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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인천교구 오정동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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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안식 하느님의 집 스크랩 남양성모 성지 (10월은 묵주 성월)
안미화엘리사벳 추천 0 조회 20 08.05.06 23:2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06년 가을/[필구 아오스딩] (출처- http://cafe.daum.net/Coreansanctus)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07년 추석명절/[필구 아오스딩] (출처- http://cafe.daum.net/Coreansanctus)
    

남양성모성지 (출처- http://info.catholic.or.kr/)

남양성모성지는 병인년(1866년) 대박해 때 이름 없이 치명하신 많은 
순교자들을 현양하는 순교성지이며, 1991년 10월 7일 성모 마리아께 
봉헌되고, 한국 천주 교회에서는 처음으로 성모성지로 공식 선포된 
곳이다.  

원래 1866년 병인박해 당시 무명의 신앙 선조들이 순교한 순교 성지인 
남양 성지는 91년 10월7일 정식으로 성모님께 봉헌됨으로써 한국 교회 
사상 처음으로 성모 마리아 순례 성지로 선포됐다. 
(글 출처-  http://www.paxkorea.co.kr)




남양 성모성지 (출처- http://cafe.daum.net/Coreansanctus)




남양 성모성지 

성모 성지란 교회가 공식적으로 성모 성지로 선포한 곳을 의미한다. 
현재 전 세계에 1천7백29곳이 있는데 그중 성모가 발현한 곳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인도네시아에 각각 두 곳, 
중국과 말레이시아에 각각 한 곳이 있고, 베트남에는 네 곳, 필리핀
과 인도에는 여섯 곳이 각각 있다. 




남양 성모성지

남양 지역은 지리적으로 서해안의 군사적 요충지의 위치를 갖고 중국과의 
연락이 용이하기 때문에 조선시대에 많은 교인들이 찾아 들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또한 남양과 이웃해서 백학 교우촌이 있던 것도 이곳이 
순교지가 된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이다. 

옹기를 구워 팔던 백학 교우촌에서는 지금도 가마터와 그릇 조각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이 교우촌은 왕림과 큰 들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고 
안양 수리산, 양지 골배마실, 안성 미리내, 진천 배티, 걸매리(현 충청
남도 아산시 걸매리) 등과 걸어서 하루 거리에 위치해 박해 당시 쉽게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조선조 때 남양은 도호부가 있던 곳으로 지금의 남양성모 성지 자리는 
병인년 대박해 때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붙들려와 남양 옥에 갇혀서 
갖은 고문과 매 질로 배교를 강요당하고, 배교하지 않을 경우 처형 
당했던 장소이다.





예수성심상





성모자상




로사리오 성모동산




로사리오 성모동산 성모상




성모와 양




로사리오 성모동산




묵주의 길





묵주의 길 (출처- http://info.catholic.or.kr/)




교황 요한 바오로2세 축복문





교황 방문 기념비




묵주알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길 (출처-  http://www.paxkorea.co.kr)





십자가의 길




순교자와 항아리 (출처- http://info.catholic.or.kr/)

치명일기와 증언록에는 남양의 순교자들로 충청도 내포 사람 김 필립보와 
박 마리아 부부, 용인 덧옥 돌 사람 정 필립보, 수원 걸매리 사람 김홍서 
토마 네 분의 이름만이 기록되어 전하고 있지만,다음의 몇 가지 사실들로 
미루어 더 많은 신자들이 남양에서 순교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첫째, 한국 최초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중국 마카오에서 공부하다가 
열병으로 숨진 최방제 신학생 이 남양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b>둘째, 한국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의 손자인 이재의는 앵베르 범 주교에 
의해 국내파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김대건 신부보다 더 먼저 서품 될 수 
있었으나, 앵베르 범 주교가 순교함으로써 서품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김대건 부제가 입국했을 때 김대건 부제를 도왔고, 쪽배를 타고 
상해로 함께 건너가 김가항 성당에서 김대건 신부의 역사적인 서품식에 
참석하였다. 

그 후, 이재의는 김대건 신부를 모시고 다시 입국하여 1846년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다음에도 여러 방면에서 한국 천주교회의 전교에 힘쓰
다가 1868년 외국인 주교와 김대건 신부의 국내 인도를 도왔다는 죄로 
체포되어 61세로 서소문 밖에서 참수 치명 당했는데, 이런 이재의 
순교자가 성장한 곳도 바로 남양 인근의 백학 교우촌이었다. 

셋째, 황사영의 전교로 입교하여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제관득도 
남양 구포의 조카 집에서 숨어 지내다가 1801년 5월에 체포되어 1803년
에 순교했다. 

1950년대 초 까지 비봉면 쌍학 벌말에 칠헌제씨가 모여 살았던 집성촌이 
있었고,그들 가운데 천주교 신자들이 있었다는 것이 바로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넷째, 남양은 지리적으로 신앙 활동이 자유로웠던 중국과의 연락이 용이
한 서해안에 위치해 있었고,주변에 백학과 활초리 등 교우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상의 사실들로 미루어 남양에 일찍부터 신앙이 전파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조선조 당시 이곳에는 많은 천주교인들이 살았거나 드나들었을 
것이다. 

또한 남양 포졸들이 멀리 충청도에까지 가서 신자들을 붙잡아다 처형했던 
것으로 보아 기록에 남아있지 않지만, 분명 많은 신자들이 남양에서 처형 
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남양 순교자들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 는 이유는 아마도 
남양에서 치명한 대부분의 순교자들이 신분이 낮고, 정식 재판을 받지 
않았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순교자와 항아리




형구돌 (출처- http://cafe.daum.net/Coreansanctus)




경당




경당




경당 내부




경당 제대




경당 성모상 (출처- http://info.catholic.or.kr/) 




경당 성모자상




경당 성모자상




경당 감실




경당 부활 초




경당 후면 





성체 조배실 





성체 조배실





성체 조배실 성모상





성체 조배실 내부 




성체 조배실 감실 




야외 제대




야외 제대 십자가고상




야외 미사


[사진출처 : http://blog.daum.net/sunghwa/11942532 [성화사랑]


성모님의 품처럼 아늑한 남양 성모성지

남양 성지는 초대 교회 교우촌이자 처형지이며 우리 나라 유일의 성모 
성지로 잘 알려져 있다.아침 일찍 길을 나서면 모세가 홍해를 건널 때 
바닷길이 열렸듯이 매일 썰물 때면 육지까지 바다가 열려 길이 생기는 
제부도의 신비스런 광경을 함께 감상할 수도 있어 더욱 좋다. 경기도 
화성군 남양면 남양리에 위치한 남양 성모성지는 서울에서 1시간30분, 
수원에서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남양 지역은 지리적으로 서해안의 군사적 요충지의 위치를 갖고 있고 
중국과의 연락이 용이하기 때문에 조선 시대에 많은 교인들이 찾아 
들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또 백학, 활초 등 많은 교우촌이 인근에 형성돼 있었다. 옹기를 구워 
팔던 백학 교우촌에서는 지금도 가마터와 그릇 조각들이 발견되고 있
는데 이 교우촌은 왕림과 큰 들판 하나를 사이에 두고있고 안양 수리
산, 양지 골배마실, 안성 미리내, 진천 배티, 아산 걸매리 등과 걸어
서 하루 거리에 위치해 박해 당시 쉽게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남양에서 버스를 내리면 길 건너편에 '로사리오교'라는 자그마한 다리
가 눈에 들어온다. 이 다리를 건너면 '순교 남양 성지'라는 글자가 새
겨진 맷돌이 하나 서 있고 여기가 바로 남양 성지에 들어서는 입구이다.

앞쪽에 널찍한 주차장이 마련된 성지에는 곳곳에 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는데 특히 구불구불하게 키가 커 올라간 소나무들이 볼 만하다. 소나
무들 밑둥지에 정성스럽게 감아 놓은 새끼줄들은 성지에 담긴 후손들의 
정성을 보여 주는 듯해서 흐뭇한 감을 준다.

성지를 들어서는 순례자는 마치 성모님의 품에 안기는 듯한 느낌을 받는
다. 성지의 양편과 뒤쪽으로 구릉처럼 나즈막한 동산들이 성지를 감싸 
안 듯이 둘러싸고 있고 그 안으로 성지가 들어앉아 있어 아늑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주차장을 가로질러 둔덕을 지나가면 눈에 확 들어오는 '로사리오 성모님
의 동산'은 남양 성지의 자랑이다. 원형으로 펼쳐진 성지 전체가 하나의 
묵주로 꾸며져 있는데 대형 십자 고상과 성모상을 비롯해 어른 둘이 팔
을 펼쳐야 겨우 안을 수 있는 커다란 돌들로 묵주알을 만들어 놓았다.

남양 성지는 성모 성지로 선포된 후 지속적인 기도 운동을 벌이고 있다. 
묵주 기도 고리 운동은 현재 수만 명이 넘는 회원들이 매일 자신이 약속
한 시간에 15분간 5단을 바침으로써 24시간 내내 묵주 기도가 이어지게 
하고 있다. 

또 1년에 두 차례씩 실시되는 피크로스(PICROS) 운동은 며칠 동안 도보 
성지 순례를 하면서 끊임없이 묵주의 기도를 함으로써 희생과 고통을 
봉헌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낙태죄를 속죄하기 위한 기도 모임을 매주 
토요일마다 마련하고 있다.

남양 성지 순례를 모두 마치면 제부도로 가서 바닷길이 열리는 장관을 
목격할 수도 있다. 남양면에서 사강 쪽으로 계속 직진하면 20분 정도의 
시간으로 제부도에 도착할 수 있다.

제부도에 갈 때에는 사전 지식이 조금 필요하다. 하루에 두 번 썰물과 
밀물이 반복되는데 썰물 때에만 제부도로 들어갈 수 있다.제부도 서편
에 있는 2.5킬로미터의 모래밭과 그 뒤의 미루나무 숲이 볼 만하다. 
특히 썰물 때마다 6시간씩 계속해서 열리는 바닷길은 자연의 신비를 
통해 하느님의 웅장함을 보여 준다.

썰물 시간이 맞지 않을 때에는 인근 대부도를 찾아갈 수도 있다. 피서철
이면 이곳들을 찾는 인파가 많아 교통체증이 심하기 때문에 미리 적절한 
시간을 고려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가톨릭출판사, 1996]

                      - 가톨릭인터넷 굿뉴스/남양 성모성지 -

 주   소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 1704 남양 성모성지  
 전화번호 (031)356-5880 
 홈페이지 http://www.namyangmaria.org 



주님!
10월 묵주 성월은 더욱 빛나는 달이 되기를 두 손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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