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춘매(悲春梅)
(꽃은 제철에 피어야)
人愛雪中梅(인애설중매) / 사람들은 설중매만 좋아라 하고,
不愛春日開(불애춘일개) / 봄에 핀 매화는 사랑치 않지.
花則知其時(화즉지기시) / 때가 되면 꽃은 늘 피어나는데,
人則異其栽(인즉이기재) / 구태어 별다르게 가꾸려 드네.
早開頭百花(조개두백화) / 딴 꽃보다 아무리 빨리 피어도,
春氣已自回(춘기이자회) / 봄기운은 이미 돌아왔는걸.
人以非時香(인이비시향) / 그래도 사람들 제 향기 아니라며,
徒事羯鼓催(도사갈고최) / 부질없이 빨리 피길 재촉한다네.
-이 시는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귤산 이유원(李裕元, 1814-1888)선생이 말년에 거처하던 남양주 가오실의 임하려(林下廬)에서 지은 시(詩)이다. 이는 ‘엽등(躐等)’이라는 고사숙어의 뜻을 일깨우는 의미가 있다. 엽등의 뜻은 다음과 같다.-
● 엽등(躐等)
[문] 교(敎)는 상등 사람의 자비사업(慈悲事業)으로 하등 사람을 인도(引導)하여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목적(目的)이라 그 인도하는
사람의 의무는 당연(當然)하나, 사람의 품질(稟質)이 원래 상등과 하등의 차별이 현수(縣殊)하여 하등사람이 능히 상등 사람을 따라
미치지 못하는 것은 정한 일이라. 만일 사람으로 하여금 상등 사람을 표준하려 하다가 종말에 실효를 얻지 못하면, 필경(畢竟)은 교
(敎)를 신앙하는 마음까지 나태(懶怠)할 염려가 없지 아니하거늘, 하등사람으로 하여금 엽등(躐等)으로 상등사람을 표준하라 함은 어
찌함입니까.
[답]하등을 상등으로 표준하면 그 의견(意見)과 도량(度量)은 배우지 못하나, 방향(方向)과 규모(規模)는 문명한 면목을 이루며, 겸하여
한울이 정제(精製)하신 수(壽)와 복(福)을 각기 분의(分義)대로 누리나니, 이는 다 교를 신앙하는 효험이라. 교에 대하여 점점 낙종(樂
從)하는 마음이 있을지언정 어찌 나태한 생각을 두리오.
옛 성현들은 공부의 정상적인 과정을 뛰어넘어 윗 단계로 올라가는 엽등(獵等)을 늘 경계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남을 이기려는 마음에
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의 욕심과 조급함 때문에 제 시기에 해야 할 일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되짚어 볼 일입니다.
※엽등 : 등급(等級)을 건너뛰어 올라감. 엽을 사냥렵(獵)으로 쓰기도 함(퍼온 글)
‘엽등’이란 말은 나에게는 생소하고 처음 듣는 용어다.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자들이 앞서가려고 무리하게 과외를 하는 현상을 비판하는 취지로 이해는 하지만 굳이 그러한 현상을 설명한는데 엽등이라는 어려운 말이 필요할까? 순박한 우리 속담으로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이 훨씬 이해하기 쉽고 가슴에 와 닿는다. 그래도 혹자는 무식한 자들이 그런 저속한 비유를 써서 자기 합리화를 하려는 것이 못마땅할지 모른다. 그래서 한문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엽등’이라는 말을 안다는 것은 지식에 속하는 것이다.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혜다. 지식은 컴퓨터를 두드리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나 지혜는 지식의 양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쩌랴. 현실은 거의 절망적이다. 부모들의 ‘독친’현상이 지나치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들고 어떻게 해서든지 남보다 앞서가려는 잘못된 생각이 교육을 망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아이들을 탓하지 말고 학부모들의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아야 할 텐데 쉽지 않다.
꽃을 제철에 앞서 피우려는 인간의 욕심만 탓할 바는 못 된다. 이젠 ‘제철’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자연현상 자체가 변하고 있다. 여름과일을 겨울에 출하한다고 미련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냥 두면 2류 대학에도 못갈 아이가 과외를 통해 일류 대학에 갔다면 부모가 잘못한 것이라고 지탄할 수도 없다.
능력도 개발될 수 있고 그런 힘을 교육은 갖고 있어야 한다. 다만 우려할 바는 흔히 보는 역효과다. 능력을 개발하여 더 좋은 성장여건을 만들어주려다 아이의 일생을 망치는 수도 많다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출처] .꽃은 제철에 피어야 하는가|작성자 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