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연중 제11주일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에서
복음이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힘만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 힘만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의 의미는,
참 행복이 있는 하느님 나라는,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그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이끌어주시지 않는다면,
결코 갈 수 없는 곳임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루 하루를 행복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톨릭 신자가 된 이유 역시,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더 나아가,
참 행복이 있는, 하느님의 나라 에 가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지켜야 하는 많은 규정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든 주일과 의무 대축일 에는 미사에 참석해야 하고,
영성체 한 시간 전에는, 물 외에는 어떤 음식물도 섭취해서는 안되며,
모든 금요일에는 금육(육고기를 섭취하지 않는 것)을 지켜야 하는 것 등입니다.
그것 외에도,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규정들도 있습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루카 6, 27-28)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 22)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 13) 등 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가는 것과, 우리가 지켜야 하는 규정들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규정들을 잘 지키면, 하느님 나라에 가는 것일까요?
규정들을 얼마나 잘 지키면, 얼마나 성심성의 것 지키면,
하느님 나라에 갈 수 있는 것일까요?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또는 연옥에서의 시간들을 줄이기 위해
규정들을 지킨다거나,
혹은, 하느님 나라에 가기 위해 규정을 지킨다는 것은,
하느님 나라 에 관한 오늘 복음에서의 비유 말씀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초대받았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분이시라는 믿음에 바탕을 둡니다.
우리 중에 과연 몇 사람이나, 스스로에게 만족합니까?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스스로가 정한 기준 때문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에게 실망하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정한 기준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우리가 잘 살고 있는지, 그렇지 못한지를
완전하시고 흠도 티도 없으신,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기준에 따라 판단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세상 그 누구도, 하느님의 그 기준을 통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기준에 맞추려 한다면, 이 세상 그 누구도,
하느님 나라에 갈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금도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은,
오직 한 가지, 하느님께서 자비로운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누군가가 묻는다면,
그 답이, “나도 모르겠어. 내가 살았던 삶을 생각하면,
절대 구원 받지 못할 거라고 믿었는데…
내가 구원받은 것은,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분이시라는 것 외에는
설명할 수 없을 것같아.“가 될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이 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해서 인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내가 하느님 마음에 드는 일만 해서 가 아니라,
그냥,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는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를 하느님 나라에 초대하십니다.
과연, 구원이, 하느님 나라에 가는 것이, 그러한 것이라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비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이라면,
우리가 지켜야 하는 수많은 규정들은 왜 있고, 지켜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이미 알고 있고, 또 지키기에 힘들어 하는 규정들은,
그 목적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상해 드리지 않도록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 목적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고, 또 지키기에 힘들어 하는 규정들은,
그래서, 그 목적이,
어느 방향이 하느님 나라로 가는 방향인지를 알려주는 것에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셨고,
그래서 우리 자신을 그 누구보다도,
심지어 우리 자신보다도 잘 아십니다.
그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계명을 지키느라
우리가 얼마나 마음 쓰는지,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길이, 당신께로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라는 것도,
잘 알고 계십니다.
하느님 나라에 이르를 길을 알려주시고,
그 여정에 자비로 함께 해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우리에게 드러난 이 길을,
충실히 걸아갈 수 있는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27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28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29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