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빈과 문정왕후, 김안로의 머리싸움
2002년 SBS에서 방영된 적이 있던 여인천하는 중종시대 궁중 여인들의 권력을 향한 암투를 그린 사극이었다.
당시 드라마에서는 경빈을 몰아내기 위해 국유지 목장을 사취한 혐의로 유배중이던 희락당 김안로와 문정왕후의 장자방(張子房), 정난정이 연합하여 동궁 후원에 작서를 매달아 세자를 저주한 작서의 변을 일으켜 그 일을 경빈의 소행으로 몰아 경빈과 복성군을 사사했으며, 그 일로 김안로가 조정으로 돌아와 심정과 손을 잡고 정권을 잡기 시작했으나 후에 작서의 변의 진범이 김안로의 아들 연성위 김희의 아내였던 효혜공주로 의심받자 김안로의 사주를 받아 동궁에 작서를 놓아두었던 효혜공주는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죽고, 김안로가 심정을 몰아내기 위해 효혜공주가 졸한 시각을 어의를 협박해 왕에게 늦추어 알렸다가 이 일이 문정왕후가 경원대군을 나은 이후에 발각되어 김안로 일당이 조정에서 쫓겨나고 실추한 뒤에 윤임이 세자를 중심으로, 윤원형이 경원대군을 중심으로 파벌을 형성하여 대립하였으나 중종이 승하하고 세자가 인종에 즉위하면서 윤임이 정권을 장악하였으나 인종이 곧 승하하고 경원대군이 명종에 즉위하면서 문정왕후에 수렴청정이 시작되고 윤원형과 정난정이 그 권력으로 갖은 행패를 부리다가 문정왕후 사후에 유배되어 그 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나왔다.
중종의 총관 후궁이었던 경빈 박씨는 중종의 모든 후궁들을 통틀어 왕에게 가장 사랑을 받았으며, 중종의 맏아들 복성군을 나으면서 중종의 총애는 더욱 깊어졌다.
경빈은 그만큼 권력의 중심에 서있는 여인이었으며 세자, 즉 인종의 생모 장경왕후 윤씨가 죽자 중궁전을 탐하였으나 윤지임의 딸 문정왕후에게 중궁전을 빼앗겼다.
경빈은 박원종의 수양딸로 중종반정의 주역이었던 조정 공신들과 결탁하여 큰 힘을 휘둘렀다.
그의 아들 복성군을 왕세자로 옹립하고 자신이 중궁전에 앉기 위해 세력을 모으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그녀의 세력의 중심 인물은 남곤, 심정 등이었다.
1519년에 경빈은 남곤, 심정 등과 함께 모의를 하여 남양군 홍경주와 손을 잡고 희빈 홍씨에게 사주하여 나뭇잎에 꿀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을 써 넣어 벌레가 이부분을 갉아먹자 글씨가 뚜렷하게 드러났는데, 이를 중종에게 보여주며 조광조가 역모를 꾀하고 있다는 것을 하늘이 알려주시는 것이라며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와 신진 사림파를 몰아냈다.
그 후 김안로가 그 아들 연성위 김희가 중종의 맏딸 효혜공주와 결혼 한 것을 빌미로 권력을 남용하자 경빈은 자신의 세력을 움직여 김안로를 탄핵하여 유배를 보냈다.
그러나 1533년 작서의 변이 일어나자 범인으로 몰려 복성군과 함께 폐위되었다가 그해 복성군과 함께 사사당했다.
그 후 조정에 돌아온 김안로는 심정이 경빈과 내통하였다는 죄를 뒤집어 씌워 심정과 그 일당을 모두 몰아내고 조정 실권을 장악하였으며 중종을 압박하여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정치를 좌지우지 하며 권력을 남용한 공포정치를 펼쳤으나 문정왕후를 폐위하려는 음모가 발각되고, 작서의 변이 그의 아들 김희의 소행으로 밝혀지면서
중종의 밀령을 받은 윤안임과 대사헌 양헌에 의해 체포되어 유배갔다가 사사당하였다.
그 후 조정의 세력은 세자의 외숙부 윤임을 중심으로 한 대윤파와 문정왕후의 아들 경원대군의 외숙부 윤원형을 중심으로 한 소윤파로 나뉘게 되었다.
문정왕후와 소윤파는 쥐의 꼬리에 불을 붙여 동궁에 불을 내는 등 갖은 수작으로 세자를 죽이려고 힘썼으나
실패하고 중종이 승하하여 세자가 인종에 즉위하자 대윤파는 윤원형일파를 모두 몰아내고 실권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심신이 쇠약했던 인종이 후사 없이 8개월만에 승하하면서(이부분에 있어서는 문정왕후가 독살했다는 설도 있음) 문정왕후의 아들 경원대군이 명종에 즉위하자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시작했다.
그 결과 당연히 권력은 윤원형과 소윤파가 장악하였으며 소윤파는 윤임과 대윤파가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죄를 뒤집어 씌워 을사사화를 일으켜 윤임과 대윤파 일당을 모조리 몰아내고 실권을 장악하였다.
윤원형의 첩 정난정은 이 과정에서 문정왕후에게 대윤파의 죄를 고하는데 공을 세웠으며 이 후 윤원형의 정실 부인 김씨를 독살하고 정실의 자리를 차지했다.
정난정은 문정왕후의 괴임을 받으며 당의를 하사받고 외명부 정 1품의 작위인 정경부인의 작호를 받았으며
궁궐을 무시로 드나들 수 있었다. 그리고 정난정은 보우를 문정왕후에게 소개시키고 불교의 중흥을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문정왕후가 죽자,
조정에서는 윤원형과 정난정에 대한 탄핵상소가 끊이질 않았고, 결국 명종은 외숙부였던 윤원형과 정난정을 황해도 강음으로 귀양보냈다.
정난정과 윤원형은 다시 조정 권세를 잡을 날을 꿈꾸며 숨죽여 지냈으나 정난정이 윤원형의 정실 김씨를 독살한 사건이 탄로나자 그곳에서 음독자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