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애도 (1500)
알브레히트 뒤러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는
독일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탐구 정신이 풍부한 사상가였으며,
‘독일 미술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최고의 화가이다.
뒤러가 태어나고 활동한 뉘른베르크(Nürnberg)는 유럽 한가운데에 자리한,
당시 신성로마제국 최대 도시인 쾰른 다음가는 규모의 도시로,
인문주의를 비롯한 학문, 인쇄, 항해와 천문 도구 개발을 중심으로 한
과학 기술과 무역이 발달한 국제적인 도시였다.
뒤러의 아버지는 헝가리에서 이주한 금 세공사로,
뒤러도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금 세공사 교육을 받았다.
15세가 되던 1486년에 그림으로 직업을 바꾸기로 결심한 뒤러는
화가 미하엘 볼게무트(Michael Wolgemut)의 도제로 4년을 보내며,
제단화를 비롯한 종교화와 책의 삽화, 목판화 등을 배웠다.
도제 수업을 마친 그는 견문을 넓히려고,
19살이 되던 1490년부터 4년간 독일, 네덜란드, 북부 프랑스, 스위스를 여행했고,
23살 되던 1494년부터 2년간 새로운 지식에 대한 갈망으로 이탈리아를 여행했고,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을 북유럽 화가 중에서 최초로 경험했다.
1500년경 갓 30살이 된 뒤러는 새로운 작품세계를 발전시켜나갔다.
뒤러는 신체의 각 부분의 형상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표현했고,
매우 엄격하고 과학적인 관점에서 인체 비례를 작품에 담았다.
뒤러가 1500년경에 그린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애도>는
현재 독일 뮌헨의 알테 피나코테크에 소장 되어 있다.
이 작품은 뉘른베르크의 금 세공사인 알브레히트 글림(Albrecht Glimm)이
1500년 10월 22일에 사망한 부인 마가렛 홀츠만(Margaret Holzmann)을
기념하기 위해 의뢰했고, 나중에 1924년에 덧칠한 부분을 제거하면서
하단에 글림과 홀츠만 부부를 비롯하여 아들 둘과 딸 한 명이
그 가족들의 문장과 함께 원래 모습으로 복원되었는데,
종교적인 인물에 비해 주문자의 가족들을 작게 묘사했고,
이 작품은 마태오복음 27장 57-61절이 그 배경이다.
저녁때가 되자 아리마태아 출신의 부유한 사람으로서 요셉이라는 이가 왔는데,
그도 예수님의 제자였다.
이 사람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 달라고 청하자,
빌라도가 내주라고 명령하였다.
요셉은 시신을 받아 깨끗한 아마포로 감싼 다음,
바위를 깎아 만든 자기의 새 무덤에 모시고 나서,
무덤 입구에 큰 돌을 굴려 막아 놓고 갔다.
거기 무덤 맞은쪽에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앉아 있었다.(마태 27,57-61)
이 작품은 십자가 아래에는 돌아가신 예수님을 비롯하여
그리스도의 죽음을 애도하는 여덟 명의 사람이 모여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은 호수와 산맥과 언덕이 영롱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예루살렘 풍경이다.
그림에 묘사된 예루살렘은 집과 종탑과 성벽이 있는 호숫가 도시이다.
하지만 예루살렘에는 호수가 없는데,
이런 도시는 네덜란드나 베네치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뒤러가 네덜란드와 베네치아의 화풍을 차용한 것이다.
예루살렘의 하늘에는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이는 “낮 열두 시쯤 되자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루카 23,44)는 성경 말씀을 시각화한 것이고,
오른쪽 호수 위 하늘에 해가 비치는 듯이 보이는 것은
외경 베드로 복음서 6장 21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몸이 땅에 내렸을 때 해가 떴다.”라는 말씀을 반영한 것이다.
왼쪽 중경에 겟세마니 동산으로 통하는 문이 보인다.
조금 더 왼쪽 앞에는 바위에 있는 무덤 입구가 있는데, 그 안에 석관이 놓여 있다.
그리고 전경에는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을 애도하는 여덟 사람이 있는데,
애도의 이미지는 독일 전통이 아닌 이탈리아의 예술적 전통을 따른 것이다.
인물을 보면 그림의 중심에 흰 아마포 위에 죽은 그리스도가 길게 누워 있고,
예수님의 몸은 시신처럼 창백하고 시커멓게 부패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발치에는 그분의 머리에 쓰여있던 가시관이 놓여 있다.
왼쪽 끝에 예수님 겨드랑에 손을 넣고 예수님을 눕히는 이가 있는데,
붉은색 옷을 입은 그가 바로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다.
그는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 달라고 청했고,
예수님의 시신을 깨끗한 아마포로 감싼 다음 새 무덤에 모신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른쪽 끝에 하늘색 옷을 입고 왼손엔 예수님 발치의 아마포를 쥐고,
오른손으로는 향유 병을 들고 있는 사람이 바로 니고데모다.
언젠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도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왔고,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다인들의 장례 관습에 따라,
향료와 함께 아마포로 감쌌기 때문이다.(요한 19,39-40)
니고데모 옆에 사랑의 색인 붉은색 망토를 뒤집어쓰고
향유 병을 들고 있는 여인이 바로 마리아 막달레나이다.
안식일 다음 날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에 가서
예수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가져갔기 때문이다.(마르 16,1)
마리아 막달레나 옆에 붉은색 옷과 황금색 망토를 두르고 깍지를 끼고
슬픈 표정으로 명상에 잠긴 곱슬머리 금발의 젊은이가 바로 사도 성 요한이다.
그는 예수님께 사랑받은 제자답게 사랑의 색인 붉은색 속옷과
영광의 색인 황금색 겉옷을 입고 있고,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곰곰이 묵상하는 것이다.
니코데모, 마리아 막달레나, 사도 성 요한이
십자가 아래 오름차순으로 정렬된 구성은 이탈리아 애도 장면의 형식이다.
사도 성 요한 앞에 머리에 흰 두건을 쓰고 검푸른 옷을 입은 세 여인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의 이모들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가 서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요한 19,25)
중앙에 있는 성모마리아도 요한처럼 머리를 비스듬히 하고
두 손을 깍지 낀 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성모마리아의 누이들은 마리아 살로메와 마리아 야코피이고,
성모 오른편에 있는 그분의 이모는 두 손을 높이 들며 대성통곡하고 있는데,
이들 세 마리아는 인생의 세 시기인 청년, 중년, 노년을 상징한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손을 사랑스럽게 잡고 울고 있는 여인이 있는데,
그녀는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있던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일 것이다.(요한 19,25)
그런데 그녀는 뒤러 시대에 유행한 옷을 입고 있는데,
이는 관람자들도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애도에 동참할 수 있게 이끄는 장치이다.
이 작품의 아름다움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애도하는 표정 묘사와
등장인물들의 내면의 고통이 점점 확대되는 데 있다.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의 눈물로 얼룩진 눈에서부터
거의 모든 인물의 조용하고 침착한 고통의 표현과
성모마리아 옆에서 절망을 표시하는 여인의 몸짓과 통곡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다양한 애도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