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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답사여행기 스크랩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최재경 추천 0 조회 69 08.10.24 11:2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미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어느덧 미국 문화에 상당히 젖어 가는 것을 느낍니다.  그 중의 하나가 타협에대한 나의 생각입니다. 나도 모르게 타협이라는 단어가 부정적 개념에서 긍정적인 개념으로 바뀌었습니다.

 

미국의 선거 과정을 지켜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올 때가 많습니다. 후보가 결정이 되면 어제까지의 경쟁자가 패배를 선언하고 당선자에대한 전적인 지지와 협조를 표명합니다. 국가의 이익에 관한 일이 터지면, 정치적 이해관계는 잠시 접어두고 모두 하나가 됩니다. 정말 멋져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왜 이런 일이 흔하지 않은 것일가요?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지난 8월 26일에는 힐러리 클린턴이 자신과 후보 선발 경쟁을 벌였던 오바마 상원의원에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연설을 하였습니다. 다음은 이를 보도하는 기사의 일부입니다.

 

"오렌지색 바지 정장 차림으로 등단한 클린턴은 한동안 대의원들의 환호로 연설을 시작하지 못했으며, 그녀는 연호하는 대의원들을 모두에게 다가가 호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클린턴은 "나는 자랑스런 엄마로, 민주당원으로, 뉴욕주 상원의원으로, 미국인으로, 그리고 오바마의 지지자로 이 자리에 섰다"고 첫 운을 띠우자 약 7만5000명의 펩시 센터 참가자들은 다시 한번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하며 박수쳤다.

그녀는 연설에서 "우리는 같은 팀이다. 우리 미래를 위한 싸움에 정지하면 안된다. 우리는 함께 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당의 화합을 강조하는 의미의 연설을 이어갔으며, "나는 과거를 뒤로 하고 미국의 미래를 위해 출마했었으며, 그것이 버락 오바마를 지지하는 이유이다"고 오바마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했다."
         - 클린턴의 감동적 오바마 지지연설-당 우려 말끔히 해소
             뉴시스 | 기사입력 2008.08.27 12:59 (서울시간)

 

우리는 변치 않는 마음 타협하지 않는 마음을 선으로 생각하는 문화 속에서 교육받고 성장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번 정한 마음은 절대로 변치 않아야 정의롭다는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생각을 바꾸는 것은 비겁한 일이고 양보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니 한 번 잘못 생각해서 나쁜 길로 빠졌다가도 거기서 빠져 나오려면 변절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기 때문에 탈퇴가 쉽지 않습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 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 정몽주

 

이런 문화는 우리가 어려서 받은 교육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정몽주 선생 타입의 지조를 최고의 선으로 배우며 자랐습니다. 물론 지조는 선양해야 될 덕목이지만 너무 강조되다 보니 도를 넘어 버린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융통성이 전혀 없는 경직된 사고를 가진 사람이 멋있어 보이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가족간에 일어나는 일에도 이런 문화는 똑같이 적용됩니다. 한 번 싸우면 내가 좀 심했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지라도 자존심 때문에 며칠씩 말을 안 하고 버티는 부인들이 많고, 한 번 ‘안돼’ 했으면 끝까지 ‘안돼’를 고집해야만 내 체면과 권위가 지켜지는 것처럼 느끼는 가장들이 많습니다. 부인들의 자존심 지키기나 가장들의 체면과 권위 유지하기도 따져 놓고 보면 이런 생각바꾸기에대한 부정적 가치관에서 나온 부산물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더 나은 관계를 위해서 발전적으로 생각이나 태도를 바꾸면 좋을 터인데도 타협을 하자니 지고 들어 가는 것 같고, 양보하면 바보스럽고 손해 보는 것 같이 느껴져서, 내가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 수 없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타협을 배워 보았으면 합니다. 양보하는 것을 연습해 보았으면 합니다. 생각을 바꾸고도 마음이 편할 수 있고 지고 들어가는 내 자신이 참으로 멋있게 생각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검정색이나 내가 좋아하는 흰색중 하나를 택하려고 고집하기보다는, 두 사람 모두에게 무난한 회색 골라 보면 어떨가요?  서로 타협하고 힘을 합하려고 시도하는 사람을 향해 회색 분자라고 공격하는 문화를 버리고, 타협과 절충을 통하여 만든 생각을 힘을 합하여 함께 밀고 가면 더 큰 힘이 생기고 더 큰 열매를 맺게 되지 않을가요?

정몽주 선생의 생각바꾸기를 시도하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이방원의 시조를 한번 음미해 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칙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하여 천년만년 누리리라
                    - 이방원

 

이미 이씨조선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새워졌으니 만약 정몽주 선생이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 타협하고 이성계의 혁명에 참여했었다면 민족을 위하여 큰 업적을 남길 수 있지 않았을가요? 그의 임향한 일편단심의 대상이 쇠퇴한 고려의 임금이 아니라, 무능한 정권아래 신음하는 백성들이었다면 그의 결정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가요? 죽음을 택하여 자신의 능력을 땅에 묻어 버리는 길을 택하는 대신 이방원의 제안을 받아 들여 온 민족이 천년만년을 누릴 수 있는 번영의 토대를 만들어 내는시도에 동참하였다면 그 편이 훨씬 더 정의롭지 않았을가요?

 

정몽주 선생이 생각을 바꾸셨더라면 우리나라 역사가 달리 쓰여졌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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