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A Midsummer Night's Dream
'한 여름밤의 꿈' 음악회
프로그램
1부 클래식
2부 가요
3부 재즈
4부 예술음악
일시 : 2002. 8. 17 - 18
장소 : 보성의 전원주택
주최 : 베토벤고전음악감상동우회
classic
진행 이중식 회원
Dinu Lipatti (1917 - 1950, Birth Mar 19, 1917 in Bucharest, Romania / Death Dec 2, 1950 in Geneva)
디누 리파티 브장송 고별 리사이틀 / 바흐·모차르트·슈베르트·쇼팽 등
녹음: 1950년 9월 16일 브장송 국제 페스티벌 실황
EMI 104633
디누 리파티. 요절한 불행한 천재. 살아서 이미 전설이었던 그는 1950년 12월 2일 33세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등졌다. 그가 마지막으로 섰던 무대의 애잔한 감동이 여기 이 음반, '디누 리파티, 라스트 리사이틀'이란 앨범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1950년 9월 16일 브장송 국제 페스티벌 실황녹음인 이 음반은 그가 운명을 달리하기 약 두 달 반전에 녹음한 레코딩이다.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진 리파티는 주치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브장송 페스티벌 무대에 섰다. 그 자신도 이것이 마지막이 될 줄 알았을까? 평범한 슈트에 넥타이 차림의 그는 자신을 기다리는 청중과의 약속을 위해 일정대로 무대에 올랐다. 바흐의 파르티타로 건반을 짚어나가기 시작한 그는 모차르트의 소나타 a단조, 슈베르트의 즉흥곡을 거쳐 쇼팽의 왈츠를 연주했다. 사실 그의 긴 손가락은 힘이 많이 빠져 있다. 병마와의 싸움에 몸과 마음이 너무도 지쳐 있음을 청중들은 눈치챈다. 빠른 패시지에서 미스 터치도 나온다. 하지만 음악의 맥을, 그 흐름을 지키려는 그의 분루(奮淚)가 건반 위에 드리워진다. 청중은 그들대로 숨을 죽이고 가슴을 졸이며 리파티의 음악에, 리파티의 예술혼에 마음을 쏟는다. 13곡의 왈츠가 연주되면서 마지막 Eb장조의 '화려한 대원무곡' 차례에 이르자 리파티의 터치는 흐트러진다. 연주는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한다. 그것이 마지막이고 끝이었다. 사력을 다해 버텨온 리파티는 눈물도 흘리지 못할 고통을 안은 채 들것에 실려 나갔다. 그 후 3개월도 못되어 그의 부음이 전해졌다. 한 위대한 피아니스트, 그의 마지막 고고한 피아니즘이 여기에 슬프도록 아름답게 담겨 있다.
스피커에선 바하의 맑은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그가 녹음한 음악을 들으면서, 아니 이젠 그 이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아름다운 영혼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란 것을 느끼곤 합니다. 흔히들 그를 요절한 천재 피아니스트라고들 합니다. 그의 마지막 연주회 실황인 브장송 실황 연주를 듣노라면 피아노 소리가 이렇게도 시리도록 맑아서, 너무 영롱하여 슬프기까지 한, 이런 음악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연주한 브장송 연주회를 고별연주회라고 합니다. 정말 고별이지요... 모든 것을 남기고 떠나는... 그의 바하는 너무 깨끗합니다. 피아노 위에, 새벽에 내린 조그만 이슬방울들이 이리저리 튀어 가는 듯합니다. 흘러나오는 곡은 Partita No.1 BWV 825의 여섯 곡이 차례로 연주됩니다. 브장송은 프랑스 서북쪽에 있는 자그마한 도시입니다. 1950년 9월 16일 이 조그만 도시에서는 이제 33살이 된 아주 젊은, 그러나 위대한 예술가의 연주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두 달 전에도 제네바에서도 비슷한 곡들을 갖고 연주회를 했습니다. 그는 다시 브장송에서의 연주회를 계획하였고, 최선을 다한 연주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마지막 한 곡은 연주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의 건강은 최악의 상태였고, 마지막 곡으로 연주되어야 할 쇼팽의 왈츠 2번은 연주되지 못하고, 그는 비틀거리면 일어났습니다. 얼떨결에 터져 나온 박수소리......마지막 곡이 연주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던 청중은 의아해 했겠지만... 그는 몇 년 전부터 심하게 앓아오고 있었습니다. 요즘이면 어쩌면 쉽게 고칠 수도 있을 류마치스와 합병증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 날도 연주회 전에 겨우 브장송에 도착할 정도였고, 그의 주치의가 연주회를 직전까지도 포기할 것을 권유하였지만, 그는 - "나는 약속을 하였다. 나는 쳐야만 한다..." - 라고 되풀이만 하였습니다. 물론 그의 부인인 마드렌느도 분명 말렸겠지만 그는 그를 사랑하는 청중들과의 약속을 위하여 연주회를 강행하였습니다. 모든 것, 그리고 생명까지 다하는 연주를 시작한 것입니다.
W. A. Mozart / Piano Sonata No. 8 in a minor / KV 310 왜 그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는 이렇게 슬픔을 가득 담고 있는지. 맑고 투명하고 슬픈 것. 오십 년 전의 녹음이라 스테레오도 아닌 모노 녹음에다가 음질은 뭔가 스피커와 나 사이에 두꺼운 휘장을 쳐 놓은 듯한 형편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것이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두꺼운 휘장을 뚫고 나오는 아주 섬세한 피아노 음색, 그리고 다양한 음악적 표정은 더 이상 음악이 아닙니다. 그저 다가오는 아름다운 감동만이 있을 뿐입니다.
Franz Schubert - Impromptu in G flat major / D 899 No.3
Impromptu in G flat major / D 899 No.2
그의 음반들을 보면, 50년에 많은 곡들을 녹음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지병이 가장 심했던 이 마지막 해를 그는 약으로 생을 연명하였습니다. 다시 쇼팽의 왈츠가 연주되기 시작합니다. 쇼팽 왈츠 전곡 14곡이 흘러나옵니다. 그가 연주하는 이 14곡의 연주 순서는 아주 특이합니다. 1번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그만 갖고 있는, 그의 세계에 존재하는 쇼팽의 이 곡들을 교묘하게 연결하여 - 작은 소품을 모아서 큰 작품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 브장송 연주에서도 그랬고, 그 앞의 연주회에서도 그는 자기만의 순서대로 연주하였습니다. (제네바의 연주회에서와 브장송에서의 연주는 그 순서가
단 한 곡만이 다릅니다.) 리파티의 피아노 연주가 흐르는 밤은 더 이상 날이 밝는 게 싫어지도록 아쉬움만 흐릅니다.
그리고 정말 아름다운 음악만이 필요한 고요한 밤입니다.
*Dinu Lipatti 한 세대 전 피아노 음악계에 짧지만 화려했던 생애를 살다간 추억의 피아니스트로 윌리엄 카펠과 디누 리파티를들 수 있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 이들의 이른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많지 않지만, 영혼의 심금을 울리는 연주를 듣고 있으면 흐트러진 감성이 순화되며, 눈시울마저 뜨거워지게 된다. 리파티는 음악적 학식이 높은 양친을 부모로 하여 1917년 루마니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년 시대에 몸이 나약하여 자주 병에 걸렸지만, 다양한 음색을 내는 피아노에 매료되어 불과 네 살 때 암보로 즉흥연주를 할 정도였다. 일곱 살 때부터 피아노를 정식으로 공부했으며, 부카레스크 음악원에서 무치스체스크의 지도를 받았다. 1934년 빈 국제 콩쿠르에서 심사 위원이었던 코르토는 리파티의 연주를 듣고 크게 감명받아 후원을 약속하며, 국제 무대에 낯설은 젊은 피아니스트를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그 후 리파티는 유럽 음악계에서 빛나는 성공을 거듭하다가 1950년 스위스 브장송에서 열린 마지막 리사이틀에서 쇼팽의 왈츠를 연주하다가 쓰러졌으며,2개월 만인 12월 지병인 백혈병으로 33세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다. 리파티는 키가 150센티 정도로 작았지만, 10도의 건반을 보통 사람들의 옥타브 정도로 짚을 만큼 매우 거대한 손과 기민한 손가락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피아니스트로는 특별히 코르토, 박하우스, 루빈스타인을 존경했으며, 작곡가로는 에네스코와 바르톡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비범한 재능을 지녔으면서도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하기에 인생 경험이 부족하다고 할 만큼 소박하고 겸허하게 살았다.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로서 리파티는 자신의 예술관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음악이 훌륭하게 완성되기 위해서는 마음의 전반적인 움직임과 자유로움 등 다양한 종류의 감정을 불어넣어 가는것이 중요하다. 음악은 연주자의 손가락과 눈,마음에서 우러나와 우리에게 감동을 안겨 준다." 리파티의 많지 않은 유산을 지금에 들을 수 있는 것은 행운이며, EMI프로듀서였던 윌터 레그에게 어느 정도 감사해야 할 것 같다.1946년 리파티와 처음 조우한 이래 현재 남아 있는 불후의 명반은 레그의 끈질긴 레코딩 교섭의 산물이며, 모노 시대 당시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기술 방식을 채택하여 음질 또한 선명하다. 카라얀과 협연한 슈만 협주곡, 갈리에라와 협연한 그리그 협주곡,쇼팽 소나타3번, 왈츠집,모짜르트 소나타K.310,바하 파르티타, 리스트, 라벨의 소품 등 실로 주옥 같은 명편들이 즐비하다.특히 슈만 협주곡이 두드러진 편인데, 후일 리파티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앙세르메와 협연한 녹음보다 시적 상상력이 풍부하고,싱싱한 생명력이 넘치는 공연이다. 젊은 날의 카라얀 반주도 훨씬 순수하고 지적이며, 극히 로맨틱한 표현으로패시지마다 독주자와 불꽃튀는 경합을 벌인다.
가요
진행 이욱붕 회원
박인희 - 목마와 숙녀
양희은 - 한계령
조용필 - 그 겨울의 찻집
최성수 - 해후
트윈폴리오 - 하얀 손수건
패티김 - 초우
신중현 - 미인 / 아름다운 강산
송창식 - 꽃보다 귀한 여인
우순실 - 잃어버린 우산
그 외 다수
목마와 숙녀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 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한계령
작곡 : 하덕규 작사 : 하덕규
저 산은 네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 산중
저 산은 네게 잊으라 잊어버리라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산 저산 눈물 구름 몰고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그 겨울의 찻집 - 조용필
작곡 : 김희갑 작사 : 양인자
바람속으로 걸어갔어요 이른 아침의 그 찻집
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셔요
아름다운 죄 사랑때문에 홀로지샌 긴 밤이여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왜 한숨이 나는 걸까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아름다운 죄 사랑때문에 홀로지샌 긴 밤이여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왜 한숨이 나는 걸까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 해후 - 최성수
어느새 바람 불어와 옷깃을 여미어 봐도
그래도 슬픈 마음은 그대로인걸
그대를 사랑하고도 가슴을 비워 놓고도
이별의 예감 때문에 노을진 우리의 만남
사실은 오늘 문득 그대 손을 마주 잡고서
창 넓은 찻집에서 다정스런 눈빛으로
예전에 그랬듯이 마주보며 사랑하고파
어쩌면 나 당신을 볼 수 없을 것 같아
사랑해 그 순간만은 진실이었어
사실은 오늘 문득 그대 손을 마주 잡고서
창 넓은 찻집에서 다정스런 눈빛으로
예전에 그랬듯이 마주보며 사랑하고파
어쩌면 나 당신을 볼 수 없을 것 같아
사랑해 그 순간만은 진실이였어
*하얀 손수건 - 트윈폴리오
헤어지자 보내온 그녀의 편지속에
곱게접어 함께부친 하얀 손수건
고향을 떠나올때 언덕에 홀로서서
눈물로 흔들어 주던 하얀 손수건
그때의 눈물자욱 사라져 버리고
흐르는 내 눈물이 그위를 적시네
*초 우 - 패티김 작사: 박춘석 작곡: 박춘석
가슴속에 스며드는 고독이 몸부림 칠 때 갈 길 없는
나그네의 꿈은 사라져 비에 젖어 우네
너무나 사랑했기에 너무나 사랑했기에 마음의
상처 잊을 길 없어 빗소리도 흐느끼네
너무나 사랑했기에 너무나 사랑했기에 마음의
상처 잊을 길 없어 빗소리도 흐느끼네
* 꽃보다 귀한 여인 - 송창식
누가 그녀를 보았는가 아무도 모른다네 나도 모른다네
사슴을 닮아서 눈이 맑은 그 여자 혼자서 먼길 떠나버렸네
난 그만 바보처럼 울고 말았네 꽃보다 더 귀한 나의 여인아
아무도 모른다네 나도 모른다네 하지만 호숫가를 스쳐가는
바람이 얼핏 보았다고 하더라네
난 그만 울고 말았네 꽃보다 귀한 나의 여인아
*잃어버린 우산 - 우순실
안개비가 하얗게 내리던 밤
그대 사는 작은 섬으로 나를 이끌던 날부터 -
그대 내겐 단 하나 우산이 되었지만
지금 빗속으로 걸어가는 나는 우산이 없어요 -
*이젠 지나버린 이야기들이 - 내겐 꿈결같지만
하얀 종이위에 그릴수 있는-
작은 사랑이어라 라라 라라라라 라---- 라-----
잊혀져간 그날의 기억들은
지금 빗속으로 걸어가는 내겐 우산이 되리라
Jazz
진행 조덕영 회원
감상곡 - 재즈 보컬곡 다수
Art Song
진행 민승룡 회원
전경옥 :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최영미 시 / 이건용 곡
너의 인생에도 한번즘 휑한 바람이 불었겠지
바람에 갈대 숲이 누울 때처럼
먹구름에 달무리 질 때처럼
남자가 여자를 지나간 자리처럼
시리고 아픈 흔적을 남겼을까
너의 몸 골목골목 너의 뼈 굽이굽이
상처가 호수처럼 괴어 있을까
너의 젊은 이마에도 언젠가 노을이 꽃잎처럼 스러지겠지
그러면 그때 그대와 나
골목골목 굽이굽이
상처를 섞고 흔적을 비벼
너의 심장 가장 깊숙한 곳으로
헤엄치고프다
사랑하고프다
아도니스는 그리스의 여신 비너스가 짝사랑하던 젊은 청년의 이름이라 한다. 이 곡에서 가수는 낮은 톤의 비성을 통해 샹송의 느낌을 주는 독특한 발성을 사용하였는데 노래 선율 주위를 맴도는 바이올린과 아코디언의 대선율은 사랑이 갖는 미묘한 감정의 갈등을 표현한 것처럼 들린다. 음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색 바랜 사진을 보는 듯 고풍스런 느낌을 준다
이상은 : 새 작사·작곡 이상은 [공무도하가] 1995
네가 바라보는 세상이란 성냥갑처럼 조그맣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허전한 맘으로 돈을 세도
네겐 아무 의미 없겠지 날아오를 하늘이 있으니
너는 알고 있지 구름의 숲 우린 보지 않는 노을의 냄새
바다 건너 피는 꽃의 이름 옛 방랑자의 노래까지
네겐 모두 의미 있겠지 날아오를 하늘이 있으니
내려오지마 이 좁고 우스운 땅 위에 내려오지마
네 작은 날개를 쉬게 할 곳은 없어
어느 날 네가 날개를 다쳐 거리 가운데 동그랗게 서서
사람들이라도 믿고 싶어 조용한 눈으로 바라보며
"내겐 아무 힘이 없어요 날아오를 하늘이 멀어요"
내려오지마 이 좁고 우스운 땅 위에 내려오지마
네 작은 날개를 쉬게 할 곳은 없어
가장 아름다운 하늘 속 멋진 바람을 타는 너는 눈부시게 높았고 그것만이 너 다워
가장 아름다운 하늘 속 멋진 바람을 타는 너는 눈부시게 높았고 그것만이 너 다워
내려오지마 이 좁고 우스운 땅 위에 내려오지마
네 작은 날개를 쉬게 할 곳은 없어
그래야한다면 어딘가 묻히고 싶다면 우리가 없는 평화로운 곳으로 가서
마음을 놓고 나무 아래서 쉬는거야 우리가 없는 평화로운 섬으로 가서 그래야한다면...
序頭에서 들리는 새소리. <새>를 통해서, 이상은이 노래를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정제된 아름다움의 실제적 모습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하여 그것이 제멋대로 꾸며댄 싸구려 정체성에 기반한 것도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이 노래의 가사나 전체적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어린 아이들의 소박한 웃음소리를 실컷 들은 후에야 비로소 이 노래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특히 맨 후반에 전개되는 전환부는 피아노 선율과 사람의 목소리가 어우를 수 있는 좀처럼 듣기 힘든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투명함과 소박함... 그건 바로 영혼의 숨소리와 맞닿아 있다. [공무도하가]는 이상은의 정규 6집 앨범이다. 이 음반은 이상은 스스로 프로듀서의 역할을 맡아 일본의 뮤지션들의 지원을 받아 완성되었다. <보헤미안>, <공무도하가>, <새>, <Don't Say That Was Yesterday> 등 다분히 신비주의적이랄까, 음유적 또는 자기성찰적이랄까 하는 이상은의 음악성을 상징하는 출발점으로 여겨지는 너무도 아름다운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외에도 정규 3집 앨범에 해당하는 [더딘 하루](1991), 4집 앨범 [Begin](1992), 5집 앨범 [이상은](1993), 7집 앨범 [외롭고 웃긴 가게](1997), 8집 앨범 [Lee-Tzsche](1997), 9집 앨범 [Asian Prescription](1999) 등이 있다. 그 중에서 특히 9집 앨범에서는 기존의 <공무도하가>, <삼도천>, <새> 등의 영문버전이 실려있는데, 이전 국문버전에 비해 또 다른 완성된 분위기를 주어 흥미롭다.
조 윤 : 잃어버린 천국
Prologue
순수한 희열 속에서 탄생한 靈感(영감)은, 자신의 생명력을 얻어 날아올라 스스로의 주인을 찾는다.
Part I
放浪 野人(방랑야인)
자신의 의지로 날아오른 靈感(영감)은 한 수도승의 고매한 求道(구도)의 熱情(열정)에 끌려 그의 靈魂(영혼)에 내려 앉는다. 그리고 관념의 늪에 잠든 그의 靈魂(영혼)을 일으켜 자신의 불꽃으로 心靈(심영)의 눈을 밝혀준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 황량한 들판이 펼쳐지고, 운명의 무게에 짓눌려, 초라해진 삶을 파멸시키려는 한 사람이 생각에 잠겨 있다. 그의 곁에 죽음을 거둬들이려는 땅의 주문 소리가 들려오고 잠시후 그는 想念(상염)의 업보를 체념한다. 그때 견고히 닫혀져 있던 그의 마음의 문이 열리며, 따뜻함이 슬프게 그를 감싼다. -하나, 둘, 셋, 셋이 있었다. 하나는 꿈, 둘은 사람. 하나, 둘 , 둘이 남았다. 하나는 꿈, 하나는 사람. 하나, 둘, 셋, 셋이 되었다. 하나는 꿈, 하나는 영혼, 또 하나는 사람. 하나, 둘, 셋, 하나가 떠났다. 하나는 꿈, 하나는 사람. 하나, 둘. 둘이 되었다. 둘은 하나...
Part II
멀리서 死神(사신)이 다가온다. 묵묵히 운명에 냉기 어린 얼굴을 하고.....신의 모든 精靈(정령)들이 모여든다. 행복은 행복보다 더한 빛깔로, 슬픔은 슬픔보다 더한 빛깔로 그들만큼의 빛을 낸다. 체념한 사람은 얘기를 한다. "내 마음에 현실의 태양이 떠올라 난 그 뜨거움으로 말라죽어 간다. 나는, 나의 조상과 그 이전의 아담, 그리고 다른 모든 존재들을 부정하노라!" 死神(사신)은 허공에 그의 피로 풀어놓고, 그를 잠시 쳐다본 후, 그의 그림자를 밟고는 말한다. "너는 꿈, 너는 허상!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다만 내가 진실일 뿐..! 난 너의 그림자가 필요해!" 그러자, 젊은이가 얘기한다. "나의 힘든 삶의 무게로 인해 그림자는 짓눌려 있으니 그 누가 그것을 빼낼 수 있을까?" 하고는 그를 포옹한다. 그러자, 그의 세계는 무참히 뜯겨져 뜨거운 태양빛 아래 태초의 그 자신만이 홀로 서 있게 되었다....
잃어버린 천국.
꿈을 꾸는 내 영혼은 밤의 날개. 달빛 가득한 숨에 나래 내리고.
계곡 사이로 싸늘히 불어오는, 거친 바람의 슬픈 노래 듣는다.
언덕 저편 무리들은 소리내어, 그들 그림자를 신이라 외치네.
해는 떠올라 그림자는 스러지고, 이제 그들의 신이 죽었다 하네.
몽매한 맹신의 바벨의 탑은 다시 또, 허무한 혼돈의 예언 속으로...
잠든 꿈을 내 날개에 다시 실어 고요를 지나 그대의 품으로......
Part Iii
Glissang
이제 그는 신의 들판에 서서 노래 부른다. 하나! 나는 태초의 공허에서 태어난 아이. 둘! 선과 악의 재판은 호사로운 것. 셋! 나의 공허한 슬픔은 그 위를 떠도니.. 넷! 두려워하라! 그 슬픔이 모두에게로 흘러 넘침을. 다섯! 나는 영원의 들판에 공허의 씨앗을 뿌리는 자. 여섯! 그 때가 오리니, 신의 화원은 나의 피로 물들리라. 일곱! 나는 신의 들판에 눈물의 열매를 키우는 자...
Part Iv
바람코지
나란 이름의 옷을 입고서 태어나 오늘을 살아가네. 오늘은 순간에 과거가 되고 하루가 가지....하루가 지나가네....
나는 무엇에 쫓겨 여기에 왔나. 꿈의 주술속에서 운명을 모른채 지난 일 잊고, 내일도 모르고 날뛰지만 운명은 차디찬 자식을 넘어, 우리의 순간을 늘 비웃지. 아!어머나...
거침없이 현을 울려 깨어나라..! 내가 아닌 내가 바람코지 끝에 서 있는데...
꿈에서 깨어나 또 다른 꿈을 꿈꾸네... 나의 나란 영혼은...가던 길 멈추고 되돌아서서, 집으로 집으로 향하는데...야속한 오늘은 내일의 잔을 자꾸만 나에게 들라하네. 아! 어머니...
Epilogue
어느 마을에 두 노인이 왔다. 한 노인이 예수가 죽지 않았노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얘기를 했다. 그러자 또다른 한 노인이 "사람들의 성화로 할 수 없이 자기는 예수를 칼로 쳤다고 했다." 그의 칼에 예수의 상처에서 많은 물이 흘러나왔고, 눈물 자욱이 생겼다고 한다. (슬픔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은 마치 칼이 우는 듯 했다"고 한다.) 그리고, 둘은 말했다. 예수는 죽지 낳았고, 십자가에 묶인 채 어디론가 멀리 떠나는 배위에서 외치고 있었다고... "나는 십자가에 묶인 채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너희들의 神(신)이다!"라고... 이 말을 들은 어떤 이들은 즐거워 떠들었고, 어떤 이들은 하염없이 울었다.
지금 배가 떠나려 한다. 예수의 십자자가를 높이 세우고, 예수의 말을 흩뿌리며.... "나는 십자가에 묶인 채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너희들의 神(신)이다.!" 새벽 종소리에 문득! 십자가를 바라다 봤다. 그가 이제 더 이상 십자가에 묶여 고통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를 십자가로부터 떼 내어 내려놓았다......
범능 : 먼산 김용택 작시
그대에게 나는 지금 먼 산이요
꽃 피고 잎 피는 그런 산이 아니라
산국山菊 피고 단풍丹楓 물든 그런 산이 아니라
그냥 먼 산이요.
그대에게 나는 지금 먼 산처럼 있다는 구절 때문에 눈물이 났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과의 거리가 먼 산처럼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꽃이나 잎이 피는 그런 산이 아니라 먼 거리에 떨어져 침묵하고 있는 산. 가까이에서 살아 숨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산이나 나와 함께 하는 산이 아니라 함께 할 수 없는 산, 그런 산처럼 있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가슴이 아팠다. 저잣거리에 사는 동안 사람을 가장 가슴 아프게 하는 것도 사람이다. 한 때는 소나무 옆에 잣나무 있듯이 그렇게 서서 어깨를 기대고 서로의 그늘이 되어주고 버팀목이 되자고 했던 사람이 어느새 서로에게 실망하고 돌아서고 미워하며 바늘잎으로 서로를 찌르며 살아간다. 서로에게 기대하던 것을 채울 수 없어 답답해하다 서로를 원망의 칼로 베어 상처 내고 그 피가 여울을 적시며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나는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생각이 깊어 분노로 자신을 태우고 상대를 태우고 그냥 두면 숲 전체를 다 태워버릴 것 같은 날이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받고 가장 슬프게 우는 삶을 살면서 괴로워한다. 뜨거운 인연으로 만났다가 악연을 만들어 가지고 돌아서는 어리석은 삶을 사는 동안 나는 오늘도 얼마나 많은 악업을 짓는 것일까. "어리석은 사람은 오직 남의 악만 볼 뿐 자신의 악은 보지 못하며,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의 선만 볼뿐 남의 선은 볼 줄 모른다."는데,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는 자는 지혜 있는 사람이 아니며, 똑똑하다고 자처하는 자는 오류가 많으며, 모든 경전을 다 안다고 장담하는 자는 믿을 것이 못된다."라고 『법률삼매경』에서는 말하는데 우리는 상대의 잘못만 가지고 분노하고 자신의 선한 면만 온갖 지식을 동원하여 주장하며 칼날을 세운다. 나는 언제나 정당하고 상대는 언제나 그르고 잘못된 점이 많다고 믿는다. 내가 너 때문에 아프다고 하면 아플 이유가 어디 있는지 대보라고 따지만 한다. 내가 납득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아프면 아픈 거이다. 아프니깐 아프다고 하는 게 아닌가. 왜 아프냐고 공박할 게 아니라 아픈 곳을 치유할 궁리를 더 해야 하는 데도 말이다. 떠나야겠다고 하면 뭐가 부족해서 떠나느냐고 소리를 친다. 그가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텐데 말이다. 내가 모른다고 큰소리칠 것이 아니라 그가 어디에 있어야 행복할 수 있는지를 헤아리지 않고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 잠시 함께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인연이 다하면 반드시 그 인연은 풀어져 흩어지게 되어 있는데 말이다. 바람 같은 걸 붙들고 집착하지 말아야 하는데 말이다. 알면서도 왜 그게 정작 내 문제가 되면 아는 대로 행하게 되지 않는 것일까. 고통의 바다를 건너 갈 나룻배 한 척 아직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운명의 길은 늘 준비한 다음에 오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그것 때문에 마음이 더 아파서 앞으로 가야할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도종환)
부용산 : 안치환 박기동 작시 안성현 작곡
감히 소리 내어 부르지 못하고 가슴속으로만 불렀던 노래 <부용산>. 현재 아름다운 노래말과 애절한 곡조로 사랑받았던 노래 <부용산>의 시비가 전남 보성군 벌교읍 부용산 오리길에 서 있다. <부용산>은 박기동씨가 1947년 스물네살 꽃다운 나이에 폐결핵으로 요절한 누이의 주검을 묻고 돌아와 쓴 시에 목포 항도여중에서 함께 재직하던 안성현(월북<엄마야 누나야> 작곡가)이 1948년 곡을 붙인 노래다. 수년 전,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남재희씨가 어떤 인터뷰에서 “남도에서 <부용산> 모르면 간첩”이라며 열창할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곡이다.
부용산 산허리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너만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붉은 장미는 시들었구나
노래 <부용산>은 해방과 전쟁 뒤 폐허라는 당시 상황과 어우러져 당대의 최대 히트곡이 됐지만 작곡가 안성현이 월북하면서 지하에 묻히고 말았다. 한국전쟁 때 작곡가 안성현이 무용가 최승희와 함께 월북하자 이 노래도 공식무대에서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당시 빨치산이 즐겨 불렀다는 이유로 가슴과 가슴속에서만 불려지게 되었다.
“노래가 자신들의 신세와 비슷해서 그들이 즐겨 불렀던 것 같아요. 작곡가 안성현은 목포항도여중 교사 시절 저와 단짝이었는데, 예술을 좋아하는 <엄마야 누나야> 같은 낭만주의자였어요.” 박 시인은 “안성현의 아름다운 곡조 때문에 <부용산> 시가 살았다”며 작곡가에게 그 공을 돌렸다. 이런 <부용산>의 사연이 지식인들에게 알려지면서 노래는 빛을 보기 시작했다. 1997년 가수 이동원과 안치환에 의해 처음 무대에서 불려졌고 지난 5월13일과 14일에는 ‘삶과 꿈 싱어즈’에 의해 포항공대와 포스코 공연에서 합창으로 소개됐다. 또 5월29일에는 전남 목포에서 열린 소프라노 송광선(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초청음악회에서 불려졌다. 송광선씨의 초청음악회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살던 박기동 시인이 가사 1절이 나온 지 52년만에 2절을 보내와 처음으로 공개된 자리이기도 했다. 가사 2절에는 1절의 애상과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부용산은 어머니 같은 산이에요. 지인이 2절을 붙여 달라기에 썼는데, 다 쓰고 나니 가슴이 먹먹했어요. ‘너의 꿈은 간 데 없고 돌아서지 못한 채 나 외로이 예 서 있으니’ 이 대목을 쓰고 나서는 많이 울었어요.” 팔순의 노 시인은 먼 타국 땅에서 52년 만에 <부용산> 가사 2절을 써놓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금지곡이 되다시피 한 노래의 작시가라는 이유로 70년 이후 독재정권의 탄압을 받았던 아픈 세월이 밀려왔던 탓이다. 일본 관서대학 영문과를 나온 박 시인은 지식인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시대를 비판하고 저항하는 문학청년의 길을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