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을 통해 본 여성 복지의 이해
나자렛성가회 후원회원님들 안녕하셨습니까?
지금까지 ‘영화를 통해 본 사회복지의 이해’라는 주제로 소식지를 쓰기 위해 제가 선택한 영화들은 온 가족이 함께 봐도 크게 무리가 없을 영화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소식지의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와서 어린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는 적절치 않은 영화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소재로 글을 쓰는 것을 많이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볼 수 있는 한 여성의 학대 경험, 그리고 그 주변의 무관심은 현재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서 고통 받고 있는 많은 여성 학대피해자들의 경험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어서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영화의 포스터에는 “넌 너무 불친절해!”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위에 있는 많은 여성 학대피해자들이 우리를 향해 부르짖는 외침입니다.
영화의 배경은 무도라는 섬입니다. 그 곳에는 다섯 가구, 아홉 명의 인물이 살고 있습니다. 주인공 복남(서영희 분)은 남편을 포함하여 모든 등장인물들로부터 폭력과 천대를 당하고 삽니다. 복남의 남편 만종은 집으로 다방 여자를 끌어들여 보란 듯이 복남 앞에서 성행위를 하고, 남편의 친동생인 철종은 형수인 복남을 성욕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철종이 복남을 범하고 난 후면 만종은 복남에게 심한 폭력을 휘두릅니다. 게다가 시고모와 이웃 여자들은 이러한 육체적, 성적, 심리적 학대를 모두 방관하면서 평소 밭일 등 궂은일은 모두 복남에게 떠넘기기까지 합니다. 특히 시고모의 경우는 복남이 낳은 딸 연희가 누구의 씨인지도 모르는데 철종이 거두어 키워주고 데리고 살고 있으므로 복남은 그의 모든 학대를 감수해야 한다며 학대를 묵인하다 못해 합리화를 합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복남은 서울로 간 오랜 고향 친구인 해원(지성원 분)에게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내 도움의 손길을 청합니다. 그러나 해원은 복남의 편지봉투를 열어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해원은 서울에서 살인사건을 목격하고 회사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당해 잠시 몸을 피해있을 곳이 필요했습니다. 그리하여 오래도록 발길을 끊고 지냈던 고향, 무도를 찾게 됩니다.
자신을 구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손길이라 생각했던 해원이 오자 복남은 희망을 갖고 자신과 딸 연희를 서울로 데리고 가 달라고 조릅니다. 그러나 해원은 친구 복남의 상황에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불친절’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복남은 남편 만종이 딸 연희의 몸을 이상하게 더듬는 것을 목격했고, 그런 아빠의 행동이 사랑의 표현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연희를 더 이상 그대로 둘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해원의 도움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연희와 서울로 탈출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만종의 편인 무도에서 탈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결국 복남과 연희는 만종에게 붙들리고, 복남이와 만종이 실랑이를 하던 중 만종이 연희를 밀쳐 연희는 바위에 머리를 부딪쳐 죽습니다. 섬 밖에서 사건의 전말을 조사하러 온 경찰에게 온 동네 사람들은 만종을 보호하는 거짓 증언을 하고, 해원조차 복남의 기대를 저버립니다. 결국 복남은 미친 사람처럼 모두에게 복수의 낫을 휘두르게 됩니다.영화의 설정이 너무 극단적이고, 그저 흥미를 돋우기 위해 만들어 낸 이야기라고 생각하실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가정폭력을 겪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의 삶을 상징적으로 너무나 잘 표현해 낸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 가정폭력을 경험한 피해자들의 상황은 무도라는 섬 생활과 다를 바 없습니다. 주위에 그들의 말을 믿고 도와주려는 사람이 없이, 철저하게 가해자의 편에 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홀로 외로이 무관심과 학대를 버텨내야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 “왜 그러고 살아요? 빨리 그 사람과 헤어져요! 빨리 도망쳐요.”라고 아주 쉽게 말하곤 합니다. 복남이는 도망치기 싫어서, 그 상황이 좋아서 그렇게 오랜 시간 무도에 머물러 살고 있었을까요? 가정폭력 행위자의 전형적인 통제 방법은 피해자의 주변을 정리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믿고 의지할 사람을 모두 끊어 놓는 것입니다. 방법은 사랑과 관심이라는 미명 하에 이루어지는 극심한 의심과 잔소리 혹은 무시와 타박입니다. 친구들이나 친정식구들을 만나고 돌아오면 “누구를 만나서 무엇을 했느냐? 바람피우는 것은 아니냐?” 혹은 “그 친구들(혹은 친정식구들)은 왜 그 모양이냐? 그 사람들만 만나면 당신이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 그런 사람들과 쓸데없이 어울리지 마라!”등의 말로 사람을 매우 피곤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러한 말들과 함께 폭력이 병행됩니다. 결국 피해자는 폭력을 조금이라도 잠재우기 위해 가해자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의 활동만 하게 되고 주위에는 가해자의 말만 믿는 사람들만 남게 됩니다. 바로 영화 속 무도와 같은 환경이지요.
가정폭력의 가해자에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한 유형은 가족을 포함해서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분노를 여과 없이 표출하는 폭력적인 사람, 그리고 다른 한 유형은 가족만 학대의 대상으로 삼지만 나머지 행동에서는 자기 통제를 잘 하여 가족외의 사람들에게는 그지없이 올곧은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입니다. 어떠한 유형의 행위자이던 그 피해자는 행위자의 폭력과 통제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첫 번째 유형의 경우 행위자의 해코지가 무서워서 주변 사람들은 피해자를 돕는 일을 회피합니다. 두 번째 유형의 경우는 주변 사람들이 피해자의 말을 믿지 않게 됩니다. “설마 그렇게 선해 보이는 사람이, 혹은 그렇게 많이 배운 사람이, 혹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식구들을 학대할 리가 있나?”하는 생각에 피해자의 호소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국 피해자는 학대를 경험하는 초기에 주변의 도움을 청해보다가, 주위 사람들의 무관심과 불친절 속에 무도와도 같이 고립된 상황 속에서 평생을 외롭게 학대를 당하며 살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1997년 가정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었을 당시만 해도 길거리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맞고 있을 때, “내 마누라야, 내가 좀 가르치려고 하니 당신들은 상관할 바 아냐!”라고 행위자가 소리치면 어느 누구도 그를 말리지 못하고 구경만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렇게 방관하는 거리의 행인이어서는 안 됩니다. 더 이상 무도에 갇힌 복남이와 같은 가정폭력 피해자를 불친절하게 방관하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 ‘불친절한’ 이웃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가정폭력 행위자들을 알아 볼 수 있는 밝은 눈이 있어야 합니다. 앞서 언급한 행위자 유형 뿐 아니라 가정폭력의 유형들과 가정폭력의 순환, 피해자를 도울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이해하고 공부를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가회 회원님들!
회원님들께서 늘 잊지 않고 나자렛성가회를 후원해 주신 덕분에, 나자렛성가회에서는 가정폭력 피해자를 위한 보호시설과 성매매 피해여성을 위한 지원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 회원님들은 이와 같은 지속적인 관심으로 가정폭력 또는 성매매피해에 대한 이해, 행위자를 알아보는 밝은 눈, 그리고 피해자에게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키우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러기에 혹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발견하면, 성가회로 안내하여 주실 것으로 압니다. 무도와 같은 고립된 섬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폭력 피해여성이 하루 빨리 우리 주변에서 없어지기를 희망해 봅니다.
2011년 4월 1일, 대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심우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