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야기 주조와 노래의 부분 결합
『남한강』 제1부인 「새재」는 시대적으로 볼 때 일제 식민지 직전에 해당합니다. 주인공인 돌배는 순진한 뱃사공이지만 사회적 개인의 설움을 통해 의식을 각성하여 화적과 도둑, 의병으로 변신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은 양반세력과 변심한 민중세력에 의해 잡혀서 교수형을 당하는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됩니다.
이야기의 흐름은 돌배가 뱃사공 → 화적 → 도둑 → 의병으로 계급적 각성을 하여 싸우다 죽는 직선적 구조입니다. 전체 이야기 구조 속에 민요가 부분적으로 수용됩니다.
시의 도입부를 비롯하여 <이무기>, <어기야디야>, <황소떼〉, 〈빈 쇠전> 등 4개의 장으로 구성된 「새재」는 관찰자 입장으로 서술되는 도입부를 제외하고 주인공인 돌배가 화자가 되어 내용을 끌고 갑니다.
이 가운데 <어기야디야> 1장에서는 서경과 외세를 업은 정 참판과 정 참판의 착취를 통한 치부, 그리고 성의 독점 등을, <어기야디야> 4장에서는 정 참판네를 습격한 뒤에 배를 타고 도망치는 장면과 민중의 소망을 뱃노래 가락에 실어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저기 저게 무슨 소리
줄바위 열두 굽이
다람쥐가 뛰는 소리
저기 저게 무슨 소리
정 참판네 중대문에
왜놈 청놈 나드는 소리
저기 저게 무슨 소리
여우골 깊은 숲에
가랑잎 솔잎 쌓이는 소리
저기 저게 무슨 소리
정 참판네 안방 시렁에
지전 엽전이 쌓이는 소리
저기 저게 무슨 소리
모래사장 백사장에서
황새 배고파 우는 소리
저기 저게 무슨 소리
정 참판네 깊은 곳간에서
백미 현미 썩는 소리
저기 저게 무슨 소리
탄금대 열두대에
장끼 까투리 울리는 소리
저기 저게 무슨 소리
정 참판네 비단금침에
동네 과부 구르는 소리
- 신경림, 『남한강』, 19~20쪽.¹⁵¹⁾
위시에 인용한 <어기야디야> 1장을 살펴보면 각 연에서 전반부에 전승사설이 나오고 후반부에 창조사설이 나오는 것을 반복하면서 흐름을 구성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승사설+창조사설 전승사설+창조사설 전승사설+창조사설 → 전승사설+창조사설로 구성되는 것입니다. 또 사설 안에서는 대화 형식으로 구성됩니다. “저기 저게 무슨 소리” 하며 물으면 “줄바위 열두 굽이/다람쥐가 뛰는 소리” 하며 답하는 문답 형식의 대창으로 짜여진 민요의 서술원리를 수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전승사설인 전반부 3행은 관습적으로 기억된 시구를 구송자가 원형을 살려 노래로 부르는 것이며, 후반부 3행은 구송자가 불러왔던 노래들을 창작자가 작품 속의 현재적 의미가 되도록 의도를 가지고 시의성을 살려 재창조하고 있습니다. 대창 형식의 문답민요는 행위나 내용의 집중성을 나타냅니다.
묻고 답하는 형식의 문답민요를 차용하여 4회나 반복하면서 지배계급과 외세의 협잡, 양반의 착취, 일본과 청국으로 대표되는 외세의 식민지 세력 확장을 위한 각축의 현실, 지배계급인 정 참판이라는 인물에 대한 성의 독점 내지 문란을 효과적으로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단독 연으로 민요형식이 수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아래 인용부분과 같이 한 연 안에 노래와 이야기가 섞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야 비야 오치 마라
우리 연이 홑적삼
노랑 저고리 다 젖겠다
팥배는 흥얼대는데
하룻밤이 지났는데도 마을은
그냥 시끄러워.
저 곳간 속에 썩은 쌀은
우리 것이다.
-23~24쪽.
정 참판의 집을 습격한 주인공인 돌배와 모질이, 근팽이, 팔배가 헌병 보조원과 정 참판네 하인들에게 쫓겨서 도망을 가는 부분입니다. 시인은 이들이 도망을 가면서 동요 「비야 비야」¹⁵²⁾를 부르는 것으로 민요와 서사, 즉 노래와 이야기를 결합시킵니다.
어기야디야 어기야디야
새 세상을 찾아가세
보은 청산 기왓골 털면
묵은 쌀이 삼백석
소년과부 업어다가
이밥이라 지어먹고
먼동이 트기 전에
화물차를 타고가세
어기야디야 어기야디야
새 세상을 찾아가세
-25~26쪽.
‘어기야디야’는 민요인 뱃노래의 후렴구(합창구, 받음소리)입니다. 주인공 돌배와 그의 친구들이 지배계급인 정 참판의 집을 습격한 뒤 배를 타고 도망가면서 부르는 민요형식의 삽입 노래입니다. 느린 가락을 도입하여 작중 상황이 보여주는 비장감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습니다.¹⁵³⁾ ‘기왓골’로 대유(代喩)되는 양반동네의 창고를 털어서 생활이 궁핍한 ‘소년과부’를 데려다가 밥을 짓게 해서 먹고 새로운 세상을 찾아가겠다는 민중의 소망을 민요의 가락에 실어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지요
캥매캐갱 캥매캐갱 한바탕 놀아보세
나무 풀 타는 가뭄 우리 탓이래
산짐승 모여 우는 것도 우리 탓이래
왜놈 청놈 모아다가 젯상을 차려놓고
새파랗게 칼을 갈아 우리를 겨눴구나
캥매캐갱 캥매캐갱 한바탕 뛰어보세
-45쪽.
위 부분은 농악기를 치면서 부르는 사설입니다. 돌배 일행이 일본 헌병에게 쫓겨서 도망을 가다가 새재에서 의병을 만나 술판을 벌이고 노는 집단적 놀이 장면입니다. 꽹과리를 치고 새납(날라리)을 불면서 춤추며 노는 모습이 역동적으로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농악기를 치고 불면서 춤추며 동작을 넣는 발림소리 사이의 말 메김소리는 4음보의 민요조 율격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새재」는 식민지 직전의 역사적 상황을 시적 공간으로 끌어 들여와 돌배라는 한 사람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사건을 전개하여 나갑니다. 사건의 흐름 속에 민요형식을 차용하여 민중적 정서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이야기 주조로 진행되면서 <어디야>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 <황소떼>의 마지막 부분에서 민요형식의 적극적 수용을 통하여 민중의 소망과 식민지 각축의 현실, 인물의 성격, 민중의 역동성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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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이하 이곳에서 인용하는 시는 『남한강』(창작과비평사, 1987)으로 이후 쪽수만 표시함.
152) “비야 비야 오지 마라/ 우리 형님 시집 갈 때/ 가마 꼭지 젖으면/ 색동저고리 얼룩진다/우리 형님 떡을 찧고/ 나는 물을 짓는다”는 “비 오는 밖을 내다보며 부르는 동요” 이다. (청양군교육청 편, 「비야 비야」, 『청양의 얼』, 1984, 148쪽)
153) 신현춘, 앞의 논문.
공광규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2024. 6. 15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