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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항해 : 안재오 박사의 유튜브 철학 교실
Unit 15-1 :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의 탄생
1. 비판전기와 비판기를 가르는 칸트철학의 분수령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그의 저서 "순수 이성 비판"으로 유명하다. 칸트는 그의 저서에서 독단주의와 비판주의를 구분했다. 독단적 철학은 신, 영혼, 자유의지와 같은 형이상학적 존재들을 추측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합리적 방법, 즉 과학의 영역에서 그들의 존재는 증명할 수 없다.
비판적인 시기 이전에 칸트는 독단적인 형이상학을 믿었다. 예를 들어 그는 <신에 대한 존재론적 증명>에 관심이 있었다.
신의 존재론적 증명은 독단적 형이상학의 이론 중 하나이다.
존재론적 신 증명 이란 신의 관념에서 신의 존재를 도출하는 증명이다. 그것은 처음에 그의 “프로슬로기온”(1077–78)에서 성(聖) 안셀무스에 의해 명확하게 공식화되었다. 이는 신의 개념 즉 신은 가장 위대한 존재이다. 그러나 이런 개념이 인간의 머리 속에서만 있고 실재로는 없다면 이는 가장 위대한 존재 라는 개념에 모순된다. 따라서 신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라는 논증 방식이다.
이처럼 칸트는 비판 시기 이전에 전통 철학에 머물렀다. 그러나 칸트는 영국의 경험주의자 데이비드 흄의 회의론을 통해 독단주의의 꿈에서 깨어났다고 한다. 흄은 실제로 외부 세계의 존재를 부정했을 뿐 아니라 인과관계의 법칙을 부정했다: 즉 사물의 경험적 연결에서 인간은 인과관계의 필연성을 추론할 수 없다 고 한다. 따라서 흄 이후는 종전의 형이상학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자연과학도 그 보편타당성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
2. 칸트 : 철학의 코페르니쿠적 혁명
그러나 나의 질문은 “칸트가 어떻게 전통적인 독단주의와 그리고 회의주의 마저 극복하고 그의 진정한 철학, 즉 비판적 관념론을 확립할 수 있었는가?” 이다.
지금까지 칸트의 사상의 발달에 있어서 그의 사상의 분수령, 즉 급격한 변화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었다.
완전히 다른 두 형태의 철학 사이에서 칸트는 1769년 그에게 "큰 빛이 주어졌다"고 고백했다. 그의 주요 작품인 《순수 이성의 비판》은 1781년에 출판되었고 루소의 “에밀”은 1762년에 출판되었다. 칸트는 루소의 "에밀"이 출판(1769)된 지 7년 후 특히 “에밀”의 "사보이 보좌신부의 신앙 고백" 에서 루소의 철학에 접했다. 이것이 바로 칸트가 본 큰 광명의 실체이다. 이것은 필자의 추측이고 그 증명은 이제 시행한다.
칸트 자신도 자기 사상의 급진적인 변화를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고 불렀다.
임마누엘 칸트에 의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나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루소의 “에밀” 이 칸트의 패러다임 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3. 루소의 철학의 핵심
루소의 "에밀"에서 작중 화자는 그의 시대의 철학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다. 그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자아의 확실성 원칙에 동의한다. 데카르트는 외부적 세계의 존재를 의심했다. 그러나 “생각하는 나” 즉 자아의 존재는 결코 의심할 수 없다. 그러나 루소는 데카르트와는 달리 쉽게 자신의 바깥세계도 의심하지 못한다고 했다. 나의 감각은 ego cogito 처럼 명백하다. 자아와 감각은 모두 내면적이기 때문에 모두 확실하다. 나의 감각은 나만큼 뚜렷하다. 게다가 자아는 그의 감각에 영향을 주거나 파괴할 수 없다. (이게 바로 루소가 버클리주의를 벗어나는 계기이다)
"생각하는 나"와 나의 감각(=외부 세계)는 둘 다 독립적으로 나란히 존재한다. 그러나 나(the I=ego)는 사물을 비교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있다. 주어진 대상들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를 아는 것은 우리의 지성 능력 안에 있다.
따라서 루소는 지성(=I or ego)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루소(Rousseau)에 의한 자아의 기능은 예를 들어 판단이나 비교를 들 수 있다. 이 자아의 능력은 "내 감각을 수집(연결)하고 판단하고 비교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 안에 있다. 단 여기서 말하는 감각이란 감정(emotion)과는 다른 것이다. 철학에서 감각이란 실은 외적인 사물을 말한다.
3. 유물론과 관념론의 화해
데카르트적인 에고와 감각의 연관성에 대한 루소의 생각은 실로 독일 관념론 철학 전체의 비밀이다.
루소는 나무나 집과 같은 외부적인 것들의 진정성을 인정한다. 이 점에서 그는 유물론자이다. 그러나 그는 세계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지성의 역할을 인정한다. 이 점에서 그는 관념론자이다.
이처럼 루소는 유물론과 관념론을 조화시킨다.
이제 내가 스스로 감지하는 것 그리고 감각기관에 작용하는 모든 것을 물질(matter)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물질의 그 부분들은 개별적인 존재에서 결합된다. 그런 개체를 나는 물체(body)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관념론자들과 유물론자들 사이의 모든 논쟁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물체에 대한 현상과 실체 사이의 차이는 환상에 불과하다. (에밀)
여기서 언급한 루소에 의한 관념론과 유물론의 화해는 이에 대한 칸트의 입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칸트의 관념론은 버클리(Berceley)와 달리 외부에서 주어지는 감각 데이터를 인정하기 때문에 "선험적 관념론“ (transcendental idealism) 이라고 불린다. 즉 칸트의 개혁적인 관념론은 ese est percipi를 내세운 버클리의 관념론과는 다르다. 루소와 마찬가지로 칸트의 "선험적 관념론" 역시 유물론과 관념론을 조화시킨다. 칸트가 새로운 관념론을 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모든 감각 데이터를 종합하는 주체 즉 생각하는 나의 기능이다. 이처럼 칸트는 루소의 수집(연결)하고 판단하는 나의 기능을 좀 더 철학적으로 심화시켜 ”종합하는 나“ 혹은 ”결합하는 나“로 발전시킨다. 이는 뒤에 나오지만 ”통각의 종합적 통일“ (synthetic unity of the manifold, synthetische Einheit des Mannigfaltigen) 라는 순수이성비판 고유의 사상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나의 모든 표상에 동반될 수 있어야 한다. (C.P.R. B 132, C.P.R은 순수 이성 비판을 말한다) Das : Ich denke, muss alle meine Vorstellungen begleiten koennen.
칸트에 의한 "I Think"즉 생각하는 자아가 나의 모든 표상에 동반된다는 것은 데카르트의 사상이라기보다는 루소의 사상을 가리킨다.
사실 칸트는 데카르트와 루소의 철학을 은밀하고 집중적으로 다루며 이는 순수이성비판 안에 있는 “오성의 순수 범주의 선험적 연역" 이라는 장에서 잘 나타나 있다.
칸트 역시 외부로부터 주어진 자료를 받아들인다, 이 점에서 그는 유물론자이다. 그러나 그는 객관적인 세계를 인지하는 데 있어서 "생각하는 나"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 정도까지 칸트는 실제로 루소를 흉내낸다.
칸트에게 왔다는 "큰 빛"은 실로 루소의 에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의 "생각하는 나"에 대한 이해는 루소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루소의 지성이나 "생각하는 나"는 비교와 판단의 역할을 담당한 반면, 칸트의 "생각하는 I"는 과학적 지식을 가능케 한다.
칸트는 생각하는 자아의 기능을 모든 감각, 표상(表象)에 수반되는 "순수한 통각"이라고 말한다.
# 표상(表象) : 표상이란 말은 감각이나 생각 혹은 개념 등 가장 광범위한 존재의 영역을 가리킨다. 달리 말하면 주관적인 측면에서 고려한 모든 존재를 말한다. 보통은 “존재(存在)” 혹은 “유(有)”란 말이 있지만 이는 “나 밖에 있다: 혹은 ”나와 관련없이 있을 수 있다“ 는 뜻을 의미하기 때문에 인식비판적인 측면에서는 피하고 싶은 말이다. 표상 – 나와 관계된 모든 존재
4. 수집(연결)하는 나와 다양성의 종합적 통일
앞서 언급했듯이 칸트의 모든 표상에 수반되는 "I Think"는 실제로 루소의 지성 개념에서 비롯되었다. 루소의 지성 역시 자아의 능동적 기능을 말한다. The active role of I = Intelligence by Rousseau.
루소는 내 감각을 수집(연결)하고 비교하는 정신의 힘에 대해 말했다. 루소에 의해 나의 감각을 수집하고 비교하는 이 힘은 그 감각들의 대상이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한다.
내 감각을 연결하고 비교하는 그 정신의 힘에 어떤 이름이 주어지든 간에 - 그것을 주의력, 명상, 성찰, 또는 당신이 좋아하는 무엇이라 부르든 - 그것이 그 감각의 대상이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에밀)
그러나 칸트는 루소에 의한 자아의 수집(연결)기능을 주체 자체의 결합기능으로 재해석했다.
모든 표상 중에서 결합의 표상은 사물을 통해서 주어지지 않고 주체 자체만으로 실행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자기 활동의 행위이기 때문이다.(C.P.R B 130)
루소와 유사하게 칸트는 자기 활동의 기능을 주체에 귀속시킨다.
이런 전통은 실은 플라톤 이래 주장되어 온 것이다. 즉 영혼은 자기 활동이 있다는 것이다.
칸트는 루소에 의해 주장된 “정신은 대상의 수집(연결)기능이 있다는 사상을 "다양성의 종합적 통일"로 개념화했다.
이것이 칸트가 철학 발전에 기여한 큰 공헌이다.
결합은 다양성의 종합적 통일을 나타낸 표상이다. < C.P.R. B I31> Verbindung ist Vorstellung der s y n t h e t i s c h e n Einheit des Mannigfaltigen.
다양성의 종합적 통일 기능은 순수통각 혹은 생각하는 나에 귀속된다.
"생각하는 나" 또는 "순수한 통각"은 자발성의 행동으로 이해된다. 순수 통각은 주어진 다양한 감각 자료들을 통일하여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을 산출한다.
# 통각(統覺, 영어: apperception)이란, 심리학, 철학, 인식론에서의 개념이다. 이는 라틴어의 ap-(ad-) "를 향하여"와 percipere "지각, 이해"의 합성에서 유래한 말로, 일반적으로 자신의 상태나 스스로의 경험 등 자신의 내면적인 것을 조회하고 이해하는 것을 가리킨다.
5. 데카르트, 루소, 칸트
깊고 철저한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그의 깨달음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의 걸작인 순수 이성 비판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12년이 필요했다.
칸트는 루소의 단순하지만 혁신적인 사고방식에 의해 현저하게 깨우쳐졌다. 주체와 사물의 상관관계를 통해 그는 전통적인 독단적 형이상학뿐만 아니라 흄의 회의론도 극복할 수 있었다. 칸트는 루소 적분에 데카르트적인 지평선을 떠나지 않고 존재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확립하려고 시도할 수 있었다.
첫댓글 요약
철학의 항해 : 안재오 박사의 유튜브 철학 교실
Unit 15-1 :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의 탄생
칸트의 철학은 비판철학 혹은 선험적 관념론이라고 부른다. 비판철학이란 인간의 인식의 한계를 알고 그 안에서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독단주의란 인간 지식의 한계를 모르고 형이상학적인 실체 즉 신, 영혼 혹은 자유의지 등을 가정하는 철학이다. 칸트는 초기에 독단주의에 빠져있다가 나중에 비판주의를 주장하여 그의 최고의 저서 <순수이성비판>을 저술했다.
그러나 나의 질문은 “칸트가 어떻게 전통적인 독단주의와 그리고 회의주의 마저 극복하고 그의 진정한 철학, 즉 비판적 관념론을 확립할 수 있었는가?” 이다.
지금까지 칸트의 사상의 발달에 있어서 그의 사상의 분수령, 즉 급격한 변화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었다.
완전히 다른 두 형태의 철학 사이에서 칸트는 1769년 그에게 "큰 빛이 주어졌다"고 고백했다. 그의 주요 작품인 《순수 이성의 비판》은 1781년에 출판되었고 루소의 “에밀”은 1762년에 출판되었다. 칸트는 루소의 "에밀"이 출판(1769)된 지 7년 후 특히 “에밀”의 "사보이 보좌신부의 신앙 고백" 에서 루소의
철학에 접했다. 이것이 바로 칸트가 본 큰 광명의 실체이다. 이것은 필자의 추측이고 그 증명은 이제 시행한다.
칸트 자신도 자기 사상의 급진적인 변화를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고 불렀다.
임마누엘 칸트에 의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나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루소의 “에밀” 이 칸트의 패러다임 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유튜브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