楚汉志.23
○ 어린 太子 政의 등극
信陵君이 秦军에게 后方으로부터 전격적으로 기습을 감행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临戦无退(임전무퇴)의 전통을 자랑하던 秦军도 이 때만은 여지없이 패주하였다.
信陵君은 승승장구하던 秦军을 철저히 때려부수고 커다란 승전가를 울렸던 것이다.
趙王은 신릉군과 그의 군사들을 城 안으로 정중하게 맞아들이며 말한다.
"公子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쯤 秦军의 발굽에 짓밟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平原君도 信陵君의 손을 마주 잡고 눈물로 감사한다.
그런데 신릉군은 王名을 사칭하고 军事를 무단으로 몰고 왔기 때문에 故国에는 돌아갈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军事만 돌려보내고 信陵君 자신은 趙나라에 남아 있게 되자,
趙王은 信陵君을 5개 城市의 领主로 정하여 생활을 보장해 주려 하였다.
그러나, 신릉군을 따라온 식객 하나가 이렇게 간한다.
"무릇 모든 사물에는 잊어 버려야 할 일과 잊어버려서는 안 될 일이 있는 법이옵니다.
公子께서는 남에게 덕을 베푸신 일은 하루속히 잊어 버려야 할 일이옵고,
상감의 뜻을 거역하여 晋鄙 将军을 살해하고 军事를 빼앗아 왔던 일은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 될 일이옵니다.
그런데 公子께서는 잊어버려서는 안 될 일은 잊어버리시고,
잊어버리셔야 할 일에 대한 공로로서 5개 城市에 领主가 되신다고 하니
그것은 크게 옳지 못한 일이옵니다."
信陵君은 그 말에서 크게 깨달은 바 있어,
领主로 취임할 것을 깨끗이 사양하고 오로지 兵学 연구에만 몰두하였다.
그리하여 몇 해 후에는 훌륭한 병서 한 권을 저술해 놓았다.
한편 秦军은 信陵君에게 참패하고 돌아가자 信陵君을 숫제 없애 버릴 생각에서,
魏나라에 많은 첩자들을 밀파하여 갖은 유언비어로 신릉군을 음해하기 시작했다.
"信陵君은 魏王을 내쫓고 자기가 王位에 오르기 위하여
지금 趙나라에 머물면서, 魏의 诸侯(제후)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중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秦나라의 밀정들이 퍼뜨려 놓은 모략이었다.
魏王은 그런 소문이 귀에 들어오자 크게 노하여 榜文까지 붙였다.
信陵君은 멀리서 그 소식을 전해 듣고 괴로운 심회를 금할 길이 없어 날마다 술로 보내고 있었다.
한편, 秦의 荘襄王은 趙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있던 원한이 골수에 맺혀서
趙를 치는 것을 평생의 숙원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리하여 두번째로 정벌군을 출정시켰는데, 난데없는 魏军의 기습으로 참패하고 돌아왔으므로
이번에는 魏에 대한 분노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는 즉시 丞相 吕不韋를 비롯하여 모든 장수들을 한 자리에 불러 말했다.
"우리는 趙를 치려고 했는데, 魏가 후방으로부터 우리를 기습해 왔다니,
그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오.
军事 20만을 줄테니 누가 나가서 魏을 격파하도록 하시오."
대장 蒙骜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신이 魏를 격파하여 大王의 진노를 풀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몽오는 그날로 20만 대군을 이끌고 출정하여
魏의 도성인 大梁城 30리 밖에 진을 치고 일거에 함락시킬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魏의 중신들이 크게 놀라 왕에게 고한다.
"秦将 蒙骜(몽오)가 20만 대군을 이끌고 30리 밖에 와 있으니 군사를 속히 출동시켜 적을 격퇴시켜 버려야 하겠습니다."
魏王은 대경 실색하며 伪公, 假公의 두 장수를 불러 명한다.
"그대들에게 군사 5만을 줄테니 속히 나가 적을 격퇴시켜 주시오."
그러나 伪公과 假公은 蒙骜 장군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그들은 10여 합씩 싸워 보다가 급히 쫓겨 돌아와 魏王에게 보고 한다.
"저희들로서는 도저히 당해 낼 수 없사오니 城门을 굳게 걸어 잠그고 새로운 계책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魏王은 한숨을 쉬며 탄식한다.
"아아, 나라를 지켜 줄 장수가 한 명도 없으니, 이 어찌 했으면 좋단 말이오."
그러자 伪公 과 假公 모두 품한다.
"나라를 구출할 능력을 가진 분은 지금 趙나라에 가 계신 信陵君 밖에 없사옵니다.
그 公子님이 晋鄙 장군을 죽이고 军事를 빼앗아 간 것은 趙나라를 돕기 위한 부득이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大王께서 친서를 보내시어 귀국하라는 분부를 내리시면
信陵君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돌아 오실 것이옵니다."
魏王은 사정이 워낙 다급한지라 信陵君 앞으로 친서를 써 주면서 말한다.
"그대들이 이 편지를 직접 가지고 가서 信陵君을 급히 데려 오도록 해 보시오."
두 사람은 친서를 휴대하고, 바로 趙나라로 신릉군을 찾아 갔다.
信陵君은 王의 친서를 읽고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나는 趙나라를 돕기 위해 부득이 晋邯 将军을 죽이고 军事를 빼앗아 갔던 것이오.
그러나 大王께서는 나를 역적으로 여기셔서 나의 목에 천만 대금의 상금까지 걸어 놓았다고 하니,
내가 돌아가 본들 어찌 무사할 수가 있겠소."
신릉군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걱정이었다.
신릉군이 귀국을 거절할 기색을 보이자 毛元 薛义 두 식객들이 즉석에서 이렇게 간한다.
"公子께서 오늘날 만인에게 추앙을 받아 오시는 것은 국가에 충성스러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秦军이 도성을 점령하고 魏国의 종묘 사직을 불살라 버리면,
公子는 무슨 면목으로 세상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으오리까.
그러므로 빨리 귀국하셔서 나라를 구출하셔야 합니다."
신릉군은 그 충고에서 자신의 불찰을 깨닫고 부랴부랴 귀국 길에 올랐다.
그리하여 魏王앞에 엎드려 고한다.
"臣은 백 번 죽어 마땅한 죄를 범했사온데, 大王께서는 至亲의 정으로 용서를 내려 주셔서 홍은이 망극하옵니다.
이제 臣은 诸侯들과 힘을 합하여 적을 기필코 격파해 버리고 말겠습니다."
눈물을 보인 魏王은 아우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贤弟를 돌아오지 못하게 한 것은 나의 不明 때문이었소.
오늘로서 경을 上将军에 임명하니, 적을 무찔러 나라를 구해 주기 바라오."
信陵君은 谢恩肃拜하고 어전을 물러나오자,
곧 楚,燕,韩, 齐, 趙 등 다섯 나라에 사신을 급파하여 六国联盟으로 秦에 대항할 것을 호소하였다.
信陵君은 평소에도 모든 나라에 신망이 두터웠던 까닭에 다섯 나라에서는 각각 응원군 5만 명씩을 보내왔다.
신릉군은 联合军(연합군) 총사령관의 직책을 띠고 秦军과 대전하게 되었다.
秦将 蒙骜가 그 소식을 듣고 先制攻击(선제공격)을 가해 왔다.
신릉군은 30만 大军을 거느리고 마주 달려 나와 싸우는데, 양군은 30합이 넘도록 胜负(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러자 신릉군은 젊은 병사 한 명을 적의 哨马(초마)로 가장 시켜 가지고 몽오 장군에게 달려가서,
"大王께서 急逝하셔서 军事를 거두어 가지고 급히 회군하라는 전갈이 本国에서 왔사옵니다."
하고 말하게 하니 蒙骜 将军 은 크게 놀라며 사기가 갑자기 저하 하였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을 맹렬히 퍼부으니 秦军은 형편없이 패주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연합군은 간단한 모략 하나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몽오는 급히 회군하여 알고 보니, 모든 것이 적의 계략이 아닌가?
荘襄王은 이를 갈며 분노했다.
"여섯 나라가 공동으로 덤벼 왔다면, 이제부터 여섯 나라는 모두가 우리의 적이다.
나는 여섯 나라를 모조리 정복하리라."
그러나 荘襄王은 그날부터 울화가 사무쳐서 시름시름 앓기 시작 하더니,
마침내 信陵君이 모략한 대로 왕위에 오른 지 4년 만에 어이없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리하여 吕不韋의 아들인 太子 政이 등극하였으니
이때 新王의 나이는 13세였다.
...♡계속 24회에~~~ㆍ
● 楚汉志 24
○ 吕不韋(여불위)의 고민
열세 살짜리 少年 政이 王位에 오르자,
丞相인 吕不韋가 国政을 전담하게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나의 아들이 王이 되었고, 太后인 朱姫는 정부이고 보니, 이제 秦나라는 사실상 나의 나라다!)
사람 장사에 큰 뜻을 품고 큰 일을 도모한 지 14년 만에,
吕不韋는 마침내 秦나라의 최고 权力者(권력자)가 된 것이었다.
남편이 죽고 나자, 朱姫의 애욕은 더욱 강렬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는 남편의 눈을 속이느라고 애를 먹어 왔지만,
이제는 그런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본시부터 체질적으로 淫荡性(음탕성)이 강한 데다가,
여자 서른 한 살이면 生理的으로 절정의 시기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그녀는 欲情이 발동하기만 하면,
낮과 밤을 가리지 아니하고 丞相府로 사람을 보내 吕不韋를 太后宫으로 불러 들이기가 보통이었다.
어느 날, 여불위가 승상부에서 国务(국무)를 보고 있노라니까,
시녀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가 오더니,
"太后妈妈(태후마마)께서 丞相을 太后宫으로 급히 듭시라는 분부시옵니다."
하고 아뢰는 것이 아닌가.
(또야? 이 대낮에 또 그 짓을 하자는 말인가.)
吕不韋는 太后의 뜻을 대뜸 알아채고 눈살을 찌푸렸다.
여불위 자신도 계집을 좋아하는 점에 있어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精力家이기는 하였다.
그러나 남녀 관계란 남자 편에서 征服을 해야만 흥미가 있는 것이지,
여자 편에서 속옷을 벗어 붙이고 덤벼들면 오히려 혐오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니던가.
朱姫가 그런 것을 모를 리 없건만,
체질적으로 欲情이 강렬하다 보니 자신을 억제할 여유조차 없는 모양이었다.
이러나 저러나, 아무리 丞相이라도 태후의 부르심을 묵살해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주희는 비록 珠簾听政(주렴청정)을 하는 실권자는 아닐지라도
공적으로는 엄연히 최고위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또 한 차례 고역을 치려야 할 판이로구나.)
吕不韋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시간이 훨씬 지난 뒤에야 太后宫으로 들어갔다.
太后는 좌우에 시녀 한 명씩을 거느리고 의자에 높이 앉아 있었는데 무엇 때문인지 얼굴에 오기가 충만해 있었다.
"太后妈妈..... 불러 계시옵니까."
시녀들의 앞인지라 吕不韋는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朱姫는 별안간 벼락같이 소리를 지른다.
"丞相은 그것을 몰라서 물어 보시오.
승상을 부른 것이 언제의 일인데 이제야 들어오시오.
승상은 태후인 나를 뭘로 알고 분부 거행이 그처럼 더디오."
여불위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太后 좋아하시네. 이불 속에서도 태후란 말인가.)
그러나 시녀들의 앞인지라, 깍듯이 사과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황공하옵니다.
国务가 번다하여 분부 거행이 부득이 늦었사오니 관용하시옵소서."
太后 朱姫는 정색을 하고,
"국무에 바빠서 그랬다면 오늘은 특별히 용서하리라.
그 대신 차후에는 분부 거행에 일각의 지체함도 없도록 하시오.
아시겠소?" 하고 앙큼스럽게 나오는 것이 아닌가.
"명심하겠습니다."
朱姫는 그제서야 좌우의 시녀들을 돌아보며,
"너희들은 물러가 있거라."
시녀들이 방에서 나가 버리자 주희는 吕不韋에게 이리처럼 덤벼 드는데,
그제사 알고 보니 그녀는 옷을 껍데기만 입고 있었을 뿐, 정작 전신은 완전한 나체가 아닌가.
여불위는 주희를 힘차게 껴안으며 나무란다.
"이것아!
네가 태후라고 감히 나를 꾸짖는단 말이냐."
"당신을 기다리다가 얼마나 괴로왔으면 그랬겠어요.
나의 애타는 心情도 좀 알아 달란 말예요."
“아무리 그렇기로, 시녀들 앞에서 丞相의 체통만은 지켜 줘야 할 게 아니냐."
"나만 사랑해 주었으면 그만이지 승상이 무슨 필요예요.
당신이 너무 너무 그리웠어요.
나를 으스러지도록 껴안아 주세요."
미칠 듯한 광태를 부리는 朱姫!
주희는 그 방면에 있어서는 그처럼 상식을 초월한 변태적인 계집이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두어 차례 열풍을 치르고 나서, 吕不韋가
"인제 그만, 내일이 또 있지 않느냐."
하고 물러설 기색을 보이자, 주희는
"내일은 내일이고, 이제 막 시작인데 벌써 그만두면 어떡해요." 하고 나온다.
그렇게 나오니, 아무리 吕不韋라도 손을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든 일에는 절제와 한도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즐거운 일이라도 한도를 넘으면 고통으로 변화는 법이 아니던가.
吕不韋는 朱姫와 맹렬한 교접을 계속하다가 문득 자기 집에 거느리고 있는 美女들을 연상하였다.
그들은 십 칠팔 세의 소녀들이어서 바야흐로 피어나는 꽃봉오리처럼 신선한 맛이 넘쳐 있었다.
따라서 그들과 접촉하고 나면 기분이 상쾌해지며 몸이 젊어지는 듯한 느낌조차 들었다.
그런데 주희와의 접촉에서는 농후한 쾌락이 있는 반면에, 피로감을 현저하게 느끼게 되지 않는가.
(내 나이 이미 40을 넘었으니 이제는 주희를 멀리하는 것이 상책이 아닐까.)
그러나 암코양이처럼 표독한 주희에게 감히 그런 말은 할 수 없었다.
여불위로서는 그것은 남 모르는 고민이었다.
주희는 쾌락의 시간을 장장 다섯 시간이나 보내고 나더니,
그제서야 제 정신으로 돌아와 여불위에게 말한다.
"오늘은 당신과 상의해야 할 일이 있어요."
"나와 상의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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