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 주최로 26일까지 열리고 있는 ‘넥스트 플러스 영화축제’의 최고 화제작은 일본의 가족코미디 ‘남자는 괴로워’다. 일본 인정극의 거장 야마다 요지 감독의 작품이다. 1969년 시작해 96년 남자 주인공 토라 역의 아쓰미 기요시가 사망할 때까지 31년간 48편이 제작됐다. 코미디로는 세계 최장수물이고, 같은 감독·배우·스태프가 만들었다는 의미로도 명실상부 세계 최장수물이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남자는 괴로워’ 탄생 40주년을 기념해 10편을 상영한다. 1회 ‘토라, 우리의 사랑스런 여행자’, 최종회 ‘토라, 장미빛 인생’ 등이다. 토라는 패전 후 경제성장의 틈바구니에서 인간미를 잃지 않으려는 일본인의 초상으로 평가된다. 동년배인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정치적이고 충격적인 작품으로 세계 영화계의 이목을 끌며 ‘쇼치쿠 누벨바그’를 이끌었다면, 야마다 요지는 서민적이고 소박한 대중화법을 고수했다. 일본 영화계가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진 90년대에도 ‘일본영화에는 토라상과 고지라(괴수 시리즈물 ‘고지라’의 주인공)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만큼 서민의 삶에 밀착된, ‘국민영화’ ‘간판 브랜드’라는 얘기다.
#15일 폐막한 ‘메가박스 일본영화제’에서도 두 편의 시리즈 일본영화가 각광받았다. 괴수영화 ‘가메라’와 청춘영화 ‘기시와라 소년우연대’다. ‘가메라’ 시리즈는 65년 처음 시작돼 8편이 나왔고 탄생 30주년인 95년에 부활, 3편이 더 나온 괴수영화의 고전이다. 두 영화 모두 일본 시리즈물의 힘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장수 시리즈물은 일본만의 것은 아니다. 62년 테렌스 영 감독이 1탄을 선보인 데 이어 2008년 22탄 ‘퀸텀 오브 솔라스’까지 4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007’ 시리즈도 있다. 때마침 ‘세서미 스트리트’가 40주년을 맞았다는 소식도 들린다.
우리는 어떤가. 70년대 ‘얄개’나 ‘미워도 다시 한번’, 80년대 ‘애마부인’‘매춘’‘우뢰매’ 시리즈가 있지만 당시 인기를 등뒤에 엎은 급조된 속편의 성격이 강하다. 학원공포물인 ‘여고괴담’이 그나마 올 여름 5탄을 내놓으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방송은 사정이 좀 나아서 KBS ‘전국노래자랑’이 29년, MBC ‘뽀뽀뽀’가 28년째다. 한때 장수프로의 대명사였던 ‘가족오락관’이나 ‘전원일기’는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물론 시리즈물, 장수 프로의 존재가 항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안이한 제작의 동의어도 된다. 그러나 한 나라를 대표하며 여러 세대를 걸친 국민적 시리즈물은 얼마나 탄탄한 문화콘텐트 토양을 갖추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 나라의 ‘문화력’‘콘텐트 생산력’의 지표이자 한번 만든 ‘문화 브랜드’를 유지시켜가는 능력과도 연관된다.‘장수’가 무조건 ‘올드’한 것은 아닌 것이다.
양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