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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로맨스영화를 보고 나면 심장에 조그맣게 구멍이 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무언가가 심장에 콕 박히고, 무언가가 콕 박힐 때 난 조그만 구멍으로 바람이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느낌. 구멍을 통해 환상이 새로 생겨나고 그 환상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다 마음에 작은 문양을 새긴다. 싱숭생숭하다는 말은 이렇게 심장에 구멍이 나 별별 환상을 품게 되는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레터스 투 줄리엣>을 보고 나면 아마도 싱숭생숭한 마음에 수첩을 꺼내 이런 메모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탈리아의 베로나에 가면… 줄리엣의 하우스에 들러 줄리엣의 발코니 앞을 서성이다, 그 순간 떠오르는 옛사랑의 추억을 건져올려 손글씨로 꾹꾹 눌러 편지를 써야겠어.’
소피(아만다 시프리드)는 잡지사 <뉴요커>의 자료조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작가지망생이다. 소피에겐 식당 개업을 앞두고 있는 약혼자 빅토(가엘 가르시아 베르날)가 있다. 함께 떠난 이탈리아 여행에서 빅토는 자신의 식당에 들여올 트러플(송로버섯)을 보러 가야 한다며 소피를 혼자 남겨둔다. 한술 더 떠 워커홀릭 빅토는 서로가 원하는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윈-윈이 아니냐며 소피에게 오페라극장이며, 호수며 가고 싶었던 곳을 마음껏 둘러보라고 한다. 결국 혼자서 베로나를 둘러보게 된 소피는 줄리엣의 하우스에서 신선한 광경을 목격한다. 세계 각지에서 온 여성들이 줄리엣 앞으로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편지에 써서 담벼락에 붙여놓는다. 그러면 베로나시 공무원들은 줄리엣의 대리인이 되어 그 편지에 답장을 쓰는 것이다.
다음날 다시 줄리엣의 하우스를 찾은 소피는 우연히 50년 동안 담벼락에 숨겨져 있던 클레어(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편지를 발견한다. 부모님의 반대가 두려워 사랑하는 로렌조(프랑코 네로)의 프러포즈를 거절하고 이탈리아를 도망치고 말았다는 내용의 편지. 소피는 클레어의 편지에 답장을 쓴다. 그리고 며칠 뒤, 거짓말처럼 클레어와 그녀의 손자 찰리(크리스토퍼 이건)가 소피 앞에 나타난다. 클레어는 백발의 할머니가 됐지만, 소피의 편지에 용기를 내 50년 전 헤어졌던 로렌조를 찾아나서기로 한다. 찰리는 소피의 무모한 행동 때문에 할머니가 상처받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결국 소피는 클레어, 찰리와 함께 로렌조를 찾는 여정에 동참한다. 클레어와 로렌조는 운명적인 해후를 하고, 찰리와 소피는 어느새 가까워진 서로의 모습을 발견한다.
<레터스 투 줄리엣>이 전하는 사랑의 교훈은 클레어의 입을 통해 영화에서 얘기된다. 클레어와 로렌조는 50년이라는 시간을 극복하고 다시 사랑을 꽃피운다. 그와 달리 젊은 소피와 찰리는 눈앞에 사랑하는 상대가 있는데도 용기를 내지 못하고 마음을 쉽게 접으려 한다. 그런 찰리에게 클레어는 이렇게 얘기한다. “너같이 답답한 사람은 처음 보는구나. 사랑을 얘기할 때 늦었다는 말은 결코 있을 수 없단다.” 그리고 찰리를 움직이게 만든 결정적인 한마디. “나처럼, 소피 찾으러 50년이나 기다려서 남의 집 대문이나 두드릴 테냐.”
남자와 여자가 낯선 여행지를 함께 여행하며 사랑을 키워나간다는 설정은 예나 지금이나 로맨틱하기 그지없다. <레터스 투 줄리엣>에는 문득문득 <비포 선라이즈>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속깊은 얘기를 나누며 유명 관광지의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는 모습, 잔디밭에 나란히 누워 키스하는 소피와 찰리의 모습에서 <비포 선라이즈>의 셀린느와 제시의 모습이 언뜻 스쳐지나간다. <비포 선라이즈>가 오스트리아 비엔나 거리를 누볐다면 <레터스 투 줄리엣>은 이탈리아의 베로나와 시에나를 누빈다. 특히 시에나의 캄포 광장에서 젤라토를 서로의 얼굴에 묻히며 장난치는 소피와 찰리의 모습은 샘날 정도로 예쁘다.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배경을 로맨틱하게 만드는 것은 예쁘고 멋진 배우들이다. 소피 역은 <맘마미아!> 한편으로 스타가 된 아만다 시프리드가 맡았는데,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은 사랑의 미묘한 감정을 그대로 담아낸다. <레지던트 이블3: 인류의 멸망>과 미국 드라마 <킹스>로 얼굴을 알린 크리스토퍼 이건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짓궂은 장난꾸러기가 되고 마는 찰리와 한몸이 된다. 재밌는 건 찰리의 할머니로 나오는 클레어 역의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와 로렌조 역의 프랑코 네로가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현실에서도 부부라는 거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이전의 이미지를 벗어두고 촐싹거리고 철없는 소피의 약혼자 빅토 역을 맡아 작은 재미를 선사한다.
첫댓글 낯선 여행지에서 우연한 만남... ㅎ
결국 꿈을 이룬다는 내용이었죠
그것도 해피엔딩,,,,,,,,
자신의 과거를 찾겠다는 여행 자체가 무척이나 용기있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