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가렛
공직을 은퇴한 기념으로 고향집 우영밭에 귤나무를 심었다. 집으로 들어서는 올레와 앞 뒤뜰에 귤나무와 어우러진 예쁜 정원 만들기를 시작하였다. 10년쯤 잘 가꾸면 정말 멋진 정원이 탄생하리라. 단감나무, 옥매화, 베롱나무, 벚나무를 묘목농원에서 구입하여 심었다. 예쁜 정원 만들기에 도전한다는 소식을 들은 꽃 농장을 하는 친구가 능소화, 베가못, 꽃잔디, 애기범부채 묘종을 무료로 제공해줬다. 오일장에서 구입한 목마가렛은 올레 중간쯤에 자리잡았다. 작년에 심은 금잔화에서 떨어진 씨앗은 겨울을 나더니 새롭게 싹이 나와 노란 꽃이 눈부시게 피었다. 번식력이 좋아 흐드러지게 핀 금잔화 사이 사이에 목마가렛 하얀 꽃송이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고향집을 방문할 때면 목마가렛으로 눈길이 먼저 간다. 노란색에 어우러진 하얀색이 당연히 돋보인다. 하얀 색깔의 꽃이 그 어떤 꽃보다도 예쁠 수 있다는 것에 새삼 감탄한다.
목마가렛은 보라색, 빨간색, 하얀색 등 다양한 꽃색을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나는 하얀 색 꽃을 좋아한다. 목마가렛 꽃은 쑥부쟁이나 구절초 꽃과 흡사하다. 꽃의 생김새로 구분하기 쉽지 않다. 모두 국화과로 분류되는 관목이며 꽃 모양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목마가렛은 잎을 보면 알 수 있다. 잎 생김이 쑥갓처럼 생겨서 나무쑥갓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학교 교장으로 재직할 때이다. 월요일이 되면 선생님들에게 일주일을 새롭게 시작하는 다짐을 메신저로 보냈었다.
‘꽃송이’
창가에 아름답고 눈에 띄는 꽃송이
꽃송이는 어쩜 순백같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나도 꽃송이가 되어서 몸도 마음도 아름다워지고 싶다.
나도 꽃송이가 되어서 눈에 띄는 하루를 보내고 싶다.
우리 학교 교정에 하얗게 핀 목마가렛을 보고 ooo학생이 쓴 시입니다. 보육원에서 외롭고 힘들게 자랐습니다. 말이 없고 혼자 지내는 걸 좋아합니다. 말썽도 피우고 선생님을 속상하게 할 때도 있지만 따뜻한 감성을 지녔습니다. 담백하게 써 내려간 행간에서 시를 쓴 학생의 마음이 눈에 보이듯 그려집니다.
우리 학교 학생들 대부분은 심성이 곱고 착하며 예의 바릅니다. 하지만 몇몇 학생이 말썽을 부려서 선생님을 힘들게 합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아이들을 더 잘 보살피라고 운명처럼 선생님이 되었나 봅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아이가 자존감을 가지고 학교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의 장점을 찾아 칭찬과 격려를 해주세요. 몇 년 전 교무수첩을 뒤적이다 보니 '하루에 세 명 학생에게 칭찬과 격려를'이라고 적혀 있는데, 실천하지 못한 아쉬움이 큽니다. 지금부터라도 잘 실천해 보려 합니다. 여러 번의 훈계나 벌보다는 칭찬과 격려의 말로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면 분명 우리 아이들은 달라질 것입니다.
선생님은 흩날리는 이슬도 영롱하게 빛나게 하는 풀잎입니다. 흐르는 바람도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갈대입니다.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 문자 공해가 아닌가 걱정되었다. 백여 명이 넘는 교직원이 근무하는 규모가 큰 학교이다 보니 선생님들이 업무용 메신저로 주고받는 메시지가 하루에도 수십 건이 된다. 거기에 보태어 내가 보내는 메시지에 눈길이나 줄까 고민도 하지만, 월요일이 되면 마음을 담아 정성껏 메시지를 보냈다. 어느 날 선생님 한 분의 답글을 받았다.
‘보내주신 메시지를 읽으며 월요병이 사라졌습니다. 즐겁고 행복하게 일주일을 시작할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메시지에 감동하기도 하고 위로도 많이 받습니다.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더 다가가고 칭찬과 격려도 아끼지 않겠습니다. 선생님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챙겨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월요일마다 교장 선생님 메시지가 기다려집니다.’
식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주장한 19세기 독일의 생물심리학자인 페히너는 “인간들이 어둠 속에서 목소리로 서로를 분간하듯이 꽃들은 향기로서 서로를 분간하며 대화한다. 꽃들은 인간들보다 훨씬 우아한 방법으로 서로를 확인한다. 사실 인간의 말은 사랑하는 연인끼리를 제외하고는 꽃만큼 미묘한 감정과 좋은 향기를 풍기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식물도 지각 능력이 있으며 위대하다는 것이다.
흐드러지게 핀 노란 금잔화 사이에서 하얀 꽃송이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나를 바라본다. 나의 눈길을 기다린 것일까. 자연스레 목마가렛 꽃송이와 눈이 마주친다. 금방 피어난 앳된 꽃송이 녀석이 배시시 웃는다. 분명 내가 보여준 관심에 반응한 것이리라.
나도 순백의 꽃송이가 되어서 눈에 띄는 하루를 보내고 싶다. 나도 꽃송이가 되어서 몸도 마음도 아름다워지고 싶다. (2023. 7.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