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
1절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하고 말씀한 사도는 2절에서는,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선행(先行)이 되어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소극적으로는, ㉮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하십니다. 적극적으로는, ㉯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分別)하도록 하라” 하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를 드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①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2상) 하십니다.
㉠ 먼저 “이 세대”(世代)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점을 에베소서 2:2-3절에서는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합니다. 이것이 “이 세대”의 영적인 상태입니다.
② 먼저 부정적으로 “본받지 말고” 합니다. “이 세대”의 생활방식 대로 살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 그런 후에 적극적으로,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2중) 합니다. 사도는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 소극적으로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 적극적으로는,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하고 말씀합니다.
㉡ 1절에서는 “너희 몸을--드리라” 말씀했는데, 2절에서는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하고, “마음”을
말씀합니다. “몸을” 산제사로 드리기 위해서는, 새롭게 된 “마음”이 따라야만 하는 것입니다.
㉢ 이런 권면은 바울 사도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 사도도,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을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벧전 4:2-3) 2) 하고 말씀합니다. “지나간 때”란 “이 세대를 본받아” 살아가던 때를 가리키고, “남은
때”란 거듭난 이후의 삶을 의미합니다. 형제에게는 “남은 때‘가 얼마나 남은 것으로 여겨지십니까?
③ 지금 바울 사도도, “그러므로 형제들아”(1상) 하고,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마땅한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 다시 말씀드리면 로마서 1장-11장까지의 말씀을 받기 이전의 어린 그리스도인 때와, 이제 복음 진리 위에 견고하게 서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는 어떻게 달라져야만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점을 좀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 첫째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합니다. 이전에는 “이 세대를 본받으며” 살았었다는 말입니다. 또한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표현 속에는, 이 세대란 성도들의 마음을 호리는 유혹의 요소가 많이 있다는 뜻이 함의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휩쓸리고 물들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성도들 가운데는 옛 습관과 행실을 끊어 버리거나 벗어버리지 못하고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 둘째로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합니다. 본받지 않는 것만으로는 족하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변화를 받아”라고 말씀합니다. 형제여, 우리는 죄만 용서함 받은 것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의롭다하심에
합당한 의로운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④ 셋째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2하) 하고 말씀합니다.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기 위해서는,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 선히 여기시는 것이 무엇인지,
㉰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고도 선결문제인 것입니다. 핵심은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는
일입니다.
㉡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만 하는 이유도,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하는 것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엡 5:17),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골 1:9)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할 수가 있을까요?
⑤ 이에 대해 히브리서 5:14절은 우리를 인도해주는 등불이 됩니다.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分辨)하느니라”
하고 말씀합니다.
㉠ 먼저는 “지각”(知覺)을 통한
분별입니다. 자기 기분이나 감정의 지배를 받아서는 아니 됩니다.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는가? 지금까지 보고 듣고 배운 말씀을 묵상하므로
지각을 사용하게 될 때에,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선히 여기시는 것이다” 하고 분별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 다음은 “연단을 받아”서 분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연단이란 경험을 통해서 얻어지는 지적인 성숙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했더니 그것은 하나님이 선히 여기시는 것이 아니었다”는 경험이 있다면,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그때 이렇게 했더니
그 결과가 선한 것”이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었다는 증거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실수와 넘어짐을 통해 연단을 받아, 점점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워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 다음은 기도(祈禱)를
통해서입니다. 기도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히 4:16) 일입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2) 하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도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히 8:10)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노라면 형제도 다윗처럼,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시 57:7) 하고, 하나님의 뜻에 대한 “확정”(確定)이 있게 될 것입니다.
⑥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는 것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시험하여 보라”(엡 5:10)는 말씀입니다.
㉠ “이렇게 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 저렇게 하는 것이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 하고, 성경에 비추어
생각해 보고, 기도로 구하고 확신하는 바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험해 보라”는 것은, 그런 연후에 나의 행한 일이 주님을 기쁘시게
했는지 여부를 점검(點檢)해 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 그 일의 결과나 열매 등을 통해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다면,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은 것이요”(히 11:5), 만일 기쁘시게 해드린 것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또 한번의 “연단”을 받은 것(히 5:14)이
됩니다.
㉢ 그러므로 “분별하도록 하라”는 말씀은 분별하기만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분별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면 “더 많이
하고”(살전 4:10), 기뻐하심이 아님을 알았다면 다시는 반복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⑦ 에덴동산에 있었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선(善)이요, 그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 악(惡)이다”를 알게 하는
나무였던 것입니다.
㉠ 인류의 시조는 “선악”을 분별하는데 실패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도 때마다 일마다 우리 앞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놓여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이 세대”가 유혹을 하고 있고, 다른 편에서는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고, 우리를 격려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를 분별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행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 이것이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삶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신앙생활은 신혼살림처럼 행복이
넘치는 생동감이 있는 매력적인 신앙생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