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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8년 5월25일(금) 15;00-20;30
★참가; 73명(부부동반 20쌍, 여자 싱글1, 남자싱글 32명
★행사진행; 올림픽 공원 산책(15;00-16;50), 올림픽 파크텔축하연(17;00-20;30)
동문회는 50/70 기금 관리위원회를 조직하여 2017년은 졸업 5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였으며, 2018년은 칠순잔치 기념의 해로 설정하고 600만원의 예산을 지원 받았으나 가을 야유회를 고려할시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었다. 최준혁 회장은 동문들이 10만원 이상 찬조했을 경우에는 회비를 면제하겠다는 약조를 함으로써 기대 이상으로 많은 동문들이 참여하여 485만원의 기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금년 5월 봄 행사는 칠순잔치 축하연으로, 장미가 흐드러지게 핀 올림픽 공원을 산책한 후 올림픽 파크텔로 이동하여 행사를 거행하였다.
이번 봄 행사를 어떻게 치를 것인가? 고민과 걱정도 많이 했지만 결과론적으로 성공적인 행사로 마무리되어 가슴이 뿌듯하였다. 금년 1월 신임 회장단이 발족된 이후부터 행사준비를 위하여 각고의 심혈을 기울여 왔으며, 4회에 걸친 월례회를 통하여 임원진들과 얼굴을 맞대고 지혜를 결집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번 행사의 히로인은 뭐니뭐니해도 자발적으로 참여한 동문들과 그 가족들이었다. 그리고 찬조해 주신 동문들의 공로가 큰 힘이 되었다. 행사에 동참한 동문들과 찬조해 주신 동문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행사의 키 포인트는 행사 장소와 행사 프로그램 이었다. 행사장소는 육군회관과 올림픽 파크텔을 저울질 한 결과 결국은 올림픽 파크텔로 결정되었다. 올림픽 파크텔은 한 장소에서 산책과 연회를 할 수 있는 장점은 있으나 장소가 다소 비좁고 연회비가 비싸다는 것이 흠이 있지만 가격이 비싸더라도 올림픽 파크텔에서 실시하자는 안이 동문들의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그 다음 문제는 행사 내용의 메뉴는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였다. 칠순잔치에 어울리는 프로그램에 초점을 두고 토의한 결과 이벤트 행사 주체측에 맡기자는 안도 있었지만 예산이 많이 소요되어 제외시킬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자체적으로 행사를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가 큰 이슈였다. 대안으로 제시된것이 바로 동문들의 자녀 재능 기부였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은근히 참여해 주기를 바라던 참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4월 25일 한현찬 수석 부회장으로부터 반가운 메시지가 .날아왔다. 내용인 즉 한현찬 수석부회장의 처가 소속된 동아리회원 5명이 이번 행사에 한국 무용으로 일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백만 대군을 얻은 듯 기쁨이 하늘을 찌를 듯 하였다. 그 즉시 공연해달라고 요청하였다.
공연은 4작품으로 구성되는데 1,2작품은 연속적으로 공연하고 3,4작품은 각각 10분에서 15분 동안 옷을 갈아입고서 공연한다고 하여 3,4작품은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한현찬 수석부회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최준혁 회장은 동문들에게 일일이 초청장을 발송하여 동문들의 참여의식을 독려함으로써 기대 이상으로 동문들이 참여 하는데 일조하였다. 부부동반 20쌍, 싱글 여학생 1명(신수호부인), 싱글 남학생은 32명이었다. 축하연 행사는 1부와 2부로 나누어서 진행하였다.
1부는 국민의례, 회장 환영인사, 동문회 역사 경과보고, 축시/감동적인 글 낭송, 악사모 연주, 단체 기념사진 촬영, 만찬 순으로, 2부는 한국 무용, 퀴즈 알아맞추기, 흥겨운 노래자랑, 행운권 추첨, 교가제창, 폐회식 순으로 진행하였다. 최준혁 회장은 환영 인사에서 행사에 동참한 동문들과 찬조해주신 동문들에게 고맙다는 인삿말을 전하면서 즐거운 칠순잔치를 마음껏 즐기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문상두 전임 사무총장의 동문회 역사 경과보고, 장철훈 시인의 축시와 전인구 전임회장의 감동적인 글 낭송은 동문들에게 자긍심과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하였다.
악사모는 동문회 행사의 큰 자산으로, 이번 행사준비를 위하여 매월 2회씩 연주를 반복적으로 연습함으로써 행사에 기여한 공로가 지대하였다. 악사모 회원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 악사모 연주는 독주(김종용, 손창인, 전종하), 합주( 플릇. 피아노. 하모니카, 기타), 뚜엣(손창인, 전종하)순으로 진행하였으며, 이어서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즐거운 만찬시간을 가졌다. 오래간만에 만난 동문들이 살갑게 우정을 나누면서 웃음꽃이 만발하였으며, 여학생들이 많이 참석하여 행사 분위기를 한층 밝게 해 주었다.
그리고 유창열 전임 회장은 부인 대신 이쁜 딸과 함께 동석하여 동문들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하였다. 유창열 전임회장의 딸은 MBN에서 아나운서 생활하다가 지금은 GS홈쇼핑에서 일하고 있다. 2부 행사는 전종안 동문이 맡아서 진행하였다. 전임 회장들이 참여한 케이크 절단식에 이어서 한국 무용 공연이 펼쳐졌다. 60대 이상의 아주머니들이 펼치는 공연이지만 젊은이 못지않게 우아하고 아름다운 춤을 선사함으로써 동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국 무용 팀들에게 감사한 뜻으로 화장품세트를 증정하였다.
최재근 전임회장은 빔 프로젝트로 퀴즈 알아맞추기 문제를 다양하게 제시함으로써 흥미를 유발토록 하였다. 당첨된 동문에게는 씨놀 치약과 최재근 회장이 준비한 물병을 선사하였다. 노래자랑은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주로 여학생 3명에게만 기회를 주었으며 바디크림을 선사하였다. 그리고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행운권 추첨이었다. 그중에서 대상은 누가 차지할것인가가 최대 관심사였다. 그 주인공은 전종하 부인과 조동배 동문이 당첨되는 영광을 누렸다. 대상 품목은 마운틴 이큅먼트 남자용 29만원, 여자용 23만 3천원이다.
성동의 새종소리가 올림픽 공원의 밤하늘에 울려퍼짐으로써 막을 내렸다. 행사에 참석한 동문뿐만아니라 찬조금을 내고 참석하지않은 동문들에게도 합천 쌀 1,5kg 1봉지와 고급 행주를 선물하였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동문들의 대부분은 자체적으로 치른 행사치고는 내용이 알차고 짜임새있는 행사였다는 평가를 하였다. 그러나 행사장소와 음싯맛은 육군회관보다는 좋지않았다는 비평을 한 동문도 있었다.
어떤 동문은 칠순잔치 기념인데 기념 타월이라도 준비했어야 되는데 하는 아쉬운 표정을 짓기도 하였다. 차기 행사시 반영하여 쾌적한 환경과 입맛을 사로잡는 장소를 선정하도록 노력할 방침이며, 행사 선물도 행사 성격에 맞는 물품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동문들이 좋은 의견을 제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사식순〉
제 1부
1, 국민의례
2, 회장 환영인사
3, 동문회 경과보고,
4, 축시/ 감동적인 글 낭송
5, 악사모 연주,
6, 단체기념사진 촬영
7, 만찬
제 2부
1,케이크 나눔
2, 한국 무용
3,퀴즈 알아맞추기
4, 흥겨운 노래자랑
5, 행운권 추첨
6, 교가제창
7, 폐식사
〈회장 인삿말〉 최준혁 회장
안녕하세요. 이렇게 참석해주셔서 반갑고 감사합니다. 오늘 저희 인삿말은 이자리가 있게한 많은 동문들께 감사함을 표하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첫번째는 5070 기금모집과 평생회비 추가납부 캠페인을 펼쳐 성공시켜주신 이종복 15대 동문회장에게 깊은 감사를 드림니다. 이 캠페인에 동참해준 5070 기금의 37명 동문과 평생회비 추가납부 28명의 동문들께 감사드림니다. 또한 말없이 동창회 년회비를 꾸준히 내주신 동문들께도 감사드림니다. 두번째로는 성동16회 동문회가 여기에 오기까지는 동문회를 발족시킨 발기인들과 전임회장님들의 노고를 치하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1985년 3월에 성동 16회 동문회가 창립되었는데 당시 발기인으로는 1대 회장 신완철동문, 2대회장 손창인 동문, 9대회장 박성봉 동문, 10대 회장 김상배 동문, 그리고 정병무 동문, 박충서 동문이었습니다. 이후 전임회장님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오늘에 이르게 되었음을 감사드림니다. 세번째는 이번 행사를 위해 물품 찬조를 해주신 9명의 동문과 현금 찬조를해주신 31명의 동문들께 큰 감사를 드림니다. 또한 오늘 행사를 위해 재능기부를 준비한 동문들과 가족에게 큰 감사를 드림니다. 네번째는 오늘 직접 참석해주신 동문들과 여학생 여러분께 머리숙여 감사드림니다. 모든 준비를 잘 했다하더라도 여러분의 참석이 없다면 이 행사는 무의미 할 것입니다. 그런의미에서 오늘 참석한 분들을 반별로 소개올리겠습니다. 1반 7명, 2반 1명, 3반12명, 4반 20명, 5반 8명, 6반 14명, 7반 7명, 8반 4명 총 73명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끝으로 여건이 안되어 오늘 행사에 직접 참석하지 못하는 동문들도 마음은 함께 할 것이라 믿으며 가을 야유회 때는 함께하기를 바람니다. 조촐하게 준비한 행사를 마음껏 즐겨 주시기 바람니다. 또한 행운권 추첨도 있을 예정이니 행운도 시험해 보시기 바람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동문회 역사 경과보고〉문상두 전임 사무총장
(1)
성동고등학교의 역사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종로 YMCA에 있던 1906년에 설립한 민족사학 황성기독청년학교로부터 사립 영창학교로 이어져 1946년에 현재의 신당동 교사에 자리잡게 됩니다.
왜정 때 경성 시내에는 일본인 자녀 위주로 교육을 하던 국공립학교가 있었고 일본인이 다니는 학교는 중학교, 고등여학교라 하고 조선인이 다니는 학교는 고등보통학교라고 불렸습니다. 1945년 해방되면서 그 일본인 중학교들은 대부분 존속하게 되는데 경기중, 용산중, 무학여중 등은 교명 그대로, 경성중은 서울중, 욱구(旭九)중은 경동중(제1여중은 경기여고, 제2여중은 수도여고, 제3여중은 창덕여고)으로 개명하여 공립학교로서 존속하게 됩니다.
그 중에서 1936년에 개교했던 성동중은 1945년에 폐교된 상태로 있다가 복잡한 사정이 얽혀 이 성동중이 있던 자리에 영창중이 이전하게 된 것입니다. 몇 년 전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그 당시 학생들이 책상과 의자를 들고 매며 종로에서 신당동 교사까지 운반하였던 일을 일부 재현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다 이 영창학교를 정부에서 인수하여 공립학교로 바꾸면서 교명을 성동으로 개칭한 것이 1949년 10월이었고 다음 해인 1950년에 성동중학교 1회 졸업생, 그리고 2회졸업생까지 배출했습니다. 그리고 곧 5년제 중학에서 중, 고등학교로 학제가 바뀐 것이 1951년이었고 다음 해인 1952년 6.25전쟁 당시 부산임시교사에서 성동고등학교 제1회 졸업생 97명이 배출되었습니다.
12년 전인 2006년에 우리학교가 개교100주년 기념행사를 했었는데 그것은 황성기독학교로부터 연유됐다고 본 것으로 그때부터 계산하면 딱 100주년이 되고 다른 학교처럼 왜정 시대의 학교였던 성동중학교의 이름을 계승했다고 보면 70년이요, 해방 후 공립중학교로 신설되었을 때부터 따지자면 60여년이 될 것입니다.
(2)
성동고등학교는 우리가 다닐 때만해도 꽤 명문이라고 알려졌다는데 아마도 그 연유를 따져 본다면 몇 가지를 들 수 있을 겁니다.
우선 성동고등학교가 설립된 신당동은 예부터 성동원두(城東原頭)라고 불렸습니다.
성동원두라 함은 원래 “서울 동쪽의 근원이 되는 넓은 들판”을 가리키는 말인데 왜정 때인 1926년 조선시대 훈련도감이 있던 자리에 경성운동장을 세웠고 이후 동대문운동장으로 널리 알려져 성동원두는 곧 동대문운동장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지만 하여튼 성동이라는 말은 근원이나 시초를 뜻하는 뉘앙스가 있어 성동이란 이름 자체가 중량감(重量感)이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과거 일본인 학교였을지라도 공립중학이라는 그 이미지가 이름 속에 남아있고 해방 후에도 공립중학으로써 성동중학이라는 이름을 계승하였으니 아마도 좋은 학교라는 이미지가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성동고등학교가 전국적으로 알려진 것은 야구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1961년도에 백수웅, 조정일등 선배들이 청룡기(조선일보), 황금사자기(동아일보) 등 전국대회를 휩쓸며 우승을 독차지 하였던 그 1년간은 항상 신문지면에 톱으로 도배하였으니 아마 이때가 성동의 이름을 전국에 휘날린 유일무이한 시기였을 것입니다.
(3)
우리 16회가 입학할 당시는 1962년에 고등학교 입학을 국가고시제로 바꾼 후였는데 그 바뀐 입시제도 때문에 무시험 진학하던 동일계(同一系) 중고등학교에서 진학이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여튼 당시엔 성동고등학교의 이름이 꽤나 알려진데다 학교에서 입학시험 시기를 후기로 택했을 때였으므로 전국에서, 또 전기 고사에서 뜻하지 않게 실패한 뛰어난 수재들이 많이 입학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마도 당시 입학인원은 대강 470여명 정도였다고 보는데 그 중 일부는 재수하며 학년이 끝나면서 전학하여 졸업인원은 459명이 되었습니다.
여러 기수 중에서 우리 스스로는 16회가 굉장히 돋보였다고 자부하는데 당시 서울대 진학을 10여명이나 했던 것이 그 증명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 외 졸업생 대부분도 유수한 대학에 진학했을 뿐 아니라 특히 당시 육사에 진학한 8명 중에서 장군이 3명이나 나왔으니 이것이야 말로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들 중에서 매스컴을 통해서 가장 많이 알려진 동문이라면 다 알다시피 고인이 된 하일성이나 앵커로부터 국회의원이 되었던 류근찬 등일 것입니다.
물론 사회 각계 각층에서 대활약을 하였던 동문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여기서는 꼭 누구 누구라고 일일이 언급하기가 어렵지만 아직도 많은 동문 친구들이 주요 포스트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가 가졌던 자부심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제 와서 보면 비록 우리 동문들 중에서는 정재계(政財界) 등 다방면에서 최고위직에 오른 사람은 적지만 한편 뒤집어보면 신문 지면을 장식할 만큼 큰 사건을 일으킨 사람도 없으니 오히려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만큼 우리는 대과(大過) 없이 맡은 자리에서 묵묵히 이 사회에 공헌(貢獻)을 해왔다는 증거일 터이니 이것이야 말로 진정 크나큰 행복이요 행운일 것입니다.
(4)
우리 16회는 1985년 3월에 동문회를 창립하여 초기의 난관(難關)을 헤치고 지금과 같이 활성화될 때까지 초대 회장 신완철을 비롯하여 손창인 등 16대에 걸쳐 회장단들이 많은 노력을 해왔고 지금은 최준혁이 17대 회장으로서 열성을 다해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졸업40주년 및 회갑축하행사를 2008년 5월에 태능 육사교정에서 가졌고 작년에는 졸업50주년 행사로서 고3 때 소풍 갔었던 강화도를 재 답사하는 것으로 자축(自祝)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올해 지금 이 자리에서는 칠순(七旬)잔치를 하고 있습니다.
이 뿐 아니라 우리는 각종 동호회 모임도 여느 다른 동창모임보다 훨씬 다양하면서도 오랫동안 지속하고 있습니다.
등산모임은 2008년 100회기념 한라산 등반 이후로 이젠 비록 큰 산은 오르지 않지만 200회째를 넘었고 자전거동호회인 바이콜, 걷기 모임인 우보회, 바둑모임인 기우회 등이 모두 10여년이상 유지하며 활동하고 있으며 당구, 탁구 등 운동 뿐 아니라 친목모임도 꾸준히 가지고 있어 자주 만나는 친구들은 적어도 달에 한 두어 번은 얼굴 보게 되니 이게 말하자면 끈끈한 이웃 사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졸업인원이 450여명이지만 그 중 작고한 동문이 10%에 이르고 소재가 불명하거나 교류가 단절된 동문도 30%에 달하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게다가 지방에 있는 동문들도 이제는 만나기가 꽤 어려워졌는데 하물며 약 15% 정도인 해외에서 거주하고 있는 동문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사업차든 뭐든 이런저런 일로 오가며 만날 수 있었지만 이제 70에 이른 우리 노구(老軀)로서는 서로의 만남이 견우직녀 만나는 것만큼 더욱 어려워 질 지도 모릅니다.
(5)
우리는 지금까지 착실하게 이 세상을 살아와 한 계단씩 올라 이제는 거의 계단 끝에 다다랐습니다. 예전에는 나이가 들면 스스로 뒷방자리에 물러 앉아 대접받기만 원했지만 요즘에는 나이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노력을 다해 자기개발을 위해 힘쓴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젠 동문 친구들과 더욱 자주 만나며, 몸이 허락하는 한 온 힘을 다하여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결과에 그다지 연연할 필요도 없이 그저 나머지 한 계단 한 계단씩 과정(過程)을 즐기며 살아 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무리로 여기에 헤르만 헷세(Herman Hesse)의 시를 적어 봅니다.
“계단”이라는 시의 일부입니다.
꽃이 모두 시들듯이, 청춘이 늙음에 무릎 꿇듯이
인생의 계단도, 지혜도, 덕도
그때 그때만 꽃 피울 뿐, 영속되지 않는다
삶의 부름 들을 적마다 마음은
용감하게, 슬퍼하지 않고
새로운 다른 속박으로 접어들듯이
이별과 새로운 출발의 각오를 다져야 한다.
무릇 모든 일의 시작에는 신비로운 힘이 깃들여 있어
우리를 지켜주고, 사는데 도움이 되느니.
[ “Stage (Stufen)”
As every flower fades and as all youth
Departs, so life at every stage,
So every virtue, so our grasp of truth,
Blooms in its day and may not last forever.
Since life may summon us at every age
Be ready, heart, for parting, new endeavor,
Be ready bravely and without remorse
To find new light that old ties cannot give.
In all beginnings dwells a magic force
For guarding us and helping us to live.]
더욱 새롭게 파고 들어오고
미련으로 겹쳐오는
사연 깃든 온 세상 내음
흐르는 강물을
몸서리치며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숙명적 투쟁
물은 흐르고
점점 얕아지는 강바닥
받아 놓은 날은 기필코
다가온다는데
옛 부터 다다르기 드물다는 70고개
고개라고 못 느끼며 넘어 들어가고 있다
나이에 앞 글자가 바뀌면
천지의 흐름이 달라지는가?
까치밥으로 남겨놓은
감을 세어보듯
몇개가 아직 대롱대로 남아 있나
손꼽아 보는 버릇
두고 갈 산하는 더욱 젊어지는데
몸 속 깊이 침투하는 아쉬움
어색한 작별 인사를
마음속에 중얼거리는 버릇
가련한 손
호스피스의 특별 서비스로
예쁜 네일 케어를 받고
섬섬옥수를 내 손에 남기고 떠난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감동 주고받는 70대 우리 친구들〉 전인구 전임 회장
'감동적인 글'?
"에잇 그런게 어딧어?"
이 나이에
70여년 사는 동안
다 보고 다 듣고
좋은일 험악한 일 다 격었어
모르는게 뭐 있어?
그렇게 살면
오늘도 내일도
올해도 그 다음해도
별반 다름없는 그렇고 그런날이 된다.
그런데 그런데
내가 호기심과 관심 갖는 순간
어떤 작은 것도 마법처럼
감사함으로 바뀌고
곧 감동이 온다.
미국으로부터 매일 솟아나는 샘물처럼
행복바이러스 전해주는 형기 친구
고통을 개그로 반전시키는 동훈이 친구
코믹한 터치로 웃음을 자극해주는 포대화상
모습의 수호신
어떤 운을 던져도 즉석 명문 줄줄 플어내는
재근 친구
명시 명문장가 상두 철훈 친구
친구들의 육신 고통 건강 챙겨주는 창인 재희
상배 친구
어깨가 무겁지만 수년동안 동호회 맡아 묵묵히
이끌어가는 경흠 정천 창인 종하 성춘 희종이
친구들
또 부탁하면 마다않고 짊어진다.
어떤 무거운 과제도 가져와 봐라 안풀리는게
있나?
최준혁 회장 앞에는 부드럽게 녹아내린다
왜 내 이름 거명 않느냐 하지 않고
이미 내가 다 불러준 것이나 같다고
알아차리니
동문 이름 가족이름 일일이 부르지 않아도 되는
우리 친구들
어떤 무겁고 가벼운 일도 던져지면
자기 일이라고 모두 달겨드니
안되는 일 어디 잇으며
그래서 고맙지않은 일이 없구나
개인적으로 다 훌륭하면서도
무척 겸손하다
약간은 어리숙한 듯 살지만
그게 세상을 편하게 하고
나도 별로 손해 않보는 지혜임을 안다
대한민국에 여기만 잇고
세상에 여기만 있는
sd16의 모습이다
찬란한 보석보다
어떤 세계 문화유산보다
더 소중하고 더 아름답다
물에 젖지도 불에 타지도 않아
세월 깊어갈수록 더 빛나는
우리의 54년 우정이다
이쁜 가족들
매너있는 가족들
품위있는 가족들
남편이 보스처럼 떠 받들고 사는 행복한
가족들
함께해서 더욱 행복하고 고맙다
여기저기 찾지 않아도
감사할일 한둘일까
듣고 보고 느껴지는 전부가
하늘의 사랑 아닌가
푸성귀 돋아나고
야생화 아무렇게나 여기저기 핀
노년의 들판길에
서로 말은 없어도
느낌으로 전해지는 아름다운 날
오래오래 함께 하세나
〈찬조금 납부자 현황〉
1, 현금 찬조
- 김승기 동문 100만원 (답례& 찬조)
- 조성춘 동문 20만원
- 정병무 동문 20만원
- 박정천 동문 20만원
- 김종용 동문 20만원
- 최용하 동문 20만원
- 최준혁 회장 20만원
- 최재근 동문 15만원
- 이동훈 동문 10만원
- 이덕희 동문 10만원
- 이종복 동문 10만원
- 오용무 동문 10만원
- 김경흠 동문 10만원
- 이영호 동문 10만원
- 전인구 동문 10만원
- 이논구 동문 10만원
- 문상두 동문 10만원
- 장갑문 동문 10만원
- 김완규 동문 10만원
- 조동배 동문 10만원
- 정영준 동문 10만원
- 김재화 동문 10만원
- 박인환 동문 10만원
- 박창호 동문 10만원
- 송영근 동문 10만원
- 심재희 동문 10만원
- 유창열 동문 10만원
- 김명수 동문 10만원
- 김진관 동문 10만원
- 홍륜 동문 10만원
- 차성근 동문 30만원(평생회비 일부)
2,물품 찬조(8명)
- 손창인 동문 113만원 상당의 의류및 배낭
- 문성기 동문 36-48만원의 화장품 12세트
- 전종하 동문 30만원 상당의 고급 고글
- 차성근 동문 20만원 상당의 고급 양주
- 김세건 동문 20만원 씨놀치약
- 정철의 동문 10만원 상당의 고급와인
- 이석종 동문 10만원 상당의 막걸리
- 최준혁 동문 16만원 상당의 고급 행주
〈행사 참가자 명단〉73명
1반(7명) 손정수,이규식, 이찬철, 조광준, 이명순 여사(신수호 부인), 이원식/안금옥 여사
2반(1명) 정철의
3반(12명) 김세건/박영순여사, 김진관/ 노숙여사, 곽대현/김보영여사, 류제형/용부임여사
정영준/김덕희여사, 한현찬/ 노희재여사
4반(20명) 박규인, 박응복, 이덕희, 장철훈, 전종안, 최승환, 김종용/ 하금애여사, 박인환/김미숙여사
이동훈/ 권혁희여사, 이종복/한필연여사, 정병무/ 박경자여사, 최용하/박문옥여사,
최준혁/이서영여사
5반(8명) 최재근, 최하영, 홍륜, 이춘형, 장동수, 이희종,조동배/ 문덕순여사
6반(14명) 김경흠, 문성기, 박창호, 김재화,장갑문, 차성근, 유창열/유달리(딸), 전인구/최양희,
조성춘/ 권혁희여사, 채광병/ 안진자여사
7반(7명) 김완규, 이용일, 한산용, 한영성, 양원석, 전종하/ 양영모여사
8반(4명) 박충서, 손창인, 문상두/ 이하선여사
〈행사비 사용 내역서〉
총수입 557만원( 찬조금 485만원+ 참가비 72만원)
총지출 48,54,000
-파크텔 사용료 3,276,000원
-물품대금 91만원
-밴드초청 35만원
-고급행주 24만원
-물품운반 교통비 7만원(2회)
-명찰구입 8,000원
잔액 716,000원
최준혁 회장 환영인사
동문회역사 경과보고(문상두 전임사무총장)
장철훈 시인의 축시 -
전인구 전임 회장의 감동적인 글 낭송
악사모연주(손창인 전임회장 기타연주)
전종하 동문의 하모니카 연주
김종용 동문의 피아노 연주
플룻, 피아노, 기타, 하모니카 협주
단체 기념사진 촬영
전임회장들과 함께 케이크 절단식
한현찬 수석부회장 부인의 동아리 '한국 무용'
류제형 부인 열창
이원식 부인 열창
전인구 부인의 열창
교가제창
첫댓글 역사와 준비과정을 포함한 당일의 행적을 눈에 보듯 소상히 정리하셨네.
회장과 사무총장의 명콤비가 이루어 낸 명품 옥동자일세.
노심초사 준비와 진행에 수고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이 저력을 계속 이어나가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