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행동이 필연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당연하다.
"사랑과 지혜가 있는 곳에 두려움과 무지는 없다.
인내와 겸손이 있는 곳에 걱정과 노여움은 없다.
가난함과 기쁨이 있는 곳에 욕심과 탐욕은 없다.
고요함과 묵상이 있는 곳에 염려와 낭비는 없다.
동정과 신중함이 있는 곳에 지나침과 무관심은 없다.
주님을 경외함이 문을 지키는 곳에 대적은 들어갈 수 없다.
-아시시의프란시스 훈계
[날마다 예수님 마음가까이/버나드 뱅글리]
내 생각과 판단을 성경보다 높은 위치에 올려놓고 있지는 않습니까?
바쁜 일상 속에서도 성경의 진리를 묵상하는 일에 열심을 냅니까?
** 최상의 사랑으로 사랑하라
성경 말씀에서 사랑은 어떤 사람은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는 것, 어떤 한 사람을 버리고 다른 한 사람을 선택하는 의미를 지닌다. 예수님은 우리를 제자로 부르시고 그분을 비길 데 없는 최상의 사랑으로 사랑하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이 첫 번째 요구에 바르게 반응하기 위해 우리는 의지적으로 삶 속의 모든 관계를 재조정해서 나와 예수님과의 관계와 경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직접 그렇게 말씀하셨다. 왜 그려셨는가?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와 하나님의 우선적인 관계가 최상임을 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마 6장 24절을 통해 우리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그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돈을 똑같이 섬길 수 없다. 때때로 돈에 그저 ‘익숙해지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을 굉장히 좋아할 따름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은 우리 삶에서 그 두 가지 우선 순위를 모두 가질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과 돈, 그 둘은 서로 상반된 충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의 관심은 오직 그분에게만 집중되어야 한다. 이런 중국 속담이 있다. “어떤 집도 두 여인이 같이 살 만큼 큰 집은 없다” 같은 이치로 어떤 크리스천의 삶도 두 연인을 둘 만큼 크지 못하다.
주님이 기대하시는 방법으로 그분을 사랑하기 위해 우리는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우리 삶의 전면 중심에 두어야 한다.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 이상을 해야 한다. 그 사랑을 보여주어야 한다. 당신은 그렇게 하고 있는가? 어떻게 그렇게 하고 있는가?
-당신의 삶의 세워주는 제자도의 7가지 핵심/마크 베일리
나는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고 있는가?
성경 속에서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뜻을 새롭게 발견해가고 있습니까?
** 땅콩박사, 조오지 카아버
어떤 사람이 조오지 와싱턴 카아버는 미국 역사상 가장 특출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과연 카아버만큼 식물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화학 작용을 많이 알아낸 사람이 없고 그 사람만큼 그 작용을 인간생활에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사람도 없다. 그는 쓰레기가 쌓여 있는 시험실 속에서 녹슨 냄비와 버리는 병으로 만든 실험 기구를 가지고 물질을 분석하기도 하고, 또한 그것들을 화합시켜서 새로운 식료품, 의약품, 건축 재료따위를 만들었다. 그는 또한 땅콩을 가지고 파이를 만들었으며 잡초를 가지고 샐러드를 만들었는데 그의 요리법은 큰 호텔에서도 이용하였다. 쿨리지 대통령과 프랭크린 루우즈벨트 대통령도 그의 가정을 방문였으며 각처의 사람들이 그의 자문을 받았고 여러 국가들이 그를 고문관을 추대하였으며 헨리 월러스, 포오드, 간디 등은 그의 절친한 친구들이었다.
그가 이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만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아마 이 세상에서 카아버만큼 날 때부터 불행한 처지에 놓였던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는 어머니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지 못했던 흑인노예로 태어나 개, 돼지만도 못하게 구박을 받으며 자라났다. 그러나 그는 그를 그렇게 대우하는 사람들에게 적의를 품기보다는 호의로 대했으며 그가 처해 있는 환경은 어두웠지만 그의 마음은 언제나 광명으로 꽉 차 있었다.
카아버의 여러 가지 발명의 공적은 면화 재배만을 생업으로 하고 있던 미국 남부지방을 해방시켰다. 그는 토박해진 수백만 에이커의 땅을 개량하고 거기에 심을 수 있는 새로운 작물의 품종을 찾아낸 것이다. 그의 공적은 대대로 빈곤에 시달리던 남부에 광명을 주었다.
그 자신은 흑인들의 인권에 대해 한 마디도 말한 바 없지만 그는 백인과 흑인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평화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그 날이 오게 하는데 누구보다도 큰 공헌을 했다.
- 조오지 와싱턴 카아버 자서전, 땅콩박사/엘리오트
나는 허물있는 지도자의 입술에서 나오는 진리의 말씀에 순종합니까?
나는 자신의 직분과 성경적인 지식을 자랑의 기회로 삼고 있지는 않습니까?
** 하나님을 추구한 사람, 토저
“토저와 함께 드리는 기도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처음으로 내가 그의 연구실에 초대되어 그와 함께 기도했을 때 나는 매우 기뻤다. 그는 최근 묵상했던 말씀들을 나눈 후에 함께 기도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연구실 중앙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었다. 기댈 만한 의자나 책상도 없이 우리는 서로 마주하고 반 시간 동안 기도를 드렸다.” - 로버트 워커
토저의 기도는 그의 설교와 똑같이 정직함, 솔직함, 유머, 강렬함을 담고 있었고 그의 기도는 그의 설교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왜냐하면 그의 설교는 그가 기도하는 가운데 발견한 것들을 선포하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의 기도는 또한 그의 생활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는 자주 “기도는 그 사람을 결정짓는다”고 말했다. 그가 행한 모든 것은 그의 기도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매일 여러 시간을 기도로 하나님과 씨름하는 데 쏟았던 토저는 하나님의 임재를 자주 경험했다. 그는 많은 시간을 가족과 친구들을 피해 하나님과만 시간을 보냈다.
맥아피는 매주 화요일, 목요일 그리고 토요일에 토저의 연구실에 들러 반 시간식 기도했다. 그는 어느 특별한 날을 기억한다. “토저는 자기 의자 옆에 무릎을 꿇고 안경을 벗어 의자 위에 얹어 놓았다. 구부린 발목을 대고 앉아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을 채 고개를 들어 기도를 시작했다. ‘오 하나님, 저희가 주님의 존전에 있나이다.‘ 그러자 하나님의 강렬함 임재가 그 방안에 가득했다. 우리는 둘 다 침묵의 황홀경과 경이 가운데 경배를 드렸다. 나는 그 날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 A. W. 토저/ 제임스 L. 스나이더
나의 기쁨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 사람의 만족을 구하는 것인가?
나의 신앙 생활은 하나님의 거룩한 눈 앞에서 진실함이 있습니까?
** 민감하십시오
뾰족한 연필이
깨끗한 선을 긋습니다.
예민한 기지가
분명한 결정을 내립니다.
당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십시오.
그리고 늘 그 일들을 잊지 않도록 하십시오.
커다란 잘못을 저지를 위험에 놓이면
그것을 알아차리십시오.
누군가
경험과 지혜를 가진 사람과
당신의 좋은 친구나
당신 자신의 성실성을 잃을 의논을 해보십시오.
지도 모를
위험에 놓이게 됨을 알거든
곧 단호한 행동을 취하십시오.
언제나 민감하십시오.
뒤로 물러서서
모든 것을
될 수 있는 대로
분명하게 보려고 노력하십시오.
- 그대가 성장하는 길/ M. M. 마고
주님이 부르시면 뒤돌아보지 않고 미련 없이 이 땅을 떠날 수 있습니까?
나는 오늘 세상의 움직임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심판주로 오실 것을 믿고 기대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지만 곧 오실 것을 믿습니다. 주여 더욱 더 깨어있게 하시고 준비하며 살게 하시며 아름다운 신부로 신랑을 맞이하게 하여 주옵소서
** 외로움을 극복하기 10
외로움(loneliness)은 “친구가 없고 홀로 있으며 의지할 곳 없는 느낌의 상태”로 정의한다. 외로움은 여러 모양을 하고 찾아온다. 때때로 내적 공허함, 텅빈 느낌 같기도 하고 혹은 사무치는 쓸쓸한 느낌, 불명확한 만족에 대한 깊은 갈망 같기도 하다.
외로움을 고독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고독은 본인이 선택하는 것인 반면 외로움은 원하지 않아도, 싫어도 찾아온다. 고독은 물리적인 것이며 외로움은 심리적인 것이다. 외로움은 부정적이고 비생산적이지만 고독은 건설적이고 열매를 맺게 할 수 잇다. 놀랍게도 외로움은 나이든 사람들보다 청년기나 젊은 사람들 사이에 심하게 만연되어 있을이 밝혀졌다. 자신이 외로움의 정도가 심하다고 생각되면 다음의 몇 가지를 시도해 보라.
1. 주님께서 나의 외로움 속에 나와 함께 하심을 믿으라.
2. 외로운 것은 죄가 아니므로 죄책감을 더하지 말라.
3. 자기 땅을 영적으로 깨끗이 하라. 곪은 데를 짜내는 것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과 마찬가지로 영적으로도 같은 효과를 갖는다.
4.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가지고 사는 것을 배우라.
5. 자기 연민을 버리라. 많은 경우 연민은 평안의 적이다. 자신의 생각에 집중하기를 고집한다면 외로움의 불꽃에 연료를 대주는 것이다.
6. 상황이 바뀔 수 없으면 그것에 대항해서 싸우기를 받아들이라.
7. 더나아가 한발 내딛어 오늘의 패턴을 깬다. 더 형편이 나을 때를 기다리지 말라. 그런 때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8. 나의 욕구와 열망은 나 밖의 대상에 두라. 타인의 유익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라.
9.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다른 그리스도인에게 상호간의 관심사를 가지고 먼저 다가가라.
10. 한 번 사람들과 만난다고 해서 나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음을 미리 알라.
- 제자, 거룩한 열정으로의 부르심/ J. 오스왈드 샌더스
나는 종말과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를 깨닫고 있습니까?
나는 내 주위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 선한 일에 예비되는 일꾼
자신의 준비되어진 것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아는 일꾼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되는 길을 구하게 될 것이다.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어느 세상의 일꾼이 있다고 가정하고 그에게서 대답을 구해보자. 그 일꾼은 우리에게 자신의 성공은 자신에게 달렸다고 하면서 우선 그 일에 몰입하라고 얘기할 것이다. 성심성의껏 대답한 것이다. 한 가지 일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다른 일은 제쳐두라고 할 것이다. 그것은 그의 일을 완벽하게 해내개 위해 터득한 삶의 교훈이었다. 그리스도의 일을 첫 번째 자리에 두지 않고 차석에 두는 사람이라면 결코 모든 선한 일에 예비될 수 없을 것이며 모든 것을 희생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을 것이다.
두 번째로 그가 우리에게 해줄 말은 인내있는 훈련과 연습일 것이다. 이익은 뼈를 깎는 노력에서만 얻어진다. 당신은 올바르게 일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를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 모든 학습은 무지와 실수에서 시작된다. 용기를 가지라. 이 세상을 솜씨좋은 일꾼들로 채우시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던 그분이 그 자녀들에게 그분의 동역자가 되는 은혜를 더하시지 않겠는가? 당신의 몫이 무엇인가를 보면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이 세상을 축복하는 것이고, 그 일을 감당해야 하며 당신의 삶과 축복을 발전시켜 온전케 하는 것이며 또한 모든 선한 일에 예비된 일꾼으로서 항상 쉬지 않고 열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행할 때만 올바르게 일할 수 있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스도의 훈련 밑에서 시작해보라. 그분은 당신 안에서 그분의 일을 완수하실 것이며 그분을 위한 당신의 일이 합당하도록 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 어떻게 일할까/앤드류 머레이
나는 더욱 확실하고 견고한 믿음을 가지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내가 주의 재림을 준비하며 깨어 있어야 할 영역은 무엇입니까?
**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
당신의 생명도 그리고 당신의 자녀도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선물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당신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인생이란 모두가 살아 있는 동안만 맡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죽을 때는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합니다.
그래도 누구나 생명이 있는 동안은 풍족한 것으로 둘러쌓이고 좋은 것이 맡겨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축복받는 사람이 되려면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작은 일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것은 마음 속에 결단과 의지가 부족해서 그 구멍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새어나가기 때문입니다. 작은 거짓말이 커다란 실패로 연결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작은 약속을 어겼을 때 신용을 잃는 수도 있습니다.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이란 이 진리를 깨닫고 있는 사람으로서, 성실치 못한 것이 마음 속에 침입해왔을 때 곧 그것을 물리칠 수 잇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생활 속에서 말씀과 기도로 자기를 들려다보지 않고는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신앙은 매일의 생활을 확실하게 지켜주는 강력한 구원입니다.
- 하나님 나를 향한 1日1訓/ 반다이쓰네오
주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달란트(직무)를 어떤 종의 자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나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한 달란트 받은 자의 그것과 동일하지는 않습니까?
** "제가 없어지면 휠씬 편해질 거예요"
몇 주 전, 필자는 외출을 하다가 아파트로 들어서는 경찰차를 보았다. 경찰차는 곧바로 화단 앞으로 향했고, 화단 앞에는 담요에 덮인 물체가 있었다. 알고 보니 그것은 고층 아파트 같은 층에 살고 있는 대학생의 시체였다.
올해 모 대학에 진학한 그였다. 그 청년은 어린 시절 장난치다가 다쳐 뇌수술을 했는데 후유증으로 팔 다리가 불구가 되었다고 한다. 20세 그 청년이 베란다에 의지를 놓고 뛰어내리고 만 것이다. 어머니의 부축을 받아 걸어 나오던 그 청년을 보곤 했었다.
유서에는 "부모님 형, 누나, 제가 없어지면 휠씬 편해질 거예요"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유난히 밖에 나가서 활동하기를 좋아했는데 아버지도, 형도, 누나도 모두 그를 부끄러워하고 같이 나가는 것을 피해왔다고 한다.
가까운 사람들로부터의 소외, 생각만해도 가슴이 아팠다. 그의 대학생활은 또 얼마나 끔직한 고통과 소외의 시간이었을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고귀한 인격이 장애인이라고 무시당하지 않고 존경받는 나라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할까? 절뚝발이 장애인 므비보셋을 왕의 식탁에서 함께 식사했던 다윗의 인간애, 한 생명을 온 우주보다 더 귀하게 여기시는 예수님의 지혜로운 사랑이 그립다.
-빛과 소금/ 2001. 5. 1 중에서
주를 믿는 믿음 없이 인간에 대한 선행으로 마음이 흡족하지는 않습니까?
나의 삶은 죽음 이후에 있게 될 하나님의 심판을 예비하는 삶입니까?
** 결정적 소수
21세기가 시작될 무렵, 이태리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그것은 어느 나라든지 세금제도와 관계없이 그 나라의 20퍼센트의 인구가 그 나라 재정의 80퍼센트를 관리한다는 사실이다. 이 발견 이후 이른바 '파레토 법칙'이 모든 분야에 적용되게 되었다. 그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 20퍼센트의 세일즈맨들이 80퍼센즈의 보험을 판다.
* 20퍼센트의 책 분량이 80퍼센트의 내용을 전달한다.
* 20퍼센트의 어부들이 80퍼센트의 고기를 잡는다.
* 20퍼센트의 성도들이 80퍼센트의 헌금을 낸다.
* 20퍼센트의 정치가들이 80퍼센트의 지지투표를 얻는다.
이러한 20-80법칙이 교회의 중보자들에게도 해당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조사 연구에 따르면 20퍼센트가 아니라 약 5퍼센트의 결정적인 소수가 중보 기도자들이라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물론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 결정적인 소수는 바로 중보기도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중보기도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 오래 기도한다. 최소한 하루에 한 시간 이상씩 기도하고 많은 경우 하루에 2시간에서 5시간까지 매일 기도한다.
* 기도를 즐기고 개인기도 시간을 만족해한다.
* 기도 응답이 많고 또 극적인 편이다.
* 하나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듣고 많은 경우 예언의 은사를 함께 갖고 있다.
- 방패기도/ 피터 와그너
인격적인 복음을 믿지 않는 이들도 구원이 필요한 죄인에 불과함을 아십니까?
주님의 사랑을 깨달은 자로서 오늘 주께 드려야 할 것들은 무엇입니까?
**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믿음
아이작 왓츠의 키는 서양 사람으로서는 난쟁이를 겨추 면할 정도인 150센티미터에 불과하였습니다. 게다가 눈도 작고, 피부도 창백한 잿빛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기가 벌레 같은 존재라고 늘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살 찟고 피흘려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자마자 그 은혜와 그 사랑에 감격해서 감동적인 찬송을 썼습니다.
웬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내 지은 죄 다 지시고 못박히셨으니/ 웬 일인가 웬 은혠가 그 사랑 크셔라/ 나 십자가 대할 때에 그 일이 고마워/ 내 얼굴 감히 못 들고 눈물 흘리도다/
이런 감격과 고백을 일컬어서 예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입니다. 몇 년을 믿었든지, 예수 믿는 가정에서 몇 대 손으로 태어났든지 간에 관계없이 지금까지 한 번도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살 찢고 피 흘려서 나의 죽었던 생명이 다시 살았다는 감격을 느껴보지 못했다면, 또한 그것으로 인해 주님 앞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 보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믿음을 재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 어느 누가 나를 대신해서 살을 찢고 피를 흘렸습니까? 예수님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아이작 왓츠처럼 십자가를 발견하고 그 십자가 앞에 조용히 무릎 꿇고 엎드리면 들이는 음성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사랑하는 내 딸아,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서 네가 살 수만 있다면 나는 한 점의 살도 아끼지 않고 다 찢어 주마. 네가 살 수 있다면 한 방울의 피도 아끼지 아니하고 다 쏟아주마. 사랑하는 자여, 마음껏 마시고 살아라. 마음껏 먹고 살아라. 그래서 영원히 살라. 내 사랑하는 자여"
-요한이 전한 복음(상)/옥한흠
나의 말씀묵상 생활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기념하는 삶입니까?
나의 연약함을 생각지 않고 생각대로 주님께 헌신과 제자도를 공표하지는 않습니까?
** 절망은 기도의 에너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충분히 낙심하고 충분히 좌절할 때까지는 깊은 기도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다. 사는 것이 때때로 너무나 고통스럽워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여러 번 도달했다면 당신은 깊은 기도를 경험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자신감이 넘치고 어떤 일도 쉽게 굴복하지 않으며 쉽게 고난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면 당신은 아마 기도를 배우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주위를 돌아보아도 전혀 도울 사람을 발견할 수 없다면 당신은 이제 기도를 배울 수 있으며 그 사랑의 주님의 품에 안길 수 있다.
근심과 절망은 하나의 에너지이다. 그 에너지를 통해 주님께로 가라. 그 좋은 기회를 낭비하지 말라. 어떤 사람들은 많은 기회가 있어도 혼자서만 끙끙거릴뿐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는다.
낙천가들은 절망의 에너지가 없어 주님께로 가지 못한다. 감심장은 너무 두려움이 없어서 주님께로 가지 못한다. 그들은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다.
억지로 강해지려고 애쓰지 말라. 스스로 모든 것을 하려고 너무 노력하지 말라. 슬플 때 눈물을 참지 말고 괴로울 때 탄식을 억제하지 말고 외로울 때 슬픔을 억누르지 말라.
그 모든 것들이 당신을 누를 때 조용히 주님께로 가라.
-기도 업데이트/ 정원지
기도 요청에 세상의 일로 인해 졸고 있어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는 않습니까?
"아골 골짝 빈들에도" 고난의 장소에 갈 수 있는 마음의 준비들이 되어 있습니까?
** 불행한 상황이 찾아오는 이유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강철 하나는 5달러지만 그것으로 말편자를 만들면 10달러가 되고 바늘을 만들면 350달러가 되고, 칼날을 만들면 32,000달러가 되며, 시계 스프링를 만들면 250,000달러가 된다." 당신은 10달러, 350달러, 32,000달러, 그리고 250,000달러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가? 똑같은 재료도 두드리고 정련이 될수록 점점 더 탄성과 강도가 좋아지고 가치도 커진다. 하나님은 우리를 좀더 가치 있게 만드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더 많은 정련과 연마를 거치게 하신다.
그래서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를 불행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하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셔서 우리를 장성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선한 뜻에 따라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음을 믿는다면 우리는 눈물로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 뿐 아니라 그의 지혜를 믿는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지 않고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주려고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자주 떡을 구하고 있는 듯하나, 실은 돌을 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겉으로는 돌처럼 보이지만 사실을 떡인 것이다.
-워치만 니/ 크리스천 생활의 실제 문제
주를 향한 입맞춤은 나의 욕심이 아니라 주를 향한 간절한 사랑으로 인한 것입니까?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라 인간의 혈기로 베드로처럼 칼을 휘두르지는 않습니까?
** 삶의 위기에서
만사가 형통해 보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든 척척 풀려 가는 것 같다. 그러나 제대로 하나도 되는 것이 없는 것 같은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그들은 언제나 쪼들린다. 건강상의 어려움이 있고 직장에서도 좌절감만 맛본다. 자녀들은 반항적이다. 그들의 삶은 날마다 위기로 점철되어 있다.
왜 이렇게 불공평하고 차이가 많은가?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고 모두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런데도 그들의 사정은 너무나 판이하다. 왜 하나님은 이러한 것들을 허락하실까? 그것은 신명기 8:1-3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을 알 수 있다.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인간의 본성 가운데 하나는 자랑하며 교만해지려는 것이다. 즉 자기 지위, 신분, 나라, 인종을 자랑하려는 교만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장 겸손하게 했던 것은 광야길을 가야 하는 그들에게 양식이 없고 일주일에 엿새 동안 만나 신비스럽게 내렸던 일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어려운 시기는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어려운 환경에서 우리의 성품은 드러나며 또한 단련된다. 그러한 환경을 통해 우리는 새롭게 겸손히 하나님께 의뢰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는 이때에 배웠던 교훈과 느꼈던 무력감을 이후에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 내게 어려운 때가 있을까?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때를 사용하여 당신을 그분께로 가까이 이끄시며 인격을 단련시켜 주시며 영적 분별력을 더해 주실 것이다. 곤경에 처했을 때도 그리스도의 주재권 하에서 사는 충만함을 경험하도록 하라.
-그리스도의 주재권/ 제리 화이트
주님을 구원자로 고백을 했지만,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부인하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이 가야바의 재판정에 서신 사실로 인해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고 있습니까?
** 저를 쳐다보아 주십시오
나의 주 예수님, 제가 주님께 행한 것을 깨달을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아, 그 슬픈 눈빛으로 저를 쳐다봐주십시오.
아, 그때 베드로를 바라보셨던 것처럼 저를 쳐다보아 주십시오.
저를 쳐다봐 주십시오.
나의 주 예수님, 져를 쳐다보아 주십시오.
주의 그 슬픈 눈빛이 제게 통회의 눈물을 주시고
당신을 위하여 고난도 기꺼이 받을 수 있도록
저를 그 눈빛으로 쳐다봐 주십시오.
나의 주 예수님, 저를 쳐다보아 주십시오.
그때 베드로처럼 저 역시 애통해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그리고 주를 사랑하며 핍박의 때에 주를 슬프게 해드리지 않도록
기도드립니다.
아, 저를 그 슬픈 눈빛으로 쳐다봐주십시오
- 당신 곁에 머물겠습니다./바실레아 쉴링크
나는 주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겨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자랑하고 있습니까?
나는 나의 생각을 나의 의지가 아니라 성령이 되게 하도록 늘 기도하는 자입니까?
** 중요한 건 출발선이 아니라 도달 지점이다
어린 시절 불우하고 가난했던 사람들은 자주 이렇게 말하곤 한다. "자넨 나의 지나간 과거를 이해하지 못할걸세." 나는 그들에게 과거의 불행한 경험이 왜 중요하지 않은지 설득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말하고 싶다.
프랭클린 D. 루스밸트, 윈스턴 처칠 경, 클라라 바턴(미국 간호사, 1882년 미국 적십자사 창립), 헬렌 켈러, 마하트마 간디, 테레사 수녀,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 마틴 루터 킹 목사 등을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위대한 지도자 3백명을 분석해 본 결과 그들 중 25%는 심각한 심리적 장애를 지니고 있었으며 또한 그들 중 50%는 유년 시절에 학대를 받았거나 빈곤한 가정에서 성장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바로 그 세계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부정적인 반응보다 긍정적인 반을 보였다.
닐 루덴스타인의 아버지는 교도소 경비원이었으며, 그의 어머니는 식당에서 파트 타임으로일하는 종업원이었다. 닐 루덴스타인 박사, 그는 바로 하버드 대학의 26대 총장이다. 루덴스타인과 3백 명의 지도자들은 어떤 일을 시작하는데 있어 그 시작 지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어디에 서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일찍 깨달은 사람들이다.
당신이 어디서 시작하느냐는 어디서 끝나느냐 만큼 중요하지 않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당신은 어디에 서 있고 싶은가?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지그 지글러
나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행동에 대하여 책임져야할 존재임을 인식하고 있습니까?
주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참고 침묵해야 할 상황에 나는 어떻게 합니까?
** 처절한 십자가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 처형은 그 당시 로마뿐만 아니라 고대 아프리카, 애굽, 바사, 헬라 등에서 유행했던 형벌이었습니다. 십자가형은 너무나 잔인하고 끔찍하게 치욕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로마 시민들에게는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노예나 반란자들, 극악한 강도들에게 이런 십자가형이 주어졌습니다.
보통 십자가에 달리면 약 3일 정도의 고통을 겪게 되는데, 탈진과 아픔 때문에 최대한의 고통을 느끼고 난 후에 사흘째에는 절명하게 됩니다. 고통과 탈진이 너무나 심할 경우에는 자비를 베풀어 주는 방법으로 다리를 부러뜨리거나 창으로 찔러서 죽음을 재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형수의 시체는 연고자가 있을 경우에는 그들에게 주어서 무덤에 장사하게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나 아주 극악한 사형수의 경우에는 십자가 틀에 내버려두어 독수리의 밥이 되게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3일을 계신 것이 아니라 오전 9시에 처형을 당하셔서 오후 3시에 운명하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겪으신 십자가입니다. 성경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고 한마디로 표현한 그 말 앞뒤에는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이런 고통스러운 순간과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순간들이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이렇게 처절하게 십자가에 못박하신 것입니다.
-가서 제자 삼으라/하용조
빌라도처럼 주님을 포기하고 자신의 욕심을 따르게 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강제로 십자가를 지었던 시몬처럼 나 역시도 마지못해 십자가를 지지는 않습니까?
** 요한 세바스찬 바하
요한 세바스찬 바하는 11명의 아들과 9명의 딸을 둔 아버지로서도 유명하지만 현대 음악의 아버지로서도 더 유명하다. 그는 1685년 3월 23일 독일 투링기아 주 아이센나흐에서 출생했다. 그는 같은 시대 유명한 헨델보다 2주일 정도 늦게 태어난 것이다. 그의 가문은 4대째 내려오면서 음악에 특별한 재간이 있었는데 그 동안 바하 가문에서 배출된 음악가는 5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바하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명예를 얻게 한 것은 라이프 치히에 있는 동안 작곡한 종교에 관한 곡들이다. 이 기간 중에 그는 수많은 성가, 칸타타와 수난 음악을 만들었다.
바하는 엄격한 루터교 신자였다. 그는 늘 말하기를 "모든 음악의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보내고 사람에게 즐거운 감정을 솟아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음악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다고 믿었고 음악을 그의 영광을 위해 쓰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었다. 그는 또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 만민의 죄를 홀로 감당하시고 누구든지 못박혀 돌아가신 구주만 믿으면 구원 얻게 된다는 것을 굳게 믿었다. 그의 이러한 믿음과 확신은 특별히 마태 수난곡에 여실히 나타나 있다. 모든 예술의 최고 목적을 달성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 곡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친히 계시하셨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예수님의 예루살렘에서 받으신 고난에 대한 마태의 음악적 묘사는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산으로 향해 가시는 것을 보고 있던 무리들의 마음 속에 일어났던 그리스도의 온유하심과 사랑에 대한 감격이 바로 바하의 심령 속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바하가 만일 자기 생애에 있어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이처럼 강렬하지 않았더라면 도저히 그는 경건한 감정을 그의 음악에서 나타내지 못했을 것이다.
- 믿음으로 산 위인들/월터 어드맨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은 무엇들입니까?
주님을 따르는 자로서 내게 남겨진 고난을 채우기 위해 감당해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도마가 그 자리에 없었다가 예수님을 만나보지 못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아니하므로 여드레 후에 예수님이 다시 나타나 도마에게 나타나 도마에게 부활에 대한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 후의 일은 기록이 없으므로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도마의 행전'이라는 외경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각국으로 헤어지게 되었는데, 성령께서는 도마에게 인도에 가라는 지시를 했으나 거절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인도까지 여행할 정도로 건강하지 못합니다. 저는 히브리인인데 어떻게 인도인에게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까? 저는 못갑니다." 그 때 주님께서 도마에게 나타나서 "두려워마라, 도마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그러나 도마가 아주 강하게 거절하였다고 합니다. "보낼만한 사람을 보내십시오. 저는 못갑니다." 이때 압바네스라는 상인이 인도에서부터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그는 군다포러스 왕의 보냄을 받고 기술 좋은 목수를 데리러 왔습니다. 그런데 도마가 목수였습니다. 예수님이 시장에 와서 압바네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목수를 사시렵니까?" "예" "그래요, 내가 목수인 종이 하나 있는데 당신께 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기 있는 도마를 가리켰습니다. 그래서 흥정이 다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정중히 "나 목수 요셉의 아들 예수는 도마라 이름하는 나의 종을 인도의 왕 군다포러스의 상인 압바네스에게 판 것을 인정함"하고 게약을 맺었습니다. 압바네스는 도마에게 와서 예수님을 가? ?갭?"이분이 당신의 주인이요?" "예" "나는 그로부터 당신은 샀소" 도마는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 도마는 일찍 일어나 기도하기를 "나의 주님, 나는 당신의 뜻을 좇겠습니다."하고 주님께 완전히 항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남인도에 가면 도마의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가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우리 혼자 보내지 아니합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박조준 목사 예화모음(1)/박조준
나의 삶은 주님의 죽으심으로 생긴 특권들로 인해 주님께 감사하는 삶입니까?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더 겸손해야 할 것들은 무엇이 있습니까?
** 부활 신앙의 부활
미국 대통령을 지낸 부시가 부통령 시절에 소련 부레즈네프 수상의 장례식에 미국 대표로 참석했다. 장례식은 공산당의 관례대로 진행되었다. 모든 것은 죽음을 상징하는 검정 색이나 붉은 색으로 덮여 있었다. 장례식의 말미에는 고인을 위한 마지막 경의를 표하는 순서가 있었고 이때 고인의 부인이 앞으로 나왔다. 그녀는 품에 간직했던 백합 한송이를 꺼내어 관 위에 놓았다. 백합은 전통적으로 러시아 정교회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하는 꽃이었다. 그리고 미망인은 남편의 시신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 식장은 정적에 휩싸였다. 여인은 기도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일어선 그녀는 성호를 그었다. 이 순간, 여기저기서 미망인을 따라 성호를 긋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았던 조지 부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얼어붙은 소련 땅에 기독교 신앙은 완전히 죽어 버린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순간 부활 신앙이 부활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쉽게 풀어 쓴 이동원의 마가복음 이야기(하)/ 이동원
새벽을 깨우며 새벽에 주님을 만나는 기쁨을 늘 이어가고 있습니까?
나는 주의를 기울여 주의 말씀을 연구하고 배우고 배운 것을 전하고 있습니까?
** 어느 청소년수련회 때 설문조사를 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까?"라는 질문에 90%가 "타인에게 전도받은 것이 아니라 가족에 의해서 믿게 되었다"라고 대답했다. 이것은 믿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 즉 불신자들에게 그만큼 전도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미국 윌로우크릭교회와 새들백교회의 성장 원인 중 하나가 믿지 않는 불신자와 구도자를 위한 예배에 포커스를 맞추어 초청프로그램을 구상한 것인데, 열린 예배와 찬양집회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새들백교회 릭 워렌 목사는 15년간 목회 경험을 바탕으로 불신자가 처한 형편에 따라 복음을 잘 받아들이는 때를 다름과 같이 밝혔다.
①교회를 두 번째 방문하는 사람
②새로 결신한 사람의 가까운 친구나 친척들
③이혼 절차를 밝고 있는 사람들
④회복프로그램(술, 마약)의 필요를 느끼는 사람
⑤첫아이를 가진 신혼부부
⑥불치병에 걸린 환자와 가족
⑦결혼생활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부부
⑧문제아의 부모, 걱정에 잠긴 사람
⑨최근에 실직했거나 심각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
⑩지역사회에 새로 이사온 사람들
이상에 해당하는 이웃(불신자)을 목표로 정하고 적극적으로 전도하자.
-서론 예화사전/장자옥
"내게 어째서 이런 일이…나는 아니야"라고 부인하지는 않습니까?
나는 증인으로 살기 위한 준비를 한다는 핑계로 증인의 일을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 행복에 이르는 길
"행복의 비결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것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다" 죠지5세
행복이란 부단하고 냉철한 탐구의 결과 겨우 발견되는 정체불명의 어떤것인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행복이란 찾는다고 발견되는 것은 아니며 행복 그 자체가 목적은 더욱 더 아니다. 금 항아리는 우리가 어렸을때 흔히 상상했던것처럼 무지개 다리 기슭에 있지 않다. 금은 지하에서 캐내든지 아니면 계곡 흐름 속에서 수고하고 애써서 골라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복도 그냥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인간의 행복의 비결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자신의 영적 빈곤을 깨달으라. 결코 자신에 대해 자만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확신하라. 그러면 우리를 구하는 것은 교리나 교양이나 명성이 아님을 깨달으라
회개하는 심령을 늘 지속하라.
이웃 사람의 공궁한 처지에 민감하라.
주님께 삶 전체를 내 맡기는 생활을 하라.
기도를 배우라
영적인 것에 대한 감각을 예민하게 하라.
이웃 사람의 허물을 즐겨 찾으려 하지 말아라.
용감하고 정의의 편에 서라.
그리스도 안에서 편히 쉬는 법을 배우라.
나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합니까?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음으로 실패한 것은 없습니까?
** 브라더 앤드류의 기도
얼마 전 나는 중동 테러리스트의 만행으로 위태한 지경에 이른 인질들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질들과 그 가족이 안됐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이 하실 일이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죠. 어떤 일도 하나님의 뜻 밖에서 일어나는 법은 없으니까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내 안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뭐라구요?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예요? 당신은 무력하지 않아요! 하나님은 당신에게 그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주셨어요! 왜 기도하지 않느냐구요?'
1983년 우리 소속 단체인 Open Doors 는 소련을 위해 7년 간 기도하기로 했다. 사단의 강한 요새를 대적하기로 결정한지 일 년이 채 못 되어 그 결과를 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동안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고르바쵸프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듣게 되었고 그후 변화의 바람은 막을 길이 없었다. 기도를 시작한 지 6년이 되어갈 때 동서의 벽이 붕괴되어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감옥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너무 대담하게 구함으로써 하나님을 괴롭힐까 봐 염려하고 있다. 기도 중에 '하나님을 앞질러 뛰어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질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사단의 거짓말이다. 그렇다고 어리석거나 분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두려워 하지 말고 담대히 하나님 존전에 나아가라. 혹 우리가 실수한다 해도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를 사용하셔서 좀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만드실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 브라더 앤드류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며 공의로우십니다. 나는 공의롭습니까?
내가 두려움을 느끼는 대상은 무엇입니까?
** 할머니와 하나님
한 소녀가 자신의 할머니의 마지막 시간들과 죽음을 멋지게 설명했다. 장례식이 끝난 후 어머니에게 그 소녀가 말한 것이다.
"엄마, 엄마는 항상 제게 할머니가 하나님과 함께 걷고, 하나님과 말씀하셨다고 이야기하셨잖아요. 무슨 일이 일어났냐 하면 말이에요.
어느날 하나님과 할머니가 아주 오랜 산책을 나갔어요. 계속해서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까지 왔는데 피곤해 보이는구나. 그냥 나와 함께 내 집으로 가서 거기서 지내렴.' 그래서 할머니가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 집으로 가신 거예요."
-사랑하는 가족에게 읽어주고 싶은 이야기/ 잭 캔필드, 빅터 한센 외
나는 평화로운 방법으로 일을 해결합니까?
나는 지혜로운 지도자입니까? 아니면 교만한 폭군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