 당시 헤세의 행적을 보면 자명하다.
1924년 1월 헤세는 바젤에서 두 살 연하의 루트 벵어와 두번째 결혼을 한다.
그러나 이 결혼 또한 성격 차이 때문에 오래 가지 못한다. 결혼한 지 몇 주도
안 되어 헤세는 신부를 남겨두고 몬타뇰라로 떠난다. 그해 11월 다시 바젤로 돌
아오지만 그 후에도 그는 가구가 딸린 다락방 하나를 빌려 혼자 지낸다. ‘황야
의 이리’의 일부분은 이 다락방에서 씌어진다(헤세는 그 집과 주인 아주머니에
게서 받은 인상을 이 소설에서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그는 그해 겨울을 대학
도서관에 처박혀 보낸다. 이 시기에 이미 헤세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이따금
자살을 생각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의 두번째 결혼(결국 1927년 5
월2일 공식적으로 이혼한다)도 실패했음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1926년 초부터
그는 쮜리히에서 겨울을 보내게 된다. 그해 겨울 헤세는 한 고급 호텔의 가장무
도회에서 ‘황야의 이리’에서 묘사된 그런 에로틱하고 관능적인 환락의 도취경
을 경험한다. 그것은 고독을 돌파하려는 노년의 아웃사이더의 절망적인 시도였
다. 헤세는 1926년 초부터 융의 제자인 랑 박사에게서 다시 심리 치료를 받는다.
‘황야의 이리’는 쮜리히에서 보낸 두번째 겨울, 그러니까 1927년 1월 그의 쉰
살 생일을 얼마 앞두고 완성된다.
애인과의 별거, 낯선 도시의 다락방에 처박힌 은둔자, 우울증과 자살기도, 가
면 무도회의 관능적 환락, 정신분열 증상 등 헤세의 실존적인 위기의 체험들이
하리 할러라는 인물의 모습을 통해 이 소설 도처에 배어 있다. 소설의 결말부에
서 할러가 유머를 통해 자기 분열을 극복할 가능성을 보는 것처럼 헤세는 이 소
설을 집필하면서 자기 자신을 대상화함으로써 자신의 정신적 위기를 극복하였
다.
이처럼 ‘황야의 이리’는 허구적인 줄거리와 융의 심층심리학의 기본 사상을
빌려 헤세의 자전적인 경험을 가공한 것이다. 헤세는 자신의 삶에 있어서 이 작
품이 갖는 의미를 ‘카타르시스’라는 말로 요약한다. 이 소설은 자신과 세상에
대해 불가능한 이상을 기대했기 때문에 심각한 심리적 동요를 겪는 한 이상주의
자가 원형적인 상징 인물과의 대결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새로운 정신적
통일성과 자아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도정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을 통해 헤세
는 정신적 위기의 시기에 가졌던 비극적 세계관을 극복하고 처음으로 최고의 인
간성과 생활능력사이에 화해가 가능하다는 생각에 이른다. 할러의 정신적 발전
의 종착점인 파블로와 모짜르트와 괴테는 모두 유머를 긍정하는 인물들이고 동
시에 극도의 섬세함, 변신 능력, 내면적 조화를 지닌 인물들이다. 인간이 된다는
먼 가능성은 ‘고통’을 통해서가 아니라 ‘진지함’을 상대화함으로써 즉 ‘유
머’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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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 할러는 유머를 통해, 즉 웃는 법을 배움으로써 자아의 분열을 극복하고
‘인간’이 될 수 있는 전망을 얻는다. 이 고통의 천재는 ‘자신을 진지하게 대
하지 않는 법을 배우라’는 괴테와 모짜르트의 충고를 듣고 바블로의 ‘유머의
학교’를 거치면서 비로소 진정한 인간인 ‘불멸의 존재’에 접근한다. 그렇다
면 이 소설에서 하리 할러의 실존적 위기의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유머’의 의
미는 무엇일까?
유머는 개성이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더 이상 ‘거짓 인간’인 시민이 될 수
없고 그렇다고 성자들처럼 절대의 경지로 나아가지도 못하는 인간에게 남은 제
3의 길이다. 유머는 ‘위대한 일을 행하라는 소명을 받았으나 이를 저지당한 비
극적인 사람들의 탁월한 발명품’인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시민 사회라는 지
옥의 카오스 속에서 구원을 받으려면’ 유머라는 ‘마법의 물약’을 마셔야 한
다.
그러면 그가 비록 영원히 시민적인 것에 머물게 되더라도 동시에 고통을 견딜
수 있고 결실을 맺게 될 테니까. 그가 애증의 감정속에서 시민 세계와 맺는 관
계에는 감상이 사라질 것이고, 이 세계에 얽매여 있다는 것을 더 이상 괴로운
치욕으로 느끼지 않을 것이다.
‘황야의 이리론’에 나오는 이 예언대로, 시민 사회의 이방인 ‘황야의 이리
’는 ‘마술극장’에서 유머의 세계를 접하면서 자살의 충동을 이겨내고 다시
시민사회로 돌아간다.
주로 예술가로 대표되는 개성적 인간이 시민 사회와 갈등한다는 모티프는 사
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18세기 이래 독일 문학의 가장 중요한
모티프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토마스 만의 경우에는 거의 모든 작
품이 바로 이 모티프 주위를 맴돌고 있을 정도다. 또한 소외된 극외자인 예술가
와 시민사회 사이의 모순을 지양하는 매체로서 유머가 등장하는 것도 그다지 새
로운 시각은 아니다. 그것은 19세기 중반 이후 이른바 비더마이어 시대의 시적
사실주의 계열의 작가들이 즐겨 사용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반세기가 훨씬 지난 뒤 헤세가 이러한 비더마이어적 해결책을 다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은 작가 헤세의 문학적 발전 과정에 있어서는 결정적인 의
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유머의 세계를 거치면서 초기 작품을 특징짓던 낭만주의
적인 감상이 사라지고, 말기 작품으로 갈수록 고전주의적 조화가 두드러지기 때
문이다. 헤세는 유머의 다리를 건너 낭만주의적 세계관에서 고전주의적 세계관
으로 이행한 셈이다.
‘데미안’이래로 걸어온 내면에로의 길이 마침내 막다른 길에 이르렀을 때,
‘황야의 이리’가 간신히 찾아낸 탈출구가 유머이다. 그러나 이 탈출구 밖에서
도 존재의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유머는 존재의 위기를 체념적으로 비
켜가는 비상 출구일 뿐 그 최종적인 해결책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헤세는 ‘유
리알 유희’에서 카스탈리엔이라는 미래의 이상향을 통해 궁극적인 해결의 전망
을 모색하게 된다.
7
‘황야의 이리’하리 할러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선 할러의 정신적 위기가 단순히 한 기인의 개인적인 위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서 찾아야 한다. ‘할러가 앓았던 영혼의 병은 한 인간의 괴팍한 생각이 아니라,
시대의 병리 그 자체’이고 ‘할러가 속한 저 세대의 노이로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두 시대 사이에 끼인자들’의 정신적 상처이다.
인간의 삶이 정말로 고통으로 변하는 것은 두 시대, 두 문화, 두 종교가 교차
할 때뿐입니다. 지금은 한 세대 전체가 두 시대 사이에, 두 개의 생활 양식 사이
에 끼여, 어떤 자명한 이치도, 도덕도, 어떠한 안정감도, 순수함도 상실해 버린
시대입니다.
여기서 헤세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물론 20세기 초‘모든 가치의 전도’
(니체)를 특징으로 하는 혼돈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서구의 고전적 인문주의자
의 위기 의식이지만, 이는 20세기 말 ‘새로운 개관 불능’(하버마스)의 세계에
서 방황하는 우리들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
나아가 ‘황야의 이리’는 정신분열을 앓는 한 미치광이 지식인의 처량한 몰
골이 아니라, ‘테크노피아’라는 허상을 맹신하며 기실 정신적으로는 무섭게
황폐해져만 가는 ‘미국식 인간’을 거부하는 사람들 모두의 내면 풍경일 수도
있다.
사실 세상이 옳다면, 다시 말해 카페의 음악이나 대중의 향락이나 값싼 만족
에 길들여진 이런 미국식 인간들이 옳다면, 내가 틀렸고, 내가 미친 것이다. 그
렇다면 나는 정말로 말 그대로 황야의 이리인 것이다. 나야말로 고향도, 공기도,
양식도 찾지 못하는 짐승, 낯설고 알 수 없는 세상에 길을 잘못 들어선 짐승인
것이다.
감각적이고 향락적인 소비 문화가 인문학적 감수성과 비판적 성찰에 뿌리를
둔 정신 문화를 급속도로 잠식해 가는, -헤세식으로 말하면-정신없이 ‘미국화
’되어가는 한국의 현실에서 이 소설이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은 어쩌면 무척 절
실한 것일 수도 있다. 이 광풍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고
집하는 자는 ‘황야의 이리’가 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1997년 7월
김누리
헤세연보
1877 7월 2일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 주의 칼브 Calw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남. 외조부는 유명한 인도학자이자 선교사인 헤르만 군더르트.
1881-1886 부모와 함께 스위스 바젤에 거주. 1883년에는 스위스 국적 취득(그
전에는 러시아 국적이었음).
1886-1889 칼브로 되돌아와, 학교에 들어감.
1890-1891 괴핑엔에 있는 라틴어 학교에 다님. 뷔르템베르크 국적 취득
1891-1892 마울브론 수도원학교에 입학. 7개월 뒤 도망침. ‘시인 이외에는 아
무것도 되지 않고자 했기 때문에.’
1892 자살 기도(6월), 슈테텐 신경과 병원 입원(6월-8월). 칸슈타트 인문고등학
교 입학.
1894-1895 칼브의 시계공장에서 실습
1895-1898 튀빙엔 헤켄하우어 서점에서 책거래 견습. ‘낭만적인 노래들
Romantische Lieder'출간.
1899 소설 ‘고슴도치 Schweinigel' 쓰기 시작(원고 미발견). ’한밤중 이후의
한시간 Eine Stunde hinter Mitternacht'출간
1901 첫 이탈리아 여행(플로렌스, 제누아, 피사, 베니스)
1902 ‘시집 Gedichte'출간.
1903 두번째 이탈리아 여행(플로렌스, 베니스).
1904 ‘페터 카멘친트 Peter Camenzind' 출간. 마리아 베르누이 Maria
Bernoulli와 결혼. 연구서 ’보카치오 Boccaccio'와 ‘프란츠 폰 아시시 Franz
von Assisi'출간.
1905 첫 아들 브루노 Bruno 출생.
1906 ‘수레바퀴 아래서 Untern Rad' 출간. 잡지 ’'삼월 Marz' 창간
1907 중단편집 ‘이 세상에 Diesseits'출간.
1908 중단편집 ‘이웃들 Nachbarn'출간.
1909 둘째아들 하이너 Heiner 출생.
1910 장편 ‘게르트루트 Gertrud'출간
1911 시집 ‘도중에 Unterwegs' 출간. 셋째아들 마르틴 Martin 출생. 인도여
행.
1912 단편집 ‘우회로들 Umwege' 출간. 스위스 베른으로 이주.
1913 ‘인도에서. 인도여행의 기록 Aus Indien. Aufzeichmungen einer
indischen Reise' 출간.
1914 장편 ‘로스할데 Robhalde'출간. 전쟁 초에 군 입대를 자원하였으나 복
무 부적격 판정을 받아, 베른에서 ’독일 포로 구호‘기구에 복무하며 전쟁 포
로들과 억류자들을 위하여 잡지 발행. 자신의 출판사를 만들어 1918년에서 1919
년까지 스물두 권의 소책자를 펴냄.
1914-1919 수많은 정치적 논문, 경고호소문, 공개서한 등을 독일, 스위스, 오스
트리아 신문 잡지들에 발표
1915 ‘크눌프. 크눌프 삶의 세가지 이야기 Knulp. Drei Geschichten aus dem
Leben Knulps'출간. 단편집 ’길가 Am Weg', 신작 시집 ‘고독한 사람의 음악
Musik des Einsamen'’, 단편집 ‘청춘은 아름다워라 Schon ist die Jugend' 출
간.
1916 부친 사망, 아내와 막내아들의 병으로 신경쇠약 발병. 첫 심리치료 받음.
1919 정치적 유인물 ‘차라투스트라의 귀환. 어느 독일인이 독일 젊은이들에
게 보내는 한마디 Zarathustras Wiederkehr. Ein Wort an die deutsche Jugend
von einem Deutschen'익명 출간, 이듬해 베를린에서 실명 출간. 스위스 테신 주
의 몬타뇰라로 이주. 1931년까지 거주. ’데미안. 한 젊음의 이야기 Demian. Die
Geschichte einer Jugend'를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출간. ‘동화
Marchen'출간. 잡지 ’새로운 독일적인 것을 위하여 Vivos voco' 창간 발행.
1920 색채 소묘를 곁들인 열 편의 시 ‘화가의 시들 Gedichte des Malers', '
방랑 Wanderung', 단편집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Klingsors Letzter
Sommer' 출간. ‘혼돈을 들여다보기 Blick ins Chaos'라는 제목으로 도스토예
프스키에 대한 에세이 출간.
1921 ‘시선집 Ausgewahlte Gedichte' 출간. 창작 위기. C.G.융의 정신분석 받
음. ’테신에서 그린 수채화 11점 Elf Aquarelle aus dem Tessin'출간.
1922 ‘싯다르타 Siddhartha' 출간.
1923 ‘싱클레어의 수첩 Sinclairs Notizbuch' 출간. 마리아 베르누이와 이혼.
1924 스위스 국적 재취득. 루트 벵어 Ruth Wenger와 재혼.
1925 ‘요양객 Kurgast'출간.
1926 ‘그림책 Bilderbuch' 출간. 프로이센 예술원 문학부노가의 국제위원으로
선출됨.
1927 ‘뉘른베르크 여행 Die Nurnberger Reise', '황야의 이리 Der
Steppenwolf' 출간. 50회 생일. 후고발이 쓴 헤세 전기 출간. 루트 벵어와 이혼.
1928 ‘관찰 Betrachtungen'과 ’위기. 일기 한 토막 Krisis. Ein Stuck
Tagebuch' 출간.
1929 신작 시집 ‘밤의 위로 Trost der Nacht'출간.
1930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NarziB und Goldmund' 출간.
1931 니논 돌빈 Ninon Dolbin과 재혼. 몬타뇰라 거주. ‘내면으로의 길 Weg
nach innen'출간.
1932 동방순례 Die Morgenlandfahrt 출간.
1932-1943 ‘유리알 유희 Das Glasperlenspiel'집필.
1933 '작은 세계 Kleine Welt' 출간
1934 시선집 ‘생명의 나무에서 Vom Baum des Lebens’ 출간.
1937 ‘기념첩 Gedenkblatter', '신시집 Neue Gedichte', '마비된 소년 Der
lahme Knabe' 출간.
1939-1945 헤세의 작품이 독일에서 불온하다고 간주되어 ‘수레바퀴 아래서
’, ‘황야의 이리’, ‘관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더 이상 인쇄되지
못함. 히틀러 집권 기간인 1933-1945년 사이 독일에는 총 20권의 헤세 저서가
나와 있었는데 12년 동안 총 481권의 문고본밖에 팔리지 않음. 그래서 전집은
스위스 프레츠&바스뭇 출판사에서 펴냄.
1942 ‘시집 Gedichte'이 헤세의 첫 시전집으로 나옴(취리히).
1943 ‘유리알 유희 Das Glasperlenspiel' 출간.
1945 시선집 ‘꽃 핀 가지 Der Blutenzweig'', 미완성 소설 ’베르톨트
Berthold', '꿈의 여행 Traumfahrte'출간.
1946 ‘전쟁과 평화 Krieg und Frieden' 출간. 헤세의 작품이 다시 독일에서
나오기 시작함. 프랑크푸르트 시의 괴테상 수상. 노벨상 수상.
1951 ‘후기 산문 Spate Prosa'과 ’서간집 Briefe'출간.
1952 75회 생일 기념으로 선집 발간.
1954 동화 ‘픽토르의 변신 Piktors Verwandlungen'출간. ’헤르만 헤세-로
망 롤랑 서한집 Briefwechsel : Hermann Hesse-Romain Rolland' 출간.
1955 후기 산문 ‘마법 Beschworungen'’ 출간. 독일 서적상의 평화상 수상.
1956 헤르만 헤세상 재단 설립(바덴 뷔르템베르크 독일 예술후원회).
1962 바이블러의 헤르만 헤세 전기 ‘헤르만 헤세. 한편의 전기’나옴. 8월 9
일 몬타뇰라에서 사망. 이후 독일에서 많은 작품들, 연구서들이 나옴.
김누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교 인문대 독문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독일 브레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서울대 강사.
논문으로 ‘비유냐 진정성이냐. 귄터 그라스와 크리스타 볼프 연구’, ‘통일 독
일의 문학 논쟁’, ‘동서독 문학의 통일성에 대하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