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가족여행
다른 친구들 특히 정년퇴임한 친구들은 부부여행도 많이 하는 편이라 때론 부러움을 사기도 하였다.
집사람의 형제자매간 단합여행이 두 차례 실시되었다지만 참여하지 못하였다. 이번 세 번째는 ‘월남전’ 참전으로 우리와는 인연이 깊은 상하의 나라 베트남이 행선지였다. 퇴직 후라 참석 못할 변명의 이유도 마땅찮고 건강도 다소 회복된지라 전번 일본여행에 참여 못하여 미안감도 있었다. 집사람의 체면과 기를 살려주기 위하여서는 참석해야할 형편이었다.
남녀 반반씩인 8남매 가족 중 배우자 합해 8쌍의 대상자중 한분을 제외하고 15 분이 참석예정이었으나 갑작스런 사정으로 한사람이 자녀로 대체된 것 외에 열다섯 분 그대로였다.
전번에 장인제사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형제자매간 우애가 깊고 특히 돌아가신 숙부를 대신해 숙모님께서 제참한 것을 보고 그때 가족 및 친척 간 우애가 깊어 집안이 흥복을 받을 것이라 느낀 그대로였다.
정초부터 3일 저녁 9:35분 김해공항 출발로 00:10 다낭국제공항에 도착하여 무영탄 다낭호텔로 가서 소주 한잔으로 피로를 풀고 잠에 빠졌다. 집사람은 잠자리가 바꿔서인지 잠을 별 이루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침 느지막하게 베트남 최대불상인 중국의 영향을 그대로 받은 듯한 해수관음상(속리산 보은사 미륵상이나 부산 용궁사 미륵보살보다 확실히 큰)이 자랑인 영응사(한자표기)를 관광하였다. 인접의 손짜반도의 해변만 40Km에 달한다는 야간에 시간이 남아 다시 한 번 더 들린 미케비치를 관광했으나 휴양도시로 크게 발전하고 있다지만 다낭시의 해변은 모래밭과 띄엄 띄엄 야자수는 서있었지만 계절 탓인지 아직은 수영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점심 후 옛 도시인 유네스코 보호지정인 호이안 구시가지의 전통거리 관광에 나서 작은 개천을 사이에 두고 천년의 영향을 받은 중국풍과 3,4년의 영향을 받은 일본풍의 집과 다리 등의 차이점을 마침 집사람과 같이 살펴보다가 일행을 놓쳐버렸다. 버스내린 곳으로 다시 갔으나 버스도 가버리고 없고 하여 망설이고 있는데 큰처남에게서 전화가 와서 안내에 따라 우리 때문에 조금 지체되었지만 합류할 수가 있었다. 가랑비 내리는 몇 대의 유람선이 떠도는 투본강 유람선투어를 마치고 목공예마을과 도자기마을을 둘러보고 우리 일행들은 목공예선물들을 구매하기도 하였다.
시가지로 와서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상항에서 시클로(자전거 인력거)를 타고 베트남 서민들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야시장을 둘러보았다. 나이 든 편인 큰처남과 나는 일행들이 야시장 쇼핑을 하는 동안 노천카페에서 생맥주를 들면서 두 가수들의 열찬 공연을 들으며 박수를 보내기도 하였다.
1부 공연이 끝난 후 예정시간보다 일정이 조금 지체되었지만 이번에 대우조선에서 임원으로 정년퇴직하였다는 3째 처남의 부인생일이라 미리 부탁한 축하 연주와 케익으로 국제적인 갑작스런 생일이벤트를 한호 속에 마치게 되었다. 예정된 마사지 서비스에 옵션을 더하여 모두 전신마사지를 받았는데 나는 과거에도 동남아 여행에서 발마사지는 받은 적이 있지만 전신마사지는 처음이었다. 피로회복과 시원함을 느끼게 되는 것으로 보아 역시 나이 들어 늙어가는 모양이다.
다음날은 일찍부터 서둘러 현지시각 7시도 못되어 후에시로 이동하여 휴양시설인 바나산 국립공원의 기네스북에 등재된 6Km가 넘는다는 세계기록의 케이블카를 탑승하여 비 내리고 안개 낀 울창한 바나산을 오르면서 큰동서의 월남전 참전과 고엽제 피해 등을 이야기로 나누었다. 정상에서는 프랑스식으로 잘 마련된 휴양시설로 놀이시설(무료)중 회전목마와 놀이자동차 등등을 집사람과 처음으로 동심이 되어 합승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점심은 현지식 해산물샤브샤브이었는데 상식이 매우 풍부하고 쇼핑을 강요하지 않는 것 같은 친절한 가이드는 기대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국물에 우리식 된장이 조금 풀어진 것 같아 오히려 입맛을 돋워 반주 한잔인 소주와 궁합이 맞았다.
과거에는 이동이 어려웠던 하이반 고개를 넘어 유적지와 우리보다 규모가 훨씬 큰 왕릉(카이딘, 투턱왕릉)을 관람 후 바닷가 전망 좋은 중국풍인 ‘천무사’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 동굴 등을 관광했는데 대부분 사찰 등은 중앙에 세 부처님들이 모셔져 있었다. 오후에는 베트남 고유의 여러 유적지를 관광하고 저녁에는 한정식의 된장찌개와 제육볶음이 제공되었는데 곁들인 상추쌈에 돼지볶음이 맛이 제대로 되어 소주잔 기울이기에는 한껏 분위기를 돋우었다. 저녁에는 발 마사지 후 파크 부 호텔에서 피로를 풀었다.
마지막 일정이다. 그 나라의 역사와 고유문화를 대충 짐작할 수 있는 베트남 마지막 왕조인 후에 왕궁 투어다.
전동카를 6명씩 타고 정말 넓은 왕궁을 둘러보는 관광인데 공간에 비하여 시설물들은 화려하지 않은 느낌이다. 중국풍으로 전정 앞에는 정1품에서 종 3품(당상관) 그 아래 품계까지 우리나라와 똑 같은 식으로 한자로 된 품계비가 세워져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아니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인 여행객이라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한국 말투성이다.
궁전을 다니다 보니 아마 영화촬영중인 것 같았는데 잘생긴 남녀의 촬영장면을 볼 수 있었는데 베트남 TV 방송에서도 한국 드라마 등 한류가 열풍이란다.
지난밤에도 TV에서 한국의 박대통령 얼굴이 비춰지고 우리나라 현사태가 뉴스거리로 이 무슨 망신으로 나라를 나락으로 빠트리는 시위나 행위들이 극성을 부리는지 나라 발전을 위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일들이다.
오후에는 주 교통이 오토바이지만 중고산 국산버스(한글이 그대로 쓰여 있음)와 일본산 보다는 띄엄띄엄 보이지만 한국산 자동차도 많이 다니고 LG나 특히 삼성의 광고판이 많이 보여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느끼며 다낭시로 다시 되돌아 왔다. 별 기억에도 남지 아니할 것 같은 프랑스식 천주교성당과 여러 종교를 종합한 중국식 까오다이교 사원을 둘러보고는 여자들이 좋아만 하는 본격적인 활기를 띄는 쇼핑센터를 방문했다. 집사람은 내 눈치를 보는 라고 쇼핑도 자제하는 것 같아 다소 연민의 정이 느껴진 것 같다. 석식을 하고는 다시 한 번 합동 전신마사지를 받고는 현지시각으로 00시 55분 비행기 탑승을 위하여 생각보다는 잘 갖춰진 다낭 국제공항에서 두 시간 정도를 어영부영하였다.
많은 국가적 자원과 농사에 알맞은 탁월한 기후에도 발전이 늦었지만 우리 관광객으로선 물가가 저렴하다고 실감되었다. 우리나라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 육칠십 년대의 내 친구들의 월남전 참전을 떠올려보면서 그 당시 전쟁 중 단합 안 된 월남의 티우 정권의 부패와 혼란으로 패망하여 지금은 개방시책으로 발전도상국으로 전진하고 있는 공산화된 베트남 여행을 잘 마쳤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정치꾼들의 추태로 국가발전과 안위를 국민의 한사람으로 심히 염려하면서 김해 공항에 7시반경에 도착하여 또 다른 다음의 뜻있고 즐겁고 여행을 기대하며 무사히 해단식을 하였다. 모두들 수고 많았습니다. 또 다음 기회를 위하여 건강들 하십시오.
2017년 1월 9일, 역시 제일 편한 서재에서. 최 주 수 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