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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도 육군참모총장 선영 1934년 창령출신, 대구고등학교졸업 육사12기로 박준병 박세직과 쓰리박을 형성함. 하나회 가입 1975 : 육군준장 진급 1976 : 전두환 후임으로 1공수여단장 취임 1976 : 8.18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의 보복 작전 수행 (박정희대통령 지시) 1978 : 1공수여단지역인 서산앞바다에 무장 간첩이 출몰하여 보직해임의 위기 를 맞았으나 특전사령관 정병주 소장의 도움으로 위기 모면 1979 : 12.12 전두환 장군의 요청으로 총격전 끝에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장악함. 1988 : 육군참모총장 진급 1994 : 12.12 재평가에서 구속되어 징역형을 살고 풀려남.
군 생활에서 몇 차례의 위기가 있었으나 주위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육군대장까지 올랐으나 말년에는 오욕도 있었다. 창령 양정마을 생가 뒤에 있는 그의 선영을 찾아보았다.
조모묘소


멀리서 바라보는 주산은 힘이 있으며 선영을 향해 살포시 머리를 숙이고 있다. 그리고 좌우 균형감이 뛰어나며, 중출맥을 형성하였다. 주산에서 이어지는 중심맥은 좌우로 꿈틀거리다 조모의 묘 뒤에서 한차례 숨을 고르고 있으니 그 현상이 근처에서 머물고자 하는 징표가 되는데, 이를 形止勢縮이라 한 바 있다.
그러나 조모의 묘 앞으로 약 50m 진행하면서 곳곳에 고총과 파묘의 흔적이 있어 정확한 혈처는 가늠하기 쉽지 않다. 즉 조모의 묘는 주산의 힘을 받는 위치에 있는 것은 맞지만, 아직까지 제자리를 잡지 못한 탓에 약간의 진행이 더 된 것이다. 만약 이곳에서 진혈을 맺으려면 기맥의흐름을 단속하는 전순의 형태가 있어야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러한 의지를 볼 수가 없다.
조부묘소
이곳은 정상적인 맥의 진행에서 90도 벗어난 지점에 자리하였다. 아마도 횡룡이라 보고 쓴 것 같은데, 그렇게 되자면 묘소의 뒤쪽에는 작은 봉우리가 있어 뒤쪽의 허함을 방비하고 앞에는 전순이 있어 정상적인 맥의 흐름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앞뒤로 그러한 현상이 없으므로 이곳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곳이다. 단순히 전면의 봉우리를 쫒았을 뿐이다.

부모묘소

양쪽 계곡의 물이 만나 앞으로 길게 빠지는 것은 水口가 열린 모습이니,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각각의 묘가 길흉이 상반된 모습이므로 화복 또한 그러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주산에서부터 이어지는 맥은 A와 B로 나누어지는데, B에는 상하좌우 아무 변화가 없다. 그리고 A와 B의 높이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A는 짧지만 높고, B는길지만 낮다.) 그렇다면 B는 A를 받쳐주는 橈棹가 된다.
이곳과 비슷한 형태가 남원 황균비 묘소가 그러하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A는 매우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형태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만약 혈이 맺힌다면 점선부분 근처가 될 가능성이 있는데, 만약 필자의 생각이 맞는다면 주산의 역량으로 보아 의외로 큰 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강호의 실력자들이 한번쯤 돌아보고 고민해보는 것도 공부할 가치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하나의 이해와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이해1. 주산의 역량을 받는 위치에 있으면 최소한의 발응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번에 살펴본 박원순 시장의 조모 묘에서 비슷한 사례를 확인한 바 있으니, 주산만 좋아도 일단 절반의 성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민1. 그렇다면 동일한 주산 밑에 있는 몇몇의 고총들은 어째서 버려진 상태로 있는 것인가?
조모의 묘와 바로 이웃한 고총은 무엇이 다를 것인가?
같은 주산에 같은 용맥에 같은 좌향에 같은 물을 공유하면서 무엇이 다른 것인지는 좀 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곳이다.
一個山頭下十墳 一墳富貴九墳貧 共山共向共流水 只看穴情眞不眞 (하나의 산 밑에 열 개의 묘가 있다면, 한곳은 부귀를 하지만 9곳은 가난함이라. 같은 山에 같은 向에 같은 水이건만, 단지 살필 것은 혈의 情이니 참됨과 거짓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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