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경제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동안 자유경쟁자본주의 사회에서 몇십년 동안 사업을 하다가 습득한
경험적 논리에 의해서 간단히 설명 드립니다.
소규모의 구멍가게 즉 식당같은 사업을 처음 시작 하더라도 초기 자본이 소요됩니다.
아무 자본도 없이 열심히 무에서 유를 창조해보겠다고 불타는 의지만 가지고
은행이나 주위의 친지들에게 아무리 설득을 해도 그 어떤 담보물이 없이는 한푼의 융자도 받기가 힘이 들겁니다.
전쟁후 정말 피죽도 끓여 먹기 힘든 시절 박정희 정부는 독일로 일본으로 미국으로 돈을 꾸어로 다녔읍니다.
집안에서 굶어죽어 가고 있는 새끼들, 무지 몽매한 새끼들을 일단은 먹여 살려야 한다는게
그 당시의 박 정희 대통령의 대의적 논제(Major Issue)였을 꺼라 생각이 됩니다.
잿 더미위에서 온동네에 넘쳐 나는 거지들과 고아들에게 우선 필요한것은 "밥" 이였을 겁니다.
그 밥을 구해오는데 모든 국민들 오색당파들을 다 불러 모아서 일일이 다 이해를 시키고 동의를 구하고
표결에 부쳐서 밥을 구하러 다니다가는 제대로 밥그릇 구경도 못하고 다 굶어 죽었을 꺼라 생각이 됩니다.
철없는 아이가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숙제를 안하겠다고, 집안 청소를 거들지 않겠다고,
자기의 삶에 간섭하지 말라고, 자유를 달라고 땡깡을 부립니다.
부모는 당장 이 아이에게 필요한게 학교를 보내서 미래를 대비시키고
어릴때 부터 열심히 일하고 남을 위해 헌신 할줄 아는 건전한 사회인으로서의 기본 자질을
어릴때부터 습득을 시켜야 하는데
때로는 부모는 부모대로 먹고 산다고 심신의 여유가 없어서
일단 그 철없는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에게 물리적 제재를 가해서라도 그 위험선을 넘지 않도록 하고 봅니다.
저도 제 아이를 기를 때 하는 수 없이, 그 아이를 붙들고 민주적으로 그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라고 설명을 할 여유가 없을 때가 너무나 많았읍니다.
그래서 일단 몇번 엉덩이를 때려서라도 엉뚱한짓을 못하게 해놓고 봅니다.
자유를 달라고 울며불며 깡짜를 부리는 아이를 때로는 내마음이 찢어지게 아프도록 매를 들때가 많았읍니다.
지금은 자기 주위에서 어릴때 우리 아이가 못 누렸던 그 자유
(숙제 안하는 자유, 밤늦도록 콤퓨터 게임하는 자유, 학교 안가는 자유 등등)를 만끽했던 친구들은
자기가 가고 싶었던 대학을 갈수 없는 제약,
하고 싶은 일을 할수 없는 제약,
스물 두 세살이 넘도록 미래를 예측 할수 없는 제약 등등의 환경적 탄압에 너무나 많은 자유를 박탈당하며
제 아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자유
(대학 3 학년에 이미 연봉 1 억이 넘는 회사, 미국 아마존에 취직, 자기가 좋아하는 콤퓨터 분야에서 매일 즐겁게 공부함) 를 오히려 그 아이들 보다도 그들 부모들이 더 부러워 합니다.
그런 친구중에는 우리 아이의 이런 자유를 부러워 할줄 조차도 모르는 미련한 아이들도 더러는 있읍니다.
나중에 세월이 갈수록 그 아이들과 제 아이의 삶의 질의 차이는 동과서가 서로 먼것 처럼 멀어 질 것 이라 믿어
의심치 않읍니다.
물론 삶의 질이 꼭 경제적인 측면만 가지고 따지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의 미래를 설계하고 그 설계도 위에 자기의 열정을 불태우는
그런 자기 삶에 대한 성실한 태도에 대한 측면을 볼때도 더욱더 그 차이는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읍니다.
왜 제가 이런 장황한 설명을 하는 가 하면 저는 정치가의 덕목을 두가지 명제로 크게 나눕니다.
한가지는 가정을 책임지는 어버이로서의 자세,
또 다른 한가지는 가정을 이용한 자기의 꿈을 실현코자 하는 비련의 의붓 아버지 같은 자세 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경험해보니 진리에 대한 결실은 많은 시간을 요합니다.
그 진리에 대한 평가가 후세들이 어떤식으로 하던 그 진리의 속성은 만고 불변일 겁니다.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배고픈 백성들의 빈 밥그릇 긁는 소리를 듣는 어버이로서의 애절한 마음에
박정희 대통령의 갈길은 너무 멀고도 바빴을 겁니다.
굶어 죽어 가는 아이에게 그 아이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준답시고 정말 민주적인 멋진 아버지가 되겠답시고
" 너 뭐 먹고 싶니? 짜게 해줄까 맵게 해줄까? 밥 그릇은 어떤것으로 담아 줄까?
나무 젓가락 쇠젓가락중 어느 것을 줄까? 등등을 물어 보는 아버지가 있다면
필경 정신 병자이거나 자기의 덕망을 대외에 과시 하고 싶어하는 비련의 의붓아버지같은 사람일 것입니다.
저도 제아이가 콤퓨터 게임을 더 하고 싶다고 땡깡을 부릴때
나중에 이아이가 나를 폭력적인 아버지로 기억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를 할 겨를도 없이 엄하게 다스렸읍니다.
지금 솔직히 말해서 제 아이는 현재의 거의 절반 가까운 주위의 대학 졸업 예정자들이
아직도 직장이 보장되지 않아서 자기 전공과는 무관한 허드렛일 수준의 직장이라도 잡을려고 허덕 거리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도 저에 대해서는 그리 큰 고마운 마음을 드러내 보이지는 않는 것 같읍니다.
그냥 자기가 잘 선택해서 지금의 이 안정스러운 미래를 취득한걸로 생각을 하는 것 같읍니다.
하지만 아버지로서 저는 그게 그리 많이 섭섭하지는 않읍니다.
지난 여름 미국 씨에틀 아마존 본사에서 인턴을 하면서 대학 3 학년 생으로서는 꽤나 많은 월급 (약 635 만원) 을 받아서 자기도 놀라고 저도 저으기 놀랐었읍니다.
그 돈으로 저와 자기 엄마에게 스마트 폰과 전자책을 선물로 사주었지만
자기가 그런 환경을 누릴수 있음에 그 저변엔 아버지의 엄한 가이드가 있었다고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고
그리 크게 고마워 하지는 않는 것 같읍니다.
오히려 때로는 어릴때 저에게 심하게 꾸지람을 들었던 기억은 몇몇개 또렷이 기억을 하고 있기 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자식의 미래가 저보다는 훨씬 나으리라는 생각에 섭섭한 생각보다는 오히려 크나큰 위안이
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잿더미만 남은 한국을, 고아와 과부와 상이 군인들만 넘쳐 나는 한국의 실상을 들고
해외에 나가서 돈을 빌릴때....
제 생각에는 그 당시에 우리에게 차관을 해주었던 그 당사국들은 아마도 우리 국민들을 믿고 돈을 빌려
주었다기 보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처절한 각오와 그 영도력을 믿고 돈을 빌려 주었을 꺼라고 생각이 됩니다.
1950 년대 말 60 년대 초에 도대체 우리나라에서 담보를 잡을 만한게 뭐가 있었겠읍니까?
배고픈 사람들의 밥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치겠다는 그 각오....
그 각오 밖에는 담보로 할게 없었을 겁니다.
바로 그 각오를 박정희 대통령께서 대신해서 보여 주었기에 현실적으로는 잿더미만을 담보로 밖에 할수 없는
미래가 불투명한 우리 대한민국에 기약없는 차관을 해주었을 겁니다.
아무런 생산 기반 시설이 없는 한국땅에 수십억불의 차관을 들여와서 거의가 다 시설투자와 입지환경조성 및
건설 ( 도로 항만등등)에 소요가 되었을 겁니다.
그런 기간 산업에 대한 투자는 그 손익 분기점이 십년, 이십년이 지나야 도래합니다.
경부 고속도로를 개통했다고 해서 당장 그해에 그 투자금액이 회수 되는게 아니겠지요...
아마도 적어도 몇십년이 지나야 원금회수가 되겠지요...
그러니 박정희 대통령은 그 후세 정권들이 수출강국으로서 면모를 세울수 있도록 든든한 기반을 세웠던 겁니다. 자갈밭을 피땀흘려 가꾸고 그기에 씨를 뿌리고 물을 주었지요.
그 이후에 정권들은 그냥 그 열매만 따서 포장만 했을 뿐입니다.
그 결실을 따 먹기만 했던 후세 정권들은 그냥 자기 공치사만 내세우기에 바빴던 겁니다.
마치 제 아들이 자기가 지금 확보한 미래에 대한 결실이 자기가 능력이 있고 열심히 공부해서 성취된것 처럼
여기고 있는 것처럼 ( 물론 제가 차근 차근히 설명하면 많은 부분이 아버지의 지도편달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라고 인정은 하겠지만) 지금의 이 철없는 배은 망덕한 대다수의 현 국민들을 계몽하는데는 사람의 힘으로는
거의 불가능 하다고 봅니다.
다시 6.25 동란 직후의 배고픔이 우리 국민들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는한.......
너무 얘기가 장황했지만 박정희 정권 시절을 좀더 원초적인 면에서 이해를 하기 위해선
마치 그 시절에 우리 각자가 박정희 대통령의 자리에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차원에서
박정희 시대를 이해하여야 합니다.
" 만약 당신이 어린 자식들이 우굴거리고, 제대로 못 먹어서 황달끼가 역력한 젊은 부인이 퀭한 눈으로 당신의
손에 든것 만을 바라 보고 있을때....
다 찌그러 들어가는 판자집에서 가진것 이라고는 당신의 그 처절한 삶에 대한 애착 밖엔 없을 때....
당신이 과연 바깥에 나가서 당신이 누려야 할 자유 - 언론의 자유, 시위에 대한 자유- 를
당신의 그 가족들의 끼니보다 더 앞 세울수가 있을까????????
배가 고파서 시위할 힘도 없을것 인데.........
정동영, 이정희, 강기갑 이 그렇게 깃발을 높이들고 목젓이 다 보이도록 고함을 치고 공중 부양 할수 있었던 것도 그나마 밥을 제때 제때 먹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참고로 김대중 정권때가 외환보유고가 갑자기 늘어 나게된 것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었던 소위 잘나가던 기업체와 부동산들을 헐값으로 해외에 많이 매각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순간적인 착시 효과 이지요.
그로 인한 실업률 상승과 수익률 및 채산성 감소의 결과는 차츰 차츰 표면화 되는 겁니다.
그 정권하에 당장엔 수치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읍니다.
내용이 너무 길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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