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영 묵상노트]
용서와 사랑의 편지 빌레몬서(1)
빌레몬서 서론
빌레몬서는 바울의 서신 중에서 유일한 사신(私信, 私翰)으로 분류가 된다. 그리고 또한 그가 로마에 가택연금 된 시기에 적은 것으로 보아(AD 62년 여름 경으로 추측됨) 에베소서, 빌립보서 및 골로새서와 함께 옥중서신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발신자는 바울임에 틀림이 없고, 수신자는 이 서신의 이름만 생각하면 빌레몬이다. 그러나 1절과 2절을 함께 살펴보면, 빌레몬과 압비아와 아킵보는 물론 네 집에 있는 교회에 보낸다고 되어 있어, 이것은 사적인 서신의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수신자는 한 개인 빌레몬이 아니라 더 넓게 교회에 보낸 편지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빌레몬서가 이처럼 바울의 사적인 서한에 불과한 것 같음에도 이렇게 정경(正經)의 그룹에 포함된 것은 무슨 이유일까? 또한 아주 간단한 1장의 편지가 신약 성경에 자리를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빌레몬서가 갖는 복음에의 가치는 어떤 것이기에 이렇게 평가가 되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빌레몬서를 살피기 전에 여러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살피면서 그 내용을 더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되겠지만, 빌레몬서의 그 중심 내용은 오네시모(Ὀνήσιμον)라는 사람이 로마로 흘러 들어와 어떤 경로인지는 모르지만 바울의 전도를 받아 그의 제자가 되었고, 그가 감금생활 중에 오네시모의 헌신으로 여러 면에서 유익을 얻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노예로 주인의 물건을 훔친 도적이었다. 당시 노예가 이와 같은 범죄를 범한 경우에는 주인의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 아래 놓여 있었기 때문에 그가 받을 형벌은 뻔한 것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죄를 은폐하고 주인으로부터 잡혀서 곤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이렇게 도망을 온 노예였던 것이다.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노예가 연회석에 잔을 나르다 실수로 깨트린 행위에 대하여 그 벌로 연못으로 밀어 넣어 사나운 칠성장어들의 밥이 되게 한 경우도 있었으며, 어떤 여주인은 자신이 하녀가 잘 못을 저질렀을 때 채찍질을 함으로 울부짖는 소리가 그 어떤 노래 소리보다 더 아름답다고 표현할 정도로, 노예는 주인의 어떤 조치에도 더 이상 사람으로서의 대우를 받을 수 없었기에 인간이 아닌 물건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노예가 도망을 가다가 잡히는 경우, 그를 도망자로 낙인을 찍었는데 도망자 Fugitivus의 첫 글자인 F자를 붉은 글씨로 이마에 새기기도 하였다고 한다(바클레이 주석). 따라서 이처럼 노예의 지위가 열악한 상황이었기에 오네시모는 어쨌든 로마로 줄행랑을 쳤던 것이다.
그런데 빌레몬서는 바울이 여기 노예였던 오네시모를 10절에서 “갇힌 중에 낳은 아들”이며 “심복”(σπλάγχνα, very heart)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또한 골로새서에서는 그를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골 4:9)라고 소개하면서 비록 자신이 계속적으로 그와 함께 하고 싶지만, 주인인 빌레몬의 허락이 없는 한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바울이 이런 편지를 쓰게 되었을까? 한동안 오네시모는 아무런 제약 없이 바울을 도와주며 그와 함께 지내고 있었는데…. 그 계기가 무슨 일로 인한 것일까 의문이 생긴다. 아마 이것은 우리의 추측이기는 하지만, 골로새로부터 에바브라가 왔는데, 오네시모도 에바브라도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였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오네시모가 에바브라를 만나면서 양심의 가책을 받아 이실직고(以實直告)를 했거나, 아니면 바울이 에바브라를 통하여 오네시모에 관한 정보를 얻었거나 했을 것 같다.
따라서 바울은 비록 오네시모가 이전의 무익한 오네시모가 아니라 유익한 오네시모(이름 자체가 ‘유익한’ 이란 의미임)일지라도, 이처럼 도망자 오네시모를 그냥 데리고 있는 것은 분명히 잘 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네시모를 주인에게 돌려보내면서 그를 용서하고 용납할 것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바울은 빌레몬을 향하여 그가 빚을 진 것이 있다면 자신이 갚겠다면서 그럼에도 복음을 받고 구원의 자리에 서게 된 빌레몬이 바울에게 진 빚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러한 여러 표현을 통하여 바울은 범죄자 노예를 주인에게 돌려보내는 위험천만한 일을 두고, 진심으로 노예의 주인인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종이 아닌 형제로 받아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비록 짧은 서신이지만, 이처럼 바울의 진심어린 한 영혼을 위한 사랑을 읽는다. 그리고 비록 그가 사도의 지위에 있어, 빌레몬을 향하여 목소리를 바꾸며 큰 소리로 오네시모에 대한 용서를 명할 수도 있겠지만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여러 서신에서 자신을 사도로 소개하고 있지만 -물론 이것이 사적인 서신이라는 성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는 낮은 목소리로 다정한 음성을 담아 자신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피력하면서 빌레몬에의 관대한 용서와 사랑을 바라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여기서 또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주님의 희생과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읽는다.
조금 더 부연하면, 물론 성경을 통하여 확인된 사항은 아니지만, 이렇게 빌레몬에게 간 오네시모는 그의 관대한 용납을 통하여 다시 로마로 돌아와 바울과 함께 하였고, 나중에는 그가 에베소의 감독이 되는 귀한 사역자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바클레이에 따르면 위대한 기독교 순교자였던 이그나티우스(Ignatius)가 처형을 당하기 위하여 안디옥에서 로마로 연행이 되는 도중에 편지를 소아시아 여러 곳으로 보냈는데, 그가 서머나에 머물 때 에베소에 보낸 편지 첫 장에 그곳에 감독에 대한 놀라운 평가를 하였는데, 그 감독의 이름이 바로 오네시모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기록이 말하는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노예였던 오네시모가 맞다면, 그는 참으로 무익한 자에서 유익한 자로, 도망자에서 에베소의 감독이 되는 놀라운 은혜가 이 편지를 통하여 실현된 것이다. 이제 빌레몬서의 한 구절 한 구절 상고해 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