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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덕션 노트 ===
브람스의 현악6중주와 슈만의 피아노오중주를 담은 최고의 실내악 DVD
2008년 예루살렘 인터내셔널 챔버 페스티벌
예루살렘 인터내셔널 챔버 페스티벌은 1998년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엘레나 바슈키로바에 의해 시작되었다. 본 DVD는 이 세계적인 실내악 제전의 10주년이었던 2008년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를 수록하였다. 페스티벌의 산파인 엘레나 바슈키로바 외에도 그가 다니엘 바렌보임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바이올리니스트 마이클 바렌보임, 스웨덴의 정상급 첼리스트 프란스 헬메르손, 2001년 루빈시타인 콩쿠르 우승자인 러시아 피아니스트 키릴 게르스테인, 미국의 중견 첼리스트 게리 호프만,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플루트 수석 가이 에세드, 베를린 필의 악장인 가이 브라운스테인, 역시 베를린 필의 단원인 마델라인 카루초, 그리고 베를린 필의 클라리넷 수석이었으며 현재는 지휘자로도 활동 중인 칼 하인츠 슈테판스 등의 정상급 아티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브람스의 현악육중주와 슈만의 피아노오중주와 같은 인기작들 외에도, 힌데미트의 클라리넷사중주, 모차르트의 피아노트리오 K.564 등을 최고의 화질로 만날 수 있다.
=== 작품 해설 === <다음 클래식 백과 / 최진영 글>
현악 6중주 1번 Bb장조 Op.18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
브람스가 남긴 두 개의 6중주곡 중 하나로, 바이올린 2대와 비올라 2대, 첼로 2대라는 독특한 편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현악기군만으로 이루어진 실내악곡 중에서 최초로 발표된 것이다. 1859년 가을에서 이듬해 여름까지 작곡되었으며 완성된 해 10월 20일, 하노버에서 요아힘 4중주단이 초연하였으며 출판은 1862년에 이루어졌다.
선대 음악가들의 업적에 대한 부담
베토벤이 남긴 업적 때문에 브람스가 교향곡 작곡에 큰 부담을 느꼈던 것은 유명한 일이다. 브람스는 아마 현악 4중주에 대해서도 비슷한 압박을 느꼈던 것 같다. 이는 그가 자신이 처음으로 작곡한 〈현악 4중주 1, 2번〉 Op.51을 발표하기 전에 약 20곡의 현악 4중주곡을 파기했다는 일화로도 잘 알 수 있다. 현악 6중주의 편성은 현악 4중주에 대한 부담과, 두터운 편성으로 관현악적 효과를 배가시키는 당시 실내악의 일반적인 경향(슈베르트와 멘델스존, 슈만 등이 모두 그러한 실내악 작품들을 썼다)으로 탄생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또한 브람스는 1857년부터 매년 가을 데트몰트 궁정에서 일하였는데, 궁정 악단에 속한 사람들과 종종 실내악 연주를 즐긴 것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여러 친구들의 조언으로
브람스는 악장이 완성 되는대로 주위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였다. 1859년 11월에는 클라라에게 1악장을 보냈으며, 12월에는 친구인 그림에게 1악장과 2악장을 보냈다. 그림이 이듬해 봄에 요아힘과 함께 이 곡을 다시 보았을 때도 마지막 악장은 없었으며, 브람스의 기록에 따르면 이듬해 여름에 마지막 악장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곡이 모두 완성된 후에는 다시 요아힘에게 초고를 보내 비평을 부탁하였으며, 그의 조언을 받아들여 작품을 일부 수정하였다. 브람스의 전기작가 칼베크는 브람스가 1악장과 4악장의 도입부에 요아힘의 의견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이 곡은 피아노 연탄용으로 편곡되어 1861년 5월에, 브람스에게 늘 지지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클라라에게 선물되기도 하였다.
즐겁고 쾌활한 분위기의 작품
이 곡은 북독일의 음울함 보다는 즐겁고 행복한 정서가 지배적이다. 발터 니만은 자신의 저서 《브람스》에서 “아폴론적 쾌활함과 건강하고 낙천적인 양상”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복잡하지 않은 민요풍의 선율이 풍부한 음향과 어우러져 전원적이고 밝은 느낌을 자아낸다.
악장 구성
1악장은 3/4박자의 B♭장조,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로 시작한다. 귀에 잘 들어오는 1주제 덕분에 매우 친숙함을 느낄 수 있으며, 고전적인 소나타 형식을 보인다. 1주제를 첼로로 제시하는 것은 요아힘의 의견이었다고 한다. 2악장은 변주곡 형식으로, 2/4박자의 d단조, 안단테 마 모데라토의 주제로 시작한다. 변주는 여섯 번 이루어지며, 균형적이고 조화로운 구성과 간결하고 명징한 변주의 기교는 매우 고전주의적이다. 브람스는 1859년 봄, 아가테와의 짧은 연애를 끝내는데, 그 때의 심리상태가 반영되었다고도 한다. 3악장은 스케르초 악장으로, 3/4박자의 F장조, 알레그로 몰토로 시작한다. 명랑하고도 해학적인 베토벤풍의 스케르초이다. 4악장은 2/4박자의 B♭장조, 포코 알레그레토 에 그라치오소로 시작한다. 론도 형식으로 역시 고전주의적 성격이 강한 악장이다. 아름답고도 즐거우며, 화려한 종지를 갖는다.
2악장 ‘브람스의 눈물’
이 곡에서 가장 사랑받는 악장으로, 일명 ‘브람스의 눈물’이라고 불린다. 브람스가 후에 이 곡을 연탄으로 편곡하여 클라라에게 선물하기 전, 거의 곡을 완성한 직후에 자신이 가장 좋아한 2악장을 피아노용으로 편곡하기 시작하여 1960년 9월 13일 클라라의 생일선물로 보냈기 때문이다. 이 악보가 클라라에게 전해질 때에는 ‘주제와 변주’라는 단순한 제목만이 붙어있었지만, 후에 사람들이 이 곡에 담겨있는 브람스의 클라라를 향한 마음을 헤아려 ‘브람스의 눈물’이라는 부제로 부르게 되었다. 이 편곡은 클라라에게 음악적 조언을 구하는 브람스의 편지와 함께 생일 이틀 전에 클라라에게 도착하였다. 편곡된 악보는 후에 빈 악우협회가 출판한 브람스 전집의 제15권에 수록되어, 1927년에 출판되었다. 브람스의 자필 악보는 1941년 이래로 워싱턴의 국회도서관에서 소장 및 보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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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다음 클래식 백과 / 이은진 글>
피아노 5중주 Eb장조 Op.44
로베르트 슈만(1810~1856)
슈만이 1842년 ‘실내악의 해’에 작곡한 피아노 5중주 작품으로, 고전적인 형식미를 충실히 구현하면서 특유의 낭만적 시정과 환상을 자유롭게 펼치고 있는 걸작이다. 당시 유행하던 피아노 5중주의 편성에서 벗어나 현악 4중주에 피아노를 더한 색다른 편성을 선보이고 있다. 4악장 구성.
원숙한 실내악 작품
슈만은 1842년 한 해 동안 3개의 현악 4중주를 비롯하여 다양한 실내악 작품을 작곡했다. ‘실내악의 해’라고 불리는 그해 가을, 그는 또 하나의 실내악 작품을 선보였다. 그것이 바로 〈피아노 5중주〉(Op.44)이다. 그는 세 곡의 현악 4중주를 완성한 뒤 다시 피아노 음악으로 돌아와서 완전히 새로운 편성의 피아노 5중주를 탄생시켰다. 1829년에 완성한 피아노 4중주 이후 처음으로 선보인 피아노를 위한 실내악이지만, 슈만의 가장 원숙한 실내악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형식미와 낭만적 시정의 완벽한 조화
슈만의 실내악 작품 중 가장 사랑받고 있는 〈피아노 5중주〉는 고전적인 형식미를 충실하게 구현하면서도 슈만 특유의 낭만적 시정과 환상을 자유롭게 펼쳐낸다. 특히 슈만이 그 아름다움에 감탄해 마지않았던 슈베르트의 〈피아노 트리오 2번〉에서 깊은 영향을 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슈만은 슈베르트의 피아노 트리오와 동일한 E♭장조를 사용하고, 슈베르트와 마찬가지로 장송행진곡을 2악장에 배치하였다. 또한 피날레 악장에서 이전 악장들에서 사용한 선율들을 극적으로 다시 제시하는 방식도 슈베르트와 매우 유사하다. 그만큼 슈만은 슈베르트의 작품에서 자신이 느꼈던 감동을 자신의 작품 속에서 되살리고자 시도했던 것이다.
슈만은 단숨에 이 작품을 완성했지만, 그러면서도 세심한 설계를 보여주고 있다. 각 악장들의 통일성뿐만 아니라, 정교하고 치밀한 대위법이 연주자들 간의 대화가 중요한 실내악의 묘미를 탁월하게 구현하고 있다. 이처럼 명료한 구성 속에서 슈만이 펼쳐가는 낭만적 환상의 세계는 더없이 아름답다. 피아노가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면서도 각 악기들의 균형을 절묘하게 유지함으로써 풍부한 음향과 다채로운 음색의 변화를 보여준다.
슈만은 이 작품을 아내인 클라라에게 헌정했으며, 이듬해 라이프치히에서 이루어진 공개초연에서도 클라라가 피아노를 연주하였다. 원래 작품을 완성한 1842년 가까운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클라라가 이 작품을 연주하기로 했지만 갑작스러운 병으로 멘델스존이 연주를 대신하게 되었다. 즉석에서 연주를 소화해야 했던 멘델스존은 연주가 끝난 뒤 어렵고 난해한 피아노 파트를 수정할 것을 권유했다. 그리하여 슈만은 2악장과 3악장을 개정하여 이듬해 대중에게 공개했다. 초연무대를 빛낸 클라라는 “활기와 신선함으로 가득한 눈부신 작품”이라고 감탄하면서 이후로도 이 작품을 즐겨 연주했다.
완전히 새로운 피아노 5중주
슈만이 이 작품에서 선보이고 있는 구성은 사실상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이제까지의 피아노 5중주는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현악 4중주와 피아노를 결합시킨 편성을 선보인다. 이러한 편성은 당시의 문화적 상징성과 악기의 발전을 고려한 것이었다. 당시 현악 4중주는 가장 중요한 실내악 장르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으며, 피아노는 음량과 강약표현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면서 콘서트의 주인공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따라서 현악 4중주의 상징적 의미와 피아노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살린 새로운 편성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실내악의 무대가 살롱에서 콘서트홀로 옮겨가던 시기에, 슈만은 자신이 시도한 피아노 5중주의 편성이 사적공간과 공적공간을 이어주고 실내악적 요소와 교향곡적 요소가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라고 믿었다. 이 작품이 성공을 거둔 뒤, 슈만이 시도한 새로운 편성은 이후의 피아노 5중주의 표준이 되었고 피아노 5중주는 낭만주의의 중요한 실내악 장르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악장 구성
1악장: 알레그로 브릴란테
고전적인 소나타 형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위풍당당한 1악장은 절묘한 주제의 구성이 돋보이는 악장이다. 바이올린이 힘차게 연주하는 열정적이고 화려한 1주제 선율은 이후 변주곡 풍으로 전개되면서 유려한 흐름을 보여준다. 뒤이어 피아노가 연주하는 더없이 아름답고 우아한 2주제는 1주제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피아노에 이어 각각의 악기가 이 달콤한 선율을 반복하면서 낭만적 시정을 펼쳐나간다. 발전부와 재현부를 거치는 동안 피아노가 현악기들을 이끌면서 주도적인 역할을 이어가고, 코다에서는 1주제 선율을 중심으로 열정적이고 힘차게 악장을 마무리한다.
2악장: 행진곡 풍으로, 조금 느리게
자유로운 론도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2악장은 장송행진곡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곡이다. 바이올린이 깊은 감정을 담아 연주하는 주제선율은 무거운 리듬으로 우울한 행진을 연상시킨다. 뒤이어 첼로와 바이올린이 함께 연주하는 선율은 애도의 분위기를 담은 장중한 애가를 노래한다. 격렬한 슬픔을 담은 아지타토 부분에서는 피아노의 날카로운 선율을 시작으로 비극의 분위기를 절정으로 몰아간다. 이 깊은 비통함을 거쳐 바이올린이 주제선율을 다시 연주하면, 피아노가 이를 고요히 반복한 뒤 숭고한 C장조 화음으로 악장이 마무리된다.
3악장: 스케르초, 몰토 비바체
빠르게 상행하는 피아노의 스케일로 시작되는 3악장은 역동적이면서도 환상곡풍의 자유로움을 보여주는 스케르초 악장이다. 피아노와 현악 성부가 주제선율을 대위법적으로 전개시키는 스케르초 악장은 두 개의 트리오 부분으로 이어진다. 1악장의 2주제에서 가져온 선율을 바이올린이 느릿하게 연주한 뒤에 각 악기들이 이 선율을 반복한다. 그러나 피아노에서 반복하는 셋잇단음표 리듬이 추진력과 긴장감을 팽팽하게 지속한다. 두 번째 트리오에서는 바이올린과 첼로가 무궁동을 연상시키는 현란한 리듬을 제시한다. 피아노는 날카로운 화음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여러 차례의 전조를 거쳐 스케르초 부분으로 돌아온다.
4악장: 피날레,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열정적인 푸가토로 전개되는 피날레 악장은 첫 악장의 주제선율을 극적으로 제시하면서 슈만 특유의 환상을 격정적으로 풀어낸다. 피아노가 힘차게 1주제를 연주하면 비올라가 더없이 서정적인 2주제를 연주한다. 발전부에서도 피아노와 비올라가 서로 주고받으며 대위법적인 진행을 전개하고, 피아노가 1주제를 강렬하게 연주하면서 재현부로 들어선다. 슈만은 재현부에서 전통적 관습에서 벗어난 독특한 조성진행을 보여주며, 제시부와 전개부와는 달리 2주제를 첼로로 재현하고 있다. 코다에서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푸가토를 전개하면서 화려한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낸 뒤 강렬하게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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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5년 1월 16일 네이버캐스트 / 황장원 글>
클래식 명곡 명연주
브람스, 현악6중주 1번, B♭, Op.18
오늘날 브람스가 남긴 작품들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장르는 역시 교향곡, 협주곡, 서곡 등의 관현악일 것이다. 하지만 작품 번호 122번에 이르는 그의 작품 목록에서 관현악곡은 관현악 반주가 붙은 성악곡을 포함하더라도 22곡을 넘지 않는다. 사실 브람스의 음악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장르는 실내악인데, 그가 남긴 실내악곡들은 거의 예외 없이 19세기 독일 낭만파 실내악 장르를 대표하는 기념비적 명작들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브람스는 실내악의 어느 특정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편성에 걸쳐 고른 수량의 작품을 남겼다는 점에서도 돋보인다.
그런데 브람스의 실내악에는 다소 독특한 구석이 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바이올린 소나타, 첼로 소나타, 피아노 5중주 (그리고 물론 클라리넷 작품들을 빼놓을 수 없지만) 등과 더불어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 ‘현악 6중주’를 꼽게 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현악 6중주곡 제1번]은 폭넓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이는 ‘현악 6중주’가 실내악 장르에서 다소 이례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떠올릴 때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
브람스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각 두 대씩 기용한 ‘현악 6중주곡’을 두 곡 남겼는데, 1860년의 [제1번 B♭장조]와 1865년의 [제2번 G장조]가 그것이다. 이런 편성의 곡은 실내악의 역사에서 드문 편으로, 브람스 이전의 사례로는 보케리니(Luigi Boccherini, 1743-1805)와 슈포어(Spohr, 1784-1859)의 작품 정도만을 찾아볼 수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브람스는 왜 이런 이례적인 장르에 관심을 가졌던 것일까?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그의 [교향곡 제1번]과 비슷한 이유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있다.
다시 말해서, 베토벤의 걸작들을 의식한 나머지 ‘현악 4중주’를 피해서 ‘현악 6중주’를 작곡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말이다. 참고로 [현악 6중주 제1번]은 현악기만을 사용한 것으로는 브람스의 첫 번째 (살아남아 출판까지 된) 실내악곡이었는데, 주지하다시피 이 분야의 대표주자는 ‘현악 4중주’이다. 한편 ‘5중주’가 아닌 ‘6중주’로 편성이 늘어난 이유로는, 슈베르트의 [C장조 5중주곡]을 의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여하튼, 브람스가 두 개의 [현악 6중주곡]을 쓴 이래 이 분야는 비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즉 19세기 후반에 드보르자크의 [A장조 6중주곡], 차이콥스키의 [피렌체의 추억],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 등의 명작들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현악 6중주’ 편성이 전성기를 구가했던 것이다.
궁정음악가의 경험, 좌절과 시련의 잔영
브람스의 [현악 6중주곡 제1번 B♭장조]는 1859년에서 1860년 사이에 작곡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56년에 슈만이 세상을 떠난 후, 브람스는 클라라 슈만의 추천으로 1857년부터 1859년까지 매년 가을 데트몰트(Detmold)에서 궁정음악가로 활동했다. 당시 브람스는 궁정악단 사람들과 어울려 실내악 연주를 즐기곤 했는데, 그런 경험이 이 6중주곡의 작곡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1859년 11월에 브람스는 제1악장의 악보를 클라라 슈만에게 보냈고, 12월에는 친구인 그림에게 첫 두 악장의 초고를 보냈다.
그런가 하면 1859년 초에는 브람스에게 두 가지 커다란 시련이 닥치기도 했다. 그 하나는 [피아노 협주곡 제1번 d단조]가 1월에 라이프치히에서 연주되어 참담한 혹평을 들었던 일로, 근 5년을 공들였기에 기대가 컸던 야심작의 실패에 브람스는 크게 상심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시련은 그 여파로 볼 수도 있겠는데, 바로 연인 아가테 폰 지볼트(Agathe von Siebold)와의 결별이었다. 1858년 여름, 브람스는 괴팅겐 대학교수의 딸인 아가테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두 사람은 비밀리에 약혼반지까지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피아노 협주곡의 실패 직후 브람스가 아가테에게 보낸 편지에서 모호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막을 내리고 말았다. 이러한 좌절과 상실의 잔영인지 몰라도, 이 곡의 제2악장에는 통한의 정서가 절절히 흐르는 듯하다.
브람스의 메모에 의하면 전곡은 1860년 여름에 일단 완성된 듯하다. 이후 브람스는 제2악장을 피아노 연주용으로 편곡한 다음 ‘주제와 변주’라는 제목을 붙여 클라라의 생일(9월 13일)에 맞춰 선물로 보내면서 비평을 구했고, 친구 요아힘에게는 전체 악장의 초고를 보내서 역시 비평을 구했다. 초연은 1860년 10월 20일 하노버에서 요아힘이 이끄는 앙상블의 연주로 이루어졌다.
봄날의 햇살 같은 고전적 정취
초연 직후의 비평에서 이 곡은 ‘봄 6중주’로 불렸다. 이는 역시 브람스의 멘토였던 슈만의 [봄 교향곡]에 대한 간접적 오마주로 볼 수 있겠는데, 한편으론 이 곡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이 6중주곡은 대체로 밝고 온화한 성향을 지니고 있는데(제2악장만은 예외), 이는 당시 데트몰트를 비롯한 독일 각지에서의 왕성한 활동을 통해서 차츰 생활의 여유를 찾아가고 있었던 브람스의 상황과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특히 데트몰트는 조용하고 안정된 분위기의 보수적인 도시로서 주위에 아름다운 숲이 많았다.
데트몰트에서 브람스는 고전파 및 그 이전 시대 음악을 연구했는데, 이 곡에서는 특히 빈 고전파 대가들의 영향이 엿보인다. 그중에서도 베토벤의 [7중주곡]과 악곡의 성격, 구성, 양식 등이 유사하며, 하이든의 선율 또는 반주 기법에 대한 선호도 발견된다. 아울러 전편에 걸쳐 감상적인 선율이 면면히 흐르는 점은 슈베르트를 연상시키며, 이에 관해 브람스 자신은 ‘길고 센티멘털한 작품’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민속음악적 요소가 두드러지는 점도 이 곡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이다. 첫 악장의 제1주제와 제2주제 사이에는 랜틀러(오스트리아의 민속춤곡) 풍 선율이 삽입되었고, 제2주제의 리듬은 왈츠의 그것과 유사하다. 또 제2악장의 유명한 주제도 기본적으로 민요풍이다.
제1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B♭장조, 3/4박자
소나타 형식으로, 느긋하면서 친근감이 느껴지는 고전풍의 제1주제와 왈츠 풍의 제2주제가 부드러운 대비를 이룬다. 이 악장에서 나타나는 선율과 리듬, 그리고 느슨한 구성과 유연한 흐름은 다분히 슈베르트적이다.
제2악장: 안단테 마 모데라토, d단조, 2/4박자
주제와 6개의 변주로 이루어진 변주곡. 전곡 가운데 가장 유명한 악장으로, 혹자는 ‘브람스의 눈물’이라 부르기도 한다. 처음에 비올라에서 나타나는 민요풍 주제는 단순하면서도 정력적이어서 베토벤적인 인상을 풍긴다. 제1변주에서 제3변주까지는 분절성과 활동성이 차츰 가중되면서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지만, 제4변주에 이르면 이제까지의 긴장이 누그러지며 조성도 온화한 D장조로 바뀐다. 제5변주는 주제에서 꽤 멀어진 모습으로 새로운 인상을 빚어내고, 제6변주는 다시 d단조로 돌아가 주제 선율이 거의 원형 그대로 나타나지만 그 강도는 약해져 첼로에서 비가처럼 흘러나온다. 마치 꿈꾸듯 미묘하고 신비로운 기분을 자아내는 종결부는 다시금 슈베르트(‘죽음과 소녀’)를 연상시킨다.
제3악장: 스케르초. 알레그로 몰토, F장조, 3/4박자
쾌활하고 해학적인 베토벤 풍의 스케르초 악장. 첼로의 피치카토 위에서 바이올린이 경쾌한 선율을 연주하는가 하면 익살스런 싱커페이션 리듬도 나타난다. 힘찬 트리오는 한때 폭풍우처럼 휘몰아치기도 한다.
제4악장: 포코 알레그레토 에 그라치오소, B♭장조, 2/4박자
론도 형식으로, 하이든을 연상시키는 느긋한 행진곡 풍 주제로 출발한다. 이후 우아한 느낌의 부주제가 등장하고, 절정으로 향하는 대목에서는 푸가토도 나타난다. 은은한 고전적인 양식감을 머금고 유유히 흐르던 음악은 종결부에 이르러 숨 고르기 후 현란한 가속과 분주한 움직임으로 놀라움을 선사하면서 인상적으로 마무리된다.
추천음반
[음반] 아마데우스 4중주단 외 <DG>
[음반] 예후디 메뉴인, 세실 아로노비치, 모리스 장드롱 외 <Warner/EMI>
[음반] 프라착 4중주단 외 <Praga Digitals>
[음반] 라파엘 앙상블 <Hyperion>
[음반] 슈투트가르트 6중주단 <Naxos>
[네이버 지식백과] 브람스, 현악 6중주 1번 [Brahms , String Sextet No.1 in B♭ Major, Op.18] (클래식 명곡 명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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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해설 === <2012년 11월 12일 네이버캐스트 / 박제성 글>
명곡 명연주
슈만, 피아노 5중주 Op.44
피아노 5중주 장르의 시초가 된 작품
1843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부인 클라라의 연주로 초연
슈만은 젊은 시절 때때로 실내악 작품을 작곡하긴 했지만 184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 장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해 6월과 7월 그는 세 곡으로 구성된 현악 4중주 Op.41의 작곡을 끝마쳤고 10월에는 피아노 5중주 E플랫 장조 Op.44를, 11월에는 피아노 4중주 E플랫 장조 Op.47을 작곡했다. 그리고 1843년 1월에는 후일 개정을 한 환상소곡집 Op.88과 안단테와 변주곡 Op.46의 초기 버전을 작곡했다. 이는 1839년부터 친구인 프란츠 리스트가 언젠가는 슈만이 피아노만으로 만족할 수 없으리라 예견하며 3중주, 4중주, 5중주, 6중주 혹은 7중주의 실내악을 작곡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것에 고무된 것으로서, 이 시기는 가히 슈만에게 있어서 “실내악의 해”라고 부를 만하다.
1841년 11월 슈만은 아내인 클라라와 함께 바이마르를 방문하여 환상곡에서 발전시킨 교향곡 1번과 전 해에 쏟아냈던 가곡들을 선보였고 이듬해 2월까지 브레멘과 올덴부르크, 함부르크도 방문했다. 당시 그는 아내의 피아노 연주를 보조하는 듯한 자신의 역할에 일말의 불만을 품었다. 그런 까닭에 3월에 클라라는 한 달 동안 코펜하겐으로 연주회 여행을 떠났고, 그 사이 슈만은 혼자서 라이프치히로 되돌아왔다.깊은 우울감에 빠져 작곡을 할 수 없었던 그는 대위법과 푸가에 몰두하기 시작하며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의 현악 4중주를 공부했다. 특히 베토벤을 연구한 뒤 그는 보다 상징적인 음악형식에 자신감을 갖게 되며 실내악 작품을 본격적으로 작곡할 준비를 마치게 되었다.
순수 현악기를 위한 실내악 작품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를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슈만은 자신의 악기인 피아노에 대한 열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피아노가 등장하지 않는 실내악 작품에는 주제나 변형부와 같은 대목에서 피아노를 연상시키는 모습이 등장하고, 피아노가 수반된 실내악에서 현악기들은 피아노를 모방하거나 뒷받침하며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피아노 5중주와 4중주의 경우가 그러하다.
사실상 슈만의 실내악 작품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서 이 피아노 5중주는 내용과 형식이 가장 이상적으로 화해를 이루고 있는 고전적인 작품이다. 음악적 내용뿐만 아니라 이 작품으로 인해 부부 사이도 다시금 화해를 이루게 되었다. 슈만은 잠시나마 부인에게 질투를 느꼈던 것이 미안했던 탓인지 이 작품을 클라라에게 헌정하여 자신의 변치 않은 사랑을 확인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후 몇 차례 수정을 하여 1843년 1월 8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부인 클라라의 연주로 공개 초연(1842년 11월 29일 슈만의 집에서 먼저 연주된 바 있다)되었다. 급격한 개혁가였던 리스트는 이 작품을 “너무 라이프치히적이다”라고 평가하며 지나치게 고전적인 모습을 달갑지 않아 했지만, 이 작품의 대중적인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져 갔다.
이 작품은 언뜻 보면 각기 다른 개념의 회화가 모여 있는 것 같다. 일반적인 고전주의적 실내악의 악장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 같이 각 악장이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네 개로 구성된 일련의 서정적인 세밀화를 이루고 있다기보다는, 자신의 창조적인 시성을 음악으로 환원하기에 이렇게 큰 규모의 형식이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며 독립적인 세계를 환상적으로 이어놓은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 위풍당당한 소나타 형식의 1악장, 장송 행진곡의 2악장, 환상곡풍의 스케르초인 3악장, 열정적인 푸가토인 4악장으로 이어지는 이미지는 젊은 시절 피아노 작품인 나비나 유모레스크, 크라이슐레리아나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극적인 스토리-텔링에 비견할 만하다.
어찌되었던 슈만은 피아노와 현악 4중주가 함께 하는 피아노 5중주라는 실내악 작품을 처음으로 작곡한 위대한 음악가로서, 그의 피아노 5중주 E플랫 장조는 피아노가 가세한 실내악 장르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빛을 발하는 명곡임은 의심할 바 없다. 후일 브람스를 비롯하여 드보르작, 포레, 엘가, 레거, 쇼스타코비치 등등이 슈만의 피아노 5중주를 본받아 이 형식을 발전시켜 나아갔다.
1악장 알레그로 브릴란테(Allegro brillante)는 소나타 형식의 모범과 같은 곡으로서 두 개의 주제가 등장한다. 1주제는 E플랫 장조로서 반짝거리는 빛을 발하는 멜로디 라인이 인상적이고 2주제는 관계조인 C단조로서 서정적이고 겸허하며 온화하다. 피아노는 이 두 개의 주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며 현악기들 위에 군림하는 주인공으로서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2악장 행진곡 풍으로: 다소 느리게(In modo d’una marcia: Un poco largamente)는 슈만의 장송 행진곡으로서 실내악의 걸작으로서의 풍모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다분히 주제적인 성격인 세 개의 주요 악상(터벅거리는 듯한 음울한 리듬-조용히 침잠하는 낭만적인 선율-역경을 딛고자 하는 의지를 담은 빠른 선율)이 엄격한 형식을 통해 전개되며, 이러한 엄격함은 전체에 진지하면서도 비통한 분위기를 불어넣는다. 비극적인 아지타토를 거친 뒤 피아노의 간헐적인 리듬은 차츰 조용해지며 마침내 화음의 빛의 구름 속에서 영롱하게 해체된다.
3악장 스케르초: 몰토 비바체(Scherzo: Molto vivace)는 상승하는 활기찬 스케일과 이에 대한 거울로서 하강 스케일이 대비를 이루는 주제가 이례 없는 활력을 더하는 스케르초 악장이고, 4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Allegero ma non troppo)는 첫 악장의 주제를 다시 한 번 포착하여 모든 악기가 동원되어 열정적인 푸가토를 연주하는 악장으로서, 슈만 특유의 극도의 긴장상태와 환상적인 분위기가 펼쳐진다. 이 작품을 작곡한 뒤 고전형식에 자신감을 얻은 슈만은 보다 큰 규모와 장대한 내용의 작품, 즉 오페라에 눈을 돌리게 된다.
추천음반
가장 먼저 빈의 분위기와 고전적인 기품을 담은 외르크 데무스와 바릴리 4중주단의 연주(Westminster)를 추천한다.
한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와 보로딘 4중주단의 연주(Teldec)는 치열하면서도 현대적인 세련미가 돋보이는 해석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고,
파울 굴다와 하겐 4중주단의 연주(DG) 또한 빈의 음향을 현대적으로 잘 보여준 연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마지막으로 레너드 번스타인과 줄리어드 4중주단의 연주(SONY)도 아날로그 시대부터 명반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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