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으로 살아가기를 읽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 문장은 내가 가장 명심하고 살아가는 문장이다. 인간이 배움을 통해 직장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은 자기만족, 주위 사람들의 평가, 직장 내 승진, 사업 성과등 많은 것들과 연관이 된다. 나 또한 대학교 재학 중에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지 않은 까닭에 학교를 다니는 것도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최소한의 친구들과의 어울림을 남겨두고 그 이상의 모임은 참석하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이후 대학교 졸업 후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면서 조금 더 모임을 회피하게 되었다. 독서실에 만난 사람들과 가끔 어울리고 대화하는 것이 전부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가보고 싶은 곳, 사고 싶은 것, 구기 종목의 운동 등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고 그리웠다. 2014년 봄 공무원 시험에 필기를 합격 한 후 스터디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접할 기회를 많이 갖게 되었고 그 순간이 소박했지만 정말 기분 좋았다. 이후 생각을 했다. 공부와 합격이란 것도 소중하지만 내 주변의 현재 존재하는 것들이 값지고 의미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내 스스로 지워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부시간을 줄이고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접할 기회를 가지면서도 남은 시간은 학습을 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살아가고 있다. 물론 그 전에도 단시간 일은 꾸준히 해왔다.
서론이 길었다. 동물은 울부짖음과 몸동작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어울려 살아간다. 인간은 언어란 도구를 무기로 더 지능적이면서도 진화하는 존재로 다른 동물들을 지배하며 살아간다. 언어란 언어가 서로 다른 국가와 국민을 통합해주고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으며 일을 하면서도 대화를 통해 작업을 진행하며 대화를 통해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고 스트레스를 풀며 대인 관계를 유지해간다. 그런 의사소통에 조금이 지장이 생긴다면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청각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도 말을 하고 들을 수 있는 사람들 또한 보다 더 대화가 통하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 또한 운이라고 한다. 배부른 고민일지도 모른다.
만약 귀가 안들린다고 상상해본다. 아침에 핸드폰으로 알람을 소리를 해놓아도 무용지물이다. 진동으로 알람을 울려야 한다. 씻은 후 출근길 밖으로 나간다. 지나가는 차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보는 것에 집중하고 예민해져야 한다. 비좁은 출근길 공간에서 “잠깐만요. 지나갑시다.”이 말도 들을 수 없어 오해를 사고 난처해지기도 한다. 다툼이 생길수도 있다.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한다고 하자. 하지만 일정에 변경이 생기거나 근무 중에 작업 중인 것에 변화가 생기면 설명을 듣는 것에 시간이 좀 더 걸릴 수도 있다. 복잡한 업무를 하는 것에도 많은 지장이 생긴다. 업무가 끝나고 퇴근 후 회식을 한다. 소주한잔을 하는 동안에도 나의 청각 상태를 알지만 상사나 동료는 술자리에서 배려를 해줄 시간과 노력을 해주지 않는다. 나는 소외감이 들곤 한다. 급한 용무가 있어 전화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 있다. 문자나 카톡이 아니면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 것이 일상이다. 가장 큰 곤란한 점은 외관상 멀쩡한 탓에 어떤 일로 타인과 대화할 때 큰 오해가 생긴다. 말을 잘할 수 있어 나의 의사를 잘 표현할 수는 있지만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때 상대방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오해하면서 목에 핏대를 세우면 참 곤란해진다. 상대방에게 청각이 안 좋다고 해도 상대방은 이해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 말부터 또박또박하면 내가 알아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자신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거라 정확히 말하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제대로 된 방법이 아니다. 상대방이 청각이 좋지 않은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TV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들리지 않기 때문에 라디오나 재미있는 프로그램, 뉴스, 인터넷 강의 또한 시청하는 것에도 지장이 있다. 자막이나 내용이 글자로 쓰여져 있는 것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것이다. 이외에도 많은 불편한 점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현재 나는 안경을 쓰고 있다. 가끔 안경을 쓰는 것이 너무 불편한 나머지 주위에서 시술이라고 하는 라식, 라섹 수술을 통해 안경을 쓰지 않고 생활하는 지인들의 모습이 너무 부러워 라식, 라섹 시술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일부는 라식, 라섹 시술을 하고 부작용을 경험하고 있었다. ‘만약 나의 두 눈이 정상적이지 못하다면?’ 이 두려운 마음 때문에 라식, 라섹 수술을 접었다. 이러한 생각보다 내가 청각장애인을 이해할 수 있다고 자신 있는 부분이 있다. 나는 고등학교 때 농구를 좋아했다. 운동 신경도 좋아 점프도 잘했다. 고등학교 1학년 체육시간에 내가 리바운드를 하기 위해 점프를 했다. 근데 상대팀의 친구가 나를 있는 힘껏 밀쳤다. 엉덩방아를 크게 찧었고 뒹굴어버렸다. 당시에 빨리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알고보니 골반뼈를 다쳤고 이후 그 전과는 다른 몸이 되어 버렸다. 몸을 제대로 구부리지도 예전만큼 운동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책상에 오래 앉아있기도 힘든 몸이 되어버린 것이다. 2003년 대학교 입학 후 농구동아리에도 가입했지만 허리통증은 늘 따라다녔다. 2004년 부산역 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에 나의 허리는 더욱 더 악화되었고 결국 공익근무를 하게 되었다. 다음해에 허리 수술을 받고 의병제대를 하게 되었다. 허리를 다친 것은 내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되었다. 운동도 공부도 전만큼 되지 않았다. 운동을 하고나면 허리 통증이 심해서 2일 ~3일은 제대로 걷지 못했다. 대학교 졸업 할 때까지 좌절했고 자포자기해버린 삶이었다. 하지만 대학교 졸업이후 많은 노력을 했다. 수영과 헬스를 시작하며 허리 상태가 많이 나아졌다. 말끔히 나은 것은 아니지만 제법 호전된 것이다. 그런 자신감과 함께 2014년 9월부터는 조기 축구회에 가입하여 축구를 매주 일요일마다 한다. 하지만 거기서 나의 문제가 불거졌다. 가끔 거친 몸싸움 탓에 공을 받고 패스를 줄 때 상대방이 나를 밀면 허리에 가끔 통증이 오는 것이다. 그래서 패스를 바로하지 못하고 한 박자 늦게 패스를 하는 탓에 같이 공을 차는 어르신들께 혼이 자주 난다. 헤딩할 때도 마찬가지다. 공이 나의 머리와 가슴 중간에 오면 나는 허리를 굽히면 통증이 오기 때문에 허리를 굽혀 헤딩을 하는 것에 많은 부담감을 느껴 가끔 고민하는 탓에 공을 함께 차는 사람들에게 지적을 당한다. 외관상 멀쩡하고 내가 허리 수술을 받았다고 말을 할 필요성도 못 느끼지만 말을 하더라도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수영을 배울 때였다. 허리디스크가 심했던 당시 다른 사람들이 배우는 과정이 2개월인데 나는 그 곱절이 걸린다며 한숨을 내쉬곤 했다. 그럴 때 내가 초라해지고 한심할 때도 있었다. 매주 축구를 하고 난 뒤에도 나의 몸 상태에 불만이 생기기도 하지만 인정하고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외로움은 자신만이 외롭게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 외로움이 병이 된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보면 하나씩 아픔 하나씩 안고 살아간다. 나는 신체적, 정신적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이 정도의 차이가 많은 불편함을 초래하고 한 개인을 좌절시키기도 하지만 그 어려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발전이 있다. 사회가 나를 소외시킨다고 생각들 때가 나 또한 있지만 그럴 때마다 강해지고 맞서야 한다. 사회는 저절로 변화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희생하거나 앞장서야 한다. 물론 그러한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조금의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마음과 생각에 조금의 공간만 내주면 되는 것이다.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연과 조화되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의 밑바탕은 경험이다. 타인의 소리에 귀를 잠깐 기울이는 것도 좋은 간접적인 경험이다. 이 조금의 여유를 모두가 가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