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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거 부족
김 동 리
1
산이라고 해도 층암절벽은 아니었다.
삼선교(三仙橋)와 돈암교(敦岩橋) 사이에 놓인 그다지 높지 않은 구릉(丘陵), 그러나 언덕이라기보다는 분명히 산줄기의 끝이었다. 이 산줄기를 타고, 허연 신작로가 널따랗게 커브를 그리며 돌아간 산지일대(I山地一帶)의 구멍들 속에 그들은 살고 있었다.
굴(구멍) 앞을 훤하게 닦아 올라간 신작로 바닥이라, 앞 가릴 장송노백(長松老栢)이라거나 우뚝 솟은 바위 같은 것도 없이, 해와 바람과 하늘이 노 드리붓듯이 사철 충만해 있어, 혈거지대(穴居地帶)하고는 자못 명랑하고 화창한 편이기도 하였다.
“사철 여름 같었으면…….”
그들은 아득한 옛날 그들의 조상들이 부르짖던 그와 꼭 같은 의미의 말을 역시 되풀이하곤 하였다.
물줄기같이 퍼붓는 햇볕, 푸른 하늘을 수놓는 금빛 구름, 부드러운 바람, 무성한 나뭇잎, 타는 듯이 붉은 꽃, 맑은 물 속에는 은어 피라미 붕어 송사리 눈치 들이 떼를 지어 다니고, 거리마다 수박 호박 참외 오이 들이 짐짐이 나부릿뜨려져 있고…… 그러나 이러한 여름도 한 나흘씩 혹은 이레씩 연달아 비가 질금거리고 간간 바람서껀 휘몰아 와서 홍수가 지고 하면 어느덧 하늘은 씻은 듯이 높아지고, 산기슭 밭고랑 사이에 햇꿩 소리를 듣기도 바쁘게 천지는 다시 눈과 얼음 속에 잠기고 마는 것…… 그리하여 그들은 조용히 그리고 끈기 있게 이 길고 지루한 겨울과 싸워야 하는 것이었다.
“옥히네도 판대길 한 벌 더 놔주야지.”
할머니는 아들(황생원)을 보고 혼자말같이 걱정을 하였다.
“거죽때기는 몇 벌 더 있디만 쌍놈의 나무판대길 어드래 구한단 말인가?”
아들은 삼선교 앞 옛 성 위에 까맣게 떼를 지어 앉아 있는 까마귀들을 바라보며 곰방대에 담배를 붙여 물고 있었다.
2
순녀가 이웃집 할머니의 인도로 이곳 혈거부족(穴居部族)의 한 사람이 된 지도 벌써 반년이 넘어 되었다. 그것은 이른 여름이었다. 등에서 배가 고파 우는 옥히를 언제까지나 그냥 뒤흔들어서만 재울 양으로, 한쪽 손을 뒤로 돌려 어린것의 궁둥이를 쥐어박아 가며, 품속에서 담배 몇 갑을 꺼내 들고는, 남자 손님이 지나칠 적마다,
“서양담배 사시오, 서양담배!”
온종일 이리 뛰고 저리 달리고 하는 순녀와는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서 삶은 고구마를 팔고 앉아 있던 할머니는, 보다못해 고구마 한 개를 옥히의 손에 쥐여 주며,
“아가, 이거 먹고 울디 마라, 오냐, 오냐, 끌끌…….”
어린것의 얼굴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다 혀를 다 차고 나서야 도로 앉았다. 저의 어머니를 닮아 조금도 천티 없는 얼굴이었다.
“아이고, 고마압…….”
순녀는 얼굴을 붉혀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며 품에서 돈을 꺼내려 하였다. 할머니는 순녀의 손을 잡았다.
“임재네한테 누구레 그거 팔랜다구 했갔소?”
“아이고, 그래 되겠십니꺼? 미안합니더.”
평안도와 경상도의 사투리들이었다.
“어린것이 아츰보타 보첼 것 같에서…….”
“아이고, 녜에, 미안합니더.”
“임재두 아마 고당이 서울은 아닌 거디?”
“녜에, 경상도올시다.”
“겡상도 어디?”
“경상북도 영천이올시다.”
“겡상두서 어드케 되서 이꺼지…….”
“고향은 경상도지만, 만주서 나왔십니다.”
“만주서?”
“녜에, 이번 해방 되서 만주서 나오다…….”
“만주서 어드케 됐어? 상텅은 지금 멀 하구 있소?”
“…….”
순녀는 그때야 비로소 그 무척 아름답게 생긴 두 눈을 커다랗게 떠셔 노파의 주름살투성이인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하여, 머리를 돌릴 때 그의 낭자머리 끝에 희끄무레한 베댕기가 드려져 있음을 보고 노파는 속으로,
‘흥 상제로구나.’
했다.
무어 그리 살뜰코 탐탁스럽던 남편도 아니었다. 해방이 되기 반년 전부터 되놈과 싸워 어혈(瘀血)이 든 이래로 남편은 이미 순녀에게 있어서는 가볍지 않은 짐이기만 하였다.
“이 보, 날 어짜든지 고향까지만 데려다주.”
해방이 되었다고 온 이웃이 발칵 뒤집히다시피 떠들던 날 밤, 남편은 조용히 바람벽에 등을 기대고 앉은 채 순녀를 보고 이렇게 탄원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남편의 그러한 애달픈 부탁이 아니더라도, 이제 해방된 고국을 두고 이역 벌판에 외롭게 남아 살자 할 순녀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병든 남편을 떼쳐 두고 제 혼자 홀적 달아나 버릴 배짱을 가졌을 리는 더구나 없었다.
“그럼 돌아 안 가고 되놈의 땅에 묻힐라고?”
순녀는 톡 쏘듯이 대답했다. 속속들이 그런 것도 아니면서 남편의 얼굴만 쳐다보면 공연히 뾰루퉁한 화가 치밀곤 하던 그 즈음의 순녀였다. 그러나 이미 병들고 기백마저 쇠잔한 남편은, 아내의 조그마한 화풀이에도 곧잘 두 눈에 불을 켜기만 일쑤요, 말끝마다 각박스레 새겨 그는 한참 동안 고개를 수그린 채 말없이 앉아 있었다.
“글쎄 나도 고향에나 가 묻히고 싶어서…….”
남편의 고까운 듯한 얼굴이었다.
순녀는 갑자기 울음이 복받쳐 오름을 깨달았다. 지금까지는 성공이나 하면 돌아가자던 고향땅이었다·. 그러나 이제 해방된 고국에 돌아가는데야 무슨 성공과 실패가 따로 있으랴, 그저 몸이나 성해 돌아가면 장하지…… 하지만 움쑥 들어간 두 눈, 움퍽 패인 두 볼, 시시로 요강에 뱉어 내는 혈담, 그리하여 희망이란 것이 다만 고향에 가 묻이기나 하고 싶다는 남편이 아닌가.
“인제 해방이 됐으니까 병도 물러가겠지, 고향에 돌아가 개나 몇 마리 구해 먹고 하믄 그만한 병줄쯤이야 설마 안 떨어질라꼬?”
달포 지난 뒤 세간도 이리저리 팔 건 팔고 버릴 건 버리고 나서 보퉁이 몇 개만 마차에 싣고 기차역을 찾아 나오며, 이러한 말로 순녀의 위로와 격려를 받아야 했던 남편이었다. 그러나, 만주서 떠난 지도 두 달이나 되어 겨우 서울역에 닿았을 때의 남편의 온몸은, 그 야릇한 광채가 떠도는 두 눈을 제하고는 이미 죽은 사람의 그것이었다.
‘고향에 돌아간다.’
두 눈에 불을 켜듯 하여 있는 그 야릇한 광채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였다. 그의 전 생명, 그의 전 의욕, 그의 전 희망은, 일념, 고향에 돌아간다는 야릇한 광채가 되어 그의 두 눈에 불을 켜고 있는 듯하였다. 그러나 서울역에 내린 그들의 행장 속에서는 거기서 다시 고향까지 돌아갈 여비를 짜낼 것이 없었다. 설령 무임승차권을 탄다하더라도 그것을 마련하기까지의 며칠과, 다시 차중에서의 며칠 동안 먹고 써야 할 최소한도의 비용은 기어이 손에 쥐어야 할 형편이었으나 봉천서 안동서 신의주서 평양서 이미 팔 건 다 팔고 잃을 건 다 잃고 난 그블의 보통이 속에는 냄비 하나와 숟가락 셋과 그리고는 어린것의 기저귀 몇 벌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순녀는 모든 체면도 염치도 다 집어치우고 보는 사람에게마다 손을 내밀며 구걸을 했으나 그것으로는 간신히 세 사람의 입에 풀칠을 하고 남음이 있을 수 없었다. 남편의 숨은, 인제 아주 목과 가슴에서만 발닥거릴 뿐이었다. 순녀에게 남은 것은 오직 한 가지 길―마지막으로 몸을 팔아서라도 남편의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에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러나, 순녀가 그것을 실천에 옮기기 전에 행인지 불행인지 남편의 두 눈에서 불을 켜고 있던 그 야릇한 광채는 점점 사라져 가고 말았던 것이다.
순녀는 고개를 돌려서 코를 풀었다.
“열녀다 열녀야…… 누구레 상텅한데 그만치 하갔다고.”
노파는 혀를 찼다.
이틀 지난 뒤, 두 여인은 보퉁이 둘을 하나씩 머리에 노나 이고, 지금의 이 ‘방공굴〔防空壕〕’이 가지런히 뚫려 있는 새하얀 신작로를 오르고 있었다.
“이것두 집이라구 어띠나 들란다구들 하는디.”
노파는, 산허리를 닦아 올라간 신작로 바닥에서 왼손 편 산벼랑 쪽으로 빠끔빠끔 여남은 개 가량이나 가지런히 뚫린 전날의 소위 ‘방공굴’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순녀가 차지하게 된 구멍은 치드리 열 개 가운데서는 제일 동쪽 편 막바지의 것이었다. 아홉째가 할머니와 황생원 그들 모자의 집이요, 이제 순녀의 집이 된 제일 끝의 열째 구멍은 그 동안 이미 여러 차례나 들려는 사람이 있는 것을, 황생원이, 벌써 든 사람이 있다고 거짓을 해가며 적당한 사람을 고르고 있었던 것이라 하였다. 거적과 궤짝까지 전부 마련되어 있어, 순녀는 가지고 온 보퉁이와 냄비와 간장병을 들여놓으면 그대로 살림을 들게 되는 셈이었다.
“할머니, 은혜를 어떻게 갚아요?”
순녀는 황생원이 손질을 다 해주고 물러가자 할머니를 보고 이렇새 인사를 하였다.
“이전 아츰 저녁 서루 보게 됐으니꺼니, 아, 은혜구 부어구 누구레 그런 걸 물으랬소?”
“그렇지만 보는 건 보는 거고…….”
“아, 암만해두 내레 임재네 폐끼티게 되디 머, 아, 그르디 말구 그 어린것 젖이나 좀 멕이우.”
“…….”
순녀는 어린것에게 젖꼭지를 물리며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저녁때 노파가 물 바께쓰를 들고 나서는 것을 본 순녀는,
“할머니, 인 주세요. 물은 지가 길러 오겠십니다.”
하고 노파의 손에서 물 바께쓰를 받아 들었다.
“고롬 등엣건 인 달라구. 내레 안구 봐주디.”
순녀는 옥히를 내리어서 노파에게 맡겼다.
3
“옥히네, 그리디 말구 우리 함께 살자구.”
할머니는 순녀더러 가끔 이런 말을 건넸다. 그러나 순녀는 언제나 얼굴을 조금씩 붉힐 뿐으로 승낙을 하지 않았다.
“너머 늙어서 싫은가? 옥히네가 올에 수물여섯이래디, 우리집 아 애비가 올에 마훈너이니꺼니 꼭 열여덟 해 우이로구먼.”
“아이고, 할머니도 괜한 말씀을 다…….”
“고름 멀 그렇게 애쓸 게 있담? 머 본 마누라가 있을가바? 그건 내레 늘 말했디, 그저 홀몸이라구, 아 여북해 집이랑 세간이랑 모두 내팡가티구 여기 와 이 고생을 하갔나? 우리 메누리야 시방 살아 있으문 사람이야 얌전했디, 그 원슷놈에 병덩들과 도죽놈덜한테 부뜰레가 그 욕만 안 당했으문 앞으로 곧 독립되갔다구 하는데 저두 와 대동강물에 빠제 죽구 말았갔나? 사람이야 그만하믄 결곡하구 장했디. 야아, 그 도죽놈들의 원수를 어떻게 갚나?”
노파는 뾰도독 소리를 내며 이를 갈았다. 여름밤이었다. 하늘에는 훤한 달이 걸려 있었다. 동소문 쪽에서 이따금씩 시원한 바람이 솔솔솔 불어오곤 하였다. 그러나 순녀는 역시 잠자코만 있었다.
조금 전부터 곁에 와 앉아서 궐련을 피우며 노파의 이야기를 드문드문 엿듣고 있던, 치드리 둘째 굴에 사는 애꾸눈이 윤서방이 이때 침을 찍 뱉고 나서 말참견을 시작했다.
“지금 할머니 말씀도 일린 있는 말씀입니다. 마는, 지금 이 시대로 말하면 공산주의 자유시대라고 말할 수가 있는데 말씀이죠, 그렇게 공산사상에 대해서 냉정히 비판할 필요상은 없을 듯한데…….”
여기서 그는 말을 끊고 순녀 있는 쪽으로 몸을 돌이켰다.
“이 아즈머니로 말하면 몸은 비록 이렇게 누추한 데 살고 있지만 그 마음만큼은 고상한 부인이라 말할 수 있는 데 대해서 할머니께서 밤낮 그런 일본제국주의 사상적으로만 말씀드리고 있으니 이 점에 대해서 아즈머니께서 오해하시지 않도록 말씀드리는 것인데 내 친구에 또길이라고 경상도 대구 사람으로 상당히 사상가라고 말할 수 있는데 저도 이 친구에게 사상적에 있어서 많은 교육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만큼 아즈머니께서도 고향이 같은 경상도시라니 특별히 한 말씀…….”
“에보.”
노파의 노기를 띤 목소리였다.
“넨덜끼리 말하는데 남덩네가 참견은 무슨 참견을 하갔다구.”
“네, 실례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로 말하면 공산주의 자유시대라고 말할 수 있는데, 내 친구에 또길이라고 상당한 사상가지요, 그런데 이 아즈머니께서도 고향이 같은 경상도시라니까 말씀드리는 겐데…….”
“에보, 듣기 싫수다, 데켄으루 물러가우, 당신네 여펜네가 그 꼴을 당해 보야 알갔다문…….”
노파는 말을 끊고 분노에 찬 두 눈으로 윤성달의 얼굴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 양반이 또 주기가 있는 모양이군.”
곁에서 듣고 있던 여섯째 굴의 노인이 한마디 거들었다.
“오늘 밤만큼 이 사람이 실례가 많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 아즈머니, 이 시대로 말하면 절대로 공산주의 자유시대라고 말할 수 있는 데 대해서 그러나 우리는 절대로 신탁퉁치를 반대하는 것이 사실이올시다.”
그는 순녀를 한번 더 흘겨보고 나서 한성여중 있는 편으로 비틀비틀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그 즈음 술이 취하기만 하면 반드시 궐련을 피워 물고 순녀를 찾아와서는 무슨 수작을 붙여 보다 돌아가곤 하는 것이었다. 한번은 저의 친구라 하면서 키가 나지막한 양복쟁이 하나를 데리고 와서, 순녀의 굴에서 술을 먹겠다고 하였다. 순녀가 거절을 했더니, 그래도 듣지 않고 백 원짜리 지폐 석 장을 억지로 순녀의 손에 쥐어 주며 그러지 말고 약주나 한 병하고, 오징어나 두어 마리 사다 달라고 졸랐다. 순녀는 순녀대로, 그만한 것으로 각박스럽게 닦아세우기도 야박한 노릇이라 해서 좋은 얼굴로 거절을 했는데 저편에서는 순녀가 은근히 마음을 움직인 줄 오해를 하고, 한참 동안 실랑이를 한 일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 이웃에서는 젤 식자가 든 양반인데.”
여덟째 구멍에 사는 여자가 윤가의 뒷모양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아, 금년엔 모기가 한 마리도 없어, 신통한 일이야.”
여섯째 구명에 사는 노인이 갑자기 화제를 돌려 버렸다.
“미국 비행기가 공중에서 소독을 쳐서 그렇다지요?”
셋째 구멍의 사나이가 받았다.
“쌍놈의 새끼들, 소독이야 주든지 말든지 독립이나 얼른 좀 시켜 줬음 좋갔수다.”
좀 뜬 곳에서 담배를 문 채 잠자코 먼산만 바라보고 앉아 있던 황생원이 담뱃대를 땅에 대고 떨며 이렇게 한마디 툭 하였다.
“이승만 박사가 미국서 임시정부를 꾸며서 나왔다니까 인제 곧 되겠지요.”
또 여섯째 구멍의 노인이 이렇게 받았다.
“아, 누구래 왔갔게 인제 독립이 되갔다오?”
황생원의 모친이 깜짝 놀란 듯이 이렇게 물었다. 이 노파는 무엇이든지 조선 문제에 대한 무슨 놀라운 소문이 있다고 하면, 곧 그것을 ‘조선 독립’이라고 혼자 정해 버리는 버릇을 가진 것이었다.
“신탁통치가 된다는 사람도 있두만서도…….”
여덟째 구멍의 여인이 혼자말같이 이렇게 중얼거리니, 황생원 모친은 또 깜짝 놀란 듯이,
“아 신탁통치레 독립인가?”
하였다.
“독립은 아닌 모양인 게지.”
하는 것이 여섯째 구멍의 노인,
“아, 그러갔게 우리레 이런 고생하디 독립됐음야 이러고 있갔소.”
하는 것은 또 황생원 모친이다.
“독립돼도 별수없을 게라는 사람도 있두만서도…….”
여덟째 구멍의 여인이 또 혼자말같이 이렇게 말하니, 황생원 모친과 여섯째 구멍의 노인이 한꺼번에,
“누구래, 그런 쌍…….”
“천만엣…….”
하고 분연히 반박을 했다.
“독립만 되면야 이럴 리가 있나요?”
한 것은 셋째 구멍의 사나이의 말. 그러자,
“독립이나 얼른 돼봤으면 죽어도 원이 없겠다.”
순녀도 한마디 하였다.
황생원은 ‘으으응’ 하고 신음하는 소리와 같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신탁통치’가 되면 태극기도 못쓰게 되리라는 소문에, 이왕이면 그것으로 숙자의 앞치마라도 만들어 줄까 보다고 망설이다 둔, 그 여섯째 구멍의 여인도, 이러고 보면 역시 그대로 둬두기를 잘 했다고 혼자 속으로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4
굴 밖에는 부술부슬 비가 내리는 밤이었다. 벌써 여러 날째 계속되는 장마 날씨였다.
잠결에 순녀는 무엇이 가슴을 내리누르는 듯한, 숨이 답답함을 깨달았다. 간신히 잠이 깨어 눈을 떴을 때, 캄캄한 어둠 속에 과연 무엇이 그녀의 몸 위에서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순녀는 문득 소리를 지를 뻔하다가, 몸을 오싹 떨며 가슴 위의 것을 힘껏 떠밀어 떨어뜨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야?”
“…….”
“누구야?”
“…….”
“아이구, 얄구져라!”
순녀는 소리를 질렀다.
순간, 남자는 또다시 왈칵 뛰어들어 순녀의 목을 껴안았다. 남자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훅 끼쳤다.
“도둑이야!”
순녀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사내는 굴 밖으로 달아나려 하였다. 거적문 곁에서 더듬더듬 신발을 찾는 모양이었다.
“도죽이야!”
굴 밖에서 황생원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사내는 신발을 찾다 말고 굴 밖으로 튀어나가는 모양이었다. 캄캄한 어둠이었다.
“어느 도죽놈이!”
황생원이 후려갈긴 몽둥이는 사내가 맞는 소리였다.
“데놈이야, 데놈!”
“데놈이야, 데, 치드리 둘째 굴에 사는, 데 윤가란 놈 그놈이야.”
할머니는 바싹 마른 목소리로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쌍놈으새끼.”
황생원의 휘휘한 목소리 였다.
“멀 가져간 건 없나?”
노파는 촛불로 굴 안을 이리저리 비춰 보며 이렇게 물었다.
“별로 없나 봅니다.”
순녀는 흐트러진 머리를 쓰다듬어 비녀를 고쳐 찌르고 있었다.
“임자 욕이나 안 당했나?”
할머니는 순녀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이렇게 물었다.
“할머니 아니드면…….”
순녀는 할머니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이 무르팍 위에 안고 앉은 옥히의 머리를 쓸며 이렇게 데답하였다.
한참 동안 굴 안은 잠잠하였다.
“이놈의 비는 웬걸 날마다 부슬부슬 내리구 있어.”
황생원이 굴 밖에서 혼자말같이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옥히네, 우리하구 한집에 살문 어드르갔나?”
노파는 아무런 주저도 없이 또 이렇게 바로 쏘기 시작하였다.
“…….”
순녀는 잠자코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다.
“너른 서울 바닥에서 우리레 이만치 지내게 된 것두 연분이라구 할 수 있는데 이만하면 속두 서루 알아볼 만하구 하니께니 말이디.”
“전들 그걸 모룹니꺼.”
순녀의 안타까운 목소리였다.
‘죽은 사람이 그렇게도 고향에 가고 싶어하던 걸…….’
순녀는 목이 메어 잠깐 말을 그쳤다가,
“어차피 이리 됐으니까 소상이나 지나 놓고 나서 어떻게 아즈바이 같은 이 따라 살았으면 해서…….”
낮을 돌이켜 코를 풀었다.
“옥히네 말도 고마운 일이야, 남쪽이구 북쪽이구 사람 사는 인정은 마찬가진데 그 그러구말구, 끌끌.”
노파는 혀를 차가며 순녀를 위로하였다.
“그러니께니, 속이라두 서로 알 만하니께니 하는 말 아니갔나, 옥히네레 그 동안 봤으문 알겄디만 우리 야 애비레 어디 허튼말 한마디나 하는 위인이갔나? 나두 암만 우리집 야 애비드래두 술잔이나 먹구 다니는 쌍놈으새끼나 같으문 옥히네레 따라 살갔다 와도 도루 쫓아내갔디, 머, 내 욕심만 채우갔다구 놈의 신세레 골라 놓갔대?”
노파는 잠깐 말을 그쳤다.
촛불이 찌르르 녹아 내리면서 푸드득 춤을 추었다.
같은 날 밤.
새벽녘이나 되어 막 혼곤히 잠이 들려 하는데 굴 밖에서 여러 사람들의 절박한 비명 소리가 들리었다. 그러자 조금 있으니 굴마다 사람들이 뛰쳐나가는 소리요, 아아, 아아, 하고 그들은 절망하듯 한 소리를 질렀다.
“굴이 무너졌다!”
누가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여자와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었다.
“옥히네, 자나! 저 아래 치드리 넷째에 굴이 무너졌다. 얼른 나오너라!”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순녀가 뛰어나왔을 때는 벌써 귤마다 사람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날은 희부옇게 새어 가고 있었으나 비는 아직도 부슬부슬 내리는 중이었다. 넷째 구멍 앞에는 여자와 아이들이 첩첩이 둘러싸고, 굴 안에서는 남자들이 흙을 담아내고 있었다.
마흔한 살 먹은 남자와 일곱 살 난 계집애가 흙 속에 묻혀 버렸다는 것이다.
“어이구! 억셰구! 어이구! 어이구!”
죽은 사람의 아내인 키가 나지막한 여자는 머리를 흩트린 채 온 얼굴을 눈물과 콧물로 씻듯이 하고 있었다. 열한 살 난 사내아이는 그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잡고 서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었다. 이 사내아이와 그 어머니는 앞에서 자고 그 아버지와 어린 딸이 안에서 자고 있었는데 그 아버지와 딸이 자고 있던 안쪽에서부터 흙이 무너졌다는 것이었다.
“아이고 불쌍해라, 불쌍해라!”
둘째 구멍의 윤서방의 아내는 치마폭으로 코를 풀었다. 두 눈도 뻘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본고장이 어디지요?”
여덟째 구멍의 여인이 물었다.
“어이구! 어이구! 어이구! 어이구!”
여자의 입에서는 이 소리밖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충청남도 논산이에요.”
윤서방의 아내가 대신 대답을 하였다.
“사람이 나온다!”
굴 안에서 흙을 담아내고 있던 사람 중의 하나가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굴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굴 속으로 와아 몰려들려 하였다.
“미구에 이쪽 앞에 흙도 곧 떨어질 텐데 괜히들…….”
하고 셋째 구멍의 남자가 몰려들어 오는 여자와 아이들을 모두 내어쫓았다. 피투성이가 된 남자의 시커먼 얼굴이 드러났다.
“어이구! 어이구! 어이구! 어이구!”
여자는 눈도 반쯤 감은 채 머리를 흩트린 채 자꾸만 굴 속으로 뛰어들려 하였다.
“어린애도 팔이 나온다!”
굴 앞에서 누가 또 소리를 질렀다.
계집애의 머리는 그대로 흙덩이가 되어 있었다.
“어이구! 어이구! 어이구! 어이구!”
여자는 눈도 아주 감아 버린 채 자꾸만 굴 속으로 밀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열한 살 난 사내아이는 굴 속에 들어와, 이제 반쯤 드러난 그 아버지의 상반신과 누이동생의 흙덩어리 그대로인 얼굴을 보았을 때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그 어머니의 치마폭에 얼굴을 묻어 버렸다.
“저리 가세요, 저리, 이 앞의 흙도 언제 떨어질는지 모르는데.”
셋째 구멍의 사내는 여자와 아이를 밖으로 떠밀어 내며 또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앞에다 거적때길 하나 가져다 깔아 놔야디.”
황생원은 부들부들 떨리는 두 팔로 계집애의 시체를 안고 굴 앞으로 나오며 이렇게 말했다. 그리하여 날이 훤하게 새었을 때는 마흔한 살 난 아버지와 일곱 살짜리 계집애 두 사람의 시체가 굴 앞에 가지런히 누운 채 거적으로 덮여 있었다.
“어이구! 어이구! 어이구! 어이구!”
여자는 거적 위에 눈물과 콧물을 내리쏟기만 하였다.
“자, 이걸 좀 마셔 보라구!”
할머니가 흰죽 한 그릇을 들고 와 권했으나 여자는 그저 두 눈을 꽉 감은 채,
“어이구! 어이구! 어이구! 어이구!”
할 뿐이었다.
5
밤사이에 소복소복 눈이 쌓이곤 하더니만 날씨는 갑자기 혹한에 들어가 버렸다.
앞으로 사흘만 지나면 남편의 소상(小祥)날이 다가와 있는 이 무렵에 그러나 순녀는, 황생원과 볼 때 입어야 할 흰 갑증저고리를 꾸미고 앉아 있었다.
“고향으로 간다”
그렇게 여러 날 동안 물 한 모금 못 마신 채 주리고 떨어 가며 두 눈에 불을 켜듯 하고 있던 그 남편은 이제 한줌의 재가 되어 저 조그만 궤짝 속에 들어 있거니 생각하니 다시금 바늘 끝이 흐려지곤 하였다.
“인제 해방이 됐으니까 병도 물러가겠지, 고향에 돌아가 개나 몇 마리 구해 먹고 하믄 그만한 병줄쯤이야 설마 안 떨어짙라꼬?”
한 것은, 일년 전 아직 만주 벌판을 달리고 있는 마차 위에서 순녀가 남편을 위로하던 말이었다. 그러자 두 달 동안이나 도중에서 고생을 하던 일, 그리고 그 어느 순간에 마지막 숨을 모을는지도 모르는 남편을 남겨 두고, 미친 것처럼 서울역 부근을 돌아다니며 보는 사람마다 염치도 체면도 돌볼 새 없이 손을 내밀고 하던 일이 이제 환등처럼 눈앞에 나타나곤 하였다. 순녀는 눈을 감았다. 순잔 순녀의 감은 눈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 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아차, 하고 눈을 뗬을 때는, 들고 있던 옷감 위에 분명히 눈물 자국이 떨어져 있었다. 할머니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어저께 할머니는 자기의 보퉁이 속에서 이 옷감을 꺼내 순녀에게 주면서,
“옥히네, 자 야 애비한테보다 나한테 절 맨제 하라고.”
웃으며 이렇게 말하던 것이었다. 할머니한테라고 두 벌인들 있을 리 없는, 혹은 마지막으로 흙 속에 가 묻힐 때 입으려고, 그 넘기 어려운 삼팔선을 넘어서까지 간신히 가지고 온 할머니의 수의(壽衣)감인지도 모를 흰 갑증저고리를 이렇게 하염없는 눈물로 망치게 되었다는 것을 만약 안다면 할머니는 얼마나 섭섭해할 것인가? 순녀를 위해서는 진정으로 아무것도 아낄 줄을 모르는 그 주름살 많은 할머니에 비해 자기는 얼마나 무심코 쓸쓸한 사람인가? 굴 밖에서는 아까부터 황생윈과 며칠 전에 새로 이사 온 치드리 둘째 구멍의 박서방이란 사람과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 모양이었다.
“윤가하구는 그전부터 알었댔소?”
“아니올시다, 황금정서 가역 일을 같이 하다 첨으로 알었지요.”
“윤가도 일을 합데까?”
“하는 둥 마는 둥이지요.”
“그래 궐이 여기 사는 줄은 어드케 알아보았소?”
“제가 집 걱정을 했지요, 그랬더니 윤서방이 있다 하는 말이 저의 집을 팔려고 내어놨으니 살 템 사라고 하잖겠어요? 그래, 난 없는 사람이 돼서 아주 집을 사서 들고 할 처지는 못 된다고 했더니, 그 윤서방 말이, 아, 왜 아닐까 보냐고, 없는 놈이 없는 놈의 사정을 서로서로 보아주지 않으면 어느 놈이 와서 보아주겠느냐고, 아모리 요새가 공산주의 자유시대라고는 할 수 있지마는 없는 놈 배 곯기는 마찬가지 아니냐고, 이 작자가 눈은 애꾸고, 보기엔 꺼츠레하게 생겼어도 식자는 많이 든 모양으로 말은 그럴듯이 곧잘 하겠지요…… 박으세요, 제가 여길 잡겠습니다…….”
박서방은 황생원이 과동 준비로 굴 안에 장치할 나무판자에 못을 박는 일을 거드는 모양이었다.
“몇 마디 얻어들은 풍월이갔디 머…… 그쪽으루 손을 내어 잡으시오.”
황생원이 똑딱 똑딱 하고 못을 치는 소리가 났다.
“그렇지만 동정은 동정이구 매매는 매매가 아니냐고 한즉, 아 여부가 있느냐고, 허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까 저녁에 술이나 한잔 사라고 그러겠지요, 저도 머 윤서방의 말을 꼭 믿은 것도 아니지만 궐자 하는 말씨가 그럴듯해서 알고 속는 셈치고 술을 샀지요, 그랬더니 술이 반취나 얌전히 되어서 하는 말이, 집은 집이지만 삼선교 뒷산에 있는 방공굴이라 그러겠죠, 저도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래 방공굴을 두고 집이라고 하느냐고 한즉, 궐자 말이 그 대신 값이 싸다는 거예요.”
“흥, 값이 싸다!”
황생원은 역시 장도리 쥔 손을 쉬지 않고 판자에 못을 박아 가며 이렇게 콧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그래, 싸면 얼마나 받을 테냐고 한즉 한 장만 달라겠죠, 한 장이 얼마냐고 한즉 천 원이래요, 그렇지만 남이 파놓은 방공굴을 천 원씩이나 받고 파는 법이 있느냐고, 오백 원만 받으랬지요, 그랬더니 궐자가 아주 눈을 크게 뜨며, 아, 천 원이래두 누구의 돈을 먼저 받아야 할는지 모른다고, 아주 뻐기고 나더니, 그렇지만 우리 무산자끼리 서로 동정하지 않으면 어느 놈이 해주겠느냐고, 너의 사정도 딱하고 니 칠백 원만 내라고 그러겠죠, 그러나 어딜 가겠어요? 시재 거리에라도 나가야 할 형편인데야. 그래도 설마 거리보다야 낫겠지 하고……그것도 저한테 웬돈 칠백 원이나 한꺼번에 생길 리가 있겠어요, 주인집에서 얼른 쫓아낼랴고 하는 수작이겠지만 최고 천 원까지는 이사 비용으로 보태 주겠다고 했으니까 그걸 믿고 한 게죠.”
“결국 그럼 칠백 원은 윤가한데 줬갔수다레!”
“헐 수 없지요…… 들고 보니 역시 칠백 원 가치는 되는 듯합니다.”
하고 박서방이 히죽 웃는 모양으로, 황생원도 소리를 내어 허허 웃었다.
“아, 메칠만 더 참았으면 여기 굴이 하나 부이는 걸 참 잘못했수다.”
황생원은 분명히 지금 순녀가 들어 있는 굴을 가리키며 하는 말인 모양으로,
“현재 사람이 들어 있잖어요?”
하는 박서방의 말에,
“이제 메칠 안 되어 부이게 되갔수다.”
한다.
밖에서 건네고 있는 이런 말을 듣고 있는 동안 순녀는 별안간 가fㅏ이 떨리기 시작하였다. 며칠 전부터 감기가 들어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옥히는 순녀의 둥에 업힌 채 또 얼마나 열이 오르는지 등줄기가 온통 화끈거린다.
‘아, 무슨 선약이나 없을까?’
순녀는 누구의 급한 병환을 당할 때마다 언제나 생각하는 이 말을 입버릇같이 입 속으로 뇌고 있을 때 불현듯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환상은, 또 한번, 죽은 남편의―두 눈에 불을 켜고 있던 그,
“고향으로 간다!”
하고 외치는 듯하던 야릇한 광채였다. 순간, 순녀는 또 눈을 감아 버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전 갑증저고리 위에 뚝뚝 떨어지던 눈물방울 대신, 등줄기에 홧홧 달아오르는 옥히의 숨결에 또 정신이 나갔다.
“아, 하느님, 선약을…….”
순녀는 불식간에 또 한번 이렇게 맘속으로 외쳤다. 바로 그때다.
“야아, 독립이다.”
누가 밖에서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났다.
“독립이다!”
“독립이다!”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들리었다. 그와 동시에,
“울 ―”
하고 하늘에서는 비행기 소리도 들리었다.
“모도 나오너라!”
“모도 태극기 들고 나오너라!”
“조선 독립이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 속에는 분명히 황생원네 할머니 소리도 섞여있었다.
“옥히네, 빨리 기 들고 나오라우. 야아, 이전 독립이 됐댄다!”
할머니는 숨을 시근덕거리며 이렇게 힘껏 외치고는 자기도 국기를 찾으러 굴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모양이다.
“비행기에서는 머이 내려오나 봐라!”
“아주 복립장을 박아서 뿌리나 보지!”
이런 말도 들리었다. 물론 순녀도 국기를 찾아 쥐기가 바쁘게 굴 밖으로 뛰어나왔다. 구멍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뛰어나오고 있다.
“만세!”
“만세!”
“독립 만세!”
그들은 제가끔 태극기를 휘두르며 만세를 불렀다.
“만세! 독립 만세!”
할머니는 국기를 찾느라고 좀 늦게 뛰어나와서는 목이 잠기도록 소리를 질렀다. 이 혈거부락에 가장 남 먼저 ‘독립 소식’을 전한 사람이 또한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옥히의 감기약을 구하러 한길 아래 내려갔다가 그 집 사람들에게서 오늘부터 독립이 된 것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아주 ‘법’으로 독립이 된다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이 ‘법’이란 말에 특히 힘을 넣어 말했다.) 그래서 그 사람들도 모두 사무를 쉬고 집에서 술이나 먹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그 밖에 또 무슨 말을 했는지 할머니는 미처 다 듣지도 않고 뛰어왔던 것이었다. 너구나 가슴은 이미 뛰고 두 귀는 먹먹한 할머니에게 그 이상은 아무 것도 더 듣고 싶지도 않았던 모양이었다. 독립이 되고, 법이 생겼다는 데 또 더 무엇을 바랄까 보냐, 노파는 옥히의 감기약도 잊어버린 채 숨을 헐덕이며 뛰어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아랫동네에서는 왜들 모도 잠잠하고 있을까?”
여섯째 구멍의 노인이 첨으로 이런 말을 하였다.
“잠잠한 게 머요? 아 일들도 가지 않고 집에서들 술이나 먹고 놀고 있갔는데 머…….”
“그렇지만 정말 독립이 됐으먼야 집 안에만 박혀 있겠어요?”
박서방의 말이었다.
“아, 백혀 있다니요, 종로 네거리에서는 시방 야단이 났갔수다. 먼 데 비행기 뜬 거만 봐두 다 알갔디, 머…….”
할머니는 박서방의 말을 일소에 부치려 하였다.
그때, 한길 아래쪽에서 새까만 양복바지의 여학생 둘이 이야기를 하며 올라오고 있었다.
“예보, 체네, 오늘, 독립이 정말 됐갔디?”
할머니가 숨이 가쁘게 물었다.
“네?”
여학생 하나는 눈을 똥그랗게 떠서 할머니에게 도로 묻는 얼굴이요, 하나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호호호 하고 웃고 있었다.
“아아니, 오늘 독립이 된 걸 모르고 있디, 시방, 바루 데 아래서, 독립두 되구, 법두 생겼다구 술이랑 먹구들 놀게, 내레 독립이 됐느냐 하니, 아, 됐다는 걸 이 귀루 듣구 봤는 걸 모른다문 말이 되나?”
할머니는 두 손으로 자기의 양쪽 귀를 뚜드려 가며 학생들의 놀란 듯한 얼굴을 흘겨보았다.
“무어, 법이 선다구요.”
“아, 법이 선다면 독립두 됐갔디, 머…….”
“오오, 입법기관 말이로군?”
웃던 학생이 먼저 소리를 질렀다.
“오라, 참 그렇군!”
다른 학생도 양쪽 손바닥을 딱 붙이며 이렇게 외쳤다.
“아아 거, 입법 기갱이라는 건 독립 아닌가?”
할머니는 지지 않으려는 듯이 물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두 학생은 설명을 하려도 않고 다만 이렇게만 말하고는, 비스듬히 커브를 돌아간 허연 신작로 위로 걸어가 버리었다.
태극기를 든 채 학생들의 뒷모양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순녀는 할머니의 두 어깨가 아래로 축 늘어지는 즈음에서 차마 그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이, 고개를 돌려 하늘을 쳐다보았다. 머리 위에서는 연방,
“울 ―”
하는 소리가 천둥같이 울려오고 있었으나, 삼선교 앞 옛성 위를 넘어, 남산도 지나, 한강도 건너, 멀리멀리 새파란 남쪽 하늘가에 떠 있는 것은, 그러나 비행기도 아니었다.
(『황토기』, 인간사, 1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