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힘없는 경비노동자가 희생당해야 하나
근본적인 고용구조 개선과 사회적 인식 전환을 촉구한다
아파트는 한국의 대표적인 주거형태 중 하나이다. 아파트가 엄마를 상징한다는 어느 건설회사의 광고처럼, 아파트는 따뜻한 보금자리이자 안전한 울타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아파트에서 한 경비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지난 10월 7일, 서울시 압구정동에 위치한 신현대아파트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사건이다.
신현대아파트에서 근무하고 있는 경비노동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분신한 이씨를 포함한 동료 경비노동자들은 일부 입주민으로부터 무시와 꾸지람 등의 언어폭력과, 모멸감을 유발하는 비인간적인 대우 등의 정서적 폭력을 당해왔다. 사고 당일에도 이씨는 한 입주민으로부터 인격 모독적 발언을 들었고, 평소 동료들에게도 그로 인한 고충을 토로했다고 한다. 일상적 폭력에 노출된 이씨는 결국 자신의 억울함과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고 말았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자신을 모독하는 발언이 도를 넘었다며 불만을 내비췄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동네에 속하는 아파트에서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경비노동자에 대한 인격 모독이야말로 진작에 도를 넘어섰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 종사하는 경비노동자라는 이유로 부당한 업무지시와 폭력적 행위로 모멸함을 유발하는 것은 옳지 못한 행위이다. 어떤 관계이든 인간관계에서는 기본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 더욱이 경비직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연령은 대체로 중고령층이다.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보호받아야 할 어르신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마땅히 경비노동자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예의를 갖춰야 할 것이다.
경비노동자가 자신이 겪는 일상적인 폭력에 저항할 수 없었던 건 그것이 구조화된 폭력이기 때문이다. 경비노동자는 해당 아파트 소속이 아니다. 입주자대표회의가 경비업무를 위탁한 용역업체에 소속된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용역업체가 변경될 때마다 주기적으로 고용불안이 발생하는 경비노동자의 불안정한 고용지위로 인해 부당한 일이 있어도 정당한 문제제기조차 할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입주자대표회의는 고용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지만,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폭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고 방치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신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의 분신자살 시도 사건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지만, 경비노동에 대한 홀대와 인권의식 부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고질적인 사회문제이다. 또한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한 고용지위가 초래한 노동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고령화 사회 노후를 앞둔 중고령층 노동자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고용형태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에서 간접고용의 폐해를 극복할 근본적인 해결 대안 모색이 절실하다.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는 분신한 경비노동자의 쾌유를 간절하게 바라면서, 진상 규명과 함께 관련 당사자의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 될 수 있도록, 피해 노동자가 소속된 노동조합과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공동대책기구를 꾸릴 것을 촉구한다. 경비노동 없이 아파트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물론 정상적인 운영은 불가능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삼아 하찮은 일로 치부되어 온 경비노동을 재평가하고 아파트의 구성원으로서 경비노동자를 평등한 인격체로 인식해야 한다. 또한 경비노동자가 일상적 폭력과 인권침해에 맞서 스스로 구제할 수 있는 방법과 통로가 마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경비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을 바탕으로 고용구조 개선이 이뤄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 그리하여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2014년 10월 14일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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