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즐겁게 본 영화가 두 편 있다. /라비앙 로즈(La Vie en Rose)/와 /호로비츠를 위하여/ 라는 영화다. 두 작품 모두 음악영화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음악에 대해 대단한 지식을 갖은 사람으로 오해될 수가 있겠지만 사실 나는 음악에 대해 문외한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우리나라 가요 중 예전에 불리웠던 이강산 낙화유수라든지 세 동무 등 우리의 한과 정서가 담뿍 깃든 노래정도다.
그런데 영화 /라비앙 로즈/가 에디뜨 삐아프의 일생을 그린 영화여서 친숙하게 다가왔기 때문이고 /호로비츠를 위하여/는
피아노 연주가 좋아서 감상한 것이다.
산 속에 박혀사는 내가 영화를 많이 본다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인터넷 곰TV에서 무료영화를 보내주고
있어서 아심찮이 영화감상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헌데 우리 나이 정도가 된 사람이면 누구나 1950년대에 몸살이 나리만치 입에 달고 다니던 애뜨랑제( 'etranger' )나
에디뜨 삐아프, 그리고 한네의 승천 따위가 신드룸처럼 머리에 박혀 있었고 나는 그 신드룸에서 벗어나기 위해
/양화리 기행/이란 詩集에 에삐땅 연가를 12편 연작으로 수록한바 있었는데 언젠가 목나회원이었든 조유금이라는
여류시인 그 누이가 “오라버니 에삐땅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이에요? 사전을 몽땅 뒤져도 그런 단어는 안 나오던데요.” 라고
항의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설명이 길어 전화로는 대답하기에는 너무 장황하다 싶어 “아, 그거? 내가 만든 신조어야.” 하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에삐땅/이란 에뜨랑제의 “에”와 삐아프의 “삐” 그리고 우리의 음악성을 대표한다할만한 이 땅의 “한네”의 이니셜을
합성시킨 단어였다.
에뜨랑제와 에디뜨 삐아프가 풍기는 이미지가 방황과 퇴락이라는 면에서 당시의 젊은이들이 앓고 있는 시대병(時代病)이었다면
문학을 한답시고 떠돌던 나에게는 더욱 더 절실한 생의 아픔이었고 그 아픔을 껴안고 몸부림치던 젊은 날의 정신적 아픔은
아니었을까 한다.
1915년 12월 19일, 파리의 빈민굴, 그것도 노상에서 삐아프는 태어났다. 매춘굴에서 커가며 백내장으로 실명할 뻔도 했던
그녀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길거리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러던 그녀가 <사랑의 찬가> <장미빛 인생> 등 불멸의 명곡을
남긴 샹송의 여왕이 되었다. 그녀는 1963년 마흔일곱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랑에 상처를 입고 다시 사랑을 위해
노래를 계속했던 애처로운 여자. 빈민굴에서 태어나 노래만으로 출세한 그녀가 암으로 세상을 뜨던 날 4만 명의 조문객이
울음을 터뜨렸다 한다. 프랑스 샹송을 대표하는 여가수 에디뜨 삐아프(Edit Piaf)는 고뇌에 찬 그녀의 목소리만큼 불운한 삶을 살다가간 가수로
지금까지 샹송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가수이다. "사랑의 찬가"는 1950년에 레코딩 되었고 뉴욕 공연 중 알게 된 권투선수 미셀 세르당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한을 그린
노래이다. 미셀 세르당은 1949년 뉴욕에서 공연 중인 삐아프를 만나러 가던 길에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고, 이에 절망한
그녀는 사랑의 찬가를 지어 불렀다 한다. 147cm의 작은 키에 뻐드렁니 구부정한 등허리 도무지 여자로서는 매력이 없든
에디뜨 삐아프가 당시 젊은이들에게 왜 그렇게 연민과 사랑의 대상이 되었는가는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설명하지 않아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에디뜨 삐아프의 정신적 방황이 가져다주는 상실감이 안주 감이 되고 니체의 니힐리즘이 독한 소주가 되어 목구멍을 할퀴고
넘어가는 자극이 좋아서 무던히도 마셔댔던 내 젊은 날, 그런 가운데도 우리의 것, 우리의 문화유산, 우리의 풍조를 부디 잘
간수하여 후대에게 넘겨주어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에 시달리며 인사동 바닥을 헤치고 다니다가 패거리들과 한데 잠을
자기도 하고 길거리에 신문지를 펴고 앉아 막걸리를 통음하며 시대병을 앓던 그적에 만났던 故박재삼 시인 지금까지도
심장병을 앓고 있는 정정길 시인 천상병 시인과 부인 목옥순 여사가 운영하는 /귀천/ 등이 지금은 아련하기도 하다.
이제 내 나이도 예순 여섯이다. 몇 년 전에 수술 받은 오른쪽 눈이 영 시원치 않아 며칠 전에는 길을 건너가던 어떤 부인을
차로 슬그머니 밀어부쳐 쓸어뜨리고 백배사죄하고 보험처리를 한 적도 있지만 이제 인생 종착역에 거의 다다른 샘인데도
올해는 또 드룹나무를 심기로 작정했는데 정작 묘목 값이 없어 수원고등학교 미술선생인 박수영이라는 여선생에게 전화하여
묘목을 사서 보내라 했으니 이것이 뻔뻔함인가?도 모르겠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러시아 출신 천재 피아니스트인데 그의 연주솜씨가 어찌나 뛰어났던지 지금도 피아니스트들로부터
선망과 찬사를 받는다고 하는데 나로서는 단지 그렇구나! 하는 정도다. 영화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에삐땅 연가/가 튀어나왔고 내 신세타령이 묻어나왔다. 어찌어찌 살아낸 세상살이일망정 지금
쓰고 있는 /동리 신재효 전기/나 끝내고 나면 그동안 써왔던 것들을 정리하여 사화집이나 한권 꾸며보는 것으로 인생을 마감
하려는데 글쎄?
에삐땅 연가 1
지나다가 문득 너를 만나다.
애가 터지도록 사람이 그리운 날은 열린 내 가슴으로 들어오려마. 들어와 無心에 이르려마.
마음이 마음 같아서 한마음일 때 서로의 믿음 되어 좋지 않으랴.
밀물결로 일렁이다가 일렁임에 접혀 물밑 그늘로 내려서는 고요와 따뜻한 각혈 끝낸 후의 더욱 은근해진 조바심으로
때로는 마주하고 때로는 비껴가면서도 스미듯 스미듯 다가서고 싶은 서로의 마음을 깁는 작업이어든 말없이 곱지 않으랴.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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