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4회 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에서는 월성1호기 수명연장 심사에 대해 위원들이 압박감을 갖고 있다는 위원장의 발언이 있었다. 어떤 위원이 회의 전 날 하루 종일, 어머니들의 전화에 시달린 사례를 얘기한 직후 나온 위원장의 발언이었다. 하루 종일 전화에 시달렸다는 위원의 말은 처음에는 원안위원의 독립성을 얘기하다가 어머니들의 호소 전화 이야기로 이어졌다.
위원들의 독립성과 어머니들의 전화가 어떻게 연결되는 주제인지 방청석에서 듣고 있자니 아리송한 이야기였다. 그 위원은 전화에 시달린 피곤함을 토로했던 것인데 위원장은 그 위원에게 그것은 시민들의 의견청취라 심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는 것이라고 했지만, 위원들의 압박감을 인정했다. 심사는 길어지고 점점 더 언론의 주목을 받으니 아홉 명의 원안위원들이 심사에 부담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심사가 길어지고 언론에 주목을 받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심상치 않은 수명연장 반대 여론에 있다.
월성1호기 수명연장을 찬성하는 한수원 등은 캐나다의 중수로 원전 포인트레프로(Point Lepreau) 사례를 들고 월성1호기 수명연장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는 젠틀리(Gentilly) 2호기를 사례로 든다. 이 두 원전이 모두 수명연장을 시도했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결정적으로 캐나다와 우리나라가 다른 점이 있다. 정보공개를 통해 투명하게 원전을 운영하고 인내심 있게 주민과 만나 대화하고 설득하는 것이 그것이다. 급하게 결정해서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밀어부치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의견과 불안에 대해 경청하기를 우리나라 전문가나 한수원처럼 소모적인 논쟁으로 여기며 우리만큼 힘겨워 하지 않는다. 그러니 더 안전하게 주민의 협조 속에서 일을 추진한다. 비용이 많이 들어도 돈보다는 안전과 주민 의견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공개 회의 속기록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이은철 위원장이 취임하면서 새로 만든 제도이다. 취임 초기 회의에서 온라인으로 회의를 생중계하는 걸 의논한 적도 있는데 가닥은 방청을 활성화 시키는 것으로 잡혔다. 월성1호기 민간검증단 구성을 제안한 것 역시 이은철 위원장의 아이디어였다. 과거에 비해 정보공개와 주민의견을 청취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시도했다는점은 높이 살만한 일이다.
그런데 속기록을 읽어보면 정작 위원장의 의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원안위 현실을 발견하게 된다. 작년 말부터 원안위 회의 방청자가 늘기 시작해서 지난 회의에서는열 명을 훨씬 넘겼다. 33회 회의에서 한 위원은 방청자 수가 점점 늘어나는 걸 불안한 일처럼 간주하여 문제제기 하기도 한다. 민검단과 의견을 종합해서 총괄기술협의회를 통해 상호 의견을 청취하고 토론하고 차이를 정리해야 할 원자력안전기술원 담당자들과 사무처 직원들은 논의가 반복된다며 피로를 호소한다. 정작 민검단은 필요한 자료를 제 때 제공 받지 못함을 누누히 호소한다. 이런 식의 소통부실에 위원장은 답답함을 호소하는 게 한 두 번이 아닌 걸 속기록을 통해 여러 번 확인한다. 34회 회의 초반에 원안위원들은 이구동성으로 한수원에게 캐나다와 비교하여 정보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주민협조를받지 못하는 현실을 질타했다. 하지만 속기록을 통해 확인되는 내용들을 보자면, 그것은 비단 한수원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닌 것을 확인하게 된다.
미래의 어떤 방청자들을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지칭하고(이미 서약서를 받아 신원을 확보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잠재적인 준범죄자로 간주하며 불안을 호소하는 어느 원안위원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반복되는 얘기라며 귀를 닫고 다른 이야기 듣기를 피로로 간주하는 원자력안전기술원과 사무처 담당자들의 태도가 뀌지 않는 한, 위원장의 방침은 쉽게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여겨진다. 현실이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위원들이 압박감을 느끼는 현실을 인정하며 무리하지 않게 심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방법은 하나다. 인내심 있게 듣고 다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주민들 이야기도 민검단 이야기도, 서로 생각이 다른 위원들의 견해도, 불안한 어머니들의 호소도, 반대여론이 높은 시민들의 생각도, 충분히 더 듣고 대화하며 생각을 좁혀 가야 한다. 위원장은 원안위 회의 자리에 민검단과 전문위원도 부르고, 문제를 제기하며 공개토론을 주장했던 서균렬교수와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들도 불러 들여 대화를 나눴지만 대화는 원활하지 않았다. 위원들의 심사는 제대로 시작도 못했다. 그런데도 일부 언론에서는 찬반양론이 팽팽하니 표결도 들어가게 될 것 같다고 예측 기사를 내보낸다. 일부 언론의 바람인 것은 아닐까 의심이 된다.
의견이 팽팽하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뜻이지 논쟁이 소모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대화를 피로하게 느끼는 것은 내 뜻대로 상대가 받아주지 않는다는 조급함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언론은 왜 필요할 것일까? 정부의 단일한 스피커만 존재한다면 피곤한 논쟁따윈 안 보고 살 수 있지 않은가?
월성1호기 수명연장 심사를 둘러싼 일부 관계자와 언론의 반응은 우리나라가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안전의식과 규제수준을 높이기 위해 어떤 과제에 걸려 있는지, 무엇을 직면하고 넘어서야 하는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