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막론하고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에게 솔직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보지 않은 것을 보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듣지 않은 것을 듣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 이 네가지를 일컬어 '성스러운 말'이라고 하셨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자신에게 솔직해지지 않으면 성스러운 경지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몸과 입과 생각으로 짓는 악업들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결국은 모두가 자기애 떄문에 생겨난다. 나에 대한 사랑이 강렬하기 떄문에 자기에게 맞으면 탐심을 내고, 자기에게 맞지 않으면 분노를 일으키며, 자기에게 사로잡히다 보니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여 어리석은 생각 속에 빠져 들고 만다. 결국 갖가지 번뇌에 휘말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이라며 짜증을 내기도 한다.
*'나'라는 울타리를 쳐놓고 스스로 그 안에 갇혀서 헤어날 줄 모르는 것이 바로 중생들의 자기 사랑이다.
나를 가장 올바르게 사랑할 줄 아는 이가 바로 부처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불길 속에 갇힌 나는 진정한 나일 수가 없다. 그것은 고통과 불행의 나이다. 가장 소중한 나는 모든 번뇌와 집착에서 벗어나 영원한 대자유인이 되었을 때의 나, 즉 참된 나이다.
*아함경<阿含經>에서..
어질고 착한이는 어떤 사람인가?
1.그릇됨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사람.
2.자비심이 있는 사람.
3.모든 사람에게 해을 끼치지 않는 사람
4.남에게 이익되는 일과 행동을 함께 하는 사람
어떤 이를 악한 벗이라고 하는가?
1.두려움을 주어 상대방을 억누르려고 하는 사람
2.감언이설이 많은 사람
3.폭력을 사용하는 사람
4.덕이 되지 않는 사람
*시작과 끝이 있는 세속의 법은 모두가 무상하고 허전한 뒷맛을 남긴다. 시작이 있는 것은 반드시 다함이 있다. 큰 굿잔치을 할때는 재미가 좋지만 다 보고 나면 허전해진다.
*옳다, 그르다를 따지는 것, 이 한 생각 이것이 곧 생사이다. 끝없는 생사를 불러일으키는 중생심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게 되면 서로 악담만 오가게 되고 감정은 더욱 상하게 된다.
옳고 그릇됨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자기를 중심에 두고 있다. 나에게 맞으면 옳고 맞지 않으면 그릇되다고 한다.
*항상 부드럽고(柔), 화합하고(和), 선하고(善), 순수한(順)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유화선순보다 더 큰 힘은 없다. 아무리 강한 것이라 해도 부드러운 것을 이기지 못하고, 투쟁은 화합을 넘어서지 못하며, 이기심은 선한 마음을, 약삭빠름은 순수함을 따라잡지 못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사람, 놓아 버릴 줄 아는 사람만이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실체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차지하겠다고 갖은 애를 쓰며 잡아당겨 봐야 힘만 들 뿐입니다.
실체를 모르는 이상 그것은 자기 것이 되지 않습니다.
내가 살아가겠다는 생각, 내가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탁 놓아 버릴 때 모든 갈등이 해소됩니다.
그 때 진정한 승리자가 되며 성인과 부처가 눈앞에 나타납니다.
*사랑은 인연의 모임이요, 재물은 주인을 찾아 항상 흘러갑니다. 인연이 다하면 사랑은 흩어지고 재물도 다른 주인을 찾아 흘러갑니다. 영원한 나의 것은 없습니다. 인연따라 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떠나가는 것에 지나친 애착을 가지면 괴로움만 커질 뿐입니다. 오히려 돈이 나에게 찾아왔을 때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사랑의 인연이 맺어졌을 때 너의 것이 되어 서로를 살리고 또 좋은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애착과 애욕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나의 것으로 삼고자 하는 생각을 놓아 버리면 근심과 두려움은 절로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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