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은 끌리고(引), 오대산은 편하고(安), 지리산은 모르겠다(不知)라고들 말한다.
지리산을 수백번이나 찾았다는 지리산 도사들도 열이면 열 지리산은 [모르겠다]고
답한다. 지리산은 크고 넓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산이다.
지리산은 어머니 같은 산이란 말도 있지만 왠지 지리산을 한 동안 찾지 않으면 목마른
갈증처럼 지리산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다.
그동안 지리산은 종주로만 여러번 다녀 왔는데 이제는 코스별로 골고루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코스가 대성골 코스였다.
영등포에서 무궁화호 기차(08시 57분)로 구례구역까지 가서 (1시 37분 도착) 다시
버스로 구례 터미널까지 갔다. 잠시 기다리다 2시 10분 화개행 버스를 탔다.
얼마 가지 않아 화개 장터에 도착, 의신행 버스는 4시에 있었다.
두 시간 가량 기다려야했다. 우선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는데 기대하지도 않았던
제첩 정식이(5,000원)이 맛있었다.
천천히 점심을 먹고 났는데도 시간은 한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화개장은 옛날같지 않아 한산하다는데 더구나 장날도 아닌 날이니 구경할 거리도 별로 없었다.
그냥 강가를 내려다보며 차 시간을 기다려야했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의신행 버스가 왔는데 승객은 우리 일행 두 명 외에 딱 두 명뿐이었다.
그나마 중간에서 내리니 의신까지는 우리 두 사람만 타고 갔다.
20분쯤 달려 의신에 도착했다. 자그마한 마을에 민박집이 몇 채 있었다.
대성골 입구를 찾아 곧바로 출발했다.
짊어진 배낭이 13Kg, 어깨가 뻐근했다.
이번 산행은 거북이 산행을 하기로 했으므로 아주 천천히 구경할 것 다 봐 가며 걸었다.
대성마을까지는 1시간 20분 거리였는데 길은 숲길이어서 걷기에 부담스럽지 않았다.
▲ 대성골 가는 오솔길
▲ 대성골 가는 길가 계곡
대성골은 1952년, 1월 17일은 온골짜기에 함박눈이 내렸는데 지리산에 있던 모든
빨치산들이 대성골로 모여들었는데 빨치산 토벌대들이 야포를 무차별로 발사하기
시작해서 순식간에 대성골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게다가 비행기에선 휘발유를 가득 담은 드럼통들을 삐라처럼 부리고 다녔다.
그러다 맨 마지막 편대에서는 소이탄을 퍼부어댔다.
순식간에 대성동은 불바다로
변했다. 대성동 전투를 통해 빨치산은 완전히 전멸되다시피했다고 한다.
현재 대성동은 사방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협곡 속에 자리해 있는데도 답답함 보다
는 되레 아늑함으로 다가오는 이곳은 혼자만의 조용한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픈 곳이기도 하다.
대성동엔 민박집이 딱 두 집 있는데 [지리산 대성골 휴게소] 주인인 김기식님댁 외에
또 한 집이 있다. 우리는 김기식님댁에 묵기로 했느데 할머니 혼자 살고 있었다.
마당엔 사슴 머리처럼 생긴 나무 홈통을 통해서 차고 시원한 맑은 물이 온종일 콸콸
흘러 내리고 있었다.
▲ 사슴 머리 모양의 나무 주둥이에서 샘물이 흐른다.
▲ 또 다른 나무로 만든 물 홈통
▲ 할머니가 따다 말리는 표고 버섯
▲ 사람들에게 부대끼지 않아서 그런지 낯선 사람을 보고도 짖지 않던 개
마당앞에서 흘러 내리는 차디찬 물을 한 바가지 퍼서 마시고는 세수를 하니까 물이
얼마나 좋은지 비누기가 아무리 씻어내도 매끈매끈하다.
저녁할 동안 가까이에 폭포가 있다는 말을 듣고 할머니께 여쭤 봤더니 계곡 건너서
10분 거리라고 한다. 배낭을 벗어 놓고 카메라만 들고 폭포를 찾아 갔다.
이 곳을 찾는 등산객들은 대개 이 폭포를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징검다리를 건너서 십분쯤 산모통이를 돌아 가니 정말 폭포가 있었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찾아 간 수고에 답해 주기엔 충분하다.
▲ 수곡 폭포를 보러 가던 길에 본 함박꽃
▲ 같이 간 동생, 수곡폭포 앞에서
▲ 수곡 폭포(등산객들이 대개 모르고 지나친다)
폭포를 구경한 뒤 할머니댁으로 돌아 오니 저녁상이 차려져 있었다.
▲ 청국장이 가운데 놓인 웰빙 밥상^^*
5,000원짜리 청국장 백반을 시켰는데 청국장 맛이 일품이었다.
할머니가 직접 뜯어온 산나물이며 고사리, 도라지, 묵은 김치, 새콤 달콤한 깍두기,
무생채나물, 들기름에 볶은 콩나물, 갓따온 풋고추와 상추..어느것 하나 맛없는 게
없었다. 할머니가 밥을 더 갖다 주시겠다는 걸 사양하고 하동 녹차로 입가심을 했다.
할머니는 백무동에서 태어나셨는데 열다섯살에 이 곳으로 시집 오셔서 열여섯살에
아이를 낳은 걸 시작으로 10남매를 낳아 기르셨다고 한다.
모두들 서울을 비롯한 대처에 나가 살고 아들(김기식) 하나가 의신 마을에 살며 자주
둘린다고 했다. 올해 일흔 셋이라는 할머니는 혈색도 좋으시고 아주 행복해 보였다.
저녁에 마당에 나서니 음력 초 이레 달이 맑은 하늘에 그림처럼 떠 있었다.
산골이어서 으스스하고 추웠다.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하고 자리를 깔았다.
대개 민박집에 묵으려면 이부자리가 게름칙한데 이 곳에선 할머니가 깔끔한 탓인지
이부자리가 보송보송한 게 너무 기분 좋았다.
네 활개 펴고 누우니 이 세상에 부러울 게 없었다.
밤새 계곡 물 소리와 마당의 샘물 소리가 하모니를 이루는 가운데 단잠을 잤다
☞교통편
영등포 무궁화 오전 8시 57분 구례구역 ..20100원 (경로 14,000원)
구레구역에서 구례구 버스 터미널 850원
구레에서 화개까지 (2시 10분) 1400원
화개에서 의신까지 (오후 4시) 1300원
의신에서 대성골까지 걸어서 1시간 20분
대성골 민박 20,000원
청국장 식사 5,000원
대성골 민박 연락처 055-883-0835
011-599-0835
첫댓글 누이 수고하셨습니다...
세부적인?? 치밀한..?? 지리산행을 꿈꾸어 봅니다...
다녀오신 코스 집사람하고 여름 휴가에 가볼까나??? 좋은 안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